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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5.27 고백
  2. 2009.05.19 정재영
  3. 2009.05.17 촛불 잡생각 1
  4. 2009.05.16 황석영에게 권하는 책 1
  5. 2009.05.14 황석영에 대처하는 방법
  6. 2009.05.14 신방 겸영, 그것도 융합이라고...
  7. 2009.05.13 이건희를 이건희라 부르지 못하고 2
  8. 2009.05.12 FTA 딜레마 1
  9. 2009.05.12 "그땐 어려서 그랬다"는 말 4
  10. 2009.05.11 Become A Legend
  11. 2009.05.07 이렇게 된 이상
  12. 2009.05.02 불자로서 올리는 말씀
 

고백

Free Speech | 2009. 5. 27. 23:42 | Posted by 김수민

애도 논평 가운데 딴 건 그저 그랬고
가장 와닿았던 구절은 "자유로운 이는 아무도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2001년 11월부터 2002년 6월까지 기숙사자치회 부회장을 했었다.
러닝메이트를 해달라고 등떠미는 형들하고 함께 단선으로 나가 당선되었고
사실 그후 일도 제대로 못했다.
그래도 책임자는 책임자다.

부회장이 되기 전 처음 자치회원이 되어서 한 것이 MT다.
동강에 레프팅하러 떠났다.
물이 좀 더러워졌다는 설명을 들었는데
그게 다름아닌 레프팅 때문이었음은 나중에야 알았다.

MT 후 총무 형의 한마디는 이랬다.
"MT 비용을 아무도 모르게 하라."
100만원이 넘어갔다. 

내가 부회장이 된 뒤 떠난 MT 장소는 스키장이었다.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일정도 2박 3일로 더 길었으니
비용은 아마 레프팅할 때보다 더 나왔을 거다.

기숙사 자치회 예산은 연간 1800만원 가량된다.
쓸 일이 별로 없었다.
돈이 크게 들어가는 행사는 체육대회와 오픈하우스 등 1년에 두 번이다.
그래서 이월금이 3, 400여만원이나 나왔다.

오히려 그래서인지 MT비가 많이 들어가는 데에
별 가책을 느끼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우리가 예산 내역을 공개하지 못했던 것은
원래 관행이기도 했겠지만
그러한 사실들을 밖에 알려서 좋을 게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을 테다.  
떳떳하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자주 계열 학생회가 한총련 납부금 액수를 공개하지 않고
예산집행도 투명하지 못하다는 걸 매우 못마땅해 했다.
도둑이 제 발 저려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고소득 전문직부터 영세자영업자까지 소득신고를 거짓으로 하는 등
이 나라에는 삥땅과 가라가 만연해 있다.
그런 문화가 하수처리장격인 정치권까지 흘러간 것인데도,
공범도 아닌 주범들은 정치인들을 손가락질한다.

나는 권력형 비리사건에는 별 관심이 없는 편이다.
옷로비 사건 때도 그랬고 근래의 박연차 게이트도 그렇다.
가치판단에 앞서서 팩트의 규명이 중요하고,
사실이 밝혀지면 나 아니라도 욕할 사람이 쌨으니까.

그런데 한편으로는 비리로 잡혀가는 정치인들을 보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저 사람이 저럴려고 정치한 게 아닐 텐데,
어렸을 때는 맑고 원대한 이상이 있었을 텐데...

한 손으로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이 등 뒤에 감춘
더러운 다른 한손에 합세하는 게 찔렸다.

이제 나와 사람들이 자유로워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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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영

Film Tent & 2nd Stage | 2009. 5. 19. 14:13 | Posted by 김수민
대학 시절부터 동료였던 황정민과 곧잘 견주어지지만, 그는 황정민만큼 특별하지 않다. 그가 거대 흥행영화 <웰컴 투 동막골>의 주인공이었음조차 빨리 깨닫기 만만치 않다. 그는 평범하다. 며칠 전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나왔을 적에도 그는 그것만을 각인시키고 갔다.  그와 우리는 고만고만해진 인간들이 서로 잘났다 튀어보려는 세상에 살고 있다. 거기서부터 정재영은 비로소 특별해진다. 정재영이 나오는 영화의 초반부에는 늘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정재영 아니라도 저 역할은...' 그리고 극장을 나오면서 그 아닌 어느 누구도 대입시키지 못한다는 쪽으로 생각이 뒤집힌다. 그 캐릭터가 아무리 만만하고 평범하더라도, 아니 그러할수록 말이다. 그래서 나는 정재영을, BEST는 아니더라도 MY FAVORITE으로 꼽는다. 유오성이 잘 풀리지 않는 이유는, 자신의 '얼굴'에 어울리는 배역을 너무 찾아다녔기 때문이다. 김득구에 장길산까지. 정재영은 아직 그 함정에 빠지지 않았고, 유오성만큼 개성적인 자신의 얼굴에 다시 새로운 개성을 부여하는 데 성공혔다.  

