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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활의 후회

Free Speech | 2008. 3. 1. 04:00 | Posted by 김수민
사적인 것까지 따지면 한두개가 아니겠지만, 내가 '후회'씩이나 하는 두가지의 공적인 일이 있다.

첫번째는 학생회 혁신 담론에 끼어든 것이었다. 총학생회 중심체계는 올바르지도 않고 정확하지도 않다고 봤다. 총학 부서는 전문적으로 담당할 기구로 나누고, 각 영역과 분야를 네트워크화되어서 예산과 힘을 분산하자는 것이었다. 총학생 투표로 뽑는 대표자는 대학평의회에 들어갈 사람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었다.

문제는 고양이 목에 방울달 쥐도 부족하거니와 온 사방이 고양이었다는 것이다. 운동권이나 반운동권이나 총학 장악에 의해 앞으로 향방이 결정나다 보니 절대 분권화에 찬성할 수 없었다. 그리고 찬성할 만한 사람들에게는 힘이 없었다. 의외로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다. 운동권은 힘이 없지만 민중을 대표하니 총학 체계에서 돈과 인력을 갖고 운동해야 한다나? 그래 니 실컷 운동권 해라...

두번째는 학내에서 학술네트워크를 추진할 때 처음부터 그림을 잘못 짰다는 것이다. 나는 학회 및 학술동아리를 엮으려고 했는데, 이게 실패의 지름길이었다. 학회 연고가 없는 나 같은 사람이 제안을 하니 별로 효과가 없었다. 동아리 자체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 곳도 숱했다. 제안서를 넣어도 답이 없길래 싸이쪽지까지 보냈더니, 쪽지만 달랑 온 것으로 동아리에 알려지는 경우도 있었다. 겨우겨우 어떻게 모아서 행사를 했건만 추진위원들까지 연락을 끊고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덕분에 나만 개피를 봤는데, "에이 그럼 하지 마람 마 뭐~" 그만둬 버렸다. 시작할 때는 "어려울수록 공동행보를..."이었으나 나중에는 "동아리 하나하나가 자기 갈피도 못 잡는 판에 무슨 네트워크를..."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할 바에야 여성학, 생태학, 평화학, STS, 노동학... 이런 주제로 새로 학술 프로젝트를 만드는 게 나았다. 물론 그것도 오래 못갔겠지만 기성 동아리들의 사정에 질질 끌려 다니면서 시간을 허비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하도 일이 안 풀리다 보니, 작년 여름 노회찬캠프에서 일할 때는 속이 시원하기까지 했다. 누가 못하게 하지는 않으니까... 처음엔 상황업무를 주로 맡다가 모 보좌관 선배가 정세분석팀을 제의해서 회의에 들어가보니 당의 자산들이 꽉 들어차 있고... 당시는 본선 진출이 유력하다고 여겨질 시점이라 정세분석팀에서도 대권영길 전략보다 대이명박 전략을 짰다. 그때가 좋았지... 아마 제대한 뒤 가장 호사스러운 시절이었을 거다. 며칠 뒤 마타도어 퍼지면서 분위기 다 깨졌지만 말이다..ㅋㅋ

결론적으로 학내에서 활동을 안 하는 것이 나았다는 생각이다. 그저 가까운 곳의 문제에 뛰어든다라는 생각으로 임했지만 마음의 거리는 너무 멀었던 것 같다. 요즘 학생들은 투쟁적인 게 아니라 투정적이어서 학내 활동에는 베이비시터에 가까운 자질이 요구되는데... 나는 아기들은 잘 보지만 나이 먹을 대로 먹은 대학생들 얼르고 달래서 사업할 의지는 없었다. 알아서 혀. 싫음 말고~ 매사에 이런 식이다.

암튼 그 시간에 문화연대를 들락거리거나 삼성반대운동을 했으면... 1학년 한해동안 반방이나 들락거렸고 2학년 때는 들지도 않은 어느 동아리방에 들락거린 내 주제에, 무슨 학생회 혁신이며 무슨 학술네트워크여... 채플자율화나 좀 더 신경써서 할 걸. 남들한테 도와달란 소리도 잘 못하면서 남들이 도와줘야 되는 제안과 요구를 너무 많이 했다.

그래서 앞으로는 아무리 중요한 일이라도 내 입맛에 안 맞는 일, 내가 커버 못하는 일 또는 그러기 싫어하는 일은 안 하기로 했다.

