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주변에 있던 NL 사람들은 비판적 지지와는 대척점에 있었다. 2007년 대선을 한두해 앞두고 민주대연합론이 재현될 조짐이 보일 때, 그중 한 사람은 내게 "민주 대 반민주가 아니라 복지 대 반복지로 가야 한다"고 제 견해를 밝혔다. 나도 따라서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지만 세상사는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정운찬은 서울대 총장 시절 고교평준화 폐지, 본고사 부활을 역설하는 동시에 지역균형 신입생선발을 실시했다. 한국에서 찾기 드문 포지션이지만, 이는 수구보수세력에게 커다란 힌트가 될 수 있다. 정운찬은 "기본적으로 경쟁을 중시하고 촉진한다는 점에서, 다만 경젱에서 뒤처진 사람들을 배려하는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자신과 이명박의 생각이 비슷하다고 밝혔다. 실제 이명박이 그점을 보여주는 데만이라도 애를 쓴다면, 한국 수구파는 이미지적인 업그레이드를 이루게 된다. 일단은 경쟁 대 연대의 전선이 흐려지고, 복지 대 반복지로 싸움을 끌고 갈 여지도 크게 줄어든다.
노무현 정부 임기 중반께 한국사회 대다수의 구성원은 성장률 저조보다 사회양극화 심화를 우려했다. 원래부터 미국식 모델보다 유럽식을 선호하는 시민들이 많기도 했으니 관심이 자연스레 성장에서 분배로 기울어지는 추세였던 것이다. 하지만 다시 성장지상주의가 춤을 췄고 노무현 정부의 우경화는 이명박 정부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파이의 크기와 트리클 다운에 탐닉하는 반복지담론이 또다시 기승을 부린 탓일까? 아니다. 대중은 여전히 파이의 크기에 주목하나 성장이 자동으로 가져올 분배를 기다리기에는 지난 세월 여러번 속았다. 돈은 돌아야 제 맛이라는 걸 모두가 알고 있다.
"일자리가 최고의 복지다." 이 명제는 좌우상하의 사회경제적 담론을 일거에 빨아들인 블랙홀이다. 진보 진영의 '비정규직 철폐' 구호까지도 이용당했다. 비정규직을 늘려 노동유연성을 꾀하자는 주장은 교활하거나 천진난만한 소수 엘리트들 바깥으로 나가면 힘을 잃는다. 보수적 대중에게도 전혀 먹히지 않는다. 대다수가 정규직 일자리의 증대를 희망한다. 그렇게 해서 정부발 복지담론과 비정규직 철폐 구호가 만난 결과, 기껏 옛 기업복지의 신화를 향한 향수나 번지고 말았다. 월급을 타면 부동산에 투자할 수 있고 회사에 들어가면 자녀 교육비가 나온다는 믿음 때문에, '밑빠진 독'보다는 길어올 물에, 잔디구장보다는 공의 확보에 경도된 것이다.
일자리가 최고의 복지라는 지론을 흔히 '생산적 복지'라고 한다. 이 단어는 김대중 정부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곁에 셋째 슬로건으로 세워둔 바 있다. 길거리에 나가 아무나 잡고 물어보자. "생산적 복지의 반대말이 무엇입니까?" 생산적 복지의 정확한 반대개념은 쉽게 간추려 조세->재분배의 과정을 통해 일어나는 소비적 복지다. 하지만 아마 "비생산적 복지"라는 대답이 적이 들려올 것이다. 또한 근로의욕을 상실한 채 실업수당 받으면서 집에서 빈둥거리는 현상을 비생산적 복지의 폐해라고 지목할지도 모른다. 그럴 경우 소비적 복지는 졸지에 비생산적 복지와 등치될 것이다. 굳이 '비생산적'이라고 하지 않아도, '소비'는 '생산'에 진다. 대중들은 이미 소비자제일주의의 질척한 수렁에 빠져 있지만, 아직 개념과 언어만은 그렇지 않다.
(생산적 복지는 하나의 독을 더 품고 있다. 재분배 말고 사회의 평등과 조화, 협동을 이루는 방법으로는 생산수단의 사회화나 기업경영참여의 확대 등이 있다. 시민을 수동적으로 이끄는 기존 복지의 단점을 만회하고도 남는 실로 생산적인 이런 작업들을 '생산적 복지'는 고용과 취업이라는 떡밥으로 가려 버린다.)
