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ent Post»

« 2024/1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Archive»

Recent Comment»

Recent Trackback»


 
 

기대해도 좋다

Free Speech | 2007. 12. 29. 14:28 | Posted by 김수민
어제 매우 중대한 모임을 다녀왔다. 비슷한 시간대 바로 근처의 장소에서 또 하나의 모임이 열렸고 술자리에서 모두 통합을 이루었다.

내가 우려했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나보다 더 고생한 그들은 도전을 회피하기는커녕 얼어죽더라도 결단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이제 두 사람만 설득하면 된다. 그러나 설득이 안 되어도 고고씽한다는 것이 참석자들의 굳은 의지였다.

기대해도 좋다. 이제부터 게임은 시작이다. 2년 반동안의 소모전이 끝나가고 있다.

'Free Speech'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미의 이름  (2) 2008.01.04
대학원가서 그러면 안 되지 말입니다  (6) 2008.01.03
어떤 배구시합에 대한 기억  (0) 2007.12.23
이명박시대 개막  (4) 2007.12.19
유일한 선거운동 방식  (2) 2007.10.29
:

허경영 인터뷰 1 (2007.5)

휴지통 | 2007. 12. 26. 06:59 | Posted by 김수민
"김대중 전 대통령은 나를 밀게 되어 있다"
다시 대선에 도전한 열린우리당 허경영 후보 인터뷰 ①
김수민 (lolla)
1997년 대통령선거 군소후보 토론회를 기억하는가? '민주공화당'이라는 익숙한 당명을 내세우고 나타난 한 사나이가 번뜩이는 눈매를 과시하며 제2의 박정희를 자처했다. 그리고 세해가 지나서는 <무궁화 꽃은 지지 않았다>는 저서를 들고 나타났다. 그가 바로 허경영 민주공화당 전 총재이다.

그는 2002년 대선을 앞두고도 "대통령 당선 직후 잠적했다가 백만 인파가 몰린 잠실주경기장에서 취임식을 갖겠다", "암행어사제를 부활하겠다", "국회의원 등 고위공직자를 퇴출시키겠다"는 등의 공약으로 숱한 화제를 뿌렸고 <딴지일보>를 통해 인터넷 언론에도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를 그해 대선 토론회에서 볼 수는 없었고, 대신 '불심으로 대동단결'을 주창했고 선거 이후에는 사기죄로 구속된 국태민안호국당의 김길수 후보가 관심을 모았다. 허씨와 공화당측은 <무궁화 꽃은 지지 않았다>가 1250만부의 판매고를 기록했다고 주장했지만 어떤 가정집에서도 그 책을 발견하기는 힘들었다. 그렇게 그는 세간의 관심에서 잊혀져가는 듯했다.

그러나 그는 다시 돌아왔다. 지난 4월 23일부터 시작된 대선 예비후보 등록의 대열에 당당히 들어가 있었고, 더구나 현재 당적은 열린우리당이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범여권 통합과 단일후보 선출의 레이스에 진입한 것이다. 어떻게 될지는 장담할 수 없으나 많은 네티즌들을 그를 혹시 오픈프라이머리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 궁금증을 가지고 있다.

연세대학교 진보정치 웹진 <오렌誌>(http://club.cyworld.com/orangenews)가 유명 후보의 기세에 눌려 빛을 발하지 못하는 군소 후보들과의 인터뷰 시리즈를 준비했고, 그 첫번째 순서를 위해 허경영 후보와의 접촉을 시도했다. 전화번호는 저서의 뒷면과 인터넷 등지에 공개되어 있었고, 그는 다소의 의구심을 깨고 김세현 기자의 전화를 받았으며 인터뷰도 흔쾌히 수락했다.

▲ 경제공화당 사무실 풍경. 허 후보의 사진과 집무 책상이 보인다.
ⓒ 김세현

김세현 기자와 김수민 편집장은 5월 29일 오후 6시 여의도백화점 9층에 위치한 경제공화당(최근 당명을 개정했다)의 사무실을 찾았다. 소강당으로 쓸 만한 곳을 비롯 무려 세개의 번듯한 사무실을 갖춘 당사에는 50여명의 지지자들이 인터뷰 소식을 듣고 운집해 있었다.

뜻밖의 반응과 상황에 당황한 기자들을 공화당 사무총장과 대변인이 반갑게 맞이했다. 소강당 한쪽 구석의 병풍 뒤에서 무언가를 준비하던 허경영 후보가 모습을 드러냈고, 허 후보와 기자들이 앞쪽에 배석한 채 강연회 비슷한 분위기로 인터뷰는 진행되었다.

허경영 후보는 시종일관 거침없는 달변을 구사했다. 임기응변의 혐의조차 읽히지 않았다. 고구마 줄기처럼 줄줄 달려오는 내용에 기자들은 끼어들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근황을 묻는 질문에 "물질은 소금물 같은 거라서 물질이 발전할수록,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갈증이 심해진다"는 가치관을 드러내면서 20여분이 넘는 답변을 선보였다. 그리고 "나의 중산사상, 무종교, 무국경, 무차별, 이게 세계의 영적 혁명을 이뤄낸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는 최근에 인터넷으로 퍼진 '아이큐 430'설에 대해서도 사실임을 강조했다(인터뷰에 앞서 만난 한 관계자는 "430이 아니다. 허 총재님 아이큐는 무한대다. 측정을 더 할 수가 없어서 430으로 해둔 것"이라고 말해 기자가 커피를 제대로 마실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또 그는 "3불(기여입학, 고교등급, 본고사 금지)제도는 아이큐 100짜리들이나 하는 것"이라고도 말했다.

현 정세에 관해 허경영 후보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자신을 후계자로 밀 수밖에 없는 이치를 설명했다. 호남의 맹주인 김 전 대통령은 "경상도인이나 경기도인을 대권 후보로 수입해오게 되어 있다"며 "내가 열린당에 가면, 힘의 균형상 대권의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람으로 둔갑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대선 주자들을 향해 독설을 퍼부었는데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한 이명박 후보는 절대로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또 열린우리당 김혁규 후보에 대해서도 "안상영, 남상국과 콤비였으며 약점이 많은데, 자살하기 싫어 열린당에 갔다"며 "산 걸로 만족해야지. 도둑놈들이 국가 경영할 수 있나?"하며 맹비난했다.

이해찬 전 총리는 김대중을 대놓고 만나버렸기 때문에, 손학규 후보는 얼굴과 목소리가 쥐 같아서, 유시민 의원은 비아냥거리는 듯한 얼굴을 지닌 탓에 대통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여성 대통령이 나올 시점이 아니라 한명숙, 박근혜 후보도 대통령이 되기 어렵다고 판단하는 듯했다.

그는 "민심과 천심은 다르다"며 "대통령이 된다는 소문이 나면 안 된다. 이명박은 대통령이 된다는 소문이 났으니 안 된다. 김대중은 허경영을 밀게 되어 있다. 국민들은 꼭 헛다리를 짚는다. 그러나 하늘이 볼 때는, 이명박은 죄인 중에 죄인이다"라고 밝히며 자신이 대통령이 될 수밖에 없는 사정을 설명했다.