예외가 있긴 하다. 힘쓸 일 있으면 달려간다. 몇주전에 비정규직 노동자 분들이 학교 본관에서 농성한다고 달려갔었다. 나는 또 밀고 당기고 그러는 줄 알았지... 그냥 철야여서 밤새 노가리 까다가 다음날 점심 때 빠져 나왔다. 그러니까 누가 때리면 나한테 콜...

그런데 황송하게도 학내에서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긴 있다고 한다. 오히려 그간 교류가 활발하지 않았던 곳인데... 나는 나대로 그쪽에 괜히 간섭을 하기 싫고, 그쪽은 그쪽대로 내가 어려워서, 오가기가 힘들었던 듯하다. 도와준 것도 없는데... 그쪽에서 연락오면 어지간한 건 들어줄 작정이다.

내가 그래도 덕이 아주 없지는 않은 모양인지, 참여를 결정하기 전 궁금하거나 희망사항이 생기면 나한테 연락해오는 사람이 가끔은 있다. 그저께도 전혀 안면 없는 사람이 나한테 편지를 보내왔더라. 전역하면 정치활동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냐고. 나는 걍 비루한 인간이지만 한가지 자부심은 있다. 나는 '안내'는 편파적으로 안 한다. 절대 내 의견만 소개하는 일 없다. 툭하면 지랄하는 사람이라고 욕먹을지언정, 사람 인생 말아먹는 '운동권 선배'는 아니다. '아직 결정은 못했는데... 관심은...' 이러는 사람들이랑 더 많이 만나고 싶다.

학생회 선배 만나 어울려 돌아다니다가 어느 순간 주사파라고 깝치는 애들이나, 세미나 몇개 어설프게 하고 사민주의는 개량이 어쩌고로 한큐에 덮으려고 하는 넘들이나... 그넘들보단 내가 시장바닥에서 할머니랑 대화를 하겠다. 그분이 골수 한나라당 지지자만 아니면 어느 정도는 설득가능하다. 골수 한나라당 지지자면 말문을 닫게 해줄 수는 있다. 내가 아무리 못나도 26년 헛살진 않았다. 

피차 도움도 안 되는 거 올해는 좀 산뜻하게 좀 살아볼까 한다. 대학 마지막 해잖아. 자율적으로 활동해 보는 풍토 만들려고 하면 몇번 움직이다가 피식 꺼져 버리고.... 얼마 지나 보면 어디에 '낚여 가지고' 매우매우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내 인생에서 꽤 있었다. 노예근성인가? 그런 사람들은 추가 확인이 되는대로 전화기에서 이름을 다 지울 계획이다. 나는 인정투쟁이 X 같거든.... 그러니까 겁나는 건 없다.

그리고 "동지니까..." 이 이야기만은 제발... 그렇게 이야기하면 무슨 휴머니스트 같냐? 개뿔이나... 난 한넘도 동지라고 생각한 적 없으니까 고만해주세용~ 좀 더 알고 싶은 사람, 이젠 그만 알고 싶은 사람, 지금 그 거리가 좋은 사람... 그냥 세 경우 뿐이니.

어차피 처음부터 내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었다. 맞지도 않는 거 억지로 맞추려 하지는 않겠다. 난 정말 후회라는 걸 거의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지금 내가 후회하고 있는 것이 너무 싫고, 다시 그러면 어느날 밤새 내 스스로에게 꿀밤을 먹일지도 모른다. 분명 내가 학내에서 시간을 허비하면서, 정작 이룬 게 없이 망가지기만 하고 도움도 안되는 동안, 나는 그나마 할 수 있는 몇가지 일들을 내 발로 차버렸고, 덕분에 사회 어디에선가 피해가 발생하였으며, 그 피해는 '사는 게 그렇지'라는 말로 덮을 수 없다는 게 내 소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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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 두꺼운 정창영과 연세대

Forum | 2008. 2. 29. 17:32 | Posted by 김수민
제목 정창영 교수, 총장은 물러나도 강의는 한다? 추천 : 0
글쓴이 김수민[김수민](연세인)  조회수 961 날짜 2008.02.22
캠퍼스 공통

이번 학기 수강편람을 보니 정창영 교수님께서 미시경제원론 강의를 맡으셨더군요.

본인이 직접하신 일은 아니더라도 물의를 빚고 총장에서 사퇴하였는데
강의만은 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어떤 다른 교수님은 한번 저지른 잘못으로 인해 거듭해서 궁지에 몰리던데
정말 대조적인 풍경입니다.

학교 본부측은 욕먹을 짓의 속편을 찍지 않기를 바랍니다.


