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는 학생회 혁신 담론에 끼어든 것이었다. 총학생회 중심체계는 올바르지도 않고 정확하지도 않다고 봤다. 총학 부서는 전문적으로 담당할 기구로 나누고, 각 영역과 분야를 네트워크화되어서 예산과 힘을 분산하자는 것이었다. 총학생 투표로 뽑는 대표자는 대학평의회에 들어갈 사람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었다.
문제는 고양이 목에 방울달 쥐도 부족하거니와 온 사방이 고양이었다는 것이다. 운동권이나 반운동권이나 총학 장악에 의해 앞으로 향방이 결정나다 보니 절대 분권화에 찬성할 수 없었다. 그리고 찬성할 만한 사람들에게는 힘이 없었다. 의외로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다. 운동권은 힘이 없지만 민중을 대표하니 총학 체계에서 돈과 인력을 갖고 운동해야 한다나? 그래 니 실컷 운동권 해라...
두번째는 학내에서 학술네트워크를 추진할 때 처음부터 그림을 잘못 짰다는 것이다. 나는 학회 및 학술동아리를 엮으려고 했는데, 이게 실패의 지름길이었다. 학회 연고가 없는 나 같은 사람이 제안을 하니 별로 효과가 없었다. 동아리 자체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 곳도 숱했다. 제안서를 넣어도 답이 없길래 싸이쪽지까지 보냈더니, 쪽지만 달랑 온 것으로 동아리에 알려지는 경우도 있었다. 겨우겨우 어떻게 모아서 행사를 했건만 추진위원들까지 연락을 끊고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덕분에 나만 개피를 봤는데, "에이 그럼 하지 마람 마 뭐~" 그만둬 버렸다. 시작할 때는 "어려울수록 공동행보를..."이었으나 나중에는 "동아리 하나하나가 자기 갈피도 못 잡는 판에 무슨 네트워크를..."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할 바에야 여성학, 생태학, 평화학, STS, 노동학... 이런 주제로 새로 학술 프로젝트를 만드는 게 나았다. 물론 그것도 오래 못갔겠지만 기성 동아리들의 사정에 질질 끌려 다니면서 시간을 허비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하도 일이 안 풀리다 보니, 작년 여름 노회찬캠프에서 일할 때는 속이 시원하기까지 했다. 누가 못하게 하지는 않으니까... 처음엔 상황업무를 주로 맡다가 모 보좌관 선배가 정세분석팀을 제의해서 회의에 들어가보니 당의 자산들이 꽉 들어차 있고... 당시는 본선 진출이 유력하다고 여겨질 시점이라 정세분석팀에서도 대권영길 전략보다 대이명박 전략을 짰다. 그때가 좋았지... 아마 제대한 뒤 가장 호사스러운 시절이었을 거다. 며칠 뒤 마타도어 퍼지면서 분위기 다 깨졌지만 말이다..ㅋㅋ
결론적으로 학내에서 활동을 안 하는 것이 나았다는 생각이다. 그저 가까운 곳의 문제에 뛰어든다라는 생각으로 임했지만 마음의 거리는 너무 멀었던 것 같다. 요즘 학생들은 투쟁적인 게 아니라 투정적이어서 학내 활동에는 베이비시터에 가까운 자질이 요구되는데... 나는 아기들은 잘 보지만 나이 먹을 대로 먹은 대학생들 얼르고 달래서 사업할 의지는 없었다. 알아서 혀. 싫음 말고~ 매사에 이런 식이다.
암튼 그 시간에 문화연대를 들락거리거나 삼성반대운동을 했으면... 1학년 한해동안 반방이나 들락거렸고 2학년 때는 들지도 않은 어느 동아리방에 들락거린 내 주제에, 무슨 학생회 혁신이며 무슨 학술네트워크여... 채플자율화나 좀 더 신경써서 할 걸. 남들한테 도와달란 소리도 잘 못하면서 남들이 도와줘야 되는 제안과 요구를 너무 많이 했다.