'아이큐 430설' 이상으로 엽기적인 '영혼복제(영혼이전)'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그는 "내가 그 다음에 내가 영혼복제를 하면 세계의 부자들이 나한테 와서 고개를 팍 숙인다. 영혼복제를 하면 몸은 하나의 소모품이 된다. 언제나 영혼은 있으니 복제하고 이전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또 그는 한미FTA에 찬성의사를 밝히며 반대하고 있는 민주노동당에 대해서도 "감성적인 집단"이라며 비판했다. 그는 자신의 사상인 중산주의를 해설하며,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수정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거쳐 복지에서 만났지만 망국으로 가는 복지를 뛰어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 90%를 중산층으로 만들겠다는 자신의 중산주의는 실업수당에 의존하는 복지주의와는 정반대라는 것. 그가 평소에 설파한 바에 따르면 중산주의는 또한 무차별, 무국경, 무종교의 기조를 띠고 있다.

허경영 후보는 '진짜 극우파'로 알려져 있고 혹자에게는 "한국의 장 마리 르펜(프랑스 극우정당 '국민전선'의 대통령 후보)"이라는 별명까지 선사받았다. 하지만 인터뷰 도중에 그가 발설한 자유주의적 또는 개인주의적인 발언들은 기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기도 했다. 그는 주요 공약의 하나인 '산삼뉴딜'을 설명하며 "뉴딜정책하면 인플레 생긴다고? 잘못된 말이야. 건설업자한테 돈 주면 안 생기고, 국민한테 주면 생긴다? 노인들한테 주면 생기고, 공무원들한테 주면 안 생긴다?"라며 불만을 표시했다.

그리고 "나는 가정살리기 10대 공약으로 여성들을 파고드는 사람이다. 강한 남자는 자기밖에 모른다. 스펀지와 같이 부드러운 자가 나온다"며 여성성의 시대가 온다는 예견을 남겼다.

성전환수술에 대해서는 "자기 몸을 성전환을 할 의사가 있으면 바꿔주는 게 원칙이다"라고말했다. 재임 도중 서울역에서 노숙자를 보면 해결되기 전까지 청와대에서 잠을 자지 않겠다며 "노숙자 한사람의 무게는 나머지 전 인류의 무게와 같다"는 명언을 남겼다. '아이큐 430'이나 '영혼복제'를 이야기하는 것만 빼면, 허 후보의 인간관이 현재 유력 주자들의 그것보다 결코 열등하다고 생각되지도 않는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김수민 <오렌誌> 편집장(이하 '편'): 저희가 17대 대선에 대한 인터뷰 첫 번째로 허경영 총재를 모셨다.

허: 고맙다. 연대에서 첫 번째로 (인터뷰 선정을) 했다는 것이 참 고맙다.

편: 요즘 근황은 어떤가.

허: 공화당을 쭉 하다가 작년 7월에 열린우리당에 들어가 대통령후보를 하려고 한다. 열린당이 인기가 있어서 들어갔다면 내가 바보다. 나중에 국민들은 알게 된다. 지난번에 노무현 후보가 떨어진다고 할 때 내가 노 후보 지지를 선언하고 사퇴했지 않은가.

물질은 소금물 같은 거라서 물질이 발전할수록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갈증이 심해진다. 인류가 극한상황에 치닫게 된다.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영적인 거다. 한반도는 선진국보다 더 영적으로 앞서 있으니까 세계를 미리 내다본다. 한반도는 세계의 콧구멍이야. 우리를 통해 기가 들어가야 미국도 살고 중국도 산다. 코리아가 막히면 다 죽는다. 그게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3차대전, 아마겟돈이다.

한반도에서 등불이 나타난다는 예언이 있다. 한반도에서 깨달은 자가 나온다. 그러니 한반도에서 새로운 정치가 나와야 한다. 우리 한반도는 거대한 용광로다. 용광로에서 만든 새로운 물질이 세계를 구원하게 된다. 자본주의나 공산주의가 하는 정치제도를 따라가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는 자유는 있는데 평등은 없고, 공산주의는 평등은 있고 자유가 없다. 한반도에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격돌하고 있다.

남한에서는 세계에서 나쁜 것 480가지가 있고, 북한에서는 하나도 없다. 거기는 당뇨병도 없고 에이즈도 없다. 남북한은 사상적으로도 대치되어 있고, 종교적으로도 대치되어 있다. 북한에는 헬레니즘의 인간중심사상인 주체사상이 있다. 신 중심의 신이 아니라 인간중심의 신(을 믿는 것), 그게 북한이다.

근황을 물어보았는데 그의 방대한 철학이 펼쳐졌다. 그리스문화, 기독교문화, 신본주의, 60진법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왔다. 자신의 아이큐가 430이라고 밝히며 미륵 또는 메시아가 도래한다는 예언이 자신으로 인해 적중되리라는 신념이 이어졌다. 그는 한달만에 한국을 변화시키는 작업을 완료하고, 세계를 통일하는 작업에 착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우리는 물질적인 혁명만 해서 실패했다. 지엔피가 올라갈수록 더 쪼달린다. 어느 순간에 가족이 해체될지 모른다. 한치 앞에 대한 보장이 아무것도 없다. 다 거지가 된다. 누구한테 하소연하면 미친 사람이라고 한다. 자기 능력이 부족하면 죽는 거다. 물질이라는 소금물을 계속 잘못 마시고 있다.

헌법에 대통령직무 조항을 보면 이중성이 있다. 국가원수와 행정수반을 겸하는 대통령은 정당에 들어가면 안 된다. 그런데 이명박 같은 사람은 종로 국회의원 선거에서 나가서 다른 후보보다 100배를 더 썼다. 그래서 비서가 고발했다. 비서로서 떨어진 상대방을 보고 자책감을 느낀 거다. 그래서 이명박이가 벌금 700만원 물었다. 징역3년에 해당하는 건데, 그것도 많이 깎은 거지 3000만원 나올 뻔했다. 100만원도 중죄라서 뱃지를 떼는데, 그런 자가 대통령한테 사면을 받아서 시장 선거에 나왔다. 그게 우리나라다. 그런 후보가 대로를 활보하면서 인터넷과 오프라인에서 대통령 후보 1, 2위에 올라가 있다. 이런 사람이 우리나라의 물질의 갈증을 풀어줄 사람은 아니다. 영적 혁명을 할 사람인가? 물질혁명은 성공했다. 원시시대 4000천년, 농업이 400년, 공업이 40년, 이동안에 문명이 발전하고 물질이 팽창했다. 이명박 후보 같은 사람이 활보하는 걸 보고 있겠나? 바로 잡겠다.

대통령은 정당에 들어가면 안된다. 국회의원도 그렇다. 대통령되면 정당 없애겠다. 모든 사람이 무소속으로 출마해야 한다. 예컨대 전국민이 노인수당을 찬성한다. 그런데 열린우리당이 발의하면 한나라당이 반대한다. 하지만 한나라당 지지하는 경상도 사람한테 물어보면 찬성한다. 정당이 생겨서 국민들의 직접민주주의를 막게 되어버린 거다. 국회의원은 자기 지역에 가서 “노인수당 찬성하나” 물어보고 찬성하면 국회에서 찬성에 손들어야 한다. 하지만 그게 안 되고 민주주의가 아닌 정당주의가 되고 있다. 정당끼리 경쟁이 붙어서 국민은 중간에 볼모가 돼서 맨날 고생한다. 상대방 당을 죽기살기로 반대하고 있다.

