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학교 자유게시판에도 올렸었다. 거기선 추천수가 3을 넘기가 힘든데, 이 나름의 선전포고에 추천을 눌러준 스물 여섯 분께 감사드린다(알아본 결과 그 스물 여섯 분의 대다수는 운동권이 아니라 어딘가 내가 모르는 곳에 계셨던 분들이었던 것 같다). 그분들께 또한, 죄송한 마음 전하고 싶다.
방우영 이사장님, 이제 그만 물러나십시오
[주장] 사학 이사장이자 언론사주인 방우영님께 일개 학생이 드리는 편지
김수민 (lolla)
안녕하십니까. 연세대학교 재단이사장 방우영 선생님. 조선일보 명예회장 방우영 선생님. 저는 연세대 교육학과에 재학 중인 김수민이라고 합니다.
저는 조선일보를 보지 않습니다. 예전엔 구독을 하지 않고 도서관에서 열람하거나, 누가 버린 신문을 보거나, 네티즌들이 퍼다 나른 글을 보면서 논조를 분석하고 비판했습니다. 이제는 아예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제 정신적·육체적 건강을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미운 정 고운 정 다 든 조선일보를 모른 체 할 수 없었습니다. 사립학교법 개정에 대한 견해가 너무나 궁금했던 터라 조선닷컴을 방문했습니다.
"사학법에 무슨 딴 뜻 있기에 이렇게 밀어붙였나." 조선일보는 저의 기대를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학교운영위원회는 교사와 학부모, 지역대표들로 구성돼 있지만 운영회의 주도권은 조직화-세력화돼 있는 전교조 교사들에게 넘어갈 것이 뻔하다"며 전체 교사의 6퍼센트에 불과한 인원이 모인 전교조를 손수 고무·찬양해주셨습니다.
"일부 사학 재단 운영에 문제가 있다면 당국이 엄정한 감사를 통해 적발하고 바로잡으면 된다"는 말은 무책임한 말씀입니다. 참고로 저는 사립학교의 자율성을 중시하는 사람입니다. 사립학교에 문제가 생기면 사립학교 내부에서 먼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설립자 나름의 종교적, 교육적 이념을 실현하려고 귀한 재산을 내놓아 세워진" 학교를 당국의 엄정한 감사만으로 유지하고 바로세울 수 있겠습니까? 설립자가 먼저 부패를 일소해야 하고,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사학 내부의 여러 구성원들이 나서야 하며, 그마저 여의치 않으면 국가나 시민사회가 참견할 수밖에 없겠지요. 이해가 가지 않으신다면 상문고나 에바다농아학교의 사례를 공부해보시기 바랍니다.
사설의 마지막 부분은 "전교조가 만들어내는 인간형에 기대 앞으로 몇 십 년 더 집권해 보겠다는 정권의 딴 뜻"을 거론합니다. 내친 김에 "다음 주 중 하루를 휴교하고 앞으로 헌법소원, 정권 퇴진 운동, 2006년도 신입생 모집 중지, 학교 폐쇄 등으로 대응해 나가기로" 결정한 한국사학법인연합회의 "딴 뜻"도 짐작해주시기 바랍니다.
조선일보는 후속 사설을 위해 친히 홍성대씨가 세운 상산고의 "운동장에" 서셨습니다. 사립학교법의 개정이 돈과 열정을 들여 건립되고 있는 자립형 사립고를 해친다는 걱정을 하고 계십니다. 말씀하신대로 "학교가 정한 기준에 따라 신입생을 선발할 수 있고, 교육과정의 재량 폭이 크고, 등록금은 일반 학교의 3배 이내에서 자율로 정할 수 있는 게 자립형 사립고"입니다. 그 외 예시한 장밋빛 현황과 희망찬 미래에 대해서는 별로 논의하고 싶지 않군요.
그런데 문제는 사립학교법 개정이 자립형 사립학교의 진취적 사업에 물을 끼얹었다고 단언하시는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립학교법을 개정하면 홍성대씨의 막대한 투자금이 밖으로 샌답니까? 개방형 이사를 두면 하루아침에 자립형 사립고의 자율적 정책이 흔들리기라도 합니까? 자립형 사립고의 확대를 보류하자는 교육부 자문기구의 결정만으로 현존하는 자립형 사립고가 존폐의 기로에 서는 것입니까? 조선일보야말로 합리적 정책의 "다리를 잡아끌"고, 교육의 공공성을 "내리눌러" "공멸의 불평등" 앞에 눈을 감는 작태를 저지르는 것 아닙니까?
조선일보는 '종교계가 교육에 둔 뜻을 짓밟아버린 사립학교법'이라는 사실에서 사학 비리의 대부분이 족벌경영과 재산싸움이며, 종교계 소속 사학은 해당되지 않음을 강조합니다(그렇다면 족벌경영과 재산싸움으로 얼룩진 사학은 왜 강조하지 않았을까요?).
조선일보가 착각하고 있는 지점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조선일보는 종교계가 세운 사학은 가족끼리 '사바사바'하는 사학과 다르다고 착각합니다. '가족'이 문제가 되는 까닭이 단순히 혈연관계로 맺어진 유착과 독점 때문일까요? 문제는 유착과 독점 그 자체입니다. 종교계는 여기서 자유로웠습니까?
지난해 종교 자유를 억압하는 학교에 맞선 학생이 징계를 감수하고 투쟁을 벌이고, 양심적인 목회자는 외로이 그 싸움을 지지했습니다. 그 학교는 종교단체가 세운 학교라서 문제가 없고, 맞서 싸운 학생과 목회자는 건학이념을 몰이해했던 것입니까?
