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기씨가 내 생년월일시를 알아갔다. 아는 선배의 사주 실습용으로 말이다. 몇시간 뒤 들뜬(?)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뭐 그럴 줄 알고 있었다. 예언가는 내 쪽이다. -_- 사주팔자를 볼 때 되풀이되는 경험이 있다. 그것은 나의 성격, 기질, 취미, 적성을 제대로 맞힌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못 믿을 이야기 뿐이다. 사주팔자에 따르면 나는 무지 훌륭하고 대운이 트인 사람이다. 아름드리 나무가 화려하게 타오르고 있다나? 하지만 몇년 지나서 보면 맞는 꼴을 못봤다. 일전에 타로점을 한번 봤는데 앞날을 보는 건 그게 더 정확했다. "열 개 중에 아홉 개를 이뤄도 나머지 한 개가 없다며 다 버리고 다른 길로 가버리는 성격입니다." "얼마 뒤 사귈 여자는 사람 참 정신 사납게 만들 겁니다." 등등.
평소에 '과학 과학'하는 소리를 가소롭게 여기는 편이다. 여기엔 사연이 있다. 출발점은 현대의학에 대한 나의 불신이다. 나는 가슴이나 갈비뼈께에 형언하기 힘든 증상이 있다. 책상 앞에 오래 앉아 있기 힘들고, 잠들 땐 팔로 갈비뼈를 눌러야 한다. 그런데 병원엘 아무리 가도 규명이 안 된다. 그래서 안 간지 꽤 오래됐다. 그러던 어느날 '묫자리'에 얽힌 설명을 들었다. 또 무슨 헛소리냐 싶어 귀부터 후볐지만 들어보니 그 증상이 시작된 시기부터 모조리 딱딱 들어맞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그동안 무슨 일을 하려고 해도 방해를 많이 받았을 거다." 심지어 내 동생의 증상까지 맞히질 않나. 그래서 믿을 수밖에 없었다.
며칠 뒤 귀신이 찾아왔다.-0- 어느날 밤, 내 자취방 현관문의 풍경소리가 울렸다. 문 잠궈놨는데.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계속 잤다. 누가 내 발을 들었다. 분명히 남이 들었다. 혼자 하려면 복근에 힘을 줘야 올라가는 자세였으니까. 손가락이 발바닥을 누르기 시작했다. 엄마가 마사지를.... 가만, 구미에 있는 엄마가 언제 서울로? 이 밤에? 그 순간 손톱이 내 발바닥을 찌르기 시작했고, 나는 베개를 던지며 최민식처럼 "누구냐 너"라고 외쳤다. 내 발께 밑에서 그는 고개를 숙이며 사라져갔다. 몇시간 뒤에 귀신 여섯 명이 한꺼번에 찾아왔다. 내 갈비뼈를 누르며 양쪽에 앉아 있었다. 찍소리 말고 가만히 있다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당신들 누구여? 무슨 한이 있는 거요? 말 좀 해보쇼. 좀 그만 괴롭히고." (이 얘길 들으니까 남들이 나더러 담이 참 크다고 한다. 귀신은 별로 무섭지 않다. 내가 무서워하는 건 따로 있다. UFO라고... 국민학교 새내기 때 과학책 읽고 한동안 밤외출을 못한 적이 있다.) 다음날 첫번째 귀신이 사라진 바닥을 보니 내가 옷을 개어놨더라. 귀신이 드나드는 구멍이 옷인감?