▲ 거침없는 달변을 보여준 허경영 열린우리당 대선 예비후보
ⓒ 김세현


이명박 후보는 서울시장 나올 때 사면받았는데, 사면해준 사람은 내가 대통령이 되면 잡아넣겠다. 우리나라에 원수와 수반을 겸하는 대통령으로서 이명박 후보는 자격이 없다. 인터뷰할 가치도 없다. 학생들도 알아야 한다. 학교 대자보에 올려라. 사면받은 절차를 밝히라고 해라. 한나라당에서 대통령 나갈 수 있는 사람 5명밖에 없다. 열린당에는 열댓명쯤 된다. 벌금 낸 기록 있으면 대통령에 못 나간다.

김세현 기자(이하 '현'): 아까 영적 통일, 영적 혁명을 말씀하셨는데 자세히 말해 달라.

허: 특수한 영 능력자가 아니면 아시아연방 통일이 불가능하다. 내가 대통령이 된 다음에 특수한 몇가지를 보여준다. 그러면 전 세계 대통령이 와서 무릎을 꿇는다.

지금까지 물질시대는 양적인 시대였다. 영적 시대에서는 작아질수록 유리하다. 한반도는 작다. 영국, 일본, 독일, 몽고도 작았다. 그런 나라가 세계를 지배한 적이 있었다. 작은자들이 바로 21세기를 보편화시킨다. 물질의 양적 전쟁에서 질적 전쟁으로 넘어가는 게 21세기다. 영적인 것으로 세계를 리드할 수 있다. 미국 사람들이 쳇바퀴 돌 듯 살아가지만 어느날 갑자기 마음이 공허하다. 이럴 때 아무도 없는 네팔이나 인도에 가서 영상수련원에서 6개월동안 지내다 돌아오곤 한다. 영혼적인 통일을 이루지 않으면 자기가 잘 살고 있는지 나중에 가서 헷갈리게 된다. 내가 나중에 보여주면, 전 세계가 놀란다. 나의 중산사상. 무종교, 무국경, 무차별. 이게 세계의 영적 혁명을 이뤄낸다.

무종교는 뭐냐. 예를 들어 불교도가 많은 LG그룹 입사시험에 응시한다. 점수가 같은데, 한명은 불교고 한명은 기독교면, 인사 담당자가 기독교인을 제껴 버린다. 종교 때문에 전쟁도 많이 한다. 신앙은 해야 한다. 그러나 내가 무슨 종교를 믿는지 남이 알면 안된다. 개인의 자유, 프라이버시에 어긋나는 거다. 신앙은 있어야 하지만 궁극적으로 종교는 없어져야 한다. 예수님, 하나님의 사상을 따르는 것인데도 박씨는 알에서 나왔다, 김알지는 알에서 나왔다, 이렇게 하면서 싸우고 난리다.

1차세계대전이 뭐죠? 제국주의 전쟁이다. 2차대전은 패권전쟁, 3차대전은 핵전쟁이다. 미국이 계속 물량주의로 저렇게 나가면서 한손에는 유엔을 가지고 한손에는 물질을 쥐고 세계를 이끌다가 아마겟돈 전쟁으로 간다. 성경에 보면 세계를 경영할 자가 동방에서 나온다. 내 이름이 ‘경영’이다.

우리 정책에 결혼수당, 출산수당, 노인수당이 있다. 자동차세, 주민세 폐지되고 가정집에 세금고지서는 안 된다. 5만원을 넘으면 그만큼은 내야 한다. 상류층은 세금 낸다. 빌딩 갖고 있는 사람은 내야 한다. 상류층은 의료보험도 많이 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중산주의다. 주부들은 살판난다. 학생들도 좋아진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등록금이 없다.

3불정책은 없어진다. 대학은 기부입학 허용한다. 등록금이 없어지니까. 두번째. 아인슈타인은 한국 오면 대학 못간다. 수학만 100점이고 다 빵점이다. 그러니까 고등학교 때는 전공 공부를 하고 대학갈 때 본고사를 쳐야 한다. 3불은 나라 망하는 정책이다. 중학교까지는 전과목 공부하고, 고등학교 때는 과외할 필요없고 한과목만 공부하면 된다.

대학가면, 여자가 나타난다! 공부를 제대로 못한다 (좌중 웃음). 군대에서 또 오라가라 한다. 대학생이 갑자기 가장이 되는 경우도 있다. 대학에 가면 70퍼센트 이상이 산란해진다. 고등학교 때가 한창 공부할 수 있는데 그때 헛공부 15과목을 과외비 들입다 들여서 하고 있다.

삼불제도 이런 건 아이큐 100짜리들이 하는 거다. 내가 아이큐 430이다. 서울대 교육심리학과 교수들이 측정한 거다. 100문제를 60분에 푸는 건데, 나는 5분에 풀었다. 박 대통령은 사흘동안 끙끙댔다.(웃음) 아까 여기 계신 분들한테 문제 냈는데 하나도 못 맞췄다.

내가 하나 물어보지. 1에서 10까지 숫자중에 부부한테 맞는 숫자 두 개가 뭐냐?

편: 2랑 3?

현: 2랑 4?

허: 틀렸다. (웃음) 아이큐 테스트 문제를 보니까 한번도 못 본 거더라. 답은 21이다. 두사람이 만나서 하나가 되니까. 그럼, 1에서 10까지 중에 승리랑 관련된 숫자?

편, 현: 승리?

허: 5라 이말이요. ‘오~ 필승 코리아’ (좌중 폭소)

1에서 10까지 숫자 중에 제일 높은 것은? (관중에게) 아이큐 130 넘는 사람이 연대 들어가요.

8이에요. 무한대. (무한대 기호를 바로 세우면 8이 된다. -편집자 주)

아이큐 테스트는 계속됐다. 같은 문양을 다섯 개 써놓고, 한획씩 그어서 한자를 만들어보라고 했다. 금방 생각이 나지 않았다. 답은 '古 石 右 可 司'였다. 이것은 아이큐 테스트라기보다는 사실상 ‘넌센스 퀴즈’였다.

허: 이걸 맞추기가 어려워. 차원이 다른 거다. 2차원은 생각나도 3차원이 생각이 잘 안 난다. 근데 나는 사람들한테 4차원, 5차원 이야기를 하거든? 영적 혁명이 5차원이고, 영혼복제가 4차원이다.

▲ 허경영 인터뷰에 운집한 지지자와 자원봉사자들
ⓒ 김세현


편: 79년 박대통령 사후 민주공화당 깃발을 지켜오시다가 열린우리당 오픈 프라이머리에 참여하시게 됐다. 항간에서는 한나라당에 더 맞는 게 아니냐는 말도 많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그리고 민주공화당의 향후 진로는?

허: 민주공화당은 경제공화당으로 재창당했다. 나는 거기 대표가 아니고 이제 열린당에 들어가 있다. 나중에 열린당 이름도 경제공화당으로 바뀔 수 있다. 합당을 시도해서.

내가 열린당에서 노리는 효과가 있다. 열린당이 갖고 있는 비밀이 있어서 들어가 있다. 열린당은 계속 민주당과 합당을 추구할 것이고, 오픈프라이머리를 통해 열린당과 신당, 민주당 등이 하나가 된다. 거대한 한나라당을 이기려면 혼자서는 안 된다. 인지상정이다. 지금 합당한다 안한다 하는 건 쇼다.

2002년 대선 때처럼, 2차 3차 오픈프라이머리를 해가면서 합당한다. 지금 대선에서 제일 떨고 있는 사람이 노무현 대통령과 김대중씨다. 누가 되느냐에 따라 김대중과 그 아들이 전부 감옥에 갈 수도 있다.

호남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김대중은 교도소로 간다.