[단독] 연세대 정창영 전 총장 수업복귀…학생들 “학교 망신”

쿠키뉴스|기사입력 2008-02-28 18:06 |최종수정2008-02-28 18:10 기사원문보기
[쿠키 사회] 부인의 편입학 청탁 금품수수 의혹으로 사퇴했던 정창영 전 연세대 총장이 강단에 복귀해 올 1학기 경제학과 수업을 맡기로 한 사실이 28일 확인됐다. 큰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지난해 10월말 불명예 퇴진한 정 전 총장이 단 한 학기의 자숙 기간도 없이 곧바로 강단에 선다는 데 대해 상당수 학생들이 “무책임하다”며 반발하고 있다.

연세대에 따르면 정 전 총장은 2008년도 1, 2학기 모두 수업을 진행하겠다는 의사를 학교측에 전했으며 학교측도 이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이에따라 정 전 총장은 개강일인 다음달 3일 1, 2교시에 2, 3학년 학부생을 대상으로 경제학과 수업인 ‘미시경제원론’을 가르치게 됐다. 지난해 논문표절 사건으로 총장직에서 물러났던 고려대 이필상 교수가 학교에 부담을 준 점 등에 도의적 책임을 지고 한 학기동안 강의를 개설하지 않은 사실과 대조적이다.

이 학교 경제학과 이모(25)씨는 “지난해 학교 이미지에 가장 큰 타격을 입힌 정 전 총장이 바로 강단에 선다는 얘기를 듣고 놀랐다”며 “도덕적 책임문제를 넘어 뻔뻔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조기 복귀에 반대했다. 다른 학과 이모(23·여)씨 역시 “너무 이른감이 있다”면서 “곧바로 교수직으로 복귀한다는 건 책임을 지는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학교측 관계자는 “검찰에서 편입학 청탁과 관련해 무혐의 처리를 할 것으로 알려져있다”며 “총장직 사퇴만으로도 이미 책임을 다 진 것이 아니냐”고 별 문제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아진 기자 ahjin82@kmib.co.kr

<갓 구워낸 바삭바삭한 뉴스 ⓒ 국민일보 쿠키뉴스(www.kukinew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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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기

책이라곤 읽지 않는 | 2008. 2. 28. 18:27 | Posted by 김수민

THE left 1848~2000
:미완의 기획, 유럽 좌파의 역사

1000쪽이 넘는 분량, 가격은 5만원. (교보에 주문해 5000원 싸게 샀다)

이 책을 사면서 앞으로 몇년간은 유럽 좌파에 관한
책은 더이상 돈주고 보지는 않기로 하였다.

존.M.톰슨의 <20세기 러시아 현대사>도 반도 안 읽었는데...
두께 있는 책이 하나 더 늘었다.

책은 제대로 못 읽어도
개지랄 같은 놈 있으면
이걸로 팰 순 있겠군.

사용자 삽입 이미지


 

푸우 곰돌이는 사촌동생 꺼. 사촌동생 방에서 찍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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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정치 칼럼을 준비하며

Free Speech | 2008. 2. 25. 23:26 | Posted by 김수민
2mb(메가 바이트가 아니라 밀리 비트다) 정권의 출범식이 낀 하루였다. 종일 눈이 내렸고 나는 지난 5년을 떠올린다.

세상에 비정치적인 것이 어딨겠느냐만 어떤 당이 어떻니, 정치인 누구가 어떻니, 하는 칼럼을 그만쓰기로 했다. 그런 글을 쓰더라도 공개적으로 발표하지는 않기로 했다. 사이트 게시판 같은 곳에서 발언하는 것은 물론 계속한다. 횟수야 근래의 몇달보다 줄어들겠지만.

원래부터 정치 칼럼을 오랫동안 쓰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내가 5년 전 지지했던 노무현 정권에 의해, 노동자 농민들이 죽어가면서 나는 뒤치닥거리 삼아 칼럼을 썼다. 이 정권이 파탄나면 어떻게든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은 노무현을 지지할 적부터 했다. 나는 독자들과 약속을 하기에 이르렀고 이제는 지켜야 한다.

한윤형이 자기 블로그에 쓴 글을 가까운 형이 귀띔하여 읽어보았다. 나는 키보드 워리어가 아니라 웹 칼럼니스트라나? 고마운 말이지만 앞으로 나는 두개 다 아니었으면 한다. 나는 발언하는 인민일 뿐이다.

다른 내용과 형식과 느낌의 글들을 쓰려고 한다. 아마 칼럼을 빙자할 일은 적을 것이며, 상당수는 블로그에도 올려지지 않을 것이고, 나 혼자서 읽고 응달 창고에 박아둘 원고들이 쌓여갈 것이다.