한나라당 정책지휘자들은 '얕고 넓은 세수'를 주창한다. 세율은 낮춰도 '작은 정부론'은 누그러뜨리겠다는 의미다. 하지만 Laffer Curve가 Laugher's Curve가 된 지 오래라 파급력 있는 기조는 아니다. 오히려 투쟁과 합의의 산물인 조세와 그것의 도움을 받은 사회서비스의 무상화를 더 크게 훼방하는 걸림돌은 "일자리가 복지", '기업 복지', '생산적 복지'이다. 이걸 깨지 못하면, '복지'는 '민주'와 '개혁' 형님들 곁으로 가게 될 것이다. 민주민생세력을 자임하는 이들은 마땅히 이 줄초상에 브레이크를 걸어야 한다.
"정치판"이나 "지식계"에서 챙기는 야심과 잇속이 "현장"에는 없다는 전제로 자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노동계급 또는 빈민의 헤게모니를 명목으로 자신의 야심과 잇속을 기도하는 건 이미 익숙한 풍경이다.
옥석을 구분하기는 힘들지만, 제 스스로 그것을 용이하게 만드는 경우가 있다. 현장 안팍에서의 '유세'로.
사는 데가 마침 거기,라는 태도가 보이지 않는다. 도무지 "그냥 사"는 것 같지가 않다.
그들이 내비친 실천하고 있다는 자의식은 "내려간(갔)다"는 표현에 더없이 어울려 보인다.
운동가인지 중간관리자인지 헷갈리는 사람들이다. 중간관리자 폄하 발언인가?
나는 그들을 자본주의의, 아니 자본주의랄 것도 없이, 구질서의 마름이라고 부른다.
이건 마름 폄하 발언이 아니다. 실제로 하는 일이 같기 때문이다.
혹시 이들이 이해한 노동'계급'은 이등병, 일등병 그런 것이었을까?
민족주의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한 서양사학자가 순간 내뱉은 말에 아연했다. "우리나라는 통일이라는 과제도 있고... 그래서 민족주의를 극복하거나 탈피하자는 주장은 잘못됐다." 걸핏하면 뜬금없이 꺼내드는 통일론을 들으면 자기네들이 언제 그렇게 통일을 고민했는지 의심부터 들고, 동시에 통일이라는 게 민족주의에 의거해야만 하는 것인지, 혹은 통일은 어떤 상위가치의 통제도 따르지 않는 지상명제인지 따져묻고 싶다. 오늘날에 들어 같은 민족이니 통일을 해야 한다는 당위는 한(조선)반도 주민의 살갗에 닿지 않고, 그 사이 대거 생략된 평화론이 힘을 잃을 경우 민족통일이든 평화체제구축이든 지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한국사회에서 거개의 통일론과 그에 기반한 민족주의는 분단현실을 이용해 다른 논의와 노선을 억압하는 분단이데올로기로 작용한다. 이것은 보혁의 합작품이기도 하다. 국가보안법의 탄생 배경은 분명 분단현실이었다. 그러나 반인권악법을 폐지하는 과정이나 결과가 분단의 반대말이라는 '통일'에 달려 있지는 않다. "남북이 화해하고 있고, 통일도 해야 하니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야 한다." "아 그러쎄여? 얼마 전부터 남북관계는 경색되고, 통일은 요원하니 국보법을 놔둡시다." 이것은 2004년 국가보안법 폐지논쟁을 이끈 대화방식이었다. 국가보안법이 시대착오적이라는 공세에, 그 법은 날 때부터 착오적이었다는 진실은 묻혀지고, 시대가 어떤지를 두고 소모적으로 다투다 날밤을 샜다.
민족주의는 과거사 정리와 청산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두가지 장면이 떠오른다. 몇해 전 수업시간, 한 학생은 숭실대학교의 신사참배 거부투쟁을 평가절하했다. 종교적 신념에 따른 행동이지 민족을 위한 싸움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내가 손을 들었다. "민족이 됐든 종교가 됐든 제국주의에 맞서는 투쟁이었죠. 민족주의적 잣대로 의의를 제한한다면, 반제국주의 역사가 제대로 기려질 수 있겠습니까?" 백낙준 친일 심포지엄에 나온 어느 연세대 교수들은 백낙준의 일제부역혐의를 인정하면서도, "그분이 민족교육에 이바지한 것은 인정되어야 한다"고 강변했다. 무엇이 민족을 위한 길인지 논쟁할 이유는 없다. 민족주의는 본질적으로 매우 유동적이라, 아무나 차지할 수 있고 끝없이 논적을 욕하고 몰아붙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민족주의는 제한적이다. 태평양전쟁에 짓밟힌 여타 아시아국가의 시민들에게는, 백낙준이 한국민족교육에 이바지했든 말든 그가 일본 제국주의에 협력했다는 사실만 뚜렷할 뿐이다.
