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할 수 있는 일도, 하고 싶은 것도 없이 2년 반쯤 살았다. 한참동안 그것을 인정하는 게 너무 힘이 들었다. 처음에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받아들인 다음부터는 쓸쓸함과 싸워야 했다. 고향으로 내려가, 고향 중에서도 교외로 나가서 일하며 살아야겠다는 결심도 했었다. 그것을 실천하지 못하는 것은, '안'해서가 아니라 '못'해서이다. 못하는 것도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능력의 문제다.
고등학교를, 그때 생각대로, 그만 다녔어야 했다는 후회도 들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나는 '지금'이 그다지 괴롭지 않다. 앞으로 일을 해도 그저 먹고 살기 위해서 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일마저도 유능하게 해내지 못해 늘 위태로울 것이다. 그러면서도 하루하루 약해질수록 고통에 익숙해져 무던해질 것이다.
그래서 산다. 그래도 산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고 살아가는 중이다. 개미집단에는 게으름을 피우는 20퍼센트의 구성원들도 필요하다. 세상이 인정하는 재주를 가진 사람은 그를 떠받치는 무능한 사람들의 인격과 존재 자체를 비웃을 자격이 없다.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무능하기로서니, 꿈이 없기로서니, 뭐 그리 야단날 일일까.
마음을 꽤 비웠다. 민주노동당에서 지역위원장을 맡았고(이제는 전직이 됐다), 환경그룹에서 활동한 선배가 얼마 전에 배아줄기세포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병이 들었으면 죽는 게 생이다"라고 말했을 때 나는 참 공감했다(그날 그의 히트발언:"인간이 오색딱따구리보다 우등하단 근거가 있어요?"). 나도 언젠가부터 불치병이 걸려도 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던 차였다(치료를 받는 사람들이 잘못됐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 집어치우고 비관마저 집어치우다 보니까 졸지에 생태주의(?)에 닿아 버린 거다.
일이 안 풀리면 그러려니 하고 산다. 도리어 일이 잘 되면 왠지 모르게 불안하다. 인생의 상당 부분을 놓아버린 상태에서 별로 겁날 것이 없다. 근래 나랑 싸운 사람들은 왜 내가 그토록 이미지 망쳐가면서, 때로는 상또라이 꼬라질 하고 공격해대는지 기가 차기도 했을 것이다. 나는 일부러 위악을 부리지도 않았고 처세의 끈을 끊어버렸을 뿐이지만, 뭘 믿고 설치냐며 누군가가 혀를 찼을지도 모르겠다. 믿을 게 없어서 기댈 게 없어서 그러는지도 모르고 말이다.
하지만 앞으로도 삶이 녹록하지 않을 전망이다. 중학교 때 "What's your favorite season?"이라는 문제지의 질문에 "Nothing"이라고 적었다가 어머니한테 한 소릴 들은 적이 있다. 이제 나의 어머니는 나에게 간섭하지 않는다(심지어 한때 학교를 그만둔다고 했을 적에도). 그러나 사회적 시선은 만만치 않다. 내 꿈을 짓밟던 이들과 싸웠던 나는, 꿈없음을 비웃는 사람들과 싸워야 한다. 그보다 더 강한 건 내가 처할 기본적 여건이겠지만, 그때 일은 그때가서 생각해부러~ ^^
만일 내 가정형편이 매우 곤궁했다면 이렇게 버티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왜 그렇게들 '하부구조'니 '유물론'이니 떠들어댔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평범한 사람임을 스스로 인식하면서부터
세상을 지탱하는 것도
세상을 바꾸는 것도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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