가증스럽게도 나는 학보사가 발행하는 웹진에 새로 글을 연재한다. '한국현대사의 OST'라는 기획인데, 역사 이야기를 하다 힘에 부치면 음악으로, 음악을 논하다 벽에 부딪히면 역사로 넘어가는 쇼를 진행하게 될 것 같다. 내가 원고 청탁을 받아들이고 이 기획을 제안한 까닭은 앞으로 내가 10대 후반 시절만큼 음악을 깊게 듣고자함이다.

<대자보>의 '호모 폴리티쿠스'에 올릴 마지막 칼럼을 계속 쓰고 있다. 도저히 유기적인 구성이 어려운 탓에 단상들을 접붙이는 방식으로 집필하는 중이다. 앞으로의 5년은 지난 5년과는 달랐으면 한다. 나 뿐 아니라 전 인민들에게도 말이다. 노무현은 강이 좌우로 굽이쳐 흐르지만 바다로 흐르기를 포기하지 않는다며 설레발-그게 설레발이 아니면 뭐냐-을 떨었다. 이놈의 강은 오른쪽으로만 틀다 이제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

왼쪽으로... 다시,가 아니라 비로소, 왼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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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블로그의 주제가 <말해봐>

Listen to the 무직 | 2008. 2. 24. 12:32 | Posted by 김수민

(본 블로그의 왼쪽 상단의 '공지'를 통하시면
항상 노래를 들을 수 있습니다.)

노이즈가든의 <말해봐>가 있고, 요호의 <말해봐>가 있다.
전자는 불만과 거부를 선동하고
후자는 위선과 가식을 비난한다.

두 노래는 같은 보컬리스트에 의해 불려졌다.
그는 박건이라고 한다.
철저히 정공법의 발성을 하는 동시에
자기 개성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보기 드문 보컬리스트이다.

노이즈가든은 1970년대 블루지한 하드록과
1990년대 얼터너티브 또는 그런지 사운드를
한몸에서 소화해낸 밴드며,
주로 미들-슬로우 템포의 곡이 많고
몽환적인 트랙도 다수 보유하고 있지만,
격렬하고 빠르고 별다른 기교나 변화가 없는
이 곡이야말로 하드-헤비록의,
노이즈가든의 정수를,
달리 말해 나의 취향을 그대로 보여주는 곡이랄 수 있다.

노이즈가든 <말해봐>





요호의 <말해봐>도 함께 끼워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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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인

휴지통 | 2008. 2. 23. 22:51 | Posted by 김수민
임종인 의원이 처음 언론에 부각되었을 때는 이해찬과 천정배가 총선 직후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경선에서 맞붙었을 적이다. 그는 이해찬을 지지하는 유시민에게 개혁파가 그러면 안 된다라고 했고, 예전 법무법인의 동료였던 천정배를 지지했다. 이때 경선이 우스웠던 것은 이해찬보다 천정배가 개혁에 적극적이었지만, 천정배를 후원하는 정동영그룹과 이해찬을 지원하는 재야그룹의 성향은 그 반대였다는 점이다.

나는 당시에는 임종인과 유시민의 대결이 당내 헤게모니를 둘러싼 권력투쟁으로만 여겼는데, 임종인은 그후 나의 예상을 연이어 엎는 행보를 했다. 그는 정동영에게도 김근태에게도 줄서지 않았고 참정연에도 가담하지 않았다. 아주 잠시 국참연에 참여했지만 언필칭 실용주의 행보에 반대하여 금세 탈퇴했다. 이라크파병에서부터 사회경제적 이슈까지 그는 거의 모두 민주노동당 의원들과 선택을 함께하며 '열린노동당 의원'이 되었다. (그가 2005년 말 이라크파병연장안 투표 당시 정족수 미달을 노리지 않고 반대표를 던졌다며 비판하는 사람도 있으나, 이미 정족수가 채워지는 걸 보고 어쩔 수 없이 출석하여 표를 던졌다는 이야기도 있다. 혹 구체적으로 사정을 아시는 분은 댓글 부탁드린다.)
 
