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절대권력자라도 자살을 한다거나 죽음을 앞둔 상황이면 그 순간만큼은 소수자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러자 대뜸 한 사람이 "그럼 이건희 딸이 죽은 것도 불쌍해요?"라고 물어왔다.
나는 그렇다고 답했다. "이건희 딸이라면, 남들이 보기에 꽤 스펙이 좋으면서도 "평민"이었던 연인과 만나다 집안의 반대에 절망해 자살한 그 사람을 말하는 것이잖아".라고 말하기도 전에 그 순간 그는 경악하며 비판했다. 아니 비판하지도 않았다. 순간 술자리에는 가벼운 소란이 일었다. "와~ 어떻게" "그게 무슨..."이라는 반응 사이에 가려진 진의는 누구라도 알 것이다. 진보적이라는 이가 어찌 재벌가 딸의 죽음을 동정할 수 있느냐는 얘기다.
도저히 대화가 진행되지 않는 지경까지 간 탓에 내가 미처 하지 못했던 말은 이렇다: "안 됐다..."라고 생각되는 게 측은지심이다. "이건희 딸은 이건희가 죽음으로 몰아넣었다"고 짚어내는 것은 시비지심이다. 부유한 강자의 집안에서도 발생하는 폭압이 약자와 빈자에게 얼마나 고통스러울지에 대해서 분노하는 것은 수오지심이다. 첫번째와 두번째에도 이르지 못한 자가 세번째에 이르는 것은 불가능하거나 허위의식이다.
그는 사양지심이라도 가졌을까? 남의 죽음에 대해서, 그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서, 함부로 재단하는 데 주저함이 없는 사람에게 '겸손하야 남에게 사양하는 마음'은 어울리지 않다.
그 사람은 -엔엘파는 아니었지만- 평소에 몹시도 품성을 중시해왔으며, 폭력적이기는커녕 매우 유약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왜 그리 생각하고 말하게 되었을까? 계속해서 주접을 떨어대는 그에게 난 입 쳐닫고 있으라고 했다. 갑자기 무거워진 분위기에서 그의 언행을 넘어갔다. 다만 나는 도대체 무엇이 그를 저렇게 망가뜨리는지, 그러고도 세상은 자칭 좌파를 생산해내는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늘 사람은 윤리적으로 고만고만하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이런 결론을 지키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다. 암튼 날 경악하게 만든 사람이 하나가 아니고 그들이 세상을 장악하면... 난 그날로 끽이다. 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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