민족주의 극복은 국가적 과제나 민족문제를 회피할 목적이 아니라, 민족주의가 견제하고 탄압한 구체적인 진실과 보편적인 규범을 되살린다는 명분을 가진다. 외세와 분단이라는 실체를 외면할 수는 없다. 민족문제는 여전히 진지하게 탐구되어야 한다. 하지만 민족문제를 고민하고 해결하고자 하는 이가 민족주의자일 필요는 없다. 민족문제 연구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리영희나 반제국주의, 반오리엔탈리즘을 철두철미하게 견지하는 박노자 등이 그걸 증명한다. 탈민족주의자가 국가나 민족을 도외시한다는 비난에 응답해야 할 책무는 없다. 오히려 민족문제가 중요하다고 떠들어대면서 왜 그리 곧죽어라 민족주의를 외쳐대고, 자신들의 과업을 굳이나 민족주의로 개념화하는지, 민족주의자가 답해야 할 일이다.
근래에는 애국주의 타령까지 끼어드는 형국이다. 애국주의는 민족주의의 곁에서, 양면을 가진다. 첫째, 애국주의는 곧잘 '한민족'보다 '대한민국 국민'에 기반을 둠으로써 분단이나 외세, 반공주의를 생략하거나 축소한다. 그래서 자칫 보수적으로 흐를 여지가 크다. 둘째, 애국주의는 기존 민족주의의 종족적 혈통적 요인을 벗어던지고 '민주공화국'과 같은 국가정체성이 스스로를 결부시킴으로써 근현대적으로 진일보한 문제의식을 가진다. 하지만 나는 묻는다. 왜 애국'주의'인가? 시장이 유용하다 믿는다고 해서 그가 시장주의자인 것은 아니다. 사회나 국가를 중시한다고 해서 그를 사회주의자, 국가주의자라고 부르지 않는다. 자신을 사랑하고, 고향을 사랑하고, 제게 주어진 우연을 사랑하여 애국자가 될 수 있다. 헌법에 씌인 국가정체성을 자랑스러워할 수도 있고, 아직 꽃피지 못한 조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할 수도 있다. '조국'을 피하지 않은 사회주의자 장 조레스에게는 반전평화가 곧 애국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행위 맨앞에 '애국'이라는 이름표를 붙이고, 나아가서 애국주의를 긍정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에둘러 갈 것 없다. '민주적 애국주의자'든, '열린 민족주의자'든 소리높이는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보다 진보적, 좌파적인 세력을 비난하여 소위 민주개혁진영, 진보진영에서의 헤게모니를 강화하고, 다른 쪽으로는 '애국 대 매국'으로 단순화된 이 나라의 담론지형에서 보수파로부터 자신을 방어할 알리바이를 획득하기 위해서다. 현재 진보좌파진영에서 국가의 개혁과 정치권력 획득을 도외시하는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과거 혁명주의의 잔향이 짙을 적에도 일군의 지식인, 운동가들은 퓰란차스를 끌어와 연구했다. 그러나 다른 한쪽에서는 연이어 취조 심문한다. "너는 조국을 사랑하는가?" "이제는 좀 민족주의를 긍정하는가?" "왜 애국주의자가 되지 않는가?"
호통치고 캐묻는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자. 그들은 스스로를 진보라고 말하고 신자유주의가 문제가 많기는 많다고 한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이야기를 자주 꺼내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진보개혁' 진영을 분열시키는 짓이고, 김대중과 노무현으로 상징되는 민주화진영 주류의 공고한 지도력을 훼손하기에. 자연히 그들은 민주당계열이 한나라당과 가장 다른 대목인 '평화통일'을 강조한다. 그들 중 상당수는 한나라당이나 이명박 정부를, 충분한 역사적 조명이나 개념 정리를 건너뛰고, 막무가내로 파시즘이라 규정한다. 그래야 단결할, 내부(그들의 입장에서는 내부다)를 단결시킬 빌미가 생기니까.
10여년간, 최소한 정서적으로나마, 여당 생활도 해본 그들은 책임정치의 탈을 쓰며 뒤늦게 지략가의 풍모를 갖추려 애쓴다. 민족주의 및 애국주의 성향이 강하다는 한국사회의 현실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권력을 쌓아나가겠다는 심산이다. 고생이 많다. 민족주의자, 애국주의자라는 휘장을 두른다고 해서 그게 득표에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대중의 민족주의, 애국주의 성향은 자신을 민족주의자, 애국주의자라고 부르길 즐겨함으로써 생겨난 게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 민족주의, 애국주의를 외쳐대는 이들은 1980년대의 NL이나 PD와 무척 닮았다. 알고 보면 그다지 체계적이지도 않은 제 이론에 현실을 끼워맞추고, 특정한 하나의 기둥을 세워 환원주의를 행사하고 나머지는 모두 서까래나 창살로 만들어버린다. 조야하고, 철이 없다.
