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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8.1 <ROCK 팬들이 이명박을 돕는 법>

휴지통 | 2007. 10. 18. 19:10 | Posted by 김수민
2005년 8월 1일

 
록팬들이 '위대한' 이명박시장 돕는 법
[Rock'n'roll Diary] 일류도시 일류시장의 자부심 위해 블랙리스트 작성?
 
김수민
 
지난 주 토요일 오랜만에 ‘MBC 음악캠프’를 보고 있었다. 컴퓨터 앞에 앉아 티비를 등진 자세로 아주 산만하게 시청을 하고 있었다. 제대로 기억나는 건 김종서와 렉시의 무대였던 터라 인터넷으로 ‘럭스’의 공연 중 ‘카우치’라는 게스트가 사고를 쳤다는 소식을 듣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카우치의 성기 노출에 대해 그리 긴 말은 필요 없을 것 같다. 생방송인지 모르고 그저 신나게 놀았을 뿐이라는 변명은 개념이 없다는 걸 자백한 것이고, X지를 깠으면 이유를 대든지 당당하기라도 하든지 했어야 할 일이다. 자기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욱일승천기를 입고 나와 지상파 방송에서 바지를 벗고 경찰에서는 얼굴을 가린다? 정말 멋대가리 없는 사람들이다. 짐 모리슨은 자기네 공연에서 성기를 내놓았고, 당당하게 잡혀갔다. 그에 비하면 그들은 신종 '바바리맨'이다.

도저히 설명이 불가능한 이 사태는 자연히 음모론을 낳았는데 MBC의 X-파일 폭로로 체면을 구긴 삼성의 보복극이라는 내용이 있다. 소설을 쓴다면 모를까 아무런 근거가 없는 말이니 그런 소리들일랑 접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번의 ‘음모 노출’이 이명박 서울시장의 ‘새로운 음모’를, 그러니까 파쇼적 사고방식을 표현하는 것을 유도해냈다는 점이다. 1일 오전 서울시 간부회의에서 이 시장은 “사회적 통념”에 맞지 않으며 “퇴폐적”인 공연을 하는 팀의 “블랙리스트”를 만들라고 지시했다.  그들이 서울시 산하공연에 초청되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함이란다. 그는 또 “동남아 2류국가들이 하는 짓”을 서울에서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1류도시’의 시장임을 은근슬쩍 과시했다.

카우치가 토요일 오후대 지상파 방송에서(더구나 제작진이 인디계열의 음악을 소개하려는 장한 의도로 평론가들의 자문까지 받아 만든 코너에서) 바지를 내린 것은 큰 잘못이다. 방송사는 그러한 행위를 사전에 규제하고 사후에 징계할 수 있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서울시도 자기네가 주최하는 공연에서 당연히 그 취지에 맞는 팀들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이명박 시장의 결정을 존중한다. 그런데 작업을 구태여 어렵게 하시려는 것이 아닌가. 블랙리스트를 작성하려면 뒷조사도 불가피할 텐데 엄청나게 구린 짓거리를 하겠다고 스스로 나서는 것으로 보아, 서울시청은 현재 무지하게 덥거나 아니면 에어콘을 지나치게 틀고 있는 것 같다.
 
더위를 잡수셨거나 혹은 냉방병에 걸렸을지도 모르는 이명박 시장과 그 일파들은 한국 기독교에 블랙리스트 작성을 위임하시라. 일찍이 이명박 시장은 서울시를 하느님께 봉헌하겠다고 했다. 사실 이 정도는 좀 온건한 편이다. 한국에는 전세계를 미국에게 봉헌한 다음 미국이 세계를 하느님께 봉헌하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교인들이 많이 계신다. 그 분들은 워낙에 부지런하셔서 록그룹들에 대한 조사에도 열심이셨는데, 오지 오스본이나 마릴린 맨슨(이 시장과 얼굴이 닮았다는 일설이 있다)의 퍼포먼스나 작품은 말할 것도 없고 소녀취향의 팝메틀을 연주하는 본 조비의 대표곡 ‘You Give Love A Bad Name'도 사탄찬양가로 해석하신 전력이 있다. 이명박 시장이 자문을 구하시면, 홍대 부근의 장로들이 클럽가에 총출동하셔서 재빠르게 블랙리스트를 만드실 것이다. 그분들 말씀이 곧 사회적 통념이고, 그분들에 맞서는 자들이 바로 퇴폐의 온상일지니.

