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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8.02.16 추격자
  3. 2008.02.15 알파걸
  4. 2008.02.12 다섯개의 손가락
  5. 2008.02.11 최민수의 두 얼굴
  6. 2008.02.08 코지 파웰 드럼 솔로
  7. 2008.02.01 Whitesnake<Slide in> / Loudness <Sodier of Fortune> 1
  8. 2008.02.01 한국식 근대
  9. 2008.01.31 산울림 3
  10. 2008.01.28 바람만이 아는 대답
  11. 2008.01.24 시간강사를 구하라 6
  12. 2008.01.21 홍경민, 탁재훈 2
 

그래도 산다

Free Speech | 2008. 2. 17. 03:15 | Posted by 김수민

잘할 수 있는 일도, 하고 싶은 것도 없이 2년 반쯤 살았다. 한참동안 그것을 인정하는 게 너무 힘이 들었다. 처음에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받아들인 다음부터는 쓸쓸함과 싸워야 했다. 고향으로 내려가, 고향 중에서도 교외로 나가서 일하며 살아야겠다는 결심도 했었다. 그것을 실천하지 못하는 것은, '안'해서가 아니라 '못'해서이다. 못하는 것도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능력의 문제다.

고등학교를, 그때 생각대로, 그만 다녔어야 했다는 후회도 들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나는 '지금'이 그다지 괴롭지 않다. 앞으로 일을 해도 그저 먹고 살기 위해서 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일마저도 유능하게 해내지 못해 늘 위태로울 것이다. 그러면서도 하루하루 약해질수록 고통에 익숙해져 무던해질 것이다.

그래서 산다. 그래도 산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고 살아가는 중이다. 개미집단에는 게으름을 피우는 20퍼센트의 구성원들도 필요하다. 세상이 인정하는 재주를 가진 사람은 그를 떠받치는 무능한 사람들의 인격과 존재 자체를 비웃을 자격이 없다.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무능하기로서니, 꿈이 없기로서니, 뭐 그리 야단날 일일까.

마음을 꽤 비웠다. 민주노동당에서 지역위원장을 맡았고(이제는 전직이 됐다), 환경그룹에서 활동한 선배가 얼마 전에 배아줄기세포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병이 들었으면 죽는 게 생이다"라고 말했을 때 나는 참 공감했다(그날 그의 히트발언:"인간이 오색딱따구리보다 우등하단 근거가 있어요?"). 나도 언젠가부터 불치병이 걸려도 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던 차였다(치료를 받는 사람들이 잘못됐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 집어치우고 비관마저 집어치우다 보니까 졸지에 생태주의(?)에 닿아 버린 거다.

일이 안 풀리면 그러려니 하고 산다. 도리어 일이 잘 되면 왠지 모르게 불안하다. 인생의 상당 부분을 놓아버린 상태에서 별로 겁날 것이 없다. 근래 나랑 싸운 사람들은 왜 내가 그토록 이미지 망쳐가면서, 때로는 상또라이 꼬라질 하고 공격해대는지 기가 차기도 했을 것이다. 나는 일부러 위악을 부리지도 않았고 처세의 끈을 끊어버렸을 뿐이지만, 뭘 믿고 설치냐며 누군가가 혀를 찼을지도 모르겠다. 믿을 게 없어서 기댈 게 없어서 그러는지도 모르고 말이다. 

하지만 앞으로도 삶이 녹록하지 않을 전망이다. 중학교 때 "What's your favorite season?"이라는 문제지의 질문에 "Nothing"이라고 적었다가 어머니한테 한 소릴 들은 적이 있다. 이제 나의 어머니는 나에게 간섭하지 않는다(심지어 한때 학교를 그만둔다고 했을 적에도). 그러나 사회적 시선은 만만치 않다. 내 꿈을 짓밟던 이들과 싸웠던 나는, 꿈없음을 비웃는 사람들과 싸워야 한다. 그보다 더 강한 건 내가 처할 기본적 여건이겠지만, 그때 일은 그때가서 생각해부러~ ^^

만일 내 가정형편이 매우 곤궁했다면 이렇게 버티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왜 그렇게들 '하부구조'니 '유물론'이니 떠들어댔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평범한 사람임을 스스로 인식하면서부터
세상을 지탱하는 것도
세상을 바꾸는 것도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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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격자