초등학생 시절 내 동생은 학교 견학을 통해 박정희 생가에 들렀을 때 묵념하는 순서에서 고개숙이지 않았다. 나는 군복을 입었을 때를 빼면, 고2때부터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지 않았다. 그와 나의 행위는 충성 강요에 대한 거부였다. 그러나 그나 나나 적발되지 않았다. 고개 숙인 인간들이, 딱딱하게 앞만 바라보는 인간들이, 거부자를 발견할 수 있었겠는가. 민족주의자, 애국주의자들이여, 그렇게 맹세하는 가운데 고작 곁눈질하며 강요하는 주제에 타인의 삶과 사유가 제대로 눈에 들어오겠는가. 나는 이들과의 사상논쟁이 진보진영 내부토론으로 불려지기를 거부한다. 그들은 단지 '박정희 좌파'에 불과하다.
덧1: 6.3 학생운동세력은 박정희의 '민족적 민주주의'를 화형시켰다. 민족적 민주주의를 거부한 것이 아니고, 자신들이 진짜며 박정희를 사이비라고 주장한 것이다. 하지만 그 상당수는 박정희의 자장으로 빨려들어갔다. 필연적이었다. 민족과 민주는 한국사에서 서로 어울리며 길을 뚫어왔지만, 결국은 어디에 더 역점을 둘 것인지를, 양자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개발독재의 최일선에 선 이명박, 이헌재나 이세기 같은 기득권자들, 사카린밀수 규탄자였던 정형근, 공화당과 민정당을 거친 김원웅 등은 민족주의(적 엘리트주의)의 행로가 어디인지를 훌륭하게 입증했다. 그런 의미에서 박정희 정권 청와대에서 근무한 최장집이, 한동안 열린 민족주의자에 가까웠다가 끝내 민족주의 자체를 회의하기 시작한 것은 극적인 변화였다. 이 역시 어떤 민족주의의 진로 가운데 하나로, 민주주의의 맥락에 든 민족주의는 결국 해체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 사례다. 최장집에 반해, 백낙청과 창비 진영은 모순을 껴안고 있으며, 김원웅은 그 모순이 가장 첨예한 사례다. 물론 모순 정도는 죽을 때까지 껴안고 갈 수가 있다. 그렇지만 모순으로 가릴 수 없는 본색이라는 게 있다.
덧2: 작년 교생실습 당시, 마지막 수업에서 학생 겸 후배들에게 내가 남긴 말. "여러분들이 공부하는 교과서는 민족사관에 근거해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관에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계급, 젠더, 섹슈얼리티, 종교 등의 잣대들이 있는 거죠. 이들은 각자 다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개인의 구체적인 현실을 깨닫고 떠받치지 못한다면, 그것을 억압한다면, 그 사관은 폭력입니다."
나는 이 말이
"시장을 철폐하자" "자본주의를 반대한다" 따위의 구호보다
훨씬 좌파적이라고 생각한다.
알튀세르주의자들이 폴라니에 경기를 하는 건 예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그냥 한번 시비나 걸어보잔답시고 나서는 이들도 있나 보다.
이택광 씨라는 사람도 한번 그랬던 것 같다.
알튀세르는 제대로 자본론을 읽지도 않고 잘난체하느라 내심 걱정을 많이 했다던데
(알튀세르는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다. 이론적 측면을 떠나서.)
나오자마자 비판적 지식인이란답시고 두들겨나보자는 이들, 고생이 참 많다.
알튀세르주의자든 그냥 한번 까보자는 인간이든 도리어 자신의 문제를 폭로하고 있는 것이 있다.
홍성태 교수는 얼마 전 낙원음악영화축제 토론회에서
건축적 폐해 때문에 낙원상가가 철거되어야 한다고 보지만
철거할 때의 태도가 지을 때의 태도와 같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시장경제와 계획경제에 대해서도 이런 견해가 성립될 수 있다.
교조적 마르크스주의와 신자유주의가 공유하고 있는 것이 있다.
교조적 마르스크주의는 시장의 전제를 계획지상주의로 대체하고자 하고
신자유주의는 시장'들'을 압도하고 사회원리를 뒤덮는 단일시장원리를 추구한다.
폴라니의 사상은, 바로 그에 대한 안티 테제다.
이건 양비론도 아니고 절충주의도 아니다. 획일성과 전체주의적 사유에 맞선 거대한 대결이다.
계획 대 시장의 구도 자체가 허구라는 얘기다.
그걸 뒤엎지 않고, 자본주의에 반대해야 좌파이고
시장경제를 부정하지 않는 폴라니는 별로 좌파적이라고 지껄이는 건 무의미하다.
(또한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를 완벽히 동일시하는 제 시각부터 점검해야 할 것이다.)