편: 호남 사람이?

허: 제2의 김대중이라는 한화갑이 나오면 김대중이 호남에서 희석된다. 신라에서 김유신 말고 다른 사람이 나오면 김유신이 죽어버린다. 연개소문은 끝없이 다른 장수들을 죽였다. 한화갑은 김대중을 죽임으로써 호남의 영웅으로 둔갑할 수 있다. 문선명 통일교 교주도 자기 측근을 후계로 내세우지 않는다. 박대통령도 김종필한테 주지 않았다.

허경영 같은 사람이 김대중의 구원투수가 될 수 있는 거다. 김대중은 노무현을 택하지 않았었나? 충청도 사람인 이인제를 주려고 했는데, 알고 보니 이인제가 전라도 사람이야.

편: 그렇습니까?

허: 이인제 고향이 옛날에 호남 지역이었거든. 오히려 김대중은 경상도 출신에 지지 국회의원 한명(천정재) 뿐인 노무현을 밀어줬다. 김대중은 전라도 국회의원은 허용하지만 호남 대권 후보는 허용 안 한다. 고건을 못 나오게 김대중이 압력을 넣었다. 고건이 전라도에서 뜨면 김대중은 교도소 간다. 고건이 집권해서 일이 잘 안되면 김대중 아들을 감옥에 집어넣는다. 그래서 김대중은 경상도인이나 경기도인을 대권 후보로 수입해오게 되어 있다.

내가 열린당에 가면, 힘의 균형상 대권의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람으로 둔갑할 수 있다. 내가 진주 사람이고 서울에서 났다. 김해허씨, 김해김씨가 800만명이다. 지금 김대중 만나는 사람은 김대중이 도와주지 않는다. 안 찾아온 사람만 돕는다. 결국 맨날 찾아가는 한화갑, 이인제가 아닌 노무현이를 돕지 않았느냐.
:

어떤 배구시합에 대한 기억

Free Speech | 2007. 12. 23. 20:27 | Posted by 김수민
내가 6학년 때 몸담고 있던 배구부는 학교에 체육관이 없어서 경쟁 학교로 가서 그쪽 배구부와 연습을 함께 했다. 그런데 일주일에 한두번은 연습게임을 했는데, 실력이 엇비슷함에도 도저히 이기지를 못하는 것이다. 근소한 차이로 세트를 번번히 내주는가 하면, 호쾌하게 첫 세트를 따내도 그 다음 세트에서는 연이어 지는 바람에 판판히 깨지고 마는 것이다.

하루는 코치 선생이 오지 않은 상황에서 일단 게임이 시작됐다. 첫 세트에서 15대 7정도로 승리를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다음 세트에서는 15대 2인가 1로 이겼다. 서브 에이스도 많고 서브 범실도 많던 나는 여덟 번 연속으로 서브를 넣었다. 리시브가 쉽지 않자 당황한 상대편은 네트 밑으로 스파이크하는 등 허둥지둥하면서 매우 힘없이 경기를 마쳤다.

경기가 끝난 뒤 상대 팀 코치가 두 팀 선수들을 모두 분식집으로 내려가던 찰나에 우리 코치가 나타났다. 그는 경기 결과를 물어보더니 아무 말 없이 추가연습에 돌입했다. 연습이 끝나고 그는 우리에게 "코치 없이 경기하니까 기분이 어떻냐"고 물어봤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는 일부러 체육관에 들어오지 않고 밖에서 잠깐씩 경기를 몰래 지켜봤다고 했다.

그때가 봄이었는데, 겨울방학 내내 우리 팀은 모 공고 체육관에서 연습을 했다. 아침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오후 2시부터 오후 대여섯시까지 연습을 했다. 토요일에는 오전에만 체력훈련을 하고, 일요일에는 쉬었다. 엄청난 고난도의 연습으로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 있다. 키는 큰데 점프력은 낮다고 스스로 치부하고 있었던 나는 크게 달라졌고, 도내에서 블로킹 득점이 가능한 얼마 안 되는 공격수가 되었다.

그러나 팀 선수 가운데 동계훈련에 개근한 이는 한명밖에 없었다. 나도 하루를 빠졌고, 일주일씩 빠지는 아이도 있었다. 훈련이 고되기도 했지만 특히 체벌이 만만치 않았다. 훈련을 마치고 집에오면 TV를 좀 보다가 밥을 먹고 두시간쯤은 공부를 했는데 의자에 앉는 것이 힘들었던 적도 숱하다. 아무리 깡으로 견뎌도 눈물이 쏙나오고 어쩔 때는 발을 동동구를 만큼 엉덩이를 험하게 맞았다. 부담은 연습경기에서도 이어졌고 겁먹고 주눅들어 제 플레이가 나오지 않을 때도 많았다. 코치는 '사내자식들이 베짱이 없다'고 나무라곤 했다.  

코치 선생님은 좋은 분이었다. 나이는 나보다 열세살쯤 많은, 사범대학 체육교육학과를 갓 졸업한 분이었고, 보디빌더이기도 했다. 주말에는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고 평소에도 선수들과 농담따먹기하는 걸 즐겼다. 그분이 부임한 뒤 동계훈련을 거쳐 처음 있었던 경기에서, 비록 끝내 패했긴 했지만, 선수들의 공격과 수비가 탁월할 때마다 온몸으로 반응하는 그를 보면서, 그가 우리를 얼마나 자랑스러워하는지를 깨달았다. 그는 자신이 빠진 채 치러진 연습경기에서 우리가 완승했다는 걸 듣고서도, 기분이 좋지 않은 듯하였다. 어린 선수들은 다들 눈치챘을 것이다. '왜 코치가 없는데 이겼을까. 그가 지켜보고 있을 때는 왜 졌을까.'

하지만 경북 최강이 되려던 우리의 꿈은 물거품이 되었다. 5학년에게 팀을 인계한 이튿날 선생님은 학부모들에게 인사하기 위해 선수들의 집을 돌아다녔다(마지막에 들른 주장네 집에서 내가 밥을 다섯그릇 먹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가 처음 코치로 발령나서 훈련에 돌입한 게 12월 초였고, 6학년 팀이 해산한 것이 3월 말이었다. 그에게나 우리에게나 시간은 너무 짧았다. 사실 그 코치는 대구에서 지도한 자신의 팀에게 지역 우승컵을 안겼던 유능한 코치였다. 그는 원래 받던 것보다 20만원 가량은 적을 법한 50만원의 박봉을 받고 우리 팀을 맡았고, 체계적인 훈련을 받은 바 없던 우리의 실력을 키우기 위해 악전고투하면서 자주 몽둥이를 들게 되었던 것이다.

중학교 3학년 올라가기 전에 그를 뵈러 체육관을 찾았었다.그곳은 바로 우리가 연습했던 다른 학교 체육관이었고, 그는 그 팀의 코치가 되어 있었다. 아이들은 왠지 예전의 우리보다 어려보였고 키도 크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당당한 경북 최강팀이었다. 체육관 안에 몽둥이가 보이지 않았다. 탈의실에서 만난 코치 선생님은 매를 들지 않는다고 했다. 

'Free Speech'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학원가서 그러면 안 되지 말입니다  (6) 2008.01.03
기대해도 좋다  (2) 2007.12.29
이명박시대 개막  (4) 2007.12.19
유일한 선거운동 방식  (2) 2007.10.29
계산할 때 깨달은 지갑 분실  (2) 2007.10.21
:

사르트르는 자신의 문학 작품 <구토>를 두고

"죽어가는 아이 앞에서 아무런 힘도 없다"고 말했다.