Film Tent & 2nd Stage | 2008. 2. 16. 23:59 | Posted by 김수민

<추격자>를 개봉 첫날에 봤다. 김윤석과 하정우는 예전부터, 내가 감독이었다면 캐스팅하고 싶은 1순위 배우였다. 김윤석은 한석규가 그렇듯 안경을 쓰고 나올 때와 쓰지 않고 나올 때로 연기가 나뉘어지는데(<야수>와 <타짜>), <즐거운 인생>에서 그 중간을 개척한 다음 연기폭이 더 넓다는 것을 보여줬다. 하정우는 여성들을 홀릴 만큼의 외모를 지녔지만 그 속에는 마이너리티 감성이 내재되어 있고, 그 스스로도 마이너적인 행보를 선택해 이어갔다.

만들어질 리 없는 영화지만 내가 상상해본 영화는 정보요원과 지하조직의 대립을 다룬 영화인데, 하정우를 정보당국의 젊은 요원으로, 김윤석을 지하조직의 지도자로 설정해 보았다. 김강우를 지하조직의 젊은 행동가로, 천호진을 정보당국의 고위 책임자로, 백윤식을 <콘스탄틴>의 중립자와 비슷한 캐랙터로 설정해 보기도 했었다(막판에 반전이 있는 영화다. 안 만들어져도 반전은 안 밝힌다 ㅋ).

어쨌든 그 두 배우가 나온다는 이유로 몇주전부터 엄청 주목했던 영화다. 감독은 독립영화계에서 주목받던 이여서 더 궁금하기도 했다.

영화는 절묘한 추리는 거의 등장하지 않고 '추격'에 초점을 맞춘 하드웨어적(?) 작품이었다. 무전을 칠 때 실제 경찰에서 쓰는 약어를 사용했다는 것부터 시작해서 많은 것들이 경찰 복무했던 나로서는 리얼하게 느껴졌다(물론 실제로 용의자를 그렇게 패진 않으니, 혹은 패는 걸 적어도 난 본 적이 없으니 다른 오해는 없기를). 예상과는 달리 연쇄살인 사건의 행적을 뒤쫓기보다는 연쇄살인범을 추적하는 짧은 시간을 다루었는데, 밀도 높은 이야기를 무리없이 농축시킨 것 같다.

다른 매력은 잘 모르겠다. 보다 보니까 시간이 가서 극장을 나왔을 뿐. 복기가 필요한데, 요즘 내가 그럴 능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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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걸

Forum | 2008. 2. 15. 04:13 | Posted by 김수민

작년 봄 조한혜정 교수의 1학점짜리 수업을 들으면서 댄 킨들러의 <알파걸>을 읽어보게 되었다. 알파걸은 페미니스트 어버이를 둔 딸들로 포스트 페미니즘의 징후로 평가받았지만, 구자유주의도 모른 채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인 한국사회에서 그것이 어떤 의미로 통용될지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당시 수업에서 내가 제출한 쪽글이다.


글쓴이 : 김수민 글쓴날 : 2007/03/28 16:39 조회수 : 20

베타보이와 오메가걸이 알파걸을 말하다

평점 3.8 이상의 성적에, 모종의 클럽에서 리더 역할을 하고 일주일에 10시간 이상을 학교 내외의 과외활동에
 참여하며, 사회적 인정과 부의 축적을 향한 욕구가 강하고 신뢰성이 높은 여학생. 댄 킨들런은 이들을 알파걸
이라고 부른다. 일주일에 10시간 이상을 학교 내외의 과외활동에 참여하지만 리더 역할을 맡지 못하거나 기껏
해야 독박을 쓰고, 평점이 3.8을 넘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으며, 부모님보다 못살 각오를 하고 살며 인정욕구
도 희박한 ‘베타 보이’가 책을 읽고 난 뒤, ‘오메가 걸’을 만났다.


  베타 보이: 당신은 ‘알파걸’인가?

  오메가걸: 평점은 4.0이 넘는다. 그러나 리더 역할? 그 둘이 양립가능하다고 보나? ‘과외활동’을 하기는 한다.
 중학생, 고등학생 과외 말이다. 사회적 인정은 차치하자. 물론 부를 쌓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다. 난 가난
하다. 지은이는 서문에 예시한 설문조사 문항에 몰라서인지 일부 그랬는지 ‘알파걸’의 기준에 집안의 경제
사정에 대한 질문을 빠트렸다.


