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 논평 가운데 딴 건 그저 그랬고
가장 와닿았던 구절은 "자유로운 이는 아무도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2001년 11월부터 2002년 6월까지 기숙사자치회 부회장을 했었다.
러닝메이트를 해달라고 등떠미는 형들하고 함께 단선으로 나가 당선되었고
사실 그후 일도 제대로 못했다.
그래도 책임자는 책임자다.
부회장이 되기 전 처음 자치회원이 되어서 한 것이 MT다.
동강에 레프팅하러 떠났다.
물이 좀 더러워졌다는 설명을 들었는데
그게 다름아닌 레프팅 때문이었음은 나중에야 알았다.
MT 후 총무 형의 한마디는 이랬다.
"MT 비용을 아무도 모르게 하라."
100만원이 넘어갔다.
내가 부회장이 된 뒤 떠난 MT 장소는 스키장이었다.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일정도 2박 3일로 더 길었으니
비용은 아마 레프팅할 때보다 더 나왔을 거다.
기숙사 자치회 예산은 연간 1800만원 가량된다.
쓸 일이 별로 없었다.
돈이 크게 들어가는 행사는 체육대회와 오픈하우스 등 1년에 두 번이다.
그래서 이월금이 3, 400여만원이나 나왔다.
오히려 그래서인지 MT비가 많이 들어가는 데에
별 가책을 느끼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우리가 예산 내역을 공개하지 못했던 것은
원래 관행이기도 했겠지만
그러한 사실들을 밖에 알려서 좋을 게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을 테다.
떳떳하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자주 계열 학생회가 한총련 납부금 액수를 공개하지 않고
예산집행도 투명하지 못하다는 걸 매우 못마땅해 했다.
도둑이 제 발 저려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고소득 전문직부터 영세자영업자까지 소득신고를 거짓으로 하는 등
이 나라에는 삥땅과 가라가 만연해 있다.
그런 문화가 하수처리장격인 정치권까지 흘러간 것인데도,
공범도 아닌 주범들은 정치인들을 손가락질한다.
나는 권력형 비리사건에는 별 관심이 없는 편이다.
옷로비 사건 때도 그랬고 근래의 박연차 게이트도 그렇다.
가치판단에 앞서서 팩트의 규명이 중요하고,
사실이 밝혀지면 나 아니라도 욕할 사람이 쌨으니까.
그런데 한편으로는 비리로 잡혀가는 정치인들을 보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저 사람이 저럴려고 정치한 게 아닐 텐데,
어렸을 때는 맑고 원대한 이상이 있었을 텐데...
한 손으로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이 등 뒤에 감춘
더러운 다른 한손에 합세하는 게 찔렸다.
이제 나와 사람들이 자유로워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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