설경구와 함께한 영화가 불꽃 튀는 제로섬 게임으로 간 반면(그나마 <공공의 적> 1-2는 잘 풀어나간 편이다), 이나영, 이영은, 정려원 같은 이들과 호흡을 맞춘 영화의 결과가 더 좋았던 것은 그의 평범한 개성 때문이 아닐까. 어울려 보이지 않는 카드 정준호와 호흡을 맞췄고 장진 패밀리의 연기자들이 두루 포진한 <거룩한 계보>는, 그야말로 정재영의 영화였다. 삭제된 장면이 조금만 영화에 들어갔더라면, 공장이 들어서면서 개펄의 조개가 다 죽는 바람에 깡패가 되었다는 법정 진술 씬이라도 들어갔으면, 더 좋은 영화가 될 수 있었을 텐데. 장진답지 않은 영화였다는 이유에서인지, 이 정재영의 영화는 <홀리데이>에 조금 못 미치는 흥행을 기록했다. 미처 회수하지 못한 것을 <바르게 살자>와 이번의 <김씨표류기>부터 정재영이 걷어나가길 바란다.

 

가서 전해야... 내 이름 근방에 조금이라도 관계된 새끼들 내가 다 만날 거라고... 가서 전해... 내 이름을 알고 내 이름을 불러본 적 있고 그 이름을 기억하는 모든 시벌놈들을 내가 다 만나러 간다고 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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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잡생각

Forum | 2009. 5. 17. 18:05 | Posted by 김수민

<그대는 왜 촛불을 끄셨나요>
필자 간 상호출자(?)의 원인을 생각해 보게 만든다.
예전 같으면 그냥 넘겼을 텐데,  
아마 거기에 촛불이 꺼지게 된 문화적 근원의 하나가 깃들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직감에. 
 
***

며칠 전 한겨레에 실린 촛불시위 관련한 논쟁 기사를 읽었다.
논쟁이 오고갔음을 그때 처음 제대로 알았다.
기자가 기사를 잘못 썼다는 느낌을, 혹은
잘못 쓴 것이기를 하는 바람을 가졌다.
그 기사가 맞다면 두 논객이 바보짓을 했단 이야기고,
결국 기사 후반부에 나오는 중앙대 교수가 다 정리해버린 거기 때문이다.
논쟁 당사자 두 분에 대해서도 잘 모르지만
예전 언뜻 보아왔던 그분들이 수준이 아무래도 그렇게 낮지는 않은 것 같았는데...
논쟁한 걸 찾아봐야 하나....

***

이것저것, 별로 궁금하지가 않다.
궁금하기 위해서는 먼저 풀어야 할 궁금증이 있는데
그 지점에서부터 벌써 포기를 했기 때문이다.

***

나는 왜 촛불을 껐을까.
사실 시작할 때부터 껐었다.
촛불을 손에 들고 있는 게 나한테는 의미가 없었기 때문에.
이건 말장난이 아니다.
일부 운동권이 그 시위를 횃불시위로 봤다면,
나한테는 그 시위가 촛불도 횃불도 아닌
들불의 첫 단계였기 때문이다.
(횃불과 촛불은 음주문화에서도 달랐다.
횃불은 초저녁에 '선포'를 끝내고 끼리끼리 모여 실내에서 마셨고
촛불은 광장에 남아서 술을 마셨다.
촛불은 그래도 상관없는데, 횃불 이 사람들은 좀 이상하지 않냐...)

질문을 바꿔보자. 왜 광장에 나가는 것을 그만두었을까.
며칠 결근한 사이 원천봉쇄가 시작됐다.
그러니 답은 쉽다. 다른 작전이 없어서.