벌써 3년이 지났다. 방해, 그러니까 저주는 사주팔자보다 역시나 강했다. 갈비뼈의 증상은 그대로 남아 있다. 남은 평생동안 고칠 방도는 없을 것 같다. 그외에도 일들이 썩 잘 풀리지가 않았다. 그러나 3년동안 나는 많은 것을 얻었다. 대세에 불응했지만 운명에는 순응하기로 했다. 안되면, 그냥 안되는 거다. 어쩔 수 없지 뭐. 그래도 중간중간에 행복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이 결핍과 저 훼방에도 불구하고 나처럼 살아가고 있겠지. 승승장구, 파죽지세였다면 내 인생이 어떻게 망가졌을까 상상해 보기도 했다. 나는 스펙으로 남을 누르는 오만방자함 대신, 노숙을 하더라도 간직할 거만함을 얻었다. 사주를 봐주신 봉기씨의 선배님께는 죄송하지만, 나는 사주보다 저주를 믿기로 했다.
평소에 '과학 과학'하는 소리를 가소롭게 여기는 편이다. 여기엔 사연이 있다. 출발점은 현대의학에 대한 나의 불신이다. 나는 가슴이나 갈비뼈께에 형언하기 힘든 증상이 있다. 책상 앞에 오래 앉아 있기 힘들고, 잠들 땐 팔로 갈비뼈를 눌러야 한다. 그런데 병원엘 아무리 가도 규명이 안 된다. 그래서 안 간지 꽤 오래됐다. 그러던 어느날 '묫자리'에 얽힌 설명을 들었다. 또 무슨 헛소리냐 싶어 귀부터 후볐지만 들어보니 그 증상이 시작된 시기부터 모조리 딱딱 들어맞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그동안 무슨 일을 하려고 해도 방해를 많이 받았을 거다." 심지어 내 동생의 증상까지 맞히질 않나. 그래서 믿을 수밖에 없었다.
며칠 뒤 귀신이 찾아왔다.-0- 어느날 밤, 내 자취방 현관문의 풍경소리가 울렸다. 문 잠궈놨는데.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계속 잤다. 누가 내 발을 들었다. 분명히 남이 들었다. 혼자 하려면 복근에 힘을 줘야 올라가는 자세였으니까. 손가락이 발바닥을 누르기 시작했다. 엄마가 마사지를.... 가만, 구미에 있는 엄마가 언제 서울로? 이 밤에? 그 순간 손톱이 내 발바닥을 찌르기 시작했고, 나는 베개를 던지며 최민식처럼 "누구냐 너"라고 외쳤다. 내 발께 밑에서 그는 고개를 숙이며 사라져갔다. 몇시간 뒤에 귀신 여섯 명이 한꺼번에 찾아왔다. 내 갈비뼈를 누르며 양쪽에 앉아 있었다. 찍소리 말고 가만히 있다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당신들 누구여? 무슨 한이 있는 거요? 말 좀 해보쇼. 좀 그만 괴롭히고." (이 얘길 들으니까 남들이 나더러 담이 참 크다고 한다. 귀신은 별로 무섭지 않다. 내가 무서워하는 건 따로 있다. UFO라고... 국민학교 새내기 때 과학책 읽고 한동안 밤외출을 못한 적이 있다.) 다음날 첫번째 귀신이 사라진 바닥을 보니 내가 옷을 개어놨더라. 귀신이 드나드는 구멍이 옷인감?
벌써 3년이 지났다. 방해, 그러니까 저주는 사주팔자보다 역시나 강했다. 갈비뼈의 증상은 그대로 남아 있다. 남은 평생동안 고칠 방도는 없을 것 같다. 그외에도 일들이 썩 잘 풀리지가 않았다. 그러나 3년동안 나는 많은 것을 얻었다. 대세에 불응했지만 운명에는 순응하기로 했다. 안되면, 그냥 안되는 거다. 어쩔 수 없지 뭐. 그래도 중간중간에 행복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이 결핍과 저 훼방에도 불구하고 나처럼 살아가고 있겠지. 승승장구, 파죽지세였다면 내 인생이 어떻게 망가졌을까 상상해 보기도 했다. 나는 스펙으로 남을 누르는 오만방자함 대신, 노숙을 하더라도 간직할 거만함을 얻었다. 사주를 봐주신 봉기씨의 선배님께는 죄송하지만, 나는 사주보다 저주를 믿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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