  베타보이: “여권주의자가 아니다. 그냥 평등주의자”라는 알파걸 몰리의 말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페미니즘은 평등이념의 한 단면일 뿐이며, 따라서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입장이 아닌지. 여성운동을 했지만 사회평등에 기여하기는커녕 제 몫 챙기는 방향으로 흘러버리는 경우도 많았지 않았나?

  오메가걸: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사실 나는 평등주의자도 여권주의자도 아니다. 나는 부지불식간에 남성중심의 질서에 익숙해진 채 살았을 것이다. 새롭고 반항적인 사고나 행동양식을 지녀야겠다는 계획도 없다. 우리 아버지가 돈을 많이 번 것도 아니고, 어머니가 페미니스티인 것도 아니다. 알파걸은 잘나가면서 ‘정치적으로 올바른’ 어버이 밑에서 성장해서 ‘더 잘 나가려고 하고’ ‘문화적으로 세련된’ 인간에 다가서는 사람들이다.


  베타보이: 그렇다면 당신이 알파걸이 아닌 것은 전적으로 가정환경 탓인가?

  오메가걸: 글쎄. 전적인 것은 아니면서 결정적인 요인일까? 다만 알파걸과 내가 비슷한 점은 각박하게 살고 있다는 거다. 아무리 담론을 포장해봐도 알파걸은 시간을 빡빡하게 쓰는 사람들일 것이다. 풍요로운 체 할 수는 있어도 여유로울 수는 없다.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는 시간에 그들은 과외활동을 한다. 과외활동이 즐겁기는 하나 그것이 휴식과 사색, 느린 동작을 위한 시간을 앗아가면 임금노동과 마찬가지로 사람을 억압할 수 있다. 무작정 ‘느리게 살자’느니 떠드는 것도 마음에 안 들지만, 알파걸이 신인류로 포장되는 것도 마음에 안 든다.


  베타보이: 신인류까지는 아니더라도 알파걸을 한편으로는 페미니즘 운동의 성과, 나아가 ‘포스트 페미니즘’의 징후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오메가걸: 무심해진 것도 진보일 수는 있다. 예컨대, 동성애자에 대한 무관심 같은 거. 그런데 이건 좀 무식해진 측면도 있지 않나 싶다. 


  베타보이: 해방을 운위했지만 자유롭지 못한 세대가 있었다. 한국의 386운동권 같은 예가 그렇다. 알파걸은 그 거꾸로인, 자유만 건네받고 해방의 에너지를 가지지 못한 신세대로 볼 수 있을까? 지은이는 ‘혁명의 딸’이라고 그랬는데.

  오메가걸: 혁명의 딸? 그 혁명은 뭔가.

  베타보이: 1960년대 구미의 인권, 반전, 평화, (반)문화, 여성운동이겠지.

  오메가걸: 토니 블레어나 클린턴 부부를 보면 느껴지는 것이 없나? 그 혁명은 신자유주의 보수혁명인 것 같다. 신자유주의 보수혁명에 활력을 불어넣은 쪽은 신보수주의자가 아니라 ‘전직 좌파’, ‘소싯적의 아나키스트’ 등이 아닌가. 하이에크도 그랬고. 알파걸은 현대의 시류를 만족시키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과연 저항하는 방법을 알까? 나처럼 어딘가 모자란 사람들도 마찬가지지만.


  베타보이: 마지막 질문이다. 알파걸에 비판적이지만 당신에게 정말 선망의 마음조차도 없을까?

  오메가걸: 당연히 부러운 마음이 든다. 그러나 될 수 없기에 더 이상의 선망을 가질 수 없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그들이 새로운 여자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들이 성공하든 말든 관심이 없다. 이렇게 말하니 ‘무식한 여자 대학생의 전형’처럼 보이긴 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그들은 출세할 여학생일 뿐이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봐야 그들과 직장에서 경쟁하는 정도?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도 지지할 만한 대상은 아니다. 나는 오히려 알파걸이라는 이름에서 선정주의를 느꼈고, 남자들에 의해 대상화되었다고 생각했다. 피해의식인가?