그에 대해 누보로망(신소설)의 선두주자 리카르두는

"<구토>는 아이가 죽어가는 추문을 폭로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고종석은 "사르트르도 옳고 리카르두도 옳다"고 했지만

나는 리카르두가 더 옳다고 생각했다.




국민학교 1학년 시절 우리반에 창길이라는 아이가 있었다.

공부를 못하는 편이었고 옷차림도 남루했다.


그 아이는 화장실 가기를 두려워했는데, 성기에 난 점 때문이었다.

스무명이 넘는 아이들이 화장실에서 그를 발견하면

"창길이 고추에 점났대요"를 그렇게도 신나게 불러댔다.


한번은 창길이랑 화장실에서 단 둘이 마주친 적이 있었다.

혼자인 줄 알고 편하게 일을 보려다 흠칫 놀라버린 그의 표정이 지금도 생생하다.


"안 놀릴게, 나는."


'창길이가 놀림받는 건 공부와 옷차림 때문이야.

그런데 창길이한테는 죄가 없다.

걔네 부모님한테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닐까?'


창길이네 집이 위치한 마을은 학교 부근 '새터'로

이름과는 달리 슬레이트 지붕을 한 집이 대부분이었다.


'창길이네 아버지는 게을로서 돈을 못 벌어오는 사람일 거야.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우리집도 잘살지는 못해서

사원주택에 살지만, 아버지가 새벽에 퇴근하면서까지

열심히 일하시는데...

게으를 뿐만 아니라 아주 나쁜 사람일 거야.

애를 저렇게 놔두다니...'




그러나 나는 보고야 말았다.

창길이 아버지의 모습을.


덥수룩한 수염만 제외하면 아들과 거의 비슷하게 생긴

창길이 아버지가 하교하는 창길이를 자전거에 태우고 지나갔다.


일을 많이 한듯 피곤한 모습이었지만

인사하는 우리에게 오냐,하며 환히 웃었다.


풍경은 스쳐지나갔지만 생각은 길디 길었다.

왜 우리집은 회장 사장 아저씨네만큼 살지 못하고,

창길이네 집은 왜 우리집보다도 더 못사는가.


능력의 차이인가, 정말?




내가 평등과 노동에 관해 본격적이고 꾸준하게 글을 쓰진 않았지만,

글쓴이로서의 나는, 적어도 사회경제적인 측면에서는,

국민학교 1학년이던 1989년에 머물러 있다.

2학년 진학 후에는 이야기도 거의 해보지 않았던

창길이의 아버지는 오늘도 나의 든든한 우군이다.


나는 그러나 만으로 25년을 살아오면서

평등의 길에 초석 하나 깔기는커녕

단 한사람의 생명도 구하지 못했다.


청소년기 나는 노약자나 어린이를 사고사의 위험에서 구하고

대신 죽거나 다치는 공상에나 의지하고 살았으며,

지금은 그마저도 하지 않는다.


솔직히 이제 나는 내 스스로의 생명조차 감당하지 못한다.


내 안의 리카르두는 묵묵부답이고

대신 사르트르의 비관적 문학관이 문을 두드리고 있다.


이제 내 안의 리카르두는 대답해야 한다. 창길이 아버지한테.  

질문하지 않고 묵묵히 웃는 그에게.


대답한다.
사르트르가 옳다. 리카르두는 더 옳다.

'휴지통'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의경에 관해 (이화여대 교지. 2007년 봄)  (1) 2008.03.12
임종인  (0) 2008.02.23
허경영 인터뷰 1 (2007.5)  (0) 2007.12.26
2005.8.1 <ROCK 팬들이 이명박을 돕는 법>  (0) 2007.10.18
이중간첩 떠나다 (2003.2)  (1) 2007.10.06
:

이명박시대 개막

Free Speech | 2007. 12. 19. 23:01 | Posted by 김수민
방금 대통령당선자가 발표되었다. 동생이 문자로 "평정심을 찾았냐"고 물어본다. 오래됐다. 난 자주파가 노회찬을 죽이는 것이 민주노동당내에서 먹히는 것을 보고 모든 마음을 비웠다.

당선을 축하하는 배경음악이 어째 이명박을 위한 것 같지가 않다. 나는 마음이 약간 들떠있다. 지난 2년처럼 정당활동을 하지는 않겠지만, 이명박 정권기 5년동안 나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개인으로서 사회인으로서 미친 바람과 싸울 것이다. 반사이득은 노무현잔당들이 가져갈 테니 진보정치세력은 스스로 일어나야 한다.

이제부터 싸움은 시작되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국민학교에 입학했고, 고등학교에 들어가던 해에는 김대중이 대통령에 취임했다. 군대에 가면서 노무현 정권의 태동을 지켜보았다. 연령대에 따른 정권 체감을 고려하면, 다음 이명박 정권이 가장 지독한 정권인 셈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명확하다. 정동영이 당선되었다면 더 화가 났을 것이다. 날로 먹는 짓은 "돋보잡(돋보이는 잡쓰레기"의 승리보다 더 추악하다. 나는 싸운다. 또 싸운다. 이명박의 지속불가능한 발전에 맞서 지속가능한 싸움에 나선다, 반드시.

노태우=0.9 x 0.36 > 이명박=0.63 x 0.487
이명박 전체유권자 대비 지지율 30.6퍼센트쯤이다. 내 예측이 맞았다. 이 정도라면 5년동안 싸우기 아주 힘들지만은 않다.

'Free Speech'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대해도 좋다  (2) 2007.12.29
어떤 배구시합에 대한 기억  (0) 2007.12.23
유일한 선거운동 방식  (2) 2007.10.29
계산할 때 깨달은 지갑 분실  (2) 2007.10.21
이명박 당선되어봐야 소용 없다  (0) 2007.10.19
:

졸업논문 작업이 막바지로 가고 있다. "해방 후 교육주도세력과 사립 종합대의 형성"(1945~1948, 서울). 나의 작업가설과 결론은 일치한다. 그만큼 싱거운 집필 과정이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나는 눈이 번뜩 뜨이는 깨달음에 앞으로 작업할 또 하나의 과제를 설정하게 되었다.

 
이화여대도 마찬가지겠지만 해방 이후 사립 종합대학교의 건설을 주도하고 미군정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미국 유학파 겸 개신교도들이다. 덕분에 연세대와 백낙준은 숭실대 또는 함석헌과 대조되는 역사를 겪었다. 일제시대 숭실대는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폐교당했고, 해방 후에는 서울로 옮겨오는 바람에 비슷한 역사를 자랑하는 연대, 이대보다 위상이 뒤떨어지게 되었다. 함석헌은 퀘이커교 목회자로 신의주 반공의거를 주동한 자유주의자였는데, 월남하고 나서도 독재 정권과 투쟁하게 된다.

  물론 연세대학교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연희전문학교 시절 강제로 학교의 명칭과 교육과정이 변경되는 시련을 겪고, 일제는 광혜원의 원두우 동상을 전쟁물자로 징발하고 그 자리에 흥아유신기념사업회비를 세웠다(동양사학입문 수업 때 백영서 교수가 그 비석의 탄생배경을 추적하라는 숙제를 내린 적이 있었지). 원두우의 아들 원한경은 미국으로 외유했고, 백낙준은 조선임전보국단과 미영타도좌담회에 참여한다.