다른 작전을 왜 못 만들었냐, 이건 나름 심오한 주제지만 답하기 쉽다.
내가 못나서. 이걸 타개할 만큼 잘난 사람도 없어서.

***

새 시대의 첫차가 아니라 구시대의 막차
였다는 것만 또 한번 곱씹을 수밖에.

***

결정적으로 나는 그때 나온 사람들이 누구인지 잘 모르겠다.
이명박측도 잘 모르니까, PD수첩에 낚인 사람, 김대중 노무현이 밀어넣은 사람이라고
추정했을 것이다.

그때 난
앞에 있거나 아니면
겉돌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눈과 귀도 믿기가 힘들다.

나중에,
다른 공간에서,
다른 양상의 일이 터지기 전까지
머리를 너무 굴리지 말아야겠다.

***

내가 당시에 가장 흥미롭게 지켜본 건 치열한 내분 양상이었다.
생긴 것은 물론 옷차림까지 비슷한 어떤 아저씨 둘이서
멱살을 잡고 싸운 적이 있었다.
뜯어말리면서 고생했는데 나중에는 말리는 내가 그 두 사람의
표적이 될 뻔했다.
그리고 간신히 각자 갈 길을 가기 시작했을 때
두 분 중 하나가 경찰이 던진 벽돌에 머리를 맞고 쓰러졌다.
그분 아니었으면 벽돌은 내 명치께로 날아왔을 것이다.
나머지 한 분은 뒤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도 모른체 앞으로 달려나갔고...
 
그야말로 아와 비아의 대결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었다.
온건하면 온건하다고 프락치
과격하면 과격하다고 프락치.

물론 살벌한 풍경이었지만 참 유치했다. 애들 싸움 같았다. 보드라운 아이들과 성깔 있는 아이들.

가장 보드라운 아이들은 극좌 운동단체인 '다함께'.
오히려 가장 헤비했던 쪽이, 그리고 애들 같지만은 않았던 쪽이 '안티이명박'이었다.
삭발식은 프랑스 좌익+일본 우익 정도의 포스였달까.

암튼, 다들 어디서 스트레스와 울화를 받고 오셔서
민란 에너지를 발산하셨을까.
이명박이 이딴 식으로 계속 봉쇄를 해대면
추후에 다시 확인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그리고 그때는 양상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게 내 예상이다.

정치 성향을 떠나서 그때 모인 사람들은
97~07년의 아이들이었던 것 같다.

이명박 치하에서 두해 세해 지나면
어떻게 달라질런지.
"마구 삐뚤어질 테다!" ??  

***

아무래도 서울 사람들만으로는 한계가 너무 뚜렷하다
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제일 크게 퍼진다.

*** 

구미역 앞에서도 100명 정도 모여서 집회를 했다. 
그중에 교복들은 모조리... 중하위권 학교(비평준화니깐)의 여학생들이었다.  

공부 잘해봐야 소용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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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에게 권하는 책

책이라곤 읽지 않는 | 2009. 5. 16. 11:47 | Posted by 김수민
그래, 어쩌면 황석영의 오늘은 장준하의 1972년 7월 4일과 10월 17일 사이와 대동소이할지도 모른다.
손학규를 지지했든 이명박을 감싸든 통일 때문일 수는 있단 느낌이 든다.
그 '통일'이 튀어보려는 그의 버라이어티쇼의 중심소재더라도 말이다. 

그러나 그의 중도, 그의 통일은 
가운데에서 하나를 내세워 흩어진 다원성을 억압하는
또하나의 극단 
또하나의 분단이데올로기일 뿐이다. 
 
통일과정의 지난함보다는
통일 이후를 먼저 깨우치는 것이
눈높이에 맞을 것 같다.

이응준의 <국가의 사생활>을 추천한다. 

새벽을 꼬박 바쳐 읽고 나니 이응준이 다시 보인다.