  베타보이: '피해의식'이라. 그것도 알파걸과 오메가걸을 가르는 차이일까? 아무튼 코멘트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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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개의 손가락

史의 찬미 | 2008. 2. 12. 19:40 | Posted by 김수민

악극단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내 방랑생활을 보다 못한 외삼촌이 나를 경찰학교에 들여보낸 것이다. 경찰은 의외로 적성에 맞아 그럭저럭 견뎌낼 수 있었다. 31기로 졸업한 뒤 초대 농림부장관을 지낸 조봉암씨의 호위경관을 맡았다. 그분이 외숙모의 친오빠였기 때문이다. 2년 정도 그분을 호위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하는 정신, 옥고와 갖은 고문을 치른 뒤 5개밖에 남지 않은 손가락으로 글씨를 기막히게 써 내려가는 모습은 하나의 충격이었다. 인간의 한계가 어디까지인가. 그림자처럼 그분을 따라다니며 나는 늘 그 생각에 골몰했다. 훗날 쌀 한톨에 반야심경 200여 자를 새겨 넣는 '미친 짓'도 나 자신의 한계를 시험해보고 싶은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 흑우 김대환, <<연습은 장엄한 구도의 길이었다>>, 현암사, 2005, 31-32쪽.


조봉암은 일제 말기 투쟁을 접으며 얼마간의 안온함과 양식을 누린 탓에 해방정국에서 소외되었다. 그때 그는 서울로 올라오지 않고 고향인 인천에서부터 '제3전선'의 형성을 위해 활동했다. 그가 이승만 정부의 초대 농림부장관으로 참여한 사실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견해와 논평이 있다. 하지만 그는 평화통일론과 피해대중을 위한 경제를 포기하지 않았고, 이승만이나 신익희 등 보수 정객들을 능가하는 인기를 누렸다. 그리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집념을 가진 사람은 많다. 그러나 활활 타오르는 불꽃 같은 집념이 아닌 묵묵히 흐르고 또 흐르는 집념을 가진 이는 흔치 않다. 불꽃들이 차고 넘치는 진보진영에는 그러한 사람들도 필요하다. 활화산처럼 북을 치는 김대환의 이면에 세서미각의 김대환이 있었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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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수의 두 얼굴

Listen to the 무직 | 2008. 2. 11. 04:27 | Posted by 김수민

배우 최민수 말고 가수 최민수 말이다. MBC <테마극장>의 주제가로 쓰였던 <의미 없는 시간>을 기억하시는가? 1995년도 당시 가요계에 무관심했던 사람이 아니면 기억할 것이다. 가요TOP10에서 1위까지 했다니까? 그래도 몰러? 그럼 이 노래를 들어보시라.




집에 내려와 오랫동안 듣지 않았던 두장의 음반을 발견했다. 하나는 블랙 신드롬을 주축으로 하여 모인 헤비메틀 밴드들이 1988년도에 낸 컴필레이션 <Friday Afternoon> 1집이고, 다른 하나는 그 음반에 참여한 밴드인 크란티아, 아발란쉬가 합동으로 낸 음반이다.  

<프라이데이 애프터누운>의 참여 그룹 중에 IRON ROSE(철장미)라는 그룹이 있는데, 보컬이훗날의 K2, 김성면이다(K2의 기타리스트는 바로 아발란쉬 출신의 이태섭으로 <하여가>를 연주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 사람의 두 얼굴은 나중에 시간나면 올려보겠고, 이번에는 최민수의 두 얼굴을 소개한다. 최민수는 크라티아의 보컬리스트였다.  

1980년대 헤비메틀 필드에서는 주다스 프리스트, 디오와 같은 중앙파(?) 노선, 메탈리카, 메가데스 등의 스래쉬 노선, 머틀리 크루, LA건스 등의 LA메탈 노선 등이 군웅할거하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시나위, 백두산이 중앙파에 해당했다면, 아발란쉬는 스래쉬의, 크라티아는 LA메탈의 대표주자였다.

목소리에는 얼추 최근과 비슷하지만 창법과 외양이 같을 리 없었다.

크라티아의 <Hard Headed Woman>.  