하지만 홍대앞 클럽에 서울시청 공무원이나 교인들이 들락거리는 것은 수치스럽고 성가신 일임에 틀림없다. 그리하여 공은 홍대앞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서울시가 굳이 수고하지 않고도 ‘1류공연’을 꾸릴 수 있는 여건을 락팬들과 밴드들이 조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단, 모든 홍대 클럽들은 정문에 ‘개와 서울시청 공무원과 교인은 출입금지’ 팻말을 붙이기 바란다. 이것은 위에서 내가 서울시에게 한 충고와 배치되지만, 그래도 나는 공무원들이나 교인들이 각각 행정과 전도에 전념하는 쪽이 옳다고 생각한다. 클럽과 밴드들은 자발적으로 서울시 산하 공연에 참가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다져 이명박 시장의 시정에 도움을 주어야 한다. 크라잉 넛이나 델리 스파이스처럼 쑥쑥 커버린 형님들이 도와주시면 금상첨화다. 

할 일은 더 남아 있다. 제 버릇은 개 못주는 법이다. 박정희가 일본 군인으로 키운 버릇을 못 버리고 최후의 날에도 여자를 끼고 술을 먹다 총 맞아 죽은 것처럼 말이다. 우리의 호프 이 시장께서 대통령이 되시면 블랙리스트는 더욱 풍성해질 확률이 크고, 따라서 서울시청 공무원도 아닌 청와대와 내각이 ‘퇴폐’에 저항하느라 난리를 칠 여지도 커진다. 한나라당원이 시장으로 앉아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공산이 큰 부산광역시로서도 힘든 일이 될 것이다. 참고로 부산시는 해마다 국제락페스티벌을 개최하고 있다. 여러 사람이 피곤해지고, 이 시장, 아니 이 대통령께서 과로와 신경과민으로 쓰러져 10.26에 준하는 국가적 혼란이 발생할지도 모른다.

이 시장의 임기는 내년 6월에 끝난다. 재출마는 없을 것이다. 명심하라. 이 사실은 절대 다행이 아니다. 그분이 서울시장을 관두시는 까닭은 그 이듬해 연말에 쿵짝쿵짝 대통령에 당선되려는 꿈 때문이다. 지금도 통념을 수호하고 퇴폐를 처단하는 과업은 시민사회에서 충분히 이뤄지고 있다. 정치행정이 거기에 달려드는 것은 중복, 과잉, 비효율이다. 이만하면 매니아와 뮤지션들이 이명박 시장에게 무엇을 해드려야 할지 윤곽이 잡힐 것이다.

이명박 시장에 대한 예우 못지 않게, ‘동남아 2류 국가들이 하는 짓’에 대한 고찰도 필요하다. 그짓이 무언지는 모르겠으나 예컨대 섹스관광 같은 것은 장소는 동남아지만 주인공은 한국인들이 아니었던가. 아무리 ‘동남아 2류 국가’라지만 “지하철 기관사는 아무나 할 수 있다”는 따위의 발언을 하는 시장이 거기에 몇이나 있는지도 궁금하다.

그깟 서울시 산하 공연, 부천판타스틱영화제한테 했듯이 보이콧하면 그만이지만, 이 시장의 입방정을 듣고 올라간 불쾌지수는 좀처럼 내려오지 않는다. 3년 전 문화예술계에서 떠돌던 “이X창이 되면 우린 다 죽는다”는 풍문이 기억난다. 그래, 죽여라. 너 혼자 죽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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