(...) 진짜 사회주의자는 말이야. 제 애비가 정주영이라고 해도 사회주의자인 놈이어야 해. 어디 있냐? 그런 놈이. 나한테 연락 좀 부탁한다고 그래라. 통일 이후에도 그래. 좌파들이 이북 노동자들한테 하는 소행들이 어떠냐? 방금 뉴스에서도 함경도 아저씨 하나 천국 갔잖아. 또 우파들이 누구냐? 통일 전에 그렇게 북한 인권을 들먹이던 사람들 아니냐. 그걸 걸고넘어지면서 식량 원조에 반대하던 양반들이 아니냐고. 뭐냐? 통일이 되고 나니까 이북 사람들 바로 왕따시켜 버렸잖냐. 통일 전에 우파들은 북한 사람들을 걱정했던 게 아니라 그들에게 공으로 퍼 주는 게 아까웠던 거야. 좌파들은 동포애를 주둥이로만 나발거렸을 뿐 막상 옆집에 이북 사람들이 살게 되니까 너무 좆같은 거고.
그럼 뭡니까?
뭐냐고?
네.
회사원인 거지. 양쪽 다 회사원. (...) 종교인들과 예술가들까지 전부 회사원이니 나머지 놈들은 말 다 했지.(...)

황석영씨, '중도파'는 회사원은 아닌가요?
CEO라도 된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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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에 대처하는 방법

Forum | 2009. 5. 14. 19:32 | Posted by 김수민

1) 연예인은 관심을 먹고 산다. 
2) 재미 없는 연예인에게 줄 것은 안티가 아니다.

한겨레, 경향, 프레시안, 오마이뉴스, 뷰스앤뉴스, 레디앙 등등 진보개혁 성향의 매체들은
앞으로 황석영씨가 뻘소리를 할 때 아예 보도를 하지 말길 바란다.

물론 자꾸 조중동 쪽에서만 대서특필하고 상대해줄 경우
인정욕구 때문에 그리로 기울어 뉴라이트행 편도선 기차를 끊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게 되는 것도 어쩌면 본색을 드러내는 거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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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방 겸영, 그것도 융합이라고...

전파낭비 | 2009. 5. 14. 08:47 | Posted by 김수민

본디 분야, 방면이라는 건 인간의 억지가 만들어낸 것이므로, 언제나 융합과 재편에 직면한다. 

네 가지 언어행위에 꼽히는 말하기, 듣기, 쓰기, 읽기는 교과과정 등에서 곧잘
'말하기+듣기'와 '읽기+쓰기'로 분류되곤 한다. 
그러나 어찌 보면 말하기+쓰기와 읽기+듣기가 더 자연스럽기도 하다. 
듣기+쓰기, 말하기+읽기, 말하기+쓰기도 있고 읽기+말하기도 결코 부자연스럽지 않다.  

산업+금융(은행), 신문+방송
이게 이명박시대의 융합 주제라고 한다.
산업과 금융, 딴 데다 묶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신문방송은 대학에서 신문방송학과 그러니까 그냥 묶어보자는 심산,일 리는 없다.
쉽게 생각해서
신문과 출판, 방송과 통신이 더 융합하기에 편하지 않을까?

신방겸영은, 실은 정언융합이다.  
활자매체를 통해 여론을 움직이기로 한 이들이 '장인정신'을 버리고
같은 언론분야라는 이유로 방송에 도전하겠다는 것.
한국의 신문권력이 본질적으로 언론권력이라기보다 정치권력에
더 가까워 발생하는 현상이다.

당장에 방송장악이 시원찮으니 케이블 종합편성권이 목표인가 보다.
종합편성된 케이블. 영화, 뉴스, 드라마, 예능 아마 다른 채널들에게 각개격파당할 확률이 높다.
YTN스타라는 채널 아는가? 명색이 뉴스채널의 동생이지만, 남자 출연자가 야한 여자 보고
육체 반응을 일으키면 뿅망치로 때리는 프로그램도 방영했다.
조선일보, 니네도 함 그래볼래?