나는 임종인 의원이 새로운 진보정당에 참여하기를 바란다. 나는 그가 진보 정치인이라고 생각한다. 보수정당에 몸담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도 옛날일인 것이다. 물론 다수의 당원들이 반발한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나는 2008~2012년 대표 야당 교체의 계획을 세우는 과정 속에서 그를 붙잡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임종인 의원은 진보진영보다는 자신을 일단 지지했던 '개혁층'을 대변하겠다며 신당 참여를 거절하고 있다. 잔머리 굴리기라고 보지는 않는다. 그의 곁에는 김성호 정도만 남아 있을 뿐이고, 통합민주당이나 창조한국당과는 서로 껄끄러운 관계이기 때문이다. 천정배 쪽이 작년 한때 따로 민생정치모임을 꾸렸음에도 홀로 걸어간 임종인이다. 다만 현재 임종인 그리고 김성호가 서 있는 포지션으로는 미래를 도모하기 힘들다는 것이 사실이다. 바야흐로 분화와 재편성의 시대가 다가왔다. 임종인을 밀어줄 만한 에너지는 통합민주당과 새로운 진보정당으로 흩어질 수밖에 없다. 그가 무소속으로 총선에 출마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장렬히 산화하겠다는 것에 다름이 아니다.

내가 지지하는 정당에 소속된 국회의원은 아니지만, 17대 국회에서 가장 칭찬해주고 싶었던 의원 중 한명이다. 아마 더이상은 의회에서 활동하는 그의 모습을 보기는 힘들 것 같다. 요즘 <대자보>가 그를 '작전주'로 띄우고 있지만 지식인층의 평가를 반영할 뿐 정치인으로서 그의 주가는 올라가고 있지 않으며, 신당에 참여할 사람들에게 도리어 거부감을 불러 일으키는 측면도 있다.

다음은 2005년 홍준표법 파동 당시 내가 써서 <대자보>에 올린 글이다.

:

2만명씩이나... 유입키워드 몇가지

Free Speech | 2008. 2. 22. 07:48 | Posted by 김수민

2007년 10월 4일 블로그를 열었다. 플로그인 적용을 비롯해서 다음, 네이버 블로그보다 까다로운 듯하여 PC방에서 낑낑댄 기억이 난다. 정치적으로는 민노당이 사실상 선거 쫑난 상황이었고, 노무현이 금 밟고 북으로 넘어가던 날이었다. 그때 내방에는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았었다. 헤어진 사람이 돌아오기 일보 직전인 시점이기도 했다. 뭐 결국 다시 헤어졌지만 말이다.

백기를 꽂는다는 투의 첫 글에서 암시하듯 이 블로그는 망명 정부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나는 무명의 시민이고, 이 블로그는 메모 쪽지의 모음집에 불과하다. 높은 조회수는 예상하지도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내 생각보다는 사람들이 많이 들어왔다. 고정적 독자는 얼마 안 될 테지만, 아까 확인한 바로는 말 없이 계속 들어오던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그건 다름이 아닌 자신이라고... 그는 미홈 때부터 나를 관찰해왔다고... 아는 사람이라 오싹한 일은 아니다.

역시나 이전에 활용하던 미니홈피보다는 조회수가 높다. 벌써 20000껀을 넘었다. 미홈이야 내가 누군지 알고 싶어서 들어오는 경우가 다반사고, 블로그는 유입 검색어의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이다. 유입 검색어 몇개가 눈에 띄어 소개해 본다.

박진영부인사진
=> 이게 1위야. 역시 이 블로그는 썬데이서울 기질이 있단 말야... 사진은 없고 차린 건 없지만...  

민주노동당
=> 상위에 랭크된 키워드. 잘 찾아오신 편이우.

김수민
=> 나?

이재영
=> 이재영 검색하니까 내 글이 제일 위에 뜨더라는 전언은 들었다.

한석규 성대모사 강일구
=> 나도 그 동영상은 확보하려고 했는데 못 찾았다.

다함께 탈당
=> 그럴 리가.  

블록 투표
=> 영국노동당사 공부하시나? 열공! 투쟁!

노무현, 이명박
=> 두 브라더스를 비교 연구하는 책을 써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요즘 강하다. 어느 덜떨어진 출판사가 나한테 집필을 맡기겠느냐만...

철장미 기타리스트
=> 보컬은 김성면(K2)인데 기타리스트는 기억이 안 나오.

원더걸스얼굴크기
=> 고마해라. 유빈 허벅지가 굵니 어쩌니... 맨날 쌈박질이고. 요샌 초딩도 2월 내내 방학인 거시냐~?
여기선 관련 글이 없지만 굳이 응답하자면, 얼굴 나보단 적고 허벅지 나보단 얇다. 학실하다.

추격자 백윤식
=> 김윤석이라니까. 백윤식은 평경장이고 김윤석은 아귀.

젝스키스 수익배분
=> 그게 몇년 전이여. 팀의 수익배분, 기억나는 거라고는 U2밖에 없다. 20퍼센트씩 나눠가졌다. 4인조인데 25%가 아니냐고? 브라이언 이노(프로듀서, 키보드 세션, 일명 제5의 멤버) 챙겨줬응께.