그래서 앞으로는 아무리 중요한 일이라도 내 입맛에 안 맞는 일, 내가 커버 못하는 일 또는 그러기 싫어하는 일은 안 하기로 했다.
예외가 있긴 하다. 힘쓸 일 있으면 달려간다. 몇주전에 비정규직 노동자 분들이 학교 본관에서 농성한다고 달려갔었다. 나는 또 밀고 당기고 그러는 줄 알았지... 그냥 철야여서 밤새 노가리 까다가 다음날 점심 때 빠져 나왔다. 그러니까 누가 때리면 나한테 콜...
그런데 황송하게도 학내에서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긴 있다고 한다. 오히려 그간 교류가 활발하지 않았던 곳인데... 나는 나대로 그쪽에 괜히 간섭을 하기 싫고, 그쪽은 그쪽대로 내가 어려워서, 오가기가 힘들었던 듯하다. 도와준 것도 없는데... 그쪽에서 연락오면 어지간한 건 들어줄 작정이다.
내가 그래도 덕이 아주 없지는 않은 모양인지, 참여를 결정하기 전 궁금하거나 희망사항이 생기면 나한테 연락해오는 사람이 가끔은 있다. 그저께도 전혀 안면 없는 사람이 나한테 편지를 보내왔더라. 전역하면 정치활동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냐고. 나는 걍 비루한 인간이지만 한가지 자부심은 있다. 나는 '안내'는 편파적으로 안 한다. 절대 내 의견만 소개하는 일 없다. 툭하면 지랄하는 사람이라고 욕먹을지언정, 사람 인생 말아먹는 '운동권 선배'는 아니다. '아직 결정은 못했는데... 관심은...' 이러는 사람들이랑 더 많이 만나고 싶다.
학생회 선배 만나 어울려 돌아다니다가 어느 순간 주사파라고 깝치는 애들이나, 세미나 몇개 어설프게 하고 사민주의는 개량이 어쩌고로 한큐에 덮으려고 하는 넘들이나... 그넘들보단 내가 시장바닥에서 할머니랑 대화를 하겠다. 그분이 골수 한나라당 지지자만 아니면 어느 정도는 설득가능하다. 골수 한나라당 지지자면 말문을 닫게 해줄 수는 있다. 내가 아무리 못나도 26년 헛살진 않았다.
피차 도움도 안 되는 거 올해는 좀 산뜻하게 좀 살아볼까 한다. 대학 마지막 해잖아. 자율적으로 활동해 보는 풍토 만들려고 하면 몇번 움직이다가 피식 꺼져 버리고.... 얼마 지나 보면 어디에 '낚여 가지고' 매우매우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내 인생에서 꽤 있었다. 노예근성인가? 그런 사람들은 추가 확인이 되는대로 전화기에서 이름을 다 지울 계획이다. 나는 인정투쟁이 X 같거든.... 그러니까 겁나는 건 없다.
그리고 "동지니까..." 이 이야기만은 제발... 그렇게 이야기하면 무슨 휴머니스트 같냐? 개뿔이나... 난 한넘도 동지라고 생각한 적 없으니까 고만해주세용~ 좀 더 알고 싶은 사람, 이젠 그만 알고 싶은 사람, 지금 그 거리가 좋은 사람... 그냥 세 경우 뿐이니.
어차피 처음부터 내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었다. 맞지도 않는 거 억지로 맞추려 하지는 않겠다. 난 정말 후회라는 걸 거의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지금 내가 후회하고 있는 것이 너무 싫고, 다시 그러면 어느날 밤새 내 스스로에게 꿀밤을 먹일지도 모른다. 분명 내가 학내에서 시간을 허비하면서, 정작 이룬 게 없이 망가지기만 하고 도움도 안되는 동안, 나는 그나마 할 수 있는 몇가지 일들을 내 발로 차버렸고, 덕분에 사회 어디에선가 피해가 발생하였으며, 그 피해는 '사는 게 그렇지'라는 말로 덮을 수 없다는 게 내 소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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