  백낙준은 해방 후에도 교육주도세력의 대표자격으로 활동하며 연희전문을 종합대학교로 승격시키고 초대 총장 자리에 앉는다. 1946년 9월부터 한해동안은 재정 확충을 위해 미국으로 건너가는 등 원조 세일즈 총장의 면모를 뽐내고, 한국전쟁 당시에는 총장직을 유지하면서 문교부 장관을 맡는 최고의 관운을 과시한다.


그런데 장준하의 <사상계>는 이 시기에 바로 백낙준과 미대사관의 후원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장준하 그 자신도 CIA의 전신인 OSS에서 훈련을 받았고 개신교 목사이며 김구의 비서였다가 이범석의 족청에 잠시 가담했던 친미반공주의자였다. 그가 잠깐이나마 5.16을 옹호했던 것에도 이러한 배경이 깔려 있다. 하지만 장준하는 점차 자신의 한계를 벗으며 통일을 부르짖는 선지자로 변신한다.


  장준하 사후 통일운동가로 선 문익환은 '민주연세'로 불리우던 학교에 '통일연세'라는 별명을 붙인다(1987년 연대 중도앞 이한열 장례식에서 터져나온 그의 절규는 근현대사 최고의 연설로 꼽힌다). 특수성을 강조하는 '민족고대'에 비해 좋은 의미든 아니든 보편성을 표방하는 연세가 '통일'이라는 특수한 옷을 입게 된 것이다. 북조선의 입장에서 연세대는 특이한 학교일 것이다. 연대는 (그들이 미제의 스파이라고 여기는) 박헌영의 배후인물인 원한경이 있었던 곳인 동시에 문목사의 흔적이 남은 학교이기도 하다. 5년 전이었던가, 운동권 애들을 따라다니고 구슬리는 게 일이었을 어느 교직원이 금강산에 방문했을 때, 직장의 이름을 대고 안내원에게 예상에 없던 환심을 산 적도 있었단다.


  지금 연세대학교는 하바드대학이 100여년전에 자율화했던 채플을 의무화하고 있을 만큼 근본주의적으로 개신교를 섬기고 있으며, '글로벌 연세'라는 이름으로 세계화를 지지하고 있다. 이 학교가 얼마나 친미적인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하기야 한국에서 권력을 가진 단체들이 다 그러하다). 게다가 연세대학교의 재단이사장은 조선일보 전 회장이었던 방우영이다.


  한편으로 연세대는 재미있게도 김대중도서관을 비롯해 김대중기념사업을 주관하고 있다. 정치외교학과에는 문정인, 김기정이라는 햇볕정책의 전도사들이 포진해 있다. 엔엘 학생운동의 메이저 캠퍼스이기도 하지만, 개신교도로서 사회참여를 하는 학생들(정치적으로는 중도, 종교적으로는 보수에 가깝다. 평택사건은 안타깝지만 동성애는 궁휼히 여길 뿐 인정의 대상이 아니라고 한다) 역시 통일문화제를 개최하는 등 통일에 관심을 보인다.


  이렇듯 연대에서는 미국과 통일의 의미가 교차하며 만난다. 혹 이것이 노무현이 말하는 '친미 자주'의 정체일까? 연대의 역사로부터 나는 '종전선언 서명자 이명박'의 실현가능성을 헤아려 본다. 우습지만 웃기지는 않는 상상과 함께 말이다.

'史의 찬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섯개의 손가락  (0) 2008.02.12
한국식 근대  (0) 2008.02.01
두번째 논문 기획  (0) 2008.01.21
벤 좌파, 이젠 사회화할 차례요  (2) 2008.01.18
졸업 논문  (4) 2007.11.15
:

원더걸스

Listen to the 무직 | 2007. 12. 13. 03:33 | Posted by 김수민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가장 엉성하고 평범하게 나온 원더걸스의 사진. 처음엔 누가 장기자랑대회에 나와서 흉내내는 줄 알았다. 아래 각도로 찍은 탓일 게다. 무대 뒤편 화면에 비친 모습을 보면 조금 더 근사하다.



처음 <텔 미>를 들은 건 추석 귀성길 버스 안에서였다. 나는 그때 <아이러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상황이었다. 만날 듣는 거라고는 록이고 재즈인 데다가 라디오도 KBS1을 주로 틀다보니, TV나 인터넷이 없는 방에서 살았던 나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텔 미>의 뿅뿅거리는 사운드를 들으며 처음 든 생각은 "구리다"는 느낌이었다. 나중에야 어떤 누리꾼이 예전에 나온 <골목길>(양동건이 리메이크했었던)을 연상시키는 복고 또는 촌빨 사운드라고 해석하는 것을 읽고 좀 더 맛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후렴구를 들으면서 내가 아는 한 친구가 불쌍해졌다. 나와 대학 동기인 그 녀석은 최근에 뜬 어떤 팀에서 후렴구에 'tell me'라는 가사가 들어가는 노래를 부르고 있다. 내가 들락거리는 싸이클럽에도 여름에 한동안 BGM으로 흐를 만큼 히트했던 노래였지만, 라디오에서 우연하게 몇번 <텔 미>를 들으면서 그 친구가 더욱 불쌍해졌다. 아무리 떠도 못당하는 상대가 있구나... 난 그때도 원더걸스를 몰랐다.

원더걸스를 동영상으로 본 건 10월쯤이었는데 그제서야 왜 노래가 히트했는지를 깨달았다. 초반부의 살랑거림에 탄식이 나왔다. 소녀시대에 꺾일 원더걸스가 아니었다. 다만 원더걸스를 두고 왜 '소녀'라고 하는지는 처음에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들이 10대일지라도 소희를 제외하면 귀여운 컨셉트는 아니지 않는가? 그리고 스무살 전후의 가수는 흔하지 않나? 그러나 알고 보니, 원더걸스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어릴 뿐더러 키도 더 작았다.

멤버들의 이름은 대충 알지만 얼굴과 매치를 시키지는 못한다. 멤버가 몇명인지도 가끔 헷갈리고 그들 중 두명은 유독 -특히 따로 사진을 봐을 때- 분별이 어렵다. 게으르고 무관심한 탓이기도 하겠지만 시나브로 내가 꼰대에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 판국에 눈에 잘 띄는 건 소희다. 제일 어리고(맞겠지?) 쌍꺼풀 없고, 안그래도 불어 터지기 일보직전인 통통한 얼굴(그러나 그것도 얼굴 골격이 작기 때문에 젖살이 돋보이는 것이기도 하고, 또 대중들에게 용서를 받는 것일 터이다)에 바람을 불어넣는 습관. '만두소희'가 왜 그리 인기인지 알기도 전에 모를 일이었지만, 이제는 차츰 나도 정을 붙이는 중이다. (여담이지만 '호빵맨' 노회찬의 대학생 팬클럽 1대 회장이었던 나는 최근에 심상정 의원에게 '만두상정'이라는 별명을 붙여 퍼뜨리려고 했다.ㅋㅋ 물론 소희의 만두와 심 의원의 만두는 크기와 모양면에서 매우 다르다.)