알튀세르주의자들이야 내 개인적으로는 내놓은 인간들이라고 쳐도,
나머지 폴라니 비판자들은, 우습지도 않다.
무슨 장기판 좌파 어쩌고 하는 표현까지 나왔던데, 자신한테 어울리는 옷을
남한테 입히려고 노력하진 말았으면 좋겠다.
이따위 꼬라지를 보고도, 홍기빈씨는 가만히 있었나?
3년전에 썼던 어설픈 글: 민주주의로 시장을 갈아치울 수는 없다.
시장과 민주주의는 완전히 조화될 수 없고, 언제나 갈등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그렇다면 민주주의의 진전은 곧 시장의 축소를 뜻하는가? 정치캠프의 한 동지는, 내가 이해하기로는, 결국 민주주의에 따른
계획경제가 대안이라는 견해를 제시했다. 그 시각에 따르면 시장의 축소는 민주주의의 진전이다. 그러나 이런 진전은 민주주의를
저해함으로써 결국 민주주의의 모순을 불러 일으킨다. 당연한 현상이다. 원래 민주주의라는 것 자체가 모순과 경합 속에 놓여져 있기
때문이다. 특히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는 더욱 그러하다.
민주주의와 계획을 통해 경제를 운영하는 것이 효율성이나 경쟁력은커녕 민주주의 원리조차 파괴한다는 사실을 여기서, 일단 간단히 증명해 보이겠다.
자, 드디어 어디에선가 계획경제의 이상이 실현되었다. 볼펜의 가격을 측정하고자 한다. 한 무리들은 500원으로 하자고 입을 모은다. 다른 한 무리들은 1000원을 내세운다. 여기에는 두가지 경우를 상정해 보겠다.
첫
번째, 그 가운데 가격을 요구하는 무리들이 별로 없고, 양쪽이 팽팽하게 나눠진 경우다. 500원이 47퍼센트, 1000원이
51퍼센트로 승리했다. 단, 4퍼센트의 표가 연필 값을 500원이나 뛰게 만든 것이다. 49퍼센트는 사표가 되었다.
50
퍼센트만 넘기면 뭐든 할 수 있다! 한번의 게임으로 구성원들은 모든 것을 깨달았다. 이때 인민의 몸값에는 차등이 생긴다.
‘캐스팅 보트’를 쥔 사람을 꼬여오기 위해 이 무리 저 무리들을 최선을 다할 것이고, 결국 ‘캐스팅 보트’를 쥔 쪽의 구성원들은
어떤 무리의 평균 보상보다도 높은 보상을 차지하는 특권층이 될 것이다. 50 이하를 점한 세력은 또다시 그들을 빼내오기 위해 더
큰 몸값을 제공할 것이고, 악순환은 끊이지 않는다.
두 번째, 500원과 1000원 사이의 값을 내세우는 쪽이
영향력을 발휘할 만큼 존재할 경우이다. 그렇다면 항상 결과는 ‘중간’으로 수렴된다. 500원이나 1000원을 내세우는 쪽이
아무리 합리적이고 신중하게 판단을 했더라도 그들은 언제나 ‘양극단의 변두리세력’에 불과한 것이다.
민주주의는 항상 다수결의 문제를 불러온다. 이 다수결주의의 폐해를 가능한 막아내지 못하면 개인 및 소수자의 권익은 우중의 폭력 앞에 노출되고, 민주주의는 무의미해지거나 스스로 무너져 내린다.
민
주주의는 ‘1인1표’의 철학이다. 그러나 모든 영역에서 똑같이 ‘1인1표’를 행사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그래서 본격적인 결정이
내려지기 이전의 모든 단계에서는 각자의 능력, 도덕성, 신뢰도, 책임감 등이 반영되어 차등이 생기는 것이다. 역동적이고도 차분한
과정을 거치지 못한다면, 다수결주의가 낳은 특권층이 ‘1표’씩을 회수해가는 독재의 모델이 태어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시장이나
의회 같은 직접민주주의에서 벗어나는 ‘기제’들이 꼭 보수적이라고 볼 수도 없는 것이다.
4. 시장=경제=자본주의?
좌
파들은 반드시 시장을 비판해야 한다는 강박증에 시달려왔다. 하지만 국가주의에 대한 비판이 국가 자체에 대한 거부와 다르듯,
시장주의를 혐오하는 것이 시장기제를 부인하는 것과 같지는 않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반대가 모든 형태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국수주의가 아니듯, 비자본주의적인 시장의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사유하는 것은 새로운 형태의 교환과 해방을 모색하는 길이기도 하다.