조중동 케이블 진출, '망한다'에 꿀밤 석대와 알밤 다섯대 건다.
고로 이자들은 죽어라 지상파를 노릴 수밖에 없다.
:

이건희를 이건희라 부르지 못하고

Free Speech | 2009. 5. 13. 12:32 | Posted by 김수민

내가 국민학교 6학년 때 이사간 아파트에서 큰일이 났었다. MBC <오변호사 배변호사>의 현장중계차까지 왔다.
아파트 바로 뒷편의 폐수종말처리장 때문이었다. 악취가 나 여름에도 문을 닫아야 했고 소음도 만만치 않았다. 
그리하야 주민들은 투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어느 회사의 노조위원장이던 아저씨가 앞장섰고,
노조라면 혀를 차는 우리 아버지도, 그런 우리 아버지가 노조위원장이라고 잘못 소문을 낸 부녀회장 아줌마도,
다함께 머리띠를 맸다.
투쟁상대는 아파트를 지은 건설업체와 허가를 내준 시 당국 그리고 폐수종말처리장을 낀 회사였다.
주민들은 그 회사 정문까지 갔다가 덩치 좋은 경비 앞에서 등을 보이는가 하면,
공장을 향해 크고 작은 플랭들을 내걸기도 했다. 그중의 하나가 이거였다.

"근이야, 이러다 우리 다 죽겠데이!"

자체검열로 원안을 수정한 결과였다.
그 회사는 지금은 분립한, 당시 삼성계열의 회사였다.
그래도 한 공장의 일로 직접적 연관이 없는 재벌총수의 이름을 부를 생각을 다했다니.
집에서 공부하다 심심할 때면 창밖을 내다보면서 그 플랑의 문구를 구경하곤 했다. 
결국 그 회사는 조금 더 떨어진 곳으로 처리장을 옮겼다.

요즘, 읽고 있던 책 때문에 문득 떠오른 옛 기억이다.
1997년에 나왔는데, 나오자마자 절판됐다. 독서열이 매우 높은 어떤 회사에서 거의 다 사들였다는 전설이 있다.
<이씨춘추>.

3년 전 윤종훈 회계사 강연 때, 맨 뒷편에서 씨부렁거리던 중년 사내들을 보았다.
강연회 제목은 내 작품인데, <1987년 이후: 전두환시대에서 이건희시대로>였었나?
어쩌면 그 사내들과 같은 회사 사람들이 책을 사들였는지도 모르겠다.

별 두개 달고 정치판을 엎고 나서 세상을 호령하던 자들이 겨우겨우 물러나자
이제 밤 하늘에 별 세개만 트릿하게 떠 있다.
별들에게 물어본다.
근이야, 잘 지내니?
내가 그 아파트로 이사가던 날, 내게 손 흔들던 친구 이름 끝자가 '근'이다.

근이와 내가 살던 동네는 한 기업의 사원주택단지였다.
18평짜리 작은 집이었지만 단독주택과 아파트 사이사이에 나무와 꽃이 수두룩하고
운동장마저 훤히 있었던 그 동네는 나름 멋있었다.
바야흐로, 1990년대 초반은 '정규직 근로자'의 시대가 아니었던가.
학비 혜택은 물론이고 수많은 직원들에게 집까지 주다니.

그곳은 몽땅 허물어진 뒤 지금은 대형마트가 들어서 있고
내가 네잎클로버를 따던 자리도 없어졌다.

정규직 근로자의 시대는 재벌의 시대에 얹혀 있었다.
얼마 전 어떤 어린이용 잡지의 표지가 인터넷에 돌아다닌 적이 있었다. 작은 난리가 났다.
조또, 별로 충격받을 것도 없었다.
내가 국민학교 저학년일 때, 정주영과 김우중을 추앙하는 어린이용 저서들이 시중을 풍미하고 있었다니깐.

나는 국민학교 2학년 때인가 3학년 때에
버스 안에서 우연히 박정희 욕을 하는 대학생들을 봤다.

그리고 나는 국민학교 4학년 때인가에
대학생들이 뽑은 '존경하는 기업인 1위'에 올려진
<세상을 넓고 할 일은 많다>의 김우중도 아니고, 탱크주의 배순훈도 아닌
처음 듣는 이름 석자를 들었다.

돌아보면, 어느 틈엔가 한방 먹은 셈이다. 아니 잠깐 막간에 먹은 것도 아니고
늘 먹었던 듯하다.

김영삼은 전 노를 잡아쳐넣으면서 재벌 총수들을 검찰청에 불러냈다.
8년 후 대선자금 수사가 한창일 무렵, 노무현은 이건희 회장의 불구속을 바란다고 말했다. 
며칠 뒤에, 엑스파일 항소심이 있다고 한다.

TK논리, 박정희주의, 노조혐오 등등에 찌들었을 그 아파트 주민들도
'근이'까지는 갔는데.
이게 무슨 꼴이야. 별 꼴이다.
트리플 별 꼴이다.