허경영 통일교
=> 기독+무속 삘 나는데 통일교는 아니다. 나 허경영 눈 보고 병 고쳤으니 궁금한 거 있음 물어보3.

조회수가 튀어오른 계기는 두번쯤 있었다. 첫번째가 한윤형 블로그에 링크되었을 적이다. 우석훈 블로그에 댓글 남긴 걸 클릭해 찾아오는 경우도 꽤 있었다. 내 블로그부터 들른 내 지인들도 우석훈, 한윤형 블로그를 곧잘 찾는 것으로 사료된다. 처음에 조회수가 튀었을 때는 블로그 개설 취지(적정 조회수는 하루 100이라고 판단했다)와는 좀 안 맞는다 싶었다. 이왕 베린 몸, 내 글 읽고 악플 달 테면 달라는 심정으로 운명에 순응했다.

두번째는 나의 낚시질. 오마이뉴스에 올랐던 나의 허경영 인터뷰를 블로그에 재게재했을 때이다. 디씨 허경영갤 등을 순방해본 결과, 내 기사는 크게 알려지진 않았지만 허경영빠들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텍스트로 쓰이는 것 같았다. "영혼복제 가능" "아이큐 사실은 무한대" 등보다는 "노숙자 한명의 무게는 나머지 전인류와 같다"는 격언에 하악거리며 "대인배"를 연발하는 빠들이 많더라.

그 다음부터는 민주노동당 사태가 급박해지면서, 검색으로 들어오는 누리꾼들이 점차 늘었다. 나는 영양가를 다량 함유한 당원은 아니나, 내 메모들은 섬유질은 만빵으로 초보 당원 입장에서는 읽을 만하다. '해설'로서가 아니라 '질적 연구 자료', '문화기술지'로서 말이다. 참 여기서의 '당원'은 민주노동당 당원이 아닌 진보정당 당원이다.

롹음악 검색하다가 들어온 분들이 역사에 관한 글도 우연히 읽고, 정치에 관심 있는 분들이 잡담나부랭이도 읽는 그런 블로그가 되었으면 한다. 이 블로그에 마음 속 깊은 이야기는 잘 쓰지 않지만, 고정독자들은 이 블로그 주인장을 통해서 인간탐구의 새 지평을 열어 나가라~ 천기보전 무르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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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은 초딩이야! ㅠ

Free Speech | 2008. 2. 22. 06:44 | Posted by 김수민

오랜만에 신촌에 나갔다가 신입생 OT의 거대한 물결에 휩쓸렸다.
내가 국민학교 들어갈 무렵 태어났던 사람들...
내가 새내기 때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사람들...
나는 그들을 새내기라 부르지 않을 것이다.
당신들은 초딩이야!

(물론 가까이서 마주칠 일이 없을 거란 전제 하에서이며,
맞붙게 되면 난 무조건 튈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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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북평통

史의 찬미 | 2008. 2. 21. 16:31 | Posted by 김수민

“북으로 간 조소앙·안재홍 50년대 독자적 통일운동” (한겨레)

학부생이 북한사를 다루면 얼마나 다루겠는가? 재작년 수강했던 북한현대사 수업에서 나는 처음에 '8월 전원회의 사건'으로 보고서를 쓰겠다고 했다가 교수에게 퇴짜를 맞았다. 너댓명이 같은 주제를 신청한 것이다. 7.4공동성명이나 주체사상의 형성도 마찬가지였다. 고민 끝에 한국전쟁 당시 납북된 이후 조소앙, 김규식, 안재홍이 걸은 길을 공부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런데 이 주제조차 한명의 신청자가 더 있었다.

나는 누군지도 모르는 '경쟁자'보다 앞서 나가려 급히 도서관에를 갔으나, 내가 없는 사이 교수가 수업에서 주제에 관련해 추천했다는 이신철 박사의 박사논문은 학교 도서관에 없었다. 다만 북측 당국자였다가 탈북한 신경완의 증언을 담은 <압록강변의 겨울>이라는 책을 찾았다. 상세한 회고였다. 그러나 겨우 그 한권을 손에 넣고 보고서를 쓸 수는 없었다.

하루는 북한현대사 담당교수가 입이 삐뚤어진 채 수업에 나타났다. 그러면서도 그는 말은 바로 했는데(캬캬), 자신이 보다시피 수업이 어렵게 됐으며 오늘은 특강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소개 받아 연단에 선 이는 놀랍게도 이신철 박사였다. 그는 북한의 역사적 흐름과 시사적 현안을 명료하고도 빼어난 입담으로 소개하면서 1시간동안 밀도 높은 강연을 했다.