동구 사회주의가 몰락하던 시절, 음악계에서는 헤비메틀도 몰락을 맞이했다. 그리고 나이든 록커들은 어떻게든 음악 인생을 이어가야 했다. 잘나갔던 임재범, 이승철도 발라드를 불렀던 시절이었다. 아이구 유현상은 트로트로 서태지는 댄스로 갈 정도였던 시절이다.

임재범이 한국의 커버데일, 한국의 디오에서 한국의 마이클 볼튼으로 바뀌어갔듯 최민수도 한국의 리처드 막스로 소개되기에 이른다. 그리고 <의미 없는 시간>은 성공작이었다.

1997년쯤 신곡을 내놓기도 했는데 그후로는 뜸하다. 부산에서인가 보컬강습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누리망에서 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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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지 파웰 드럼 솔로

Listen to the 무직 | 2008. 2. 8. 19:54 | Posted by 김수민


1998년 4월 페라리 주행 중 사고로 사망. ㅡㅜ

다음은 네살 짜리 드럼 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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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 몰라 졸라리 흔드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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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식 근대

史의 찬미 | 2008. 2. 1. 15:28 | Posted by 김수민
사용자 삽입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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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울림

Listen to the 무직 | 2008. 1. 31. 14:13 | Posted by 김수민
산울림 안 좋아하면 뭔가 모자란 것처럼 떠드는 사람들이 좀 재수없었긴 하지만, 분명 산울림은 두고두고 재평가 받아야 할 그룹이다. 한때 인기 좋았던 밴드라거나 <개구장이>, <산할아버지> 등 동요틱한 노래를 불렀다거나 김창완과 동일시되어 알려져 있었지만, 산울림은 70년대 런던과 뉴욕에서 펑크가 출몰할 때 전혀 다른 맥락에서 나름의 평크를 추구했고, 결과적으로는 90년대 시애틀의 선배가 되었다. 앞부분 기나긴 분량에다가 전위적이고 사이키델릭한 연주가 흘러 나오는 <내 마음의 주단을 깔고>는, 아마 요즘 나왔다면 라디오PD가 어디 구석에 쳐박아 버렸을 것이다.

김창익 씨가 돌아가셨다고 하니... 그냥 드는 생각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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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만이 아는 대답

Free Speech | 2008. 1. 28. 00:45 | Posted by 김수민

소진하였고, 평범하다. 처음부터 꿈은 거기에 있었는지 모른다.

내일부터는 추운 밤공기 가르며 달려야겠다. 그리고 잊어야겠다.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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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강사를 구하라

Free Speech | 2008. 1. 24. 22:10 | Posted by 김수민

민족해방파입네 맑스주의자입네 하는 운동권 아해들을 보면, 대학사회 진보화의 길은 최소 10년간은 물거품이 된 것 같다. 걔들이 설치면 설칠수록 판은 더 고약하게 망가진다. 대안적 가능성을 가진 학생들은 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도서관과 강의실을 오갈 뿐이다.

한때는 희망을 동아리나 학회에서 찾았다. 소속 단체가 없음에도 학내에서 학술네트워크를 만들려고 했던 것도 그 때문인데... 동아리들은 자그마한 시도도 주저할 만큼 무기력에 쩔어 있어서 더이상 추진하기가 힘들었다. 또 요샌 정치경제학을 공부하는 좌파적 동아리에도, 단체 성격에 맞지 않는 학생들이 들어온다고 한다. 후배들은 선배들을 경원시하고, 선배들은 무능하다. 예전엔 싸가지는 접어두고 논리적으로 박살을 내주거나, 아니면 변치 않는 정렬과 의지로 모범을 보이는 경우가 존재했다. 전자는 이제 거의 없고 후자는 쪽도 못 쓴다. 둘 다 그다지 지속가능한 모델은 아니었지. 01, 02학번은 수가 적은 데다가 일부 대가리급들은 빤한 수작들이나 배운 것 같고, 03, 04학번은 진짜 말도 아니다. 좀 배웠다고 행세하고픈 맘은 잘 알겠는데, 새내기한테도 뭐라할 깜냥도 못돼.. (혹시 이거 읽고 발끈한 연세대 학생 있음 뎀비세엽. 내 근처에서 좀 보고 알았던 사람이면 개개별로 문제점을 짚어줄게.)