추신:
방문자들께 질문 드립니다.
독일에 사는 어떤 예술가들(교포인지 유학생인지)이 'SAMSUNG'이라는 작품을 만든 적이 있습니다.
별 그림도 없이, 재즈 음악이 깔려 있고, 메시지만 왔다갔다하는 건데요.
문구는 알쏭달쏭합니다. 존댓말로 되어 있구요.
'뭐뭐뭐 프로젝트'라는 팀이었는데 기억이 나지 않아 홈페이지를 못 가고 있습니다.
혹시 아시는 분, 덧글 좀 달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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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 딜레마

Forum | 2009. 5. 12. 21:18 | Posted by 김수민
진보진영이 EU, 중국, 일본과의 FTA 반대에 적극적이지 않을 경우:
"미국과 하는 건 반대하고, 다른 나라하고 하는 건 반대하지 않는다. 역시 진보진영은 반미세력이다."

진보진영이 EU, 중국, 일본과의 FTA를 반대할 경우" 
"거봐라. 진보진영은 FTA는 무조건 반대하자고 한다. 진보진영은 21세기판 쇄국주의자들이다." 

그러나 방해물은 정교한 조준을 돕기도 한다. 
이 딜레마에는 틈새가 있고, 뾰족한 해답은 존재한다. 

FTA 자체에 대한 사유와 
좋은 개방과 나쁜 개방을 가리는 기준이 필요하다. 

2007년 허세욱 열사의 분신과 한미FTA 협정문 체결 이후 
도리어 FTA담론은 지지부진한 기색이다.
재야 세력은 대선이 다가오면서 한미FTA반대의 자리에 '10.4선언 이행'을 놓았다.
광우병사태를 거친 후에도 나아진 게 없다.
다시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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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어려서 그랬다"는 말

Free Speech | 2009. 5. 12. 09:29 | Posted by 김수민
3년전쯤이었나. 어떤 이와 술자리에서 언쟁이 붙은 적이 있었다. 말리는 다른 이는 내게 타일렀다. "후배인데, 좀 부족해도 봐줘야지요." 깍해야 두 살차이였고, 그가 새내기인 것도 아니었다. 청년세대의 힘이 약해진 건 88만원세대가 시작이 아니다. 386세대부터다. 88만원세대는 386의 충실한 직계 후배일 뿐이다. 혁명의 시대, 정확히는 혁명이념의 시대에서 386세대의 꼭대기에 앉은 이들은 극단으로 치달았다. 나머지 동조자나 방관자들도 마찬가지다. 민주화의 시대에 민주화를 외쳤고 세계화의 시대에 세계화에 편승했다. 그리고 그들의 적잖은 수는 지금, 한때의 객기나 여전한 순응주의를 반성하지 않고 '민주시민'을 자임한다. 어떤 열린우리당 의원은 자신을 항의방문한 대학생에게 이렇게 밝혔다고 한다. "나도, 아직 자민통이야!" 그러나, 그는 학생들이 미숙한 패기에 가득차 있다고 봤을 것이며 자신도 옛날엔 어려서 좀 과했었다 생각했을 것이다. 주사파나 스탈린주의자였던 놈들 중 일부 또는 상당수도 그렇다. 싸워서 세상을 바꾼다는 이념이, 싸워서 바꿔야 할 세상을 만들고 있었는데도, 태연자약하게 자신의 어렸음에 책임을 돌리나. 함부로 "죽여라"를 외치는 미취학기 아동과 별 차이가 없는 행위를 벌인 이들이 정녕 죽기 전에 철이 들지는 의문이다. 몇주전 나이가 마흔 넘은 어떤 분에게 "그때는 어려서 그랬다"는 말을 들었다. '그때'는 다름아닌 네 해전이었다. 그가 견해를 바꾼 까닭은 자신이 따르던 어떤 인물의 영향이었다. 앞으로 더 어려지실 터이니 아무 짓도 안하는 게 낫겠다. 나는 예전에 그랬듯 살면서 그따위 변명은 하지 않겠다. 내가 지금보다 어렸을 때 저지른 모든 잘못이나 실수는 나이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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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come A Legend