물론 현실 시장에서 파생되는 문제는 한눈에도 쉽게 보인다. 시장은 겉으로는 자유로운 개인이 자유롭게 거래하는
장소처럼 보이지만, 그 안은 선택 그리고 배제 나아가 서열화의 문제를 앓고 있다. 이는 공공공간의 소멸을 불러 일으키고
소비생활의 위계질서를 낳는다. 시장이 확대될수록 빈자들은 쉬어갈 시간과 장소를 잃고 쓰레기음식을 먹어온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 시장’의 문제는 시장경제가 초래한다는 자유경쟁/독점의 문제보다도 더 열등한 성질을 지니고 있다. 여기서 필자는 다시 한번 묻는다. “시장이란 무엇인가?”
시
장은 경제 자체와 동일시되기도 하고, 자본주의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왜곡 등식은 사회주의=시장철폐라는 오해를 낳는다.
페르낭 브로델은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에서 경제는 시장, 자본주의, 물질생활이라는 3개의 층위로 구성되어 있으며,
시장은 투명한 교환행위의 장소이지만, 자본주의와 물질생활은 경제를 불투명하게 만드는 층위라고 주장했다. 칼 폴라니도 시장은
경제행위의 다양한 유형 중의 하나에 불과하며, 다양한 사회적 규제를 받던 시장‘들’과 사회를 지배하는 단일시장을 구별해야 한다고
했다.
시장은 원칙적으로 수요과 공급이 만나는 곳이고 사람들이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장소이다. 이 장소가
사라진다면 경제영역은 온전히 존재할 수 없고 폐쇄적인 생활만이 존재한다. 시장은 개방과 접근의 성격을 띤다. 다만 이랬던 시장이
국가권력과 자본주의를 통하여 거시적 일상적으로 사회원리를 잠식하는 괴물로 변신했던 것일 뿐이다. 앞서 밝혔듯 시장의 상층
영역에서는 자유 경쟁보다는 오히려 음모와 투기가 횡행하고 있고, 시장의 역학을 지배하는 자본주의는 교환행위를 필요와 협조보다
힘의 우열과 분포에 근거한 것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시장의 역사를 되새겨볼 때, 시장의 재구성도 세계를 바꾸는 일
가운데 하나임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5. Not 시장 없는 사회주의...
심광현은
<문화사회와 문화정치>에서, “시장은 어떤 의미에서는 단지 교차로일 뿐이다. 교차로의 폭은 정보, 물건, 사람의
통행빈도와 압력에 조응하여 조절되어야 하는 것이지 무조건 넓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시장전체주의적 폭력을 암시하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거꾸로 국가사회주의는 교차로를 막아놓은 길로 비유할 수 있다.
시
장에 대한 과격한 사고방식으로 일관해 온 역사적 사회주의는 굳이 경쟁할 필요가 없는 세상을 꿈꾸고 있었다. 그런 세상은 탐욕이
제어되고 수익성을 따질 필요도 없는, 범죄와 적대가 소멸한 세상이다. 달리 말해, 그러한 세상이 오지 않은 곳에서 그들의
‘시장’에 대한 가치관은 이상적이며 현실적합한 대안을 이끌어내는 데 철저히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다.
‘필
요에 따른 분배’라는 원칙은 풍요롭지 않다면 무효가 되며, 이 풍요는 사실 노동력의 높은 지출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때 체제는
개인에게 자발적인 노력을 권유하거나 혹은 강제로 노동력을 집행해야 한다. 비현실적이거나 혹은 폭력적이거나. 또한 결국 전적인
사회주의계획경제 하에서도 희소성의 문제를 풀지 않는 한 가치평가가 따를 수밖에 없다.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노동력 집행과 상품의 가치비교는 누가 어떤 원리에 따라 수행해야 하는가?
마르크스는 화폐의 일반성이 아닌
무한성에 주목했다. 반면에 고전경제학은 화폐를 가치를 측정하는 지표로 바라보면서 단일한 균형체계를 유지했다. 가라타니 고진은
<은유로서의 건축>에서 이렇게 주장했다:“<자본론>은 무엇보다도 ‘국가 경제학’에 대한 칸트적 비판이다.
그것은 테제와 안티테제를 이루는 구축주의와 자발적 질서 둘 다 단지 하나의 가상일 뿐이라고 폭로했다.”