요즘 대학생들이 수업은 잘 들어가다 보니 남은 키는 강의 속에 있다. 물론 진보적 의식은커녕 시민의 소양을 떠받칠 만한 강의와 선생은 매우 드물다. 내가 다니는 학교의 경우 끽해야 민족주의자인 교수들이 상대적 진보로 꼽히고, 상경계열이나 사회학과에 좌파 교수가 조금 있는 수준이다. 중도개혁 교수들은, 어디보자 법대 같은 데 몇몇 있는 수준인가. 내가 강의 들어본 교수 중에는 존경할 만한 보수주의자는 하나도 없다는 게 내 의견이다. 실은 이런 게 더 암담하다.

남는 건 30대 젊은 시간강사들이다. 이념을 떠나서, 수업 열심히 하고 교육방법 괜찮고 마인드 좋은 사람이 꽤 많다. 최소한 원로, 중견급 교수들보단 나은 편이다. 나는 <88만원세대> 3만권 판매를, 출중한 어느 강사의 무정형 강의 확산으로 평가하는 편이다. 이왕이면 더 가까이서 학생들을 만나는 게 좋겠지. 시간강사들을 구하고 키울 방안에서 실마리를 찾아보는 게 어떨까.. 위에서 이야기했듯 88만원세대의 의식과 교육은 세대내적으로는 해결이 안 된다. 80년대 후반, 90년대 초반 대학에 들어왔던 강사들과 연대해야 한다.

비정규직 강사 문제를 거론한 박홍규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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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민, 탁재훈

Listen to the 무직 | 2008. 1. 21. 23:53 | Posted by 김수민

어제 <지피지기>에 출연한 홍경민이 자신이 처음 하고 싶었던 음악에 언젠가는 도전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아마도 본조비풍의 팝 락을 하고 싶다는 의사였을 거다. 홍경민 말고도 원래 락커가 꿈이었으나 전혀 다른 음악을 하고 있는 이로는 탁재훈이 있다. 조금 다르지만 락을 넘나드는 이로는 김장훈이나 이현우도 있다.

홍경민이나 탁재훈이나 명창급은 아니더라도 노래를 맛있게 부르는 능력이 있다. 중후한 저음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면서 고음에도 썩 능란하지 않으며 성량도 그리 풍부하지 않은 이들이기에 그 능력이 더 돋보일지도 모르겠다. 홍경민은 학창시절 밴드에서 '베이스 보컬'을 했다는 기사를 어디에선가 읽었고, 탁재훈은 밴드의 원래 보컬을 갈아치웠던 경력이 있다.

예전에는 홍경민이나 탁재훈 같은 이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음악적 소신 없이 '연예인'으로서의 수명연장에나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라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음악에 진짜 맛을 들이면 장르는 절대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걸 이해하게 되었다. 음악인을 지망했던 그들이 어느 회사를 다니며 넥타이를 매고 다니느니, 원래 지향하지 않았던 스타일의 노래라도 부르는 것이 낫겠지 싶었다. 더군다나 '자기가 하고 싶은 음악'은 아닐지라도 '자기가 잘하는 음악'을 소화한다면......

신해철이나 서태지의 경우, 밴드로 출발했지만 발라드나 댄스 영역에서 아이돌 스타가 되었고 그 힘으로 다시 록을 시도하여 거장이 됐다. 그들의 존재를 드는 것이 홍경민이나 탁재훈의 행적을 무시할 수도 있다. 내가 그랬다. 그러나 조금 나이들면서 깨닫는 것이, 어떤 분야에서든 신해철이나 서태지처럼 처신하고 자신의 운명을 집행하기가 무척이나 힘들다는 사실이다. 여기에는 엄청난 정치적(정략적이거나 사교적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역량이 요구된다.  

홍경민이 본조비 노래를 썩 잘부르는 것 같지 않아 불안하기는 하지만, 그의 스타일대로 록을 시도하고 그 성과를 거머쥐고 음악인으로서의 이미지를 굳혀나간다면 좋은 일일 것이다. 탁재훈은 잘 모르겠다. 그는 <상상플러스>에서의 자기 모습에 꽤 만족하는 것 같다. 하기야 동서양 대중음악인들 대다수가 웅장한 각오나 고상한 신념이 아니라 '여자(남자)를 꼬시기 위해' 음악을 시작하는 거니까, 노래하다가 예능프로의 토크로 새는 것도 희한한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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