 
두번째로 눈에 띄는 건 랩을 하는 멤버이다. 나의 무식을 자랑하기 위해 이름은 아직 검색하지 않았다. '그녀'는 짧은 치마를 입고 낮고 굵은 목소리를 선보이는 전형적인 '섹시 이미지 전담' 멤버이다. 가요계에 이런 캐릭터가 오죽 흔한가. 그럼에도 눈에 띄는 건 자세히 보면 의외로 어딘가 코요테의 신지와 비슷하다는 인상을 받기 때문이다. "버릇없이 말 툭툭 내뱉고 야하게 입고 다니지만, 알고 보면 너, 털털하고 어리지?" 이런 반응을 유도하는 것은 아닐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얘가 걔다

어떤 캐릭터든 실재하고는 상관없이 어차피 화면에서만 연출되면 그만인지라 섹스 걸 이미지는 다분히 '만들어지는 것'이다(옛날 룰라의 김지현은 다리에 알이 굵다느니 토끼 문신이 있다느니 하는 설까지 퍼뜨리면서까지 1집활동기간동안 짧은 치마를 기피했지만, <날개 잃은 천사>를 내놓으면서 '섹시하다'를 칭찬의 반열에 끌어올리고 나중에는 <섬머 타임>에서 정말 막 나갔다).  

팬도 아니고 앞으로도 아니겠지만 원더걸스가 TV에 나오면 약간의 기대심리를 가지게 된다, 그리고 원더걸스가 아닌 이들이 춤추고 노래한 <텔 미>는 아무리 누리망에 올려봤자 나는 안 본다...

'Listen to the 무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화이트 스네이크 DVD 구입  (0) 2008.01.17
Pearl Jam <World Wide Suicide>  (0) 2008.01.04
메가데스 공연 사진 ('릴리'라는 분의 사진 펌)  (0) 2007.11.02
새벽의 DJ  (0) 2007.10.30
MEGADETH IN KOREA.... D-9  (0) 2007.10.19
:

뭐야 이건

Film Tent & 2nd Stage | 2007. 12. 11. 01:37 | Posted by 김수민

(스포일러 있음)

며칠 전 <색/계>를 봤다. 섹스 씬은 생각보다 아크로바틱하지 않았고, 그 노출수위에도 불구하고 강렬한 충격으로 남지 않았다. 야릇한 비애를 느낄 만한 장면이었지만 (관람을 둘러싼 내 개인적 맥락 때문에) 그냥 흥미롭게만 봤다.

영화관을 나서는 기분이 찝찝했던 건 채석장에서 인물들이 처형되는 장면 때문이었다. 미처 원망마저 표현하지 못한 눈길을 동료들이 보내는 동안, 고문받은 흔적도 없는 여주인공은 담담하고도 여전히 환상에서 깨어나지 못한 표정을 감추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의 어깨 너머로 아찔한 낭떠러지가 보인다. 달리 말해 이 장면이 내게 가장 인상적이었다는 것이다.

하여간에 철없고 모험주의적 리더를 만나면 여러 사람 고생하게 된다. 여주인공의 책임은 그보다 적다. 작전을 중지시키지 못한 배후조종자의 어리석음도 한몫했다. 요즘 한산해진 대학 운동판에서 기침깨나 하는 애들이 떠올랐다.

'Film Tent & 2nd Stag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천국제음악영화제 메모 1  (0) 2008.08.15
TOTO 내한공연  (4) 2008.04.06
추격자  (0) 2008.02.16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0) 2008.01.13
나는 전설이다  (0) 2008.01.08
:

졸업 논문

史의 찬미 | 2007. 11. 15. 21:52 | Posted by 김수민

열흘 전쯤 졸업논문의 주제를 정했다(졸업논문을 쓴다고 곧 졸업하는 것은 아니다. 내 소속 학과에서 졸업논문이란 선택가능한 3학점짜리 수업이다). 고심끝에 '19세기 자유교육사상'을 제치고 선택된 주제는 '해방 직후 교육주도세력과 사립대학의 형성'이다. 해방 전후를 다루고자 했으나 분량이 넘칠 것 같아 직후를 택했다.

관련한 자료는 생각보다 많았다. 내 소속 학과의 대학원에서는 1986년 한해동안만도 미군정기 교육정책을 다룬 논문 세편을 쏟아냈다. 교육사나 교육사회학을 다루는 교수들도 1980년대에는 이 문제를 다룬 저서들을 생산했다. 이 자료들을 어떻게 소화해서 재구성할지 고민이 들 정도이다.

실마리가 될 사건인 '천연동 모임'은 김활란, 김성수, 백낙준, 오천석 등이 미군이 진주하기도 전에 서너차례 가진 회합으로 향후 대한민국의 고등교육, 특히 소위 명문사학의 향방을 결정한 계기였다. 그들이 미국식 교육모델을 주창하며 김성수의 경우 6-3-3-4라는 희한한 학제를 도입하려고 한 것은 웃기지만, 아동중심주의, 실용주의, 진보주의 교육학자로서 제도주의 경제학에도 큰 영향을 끼친 존 듀이를 앞세운 것은 더 웃기다. 그 반대편에는 좌파인 백남운은 물론, 중간파인 안재홍이나 극우 민족주의자인 안호상(훗날 그 유명한 일민주의를 집대성한 이데올로그) 등이 포진해 있었는데 그들은 존 듀이에 대항해 페스탈로치를 내세웠다.

그러나 알다시피 한국의 고등교육계는 페스탈로치와 존 듀이가 경합하고 절충되는 공간이 절대 아니다. 안호상이 페스탈로치에 어울리는 인물이 아니었듯 천연동 모임의 멤버들은 존 듀이를 진정으로 계승할 자격도 조건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존재가 의식을 만든다,라는 것이 이 논문의 주제는 아니다. 그들의 존재에 대해서 말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분량과 역량의 한계로 해방 전 그들의 일제부역 행적과 그 이후 친미적 행보를 연관짓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정치적 선동과 역사적 단죄가 이 논문의 목적인 것 또한 아니다. 사실이 그랬다는 것이다. 팩트가 가장 강한 우군일 뿐이다.
 

:
다녀왔다. 메가데스 공연.

사운드 체킹 때 앰프에서 라우드니스의 <crazy night>이 나왔는데
무대 위에 있던 멤버가 갑자기 그 노래의 기타 리프를 따라 쳤다.

내겐 그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Listen to the 무직' 카테고리의 다른 글

Pearl Jam <World Wide Suicide>  (0) 2008.01.04
원더걸스  (2) 2007.12.13
새벽의 DJ  (0) 2007.10.30
MEGADETH IN KOREA.... D-9  (0) 2007.10.19
재즈입문 추천, Dave Brubeck Quartet, <Take 5>  (0) 2007.10.11
:

새벽의 DJ

Listen to the 무직 | 2007. 10. 30. 22:15 | Posted by 김수민

깨어있는 나에게 들려오는 목소리
타락하는 전파로부터 날 지켜줘

모든 불빛 꺼져도 모두 잠이 들어도
갈등하며 힘겨운 내 곁에 있어줘

영원히 잠든 세상에서 날 일으켜 줘

듣고 싶진 않아도 선택할 순 없쟎아
깨어 있는 새벽이 다를 수 있도록

보고 싶지 않아도 선택할 순 없쟎아
타락하는 전파로부터 날 지켜줘

영원히 잠든 세상에서 날 일으켜 줘

어두움 속에서 외로움에 묻힐때
나를 감싸 안았던 나의 DJ

어두움 속에서 주저 앉고 싶을 때
손을 잡아 주었던 나의 DJ

날 지켜줘 날 지켜줘
깨어줘 날
잠이 들지 않도록

모든 불빛 꺼져도 모두 잠이 들어도
갈등하며 힘겨운 내곁에 있어줘
영원히 잠든 세상에서 날 일으켜 줘
- 블랙홀, <새벽의 DJ>, <<CITY LIFE STORY>>, 1996.