둘째, 사립학교법의 개정은 사학의 부패척결을 위한 충분조건이 아니라 필요조건이었습니다. 거꾸로 말해 사립학교법의 개정안은 특정 사학은 물론 전체 사학을 겨냥하고 있지 않습니다. '부패의 조건'을 최대한 줄이려는 법안일 뿐, 사학을 거꾸러뜨릴 수 있는 무기가 아닙니다. 개방형이사의 비율도 '1/3'에서 '1/4'로 후퇴했습니다.
"전교조의 장악"요? 겨우 추천권이나 행사하는 전교조가 개방형이사를 추대할 수 있겠습니까? 가능하더라도 겨우 전체 이사의 1/4를 가지고 학교를 장악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분은 나머지 3/4의 상당 부분을 꾀어 장악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가능성의 문제입니다. 허나 그럴 가능성은 사학설립자의 입장이 3/4만큼 강하게 관철되고 결국에는 개방형이사마저도 사학설립자의 입맛에 맞는 인물들로 채워질 수 있는 가능성보다는 낮아 보이는군요.
만에 하나, 전교조의 학교장악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전교조가 해당 학교에서 큰 지지를 받아 절차적 정의에 따라 이뤄진 일일 겁니다. 저는 아직 불가능하다고 봅니다만, 조선일보의 전교조 찬양·고무는 끊이질 않는군요.
드디어 조선일보는 "학부모에 학교 선택권 되돌려주면 사학비리 해결"된다고 외칩니다. 평준화를 폐지 내지는 완화하라는 말씀이시군요. 평준화를 폐지하여 학교 간 서열이 생기는 것은 그렇다고 칩시다. 그렇다면 이 서열 구조에 놓인 학생들과 학부모들 가운데 "명문고라도 학교운영이 바람직하지 않으면 진학하지 않겠다"고 다짐할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영롱이도 웃고 스너피도 웃을 노릇입니다.
저는 이 따위 말장난으로 채워진 신문을 뿌려대는 조선일보의 명예회장님께서 연세대학교의 재단 이사장을 역임하시는 것을 반대해왔습니다. 연세대학교는 여러모로 부족한 구석이 있지만, 적어도 제국주의와 군부독재에 부역하고, 최소한의 개혁조치에도 반발하는 족벌신문의 우두머리가 재단이사장에 버젓이 앉아도 괜찮은 학교는 아닙니다.
저를 비롯한 몇몇 학생들은 2001년에 방우영 선생님의 퇴진을 외쳤습니다. 그 학생들은 운동권의 연합으로 모인 것이 아니라, 양심적인 개인으로서 자발적으로 연대하였습니다. 그해 여름 조선일보사와 동아일보사의 세금포탈이 적나라하게 들통 났고, 연세대와 고려대 학생들이 합동으로 방우영 선생님과 김병관 선생님이 각각 연세대와 고려대의 재단이사장직에서 물러나시라는 취지로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작년에 학내의 진보적 학생들이 일제부역행위가 있는 용재 백낙준 선생의 동상을 철거하자는 운동을 벌였습니다. 저는 그것이 완전한 실패로 돌아가리라 예상했지요. 탈정치를 내건 총학생회가 반대해서도, '철거'에 부담을 느끼고 멈칫한 여론 때문도 아닙니다. 얼마 뒤,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의 문제제기를 국학연구회가 받아들여 백낙준의 친일에 관한 심포지엄이 주최되었습니다만, 유감스럽게도 발제와 반대토론에 학내 교수들 중 아무도 참가하지 않습니다.
이사장님께서 버티고 계신 한, 이런 현실은 바뀌지 않겠지요. 그리고 어느 누구도 이사장님의 퇴진을 외치지 않습니다. 심지어 퇴진해야 한다는 사람들도, 저에게 함께하자고 약속했던 사람들도, 그럴 의지도 계획도 없는 듯합니다. 방우영 이사장님께서는 박정희나 전두환보다 더 운이 좋으신 분인 것 같습니다.
저 혼자라도 이야기하렵니다. 방우영 이사장님, 이제 그만 물러나십시오. 사립학교법의 개정에 극렬히 반대하고, 과거사청산의 대의를 매장하는 신문사의 사주가 '과거사'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립학교'의 재단이사장인 것은 분명히 불합리합니다. 더욱이 연세대학교가 무슨 방우영 이사장님의 사재를 대거 털어 만든 '자립형 사립고'도 아니지 않습니까. 이사장님이 그만두시더라도 연세대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조선일보가 혐오하는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고, 민주노동당이 원내에 진출한 까닭을 아십니까?(그들의 옳고 그름은 논외로 돌립시다.) 노무현은 사지에 몸을 연거푸 던지며 큰 승부에서 이겼고, 민주노동당은 맨땅에 헤딩을 하면서 어렵지만 꾸준히 컸습니다.
남의 특권을 해제하려면, 자기 것부터 걸어야 합니다. 방우영 이사장님이 조선일보의 경영권을 사원들에게 넘기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일보다 더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방우영 이사장님. 연세대학교 재단이사장직에서 물러나십시오. 물러나서 '빨갱이'들과 싸우십시오. 용퇴를 부탁드립니다.
방우영 재단이사장님께
종강을 맞이한 일개 학생 김수민 드림.
2005-12-22 17:15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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