나는 수업 말미에 '재북평통'의 활동을 연구하려는데 참고할 만한 서적을 하나밖에 못 찾았다며, 더 볼 만한 책이 있는지 그리고 박사논문 좀 얻을 수 없겠는지 물었다. 그날이 아마 아카라카 축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노천극장에서 터져 나오는 함성 속에서 나는 이 박사를 뒤따라가 박사논문을 건네 받았다. 그가 말했다. "졸업하고 대학원 갈 생각 있어요? 가세요. 요즘엔 시절이 좋아져서 역사 공부해도 먹고 살아요."

이 박사의 논문은 2005년에 나온 것으로, 해방정국기의 남북협상과 김일성의 민주기지론부터 시작해서 한국전쟁의 납북 그리고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의 통일운동을 다루고 있다. 김규식은 납북 도중에 숨을 거두었고 자연히 재북평통의 구심은 조소앙, 안재홍이었다. 북조선은 이들의 상징적 의미를 알고 있었기에 되도록 환대하였으며, 그들도 극렬한 저항은 하지 못했다. 그러나 양측은 의도를 달리 할 수밖에 없어 북조선은 재북평통을 통제하였으며 재북평통도 걸핏하면 항의단식을 실시하는 정도였다. 심지어 과부들을 요인들 곁에 배치하는 등 북조선 당국은 치밀한 작전을 펴기도 하는데, 이 과정이 <압록강변의 겨울>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한국전쟁 이후 재북평통은 중립화 통일방안을 제창하고, 김일성은 자신의 대남 '평화 공세'에 이를 활용하게 된다. 이것이 적화통일의 음흉한 방책이라고만 오해받는 '연방제 통일방안'의 배경이었다. 물론 전쟁이 끝난지 얼마되지 않는 상황에서의 통일방안을 오늘날 덜떨어진 통일지상주의자들의 '코리아연방공화국'과 동일시하면 대략 난감하다.

순망치한이라고, 남쪽에 있을 땐 웬수였을 박헌영이 숙청 당하고 나자 남쪽 출신 인사들도 위기에 처한다(그럴 거면 뭐하러 데리고 갔는지, 원). 감시가 심해지자 그들은 김일성에게 직접 항의를 하게 되고, 이를 우연히 지켜본 김정일이 그들에게 호의를 베풀어 좋은 중재자가 된다는 에피소드도 <압록강변의 겨울>에 나온다. 그러나 김일성과 그들을 이간하는 당국자들의 보고는 계속되었다. 또 재북평통을 구성한 뒤 전략적 동반자로 설정된 연안파(최창익 등)마저 숙청이 되자 납북 요인들은 궁지에 몰린다.

조소앙이 자살했다는 루머가 있었으나 풍문이 굴절된 것이다. 1958년 조선노동당 창건기념일, 학질을 앓고 있던 몸으로 과음한 그가 대동강변에서 쓰러졌다는 게 진실이다. 안 그래도 기울어지던 재북평통은 그가 죽음으로써 파국을 맞이했다. 납북 요인들은 더는 좋은 대접을 받지 못하고 심지어는 수용소 생활을 하면서 역사의 뒷편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한국전쟁 때 납북된 인사들이 만든 자리를 해방정국기에 월북한 백남운과 홍명희가 새로 채웠다.

1950년 총선에서는 조소앙이 전국 최고 득표율을 올리는 등 중간파의 대약진이 있었다. 한국전쟁 때 남북 양쪽을 피해 농사꾼으로 위장했던 근로인민당 출신 장건상은 전국 득표율 2위였다. 한민당이나 이승만이나 대중적 지지도가 취약했다. 물꼬를 중도로 돌릴 수 있던 바로 그 찰나에 전쟁이 터져 버린 것이다. 전투 소식을 듣고도 버젓이 야구장에 있었던 그 국민들은 3년 후 빨갱이라면 치를 떨거나 독재자가 무서워 입을 열지 못하는 국민으로 변신했다. 중간파와 좌파는 남한에 남아 탄압받는 경우가 아니면 북으로 넘어가거나 끌려갔다. 북조선에서는 박헌영을 죽이고 최창익을 제거하였으며, 백남운은 구석에 몰렸고 홍명희는 침묵하며 살았다.

소위 국토완정은 그렇게 이승만과 김일성의 '분단 국민국가'의 기초작업이 되었다. 아마도 재북평통은 북으로 끌려가고 남에서 내쳐짐으로써 자신의 정신이 남과 북 어디에도 머무르지 않게 된 없었던 마지막 인간들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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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학번이 쳐들어온다~ 튀어라!