내가 중학생일 적에는 블랙홀이 <1대4의 갈등> 같은 노래에서 호남 문제를 다루었기 때문에 혹시 ‘새벽의 DJ’가 ‘슨상님’을 가리키는가 싶기도 했는데, 그 DJ는 실은 전 아무개라는 새벽녘 ‘어둠 속’의 라디오 진행자이다. 그는 근래 학력위조파문의 한 주인공이 되었고 얼마 전 라디오 프로그램을 그만두었다.

“신해철이 원래 서울대 갈 실력인데 내 프로그램을 듣다 서강대를 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는 이땅의 록 키드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지만, 나는 그의 방송을 별로 들어본 적이 없고 그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다만 내가 다소 의아하게 생각했던 것은 그가 아트록을 국내에 소개하는 선구자였다는 평가였다. 물론 그가 방송에서 아트록 선곡을 비교적 적극적으로 했던 것은 널리 알려진 바다. 그러나 그를 아트록의 소개자로 평하기에는 그의 선곡세계는 광범위했다.

성시완이야말로 아트록을 소개했다는 측면에서 아무도 그의 오른편에 붙일 수 없는 독보적인 DJ였을 것이다. 나는 성시완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별로 없다. 다만 근래 그가 털어놓은 글로 보아 그가 전 아무개씨의 그늘에 가려져 있었던 것은 물론, 전 아무개씨에게 여러 피해를 입었음이 드러났다. 상세한 사항까지 진실을 가려내기는 힘들겠지만 그 정도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또 그가 추가로 언급한 전씨의 평소 행적은 학력위조가 한번의 큰 거짓말 뿐은 아니었음을 말해준다.

일찍 자는 체질은 아니지만 새벽 2시가 넘어서까지 라디오를 청취하지는 않았던 나한테 전씨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는 못했다. 평론가로서 내게 끼친 그의 영향도, 조성진이나 성우진, 박준흠 등에 비해 크게 뒤떨어진다. 그래서 작금의 사태에 실망할 것이 없다. 다만 내가 한가지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최근 들어 ‘수호천사’까지 자부하고 나선 그의 팬들 중 일부가 말하는 “배철수가 대단한지 아는데··· 전XX이야말로”라는 레퍼토리를 향한 대답이다. 배철수의 음악캠프는 가요가 아닌 팝을 소개하는 얼마되지 않는 프로그램 중 하나라는 점 이외에는 별로 특성화되지 않은 프로그램임은 분명하다. ‘정통FM'치고 멘트도 많은 편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친숙해져도 우상화되지는 않는 인물이 아닐까. 배칠수는 항공대 밴드를 하던 청년 시절 몇 달동안이나 씻지 않고 히피로 살았다. 하지만 그가 히피 원조격으로 떠받들여지지는 않는다. 나이가 들어 마음가짐이 변하긴 했겠지만 볼썽사나웠던 적은 없었다. 음악보다 방송이 더 잘 맞다며 음악캠프에 생을 바치는 그가, 어눌하고 낮은 목소리를 역으로 카리스마의 자원으로 삼았던 어떤 DJ보다 못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비교대상이 DJ답지 않은 진행을 하면서도 DJ로서 허명을 떨치며(마돈나가 아닌 ‘머다나’를 소개하는 등의 발음으로도 유명한) 매니아들의 욕을 먹는 김기덕이라면 몰라도.

물론 그와 함께한 추억을 소중히 간직한 분들을 마음아프게 할 의사는 없다. 어둠 속에서 주저 앉지 않고 전씨의 손을 잡고 일어난 사람들에게, 새벽의 DJ는 제 사명을 다하고 사라져간 은인이다. 단, 거기서, 멈춰야 한다. “그가 학력위조로 얻은 게 있는 건 아니다”라는 변명이라니...

:

유일한 선거운동 방식

Free Speech | 2007. 10. 29. 16:09 | Posted by 김수민
'코리아연방공화국'과 '백만 민중대회'라는 어줍잖은 슬로건으로 선거를 뚫으려는 계획이 무위로 돌아가고 있다. 어쩌면 권영길쪽과 자주파가 당내 경선용으로 택한 구호였을 가능성이 크고, 따라서 연기처럼 사라지는 게 자연스러운 운명일지도 모른다. 결국 민주노동당은 '세상을 바꾸는 대통령'을 주요 슬로건으로 밀게 됐다. 선대위 회의에서는 '서민이 행복한 나라'와 보조를 맞출지 여부를 두고 논전이 벌어졌다고 한다. 노회찬, 심상정, 이선근은 찬성했다. 반대측에는 김창현, 이해삼, 홍성규가 섰고, 그들의 뜻대로 되었다.

들리는 소식으로는 지역에서 일하는 실무자, 상근자들도 중앙의 홍보지침을 어떻게 소화해야 할지 퍽이나 난감한 실정이다. '평당원'의 사정은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현재 권영길 후보는 3% 이하의 지지율을 올리고 있고, 당원들은 선거를 50여일 앞두고 나자빠져 있다.

그냥 저인망으로 뚫자. 술이나 커피 한잔 마시자고 약속잡아도 어색하지 않을 지인들의 명단을 만들고 그들의 투표성향을 파악하는 것이 첫번째다. 그들 중 지금까지 한번이라도 민주노동당을 찍은 사람들은 이번에 모두 권후보를 찍게 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반을 권후보를 찍게 한다. 경마장식 대선 중계를 지양하고, 이번 대선은 어차피 망가지는 판이니 소신껏 투표하라고, 정체성을 투표로 표현하라고 권유해야 한다. 문국현이 걸림돌이 될 텐데, 그때는 한미FTA로 돌파하는 수밖에 없다. 사안이 너무 거대하다 싶으면 ISD로 초점을 좁혀라.
(간단한 학습과 논리 마련을 하고 싶다면 참조:http://club.cyworld.com/club/main/club_main.asp?club_id=52091153)

싹이 보이는 지인에게는 고세훈의 <복지 한국 미래는 있는가?>와 같은 책을 선물해 주면서, 복지에 대한 오해들이 하나같이 터무니 없으며 한국에서는 민주노동당만이 유일하게 복지를 추구하고 있음을 설파해라. 문국현의 경우 조세 문제에서는 세금을 올리지 않는다거나 그걸 굳이 왜 올려야 한다거나, 유류세를 인하해야 한다거나 하는 포퓰리즘적 함정에 빠져, 민주노동당과의 차별이 한결 또렷해졌다. 유류세 깎으면 세수가 부족하고 소득세, 재산세, 법인세를 올리지 않는 한 다른 간접세를 올려 서민들이 조삼모사에 당하게 된다. 차를 끌어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은? 그들은 따로 구별해 환급하면 그만이지. 그래도 기름값 너무 비싸다고? 정유사 문제부터 파는 게 나을 거시다. 뭐 이렇게 대화를 끌고 나가면서 저인망으로 뚫어라. 지도부가 멍청하면 평당원이 정신차려야지.

'Free Speech'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떤 배구시합에 대한 기억  (0) 2007.12.23
이명박시대 개막  (4) 2007.12.19
계산할 때 깨달은 지갑 분실  (2) 2007.10.21
이명박 당선되어봐야 소용 없다  (0) 2007.10.19
블로그에 백기를 꽂다  (3) 2007.10.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