결국
계획경제나 시장경제에서 완전한 균형을 잡을 수 있다는 가히 종교적인 신념을 버리는 것만이 대안의 조건이 된다. 이를테면 자크
비데는 종합적 계획화는 자본주의시장경제와 유사하게, 사회전반을 유일하게 조율하는 지배양식이 된다며, “시장과 계획이 역사적
변증법에서 통일되는 것이 아니라, 메타구조와 구조들을 연결하는 일반적인 변증법적 형태의 양극적인 두 차원을 형성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6. ...but 자본주의로부터 해방된 시장
환경경제학자인 이정전은 자신의 저서에서
인류가 사회생활의 영역을 가른 다음 각기 걸맞는 정의(justice)의 원리를 꾸준히 적용한다는 것을 통계로 입증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경제에서는 성과나 능력이, 정치에서는 평등이, 사회에서는 필요의 원칙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어쩌면 신자유주의나
현실사회주의의 문제는 여기에 있다. 신자유주의는 성과나 능력을 따지는 자세가 경제를 넘어 사회 전반까지로 확산이 되었고,
현실사회주의는 평등주의가 정치를 넘어 비대화되었다.
더 주목할 만한 사실은 경제영역에서 사람들이 중시한
‘성과’와 ‘능력’이라는 기준이 시장의 것이지 자본주의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능력과 성과에 의거한
소득배분을 누리는 계층은 기껏 중산층이며 부는 상층부에 집중된다. 대다수 하층부는 도리어 성과주의, 능률주의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필자는 마르크스에게 전해졌다고 평가되는 칸트의 명제 “타자를 수단으로서만이 아니라 동시에 목적으로
대하라”를 곱씹어 본다. “수단이 아니라”가 아니라 “수단으로서만이 아니라 동시에”라는 구절이 마음에 와닿는다(토마토 정치캠프가
무난히 반대 없이 통과시킨 ‘길’의 어휘 가운데에 ‘다원주의’가 있다. 다원주의는 바로 이러한 칸트적 명제가 끌어내는 경합과
묘미를 긍정하는 자세이다). 구좌파들은 고전경제학자들과 마찬가지로 ‘~만이 아니라 동시에’가 아닌 ‘~이 아니라’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현대적이고 섬세한 좌파로서 시장을 사고하며 사회주의를 실현하는 길을 무엇일까. 통과된 ‘길’에
들어간 대로 ‘생산수단의’ 다양하고도 온전한 ‘사회화’라는, 국공기업과 사기업의 민주적 운영과 협동조합 및 자주관리의 창출을
상징하는, ‘사회적 경제’를 실현하는 방법이 있다. 당연히 인권이나 생활세계에서 추구할 사항들도 들어가 있으며, 의회를 활용하고
자치를 실현하겠다는 의지도 담겨져 있다. 또한 청년문화에 대한 조항도 있다. 중앙, 연합, 개인간의 질서와 정치, 경제,
사회문화 등 각 영역에서의 방안이 간략하지만 두루두루 펼쳐진 셈이다.
필자는 여기에 덧붙여 자본주의의 지배에서
핵심을 이루며 시장에서 쌓은 성과를 왜곡하는 ‘임노동’을 겨냥하고자 했다. 가장 기본적으로 노동자에게 주어지는 권력이 강해져야
하며, 노동이 고통스러움이 감소해야 하며, 인류가 호모 파베르‘만이 아니라 동시에’ 호모 루덴스여야 하여야 한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시장’을 거론하지 않을 수가 없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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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udel, Fernand (주경철 옮김),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까치,1995.
칼 폴라니 (박현수 옮김), <<거대한 변환 : 우리시대의 정치적 경제적 기원>>, 민음사, 1991.
심광현, <<문화사회와 문화정치>>, 문화과학사, 2003.
가라타니 고진 (김재희 옮김), <<은유로서의 건축: 언어 수 화폐>>, 한나래, 1998.
Bidet, Jacques (박창렬 김석진 옮김), <<자본의 경제학 철학 이데올로기>>, 새날, 1995.
이정전, <<시장은 정말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가 : 시장에 관한 6가지 질문>>, 한길사, 2002.
상인들을 비롯한 평택시내 다수 여론은 쌍용차투쟁에 적대적인 것 같다. 지난번 대추리 사태 당시에도 그랬다. 투쟁의 종결을 외치고 심지어 투쟁자들을 억누르기도 하는 대열의 맨앞에는 상인들이 존재한다. 노조가 정리해고를 수용하고 공장이 정상화되어야 평택 경제가 살아난다는 것이 그들의 중론이다. 대량해고가 구매력 감소를 불러일으킨다는 인식까지는 나아가지 못한다.