Free Speech | 2009. 5. 11. 13:22 | Posted by 김수민

Winning11 2009는 컴퓨터의 PES 2009로도 즐길 수 있다. 페스 2009에는, 위닝 2009에도 있겠지만 전에 없던 메뉴가 하나 추가되었다. ‘마스터 리그’로 팀을 운영해봤던 사람들이 한번쯤 상상하고 기대했을 수도 있는 선수 일개인적 관점에서의 운영이 가능한 메뉴, ‘Become a legend'이다. 내가 여기에 빠진지 거의 한달이 다 되었다. 그리고 오늘, 나는 패드를 잡을 생각이 전혀 없다. 점심 먹고 난 다음에 늘 하던 게임을 하지 않고 있다. 허탈감도 있다.

레전드를 처음 시작할 때는 정말 막막하기 그지없다. 선수의 이름, 국적. 외양 및 신체조건, 처음 출발할 리그까지 결정하면, 어느 팀에 배정된다. 그렇게 해서 ‘KIM SOO MIN'은 관중 하나 없는 연습경기장에서 열 일곱살 2군 선수로 출발했다.

더 막막한 것은 위닝 게임에 단련된 사람조차 적응하기 힘든 새로운 게임의 방법이다. 팀이 아니라 일개인을 조종하다 보니 위치선정에서부터 어려움을 겪어야 하고 처음에 겪는 시행착오가 만만치 않다. 또 선수의 초창기 능력은 찌질한 수준이라 위닝 좀 한다는 사람들도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2군경기에서 두각을 나타내면 후반전 교체선수로 주전투입이 된다. 여기서 또 성과를 내면 선발출장이 되고, 최악의 경우는 다시 2군으로 내려가며 능력치가 뛰어나지 않으면 팀을 옮긴 직후에도 2군생활을 해야 한다.

포지션은 공격형 미드필더로 정했다. 어느새 중하위권 팀의 주전선수으로 발탁됐고 조금 더 실력이 늘면서 팀을 옮기기 시작했다. 처음에 있던 곳은 스페인쪽 리그라 팀이나 동료선수 이름을 읽고 기억하기도 버겁다.

조금 풀리기 시작한 것은 파리 생제르망과 계약한 다음부터인데, 동료인 아드리아누가 패스를 죽어라 안해서 나폴리로 옮겨버린다. 패스 안하는 선수 타입도 입력이 되어 있는 걸까. 나폴리에 갔더니 이마뉴엘슨이란 놈이 신나게 혼자서 공을 몰고 다녀 짜증이 나던 찰나에, 드디어 팀에서 방출당하는 수모를 겪는다. 그래서 한동안 네덜란드쪽 리그를 전전하다 중간에는 모스크바팀에 들어가 벤치에 앉은 채 엉겹결에 첫 리그컵우승을 경험한다. 되살아난 시점은 다시 파리 생제르망으로 복귀할 때부터다. 거기서는 선발출전선수로서 리그컵 우승을 이룩한다. 이때부터 나의 레전드 중독은 더 심해졌고, 일요일이나 공휴일은 하루 종일 집안에서 게임을 했다.

머리, 오른발, 왼발 KIM SOO MIN의 퍼펙트 해트트릭 & 호날두에게 밀어준 어시스트. 이날 경기는 5대1


레전드에는 영국리그 팀이 없어서 현실의 프리미어리거들은 온갖 팀에 흩뿌려져 있다. 호날두와 루니, 긱스, 카를로스가 속한 팀이 보르도. 파리지앵 생활 청산하고 포도주나 마시자고 혼자 농담하면서 팀을 옮겼다. 어느새 드리블, 패스, 슈팅 능력은 엄청나게 향상되었고, KIM SOO MIN은 스트라이커보다 더 많은 골을 넣는 AMF가 되었다. 그리고 유럽챔피언컵 우승. MVP에 득점왕까지 되었다.

그리고 1주일이 지났다. 보르도는 몇번 더 유럽챔피언컵과 리그컵 우승을 달성했고 끝내 시즌 우승의 위업까지 이뤘다. KIM SOO MIN은 한국 국가대표로서 2018년 인터내셔널컵 16강, 2020년 아시아-오세아니아컵 우승을 거친 뒤, 드디어 어제, 게임 시점으로는 2022년 인터내셔널컵에서 서른살 나이로 우승컵과 MVP를 받았다. 한국팀으로는 게임이 어렵기 때문에 게임 난이도를 낮췄고 결승에서 잉글랜드를 꺾었다(레전드는 레귤러 등급으로 리그경기를 치르지만 국가대표 경기에서는 난이도 조절이 가능하다).