Free Speech | 2008. 2. 20. 22:27 | Posted by 김수민

내가 입학했던 2001년, 단과대 학생회장은 96학번이었고 총학생회장이 97학번이었다. 98, 99학번의 남학생 다수는 군대에 있었고, 여학생 선배들은 보기 힘들었다. 술자리에서 우연하게나 같은 과의 95학번 선배를 마주칠 수 있었다. 수업에서 93학번을 발견하면서 일종의 고고학적 기분을 느낀 적은 있었다. 내가 일곱살이 더 많은 94학번을 바라보듯 새내기들도 나를 그렇게 보겠지. 마추질 일도 많지 않겠지만.

2006년 3월에 새내기들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칼럼을 <유뉴스>에 쓴 적이 있다. 그때와는 마음가짐이 많이 다르다. 군복무 2년을 끼고 살아가는 남대생에게 5년의 나이 차이쯤이야... 그러나 내가 대학에 들어갈 무렵 08학번은 여전히 초딩이었다!ㅠ 오늘 그 왕년의 초딩들이 어엿한 어른이 되어 오리엔테이션을 하겠다며 학교에 왔더라. 무섭다. 순이가 온다(Coming soon)~

변명: 나는 8학기를 끝내고 이제 대학교 5학년이 됐다. 2학기에도 수업 두세개를 더 듣는다. 결코 학생운동한답시고 학교에 죽치고 있거나, 학점이 너무 심하게 나빠서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니 오해 없기를...ㅡㅡ^
1. 전공 두개에 교직이수를 하는데다가
2. 바로 지난 학기에 12학점을 들었고, 중간중간에 수강철회가 있어서 비는 학점들이 있었으며
3. 입대 전 F먹은 거 재수강하느라;;
이렇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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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이름 2

Free Speech | 2008. 2. 20. 20:41 | Posted by 김수민

오랜만에 도서관엘 갔다. 역시나 두개의 목적을 가지고. 드라마는 속개된다. 뾰족한 수는 없지만.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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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조직' 노동자?

Forum | 2008. 2. 19. 05:15 | Posted by 김수민

옛날 한동안은 '미전향 장기수'라는 말이 쓰였다. 그러던 것이 '비전향'으로 바뀐 것은 '미-'라는 접두사가 '되어야 할 것이 되지 않은'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서, 전향을 당당히 거부하는 장기수들을 모욕하고 핍박하는 논리를 대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사례만큼은 아니지만 '비혼'이 '미혼'을 밀어내는 모습도 이따금 보인다.

'미조직 노동자'라는 표현이 있다. 이 표현을 쓰는 사람들은 진보적이어서 아무래도 모두가  '비전향 장기수'라는 표현을 쓰고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이때의 접두사 '미-'는 사회적 정치적 차원에서 각별히 선택되어 대안적인 문제의식에 의해 쓰여진 것이다. 노동자들을 구체적 차원에서는 노동조합 조합원으로, 하다못해 교섭의 적용을 받는 노동자로, 궁극적으로는 노동계급으로 조직해야 한다는 일념에 기초한 선택이다. 나 역시 당연히 방안과 사고를 좀 달리하더라도 '노동계급의 조직과 형성'이라는 명분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그러나 '미조직 노동자'라는 표현에 대해서는 그것이 눈에 띄는대로, 틈나는대로 재고를 요청할 생각이다.

당장에 '비조직'으로 써도 조직화의 의지는 꺾이지 않는다는 시시껄렁한 설명이 가능하거니와, '비-'는 '미-'보다 규정성이 약하다. 규정성이 약한 것은 적어도 폭력이나 중심성, 타자화 등등의 위험은 훨씬 덜하다. 극복되어야 할 현실지언정 현실은 있는 그대로 인정되어야 한다. 앞으로 기필코 조직하고야 말겠다는 각오를 담기보다 '조직되지는 않은'이라는 정도로 규정하는 것이 흔히 말하는 '인간에 대한 예의'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태도는 짧은 시간동안 성과주의의 눈총을 받을지도 모르나, 목적 이전에 지향한 가치를 지키며, 전략적으로도 폭넓은 조직화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좋은 인식에서 좋은 실천이 나오고, 강박감을 버리는 것은 좋은 인식의 첫걸음이다. 목과 어깨에 힘이 들어가면 노래를 잘 부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관등성명을 부르기 힘든 '그냥 사람'을 두려워 해야 한다. 아무리 악의 없는 생각일지라도 두려움을 잃은 접근은 몽상 아니면 억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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