그럼 이렇게 말하면 어떨까? 대형할인마트의 등장에 항의하거나 신음하는 상인들에게, "대형할인마트가 들어와 상업의 구조조정이 이뤄져야 경제가 발전한다"고. "우리 노동자들은 이왕이면 할인마트에서 구입하는 게 낫다"고. 그때 상인들은 무어라 답할 것인가? "남의 아픔엔 관심도 없는 놈"? 그건 대추리 사태 때 반대투쟁하는 활동가들을 폭행한 평택상인들에게 그대로 적용되는 말이기도 하다. 노조의 투쟁을 욕하는 사람을 보면 나는 웃는다. 밥그릇 투쟁이라는 삿대질에는 더 크게 웃는다. 왜냐면 그는 분명 자기가 노동자였다면 밥그릇 투쟁에 나섰을 터이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청의 사업조정 조치로 대형마트의 진입이 멈칫하고 있다. 내게는 낯선 풍경이다. 이 시대 사람들 대부분도 그럴 것이라고 추측한다. 정치나 행정은 경제를 간섭하면 안 된다, 국가는 시장을 통제할 수 없다,라는 생각이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야 된다, 할 수 있다는 근거는 앞으로도 계속 나올 것이다. 그리고 국가가 알아서 그리하지는 않으며, 결국 답은 '사회'에 있다는 걸 깨달아나갈 것이다.
우선 노동자-영세상인들의 동맹이 시급하다. 영세상인들이 자신의 이웃이자 단골인 노동자들의 정리해고에 관심을 가지는 것, 영세상인들의 보호에 이미 조직화되어 있는 노동자가 앞장서는 것. 이 나라에는 영세상인들이 매우 많다. 그들과 노동자와의 반목으로 남을 건 서민경제의 공멸 뿐이다. 이 실업자보다 민주노조운동과 상인단체의 시야가 더 넓기를.
김정일은 국방위원장이지만 문민 지도자다. 그점에서 김일성과 가장 다르다. 김정일이 군복 입은 모습은 상상하기도 쉽지 않다. 그는 인민복을 택했다. 이 또한 정장 차림이었던 제 아버지와 다른 부분이다. 중산복이라고도 하는 인민복은 노동계급 친화성을 상징한다. 김정일의 인민복 착용이 구체적으로 어떤 성과를 낳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체제의 안정과 결속을 기도했다는 예측은 충분히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의 인민복이 대외적으로는 악효과를 낳았다고 추측한다. 바뀌지 않는 춘하추동복은 그의 파마 머리와 키높이 구두, 선글라스와 어우러지며, 게베라, 카스트로, 후세인과도 비하기 힘든 엽기적이고 우스꽝스러운 이미지를 낳았다. 그리고, 이제 와서 정장이나 캐쥬얼 또는 군복을 입기에는 너무 늦었다. 그렇게 해봐야 카스트로의 면도에 필적하는 충격만을 낳을 것이다. 대내적인 위상도 실추될 것이다. (영도자의 위엄을 너무 높고 굳게 잡아두어 나중에 고칠 수 없는 것이 쿠바나 북조선의 약점이다. 장기집권에 대한 설명-"서구 자본주의적 관점으로 볼 일 아니다"라는 것 역시 되레 그 체제의 뒤떨어짐을 토로할 뿐이다.)
위는 비정규직법 회담에 참석한 노동운동 대표들의 조끼를 보고 이어진 생각이다. 수십년간 화면에 비친 김정일의 인민복은 더이상 노동계급의 유니폼이 아니고 이제는 노멘클라투라의 상징이다. 지금 조끼는 어떠한 의미인가. 여전히 한국사회에서 노동자와 노동운동가의 거리는 자본가와 노동자의 거리보다 훨씬 멀고, '조끼'는 아직 그것을 입어보지 못한 다른 노동자들에게 남의 패션일 뿐이다. 물론 투쟁하는 운동가의 심벌은 노동자가 정치인이나 자본가와 테이블에서 맞겨루기하는 중이라는 걸 한눈에 내보이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같은 계급에게나 다른 계급에게나 고정된 이미지로 다가간 결과도 아울러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조끼가 촌스러우니 벗으란 이야기가 아니다. 벗는 게 더 유의미해질만치 너무 입었다는 것이다.
노동자는 많다. 그리고 다양하다. 얼핏 사측이라는 오해를 받더라도 노동운동가가 정장을 입고 나올 수도 있고, 치마든 청바지든 면바지든 반바지든 얼마든 입고 나올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노동자와 약자의 생존권을 위해 싸우고 대화하는 운동가들에게, 미사일로 동해에 물수제비를 뜨는 나라의 지도자를 들먹여서 죄송하다. 아무쪼록 이번 기회에 불안정노동을 겨눈 사회적 담론이 확산되길 빈다. 그러면 노동운동이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이 조끼입고 팔뚝흔드는 일쯤으로 취급받을 가능성도 점차 녹을 것이다. 다원주의 또는 종다양성은 여유 내지는 사치가 아니라 훌륭한 생존의 방식이다. 앞으로 노동운동의 생명력은 이 이치에서 나올 것이다. 나는 세대교체만을 기다리고 있지 않다. 아직은 현장 운동가들에게 기대를 걸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