더이상 올라갈 데도 없고 해서 머리를 밀어버렸다.



이제 더이상 올라갈 데가 없다! 레전드에서는 은퇴선언을 할 수가 있는데 그동안 키워놓은 능력치와 실적이 아까워 아직은 보류하고 있지만, 나는 게임을 할 맛을 잃고 말았고 오늘 패드를 잡을 맛이 싹 사라진 것이다.

쉽고 빨리 달성될 수 없는 것들. 중독성은 더 강해졌고, 한편으로는 처음부터 다시 도전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어쨌든 한달동안 즐거웠고, 친구와 한판 붙는 것보다 열배로 재미났다.그만하면 됐다.

덧: 만일 도전하실 분들이 있다면 두 가지를 알려드리고 싶다. 그러지 않아도 눈치를 깔 수도 있지만 알아두면 초반에 헛수고하지 않을 수 있다. 일단 초창기에는 한 게임 시간을 5분으로 줄이고, 많은 게임들을 건너뛰어라(스킵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다). 그래도 능력치는 저절로 올라가니까. 열 일곱 나이에 일찍 성공하겠다는 야망은 버리는 것이 좋다. 시간 지나면 알아서 크고, 국가대표도 된다. 두번째, 나 아닌 선수의 동작 중에 슈팅은 게이머가 조작할 수 있다. 이걸 활용하면 팀의 득점도 많아지고, 자신의 어시스트 실적도 올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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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된 이상

Free Speech | 2009. 5. 7. 05:53 | Posted by 김수민

도대체 심판이 날려먹은 페널티킥감이 몇개냐? 3개? 4개?

교체되어 벤치에 앉아 있던 드록바는 심판에게 맹렬히 항의하다 경기 후 옐로우 카드를 받고  
급기야 카메라를 향해 퍼킹을 외치고 말았다.

한점승부보다는 추가골을 노리는 게 낫지 않을까 싶었는데 결국
첼시는 후반 인저리 타임에서 동점골을 허용함으로써 전반 9분경 넣은 선취골을 지키지 못했다.
(1-1을 만들면 FC바르셀로나가 결승에 진출하는 상황이다)
실점 후 마지막 코너킥 기회가 왔지만 심판은 또 핸드링을 모른체...
(나는 골키퍼 체흐가 한껀 터트리게 해달라 기도했다;;)

가장 관심있는 팀은 맨유지만, 가장 좋아하는 스트라이커는 드록바고
가장 좋아하는 감독은 히딩크고 가장 좋아하는 미드필더는 램파드인지라...
결승에서 맨유랑 첼시랑 붙으면 누구를 응원할까 고심을 많이 했다.
(그동안은 두 팀이 붙으면 딱히 응원을 하지 않았다.)

FC바르셀로나 가슴팍에 붙은 유니세프에겐 약간 미안하지만
(그리고 첼시 가슴팍에 붙은, 나중에 맨유 가슴팍에 붙을지도 모르는 마크는 재수없지만)
이렇게 된 이상

이번 유로챔스 결승전은 맹렬히 맨유 응원이다...

아 진짜 심판 나쁜넘..
FC바르셀로나 입장에서도 공정한 심판은 아니다.
엉뚱할 때 아비달을 퇴장시키질 않나...

오죽하면 두 팀 감독이 어깨동무를 하는 장면까지 나오고, 더없이 의미심장하게 비쳐졌겠나.

그나저나 바르샤 감독은 훈남이더라. 정장빨 지대. 요한 크루이프의 제자란다.

여하튼 히딩크 지못미ㅠ 동점골 허용할 때 울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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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로서 올리는 말씀

Free Speech | 2009. 5. 2. 14:45 | Posted by 김수민
유명한 일화지만 한번 더.

하루는 어느 절에서 중들이 땔감이 떨어져 추위에 떨고 있었다. 그러자 노스님 한 마디.
"밥팅아. 불상을 떼면 될 거 아니냐?"

모든 우상 숭배를 벗어나
성불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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