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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Free Speech | 2009. 5. 27. 23:42 | Posted by 김수민

애도 논평 가운데 딴 건 그저 그랬고
가장 와닿았던 구절은 "자유로운 이는 아무도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2001년 11월부터 2002년 6월까지 기숙사자치회 부회장을 했었다.
러닝메이트를 해달라고 등떠미는 형들하고 함께 단선으로 나가 당선되었고
사실 그후 일도 제대로 못했다.
그래도 책임자는 책임자다.

부회장이 되기 전 처음 자치회원이 되어서 한 것이 MT다.
동강에 레프팅하러 떠났다.
물이 좀 더러워졌다는 설명을 들었는데
그게 다름아닌 레프팅 때문이었음은 나중에야 알았다.

MT 후 총무 형의 한마디는 이랬다.
"MT 비용을 아무도 모르게 하라."
100만원이 넘어갔다. 

내가 부회장이 된 뒤 떠난 MT 장소는 스키장이었다.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일정도 2박 3일로 더 길었으니
비용은 아마 레프팅할 때보다 더 나왔을 거다.

기숙사 자치회 예산은 연간 1800만원 가량된다.
쓸 일이 별로 없었다.
돈이 크게 들어가는 행사는 체육대회와 오픈하우스 등 1년에 두 번이다.
그래서 이월금이 3, 400여만원이나 나왔다.

오히려 그래서인지 MT비가 많이 들어가는 데에
별 가책을 느끼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우리가 예산 내역을 공개하지 못했던 것은
원래 관행이기도 했겠지만
그러한 사실들을 밖에 알려서 좋을 게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을 테다.  
떳떳하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자주 계열 학생회가 한총련 납부금 액수를 공개하지 않고
예산집행도 투명하지 못하다는 걸 매우 못마땅해 했다.
도둑이 제 발 저려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고소득 전문직부터 영세자영업자까지 소득신고를 거짓으로 하는 등
이 나라에는 삥땅과 가라가 만연해 있다.
그런 문화가 하수처리장격인 정치권까지 흘러간 것인데도,
공범도 아닌 주범들은 정치인들을 손가락질한다.

나는 권력형 비리사건에는 별 관심이 없는 편이다.
옷로비 사건 때도 그랬고 근래의 박연차 게이트도 그렇다.
가치판단에 앞서서 팩트의 규명이 중요하고,
사실이 밝혀지면 나 아니라도 욕할 사람이 쌨으니까.

그런데 한편으로는 비리로 잡혀가는 정치인들을 보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저 사람이 저럴려고 정치한 게 아닐 텐데,
어렸을 때는 맑고 원대한 이상이 있었을 텐데...

한 손으로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이 등 뒤에 감춘
더러운 다른 한손에 합세하는 게 찔렸다.

이제 나와 사람들이 자유로워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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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영

Film Tent & 2nd Stage | 2009. 5. 19. 14:13 | Posted by 김수민
대학 시절부터 동료였던 황정민과 곧잘 견주어지지만, 그는 황정민만큼 특별하지 않다. 그가 거대 흥행영화 <웰컴 투 동막골>의 주인공이었음조차 빨리 깨닫기 만만치 않다. 그는 평범하다. 며칠 전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나왔을 적에도 그는 그것만을 각인시키고 갔다.  그와 우리는 고만고만해진 인간들이 서로 잘났다 튀어보려는 세상에 살고 있다. 거기서부터 정재영은 비로소 특별해진다. 정재영이 나오는 영화의 초반부에는 늘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정재영 아니라도 저 역할은...' 그리고 극장을 나오면서 그 아닌 어느 누구도 대입시키지 못한다는 쪽으로 생각이 뒤집힌다. 그 캐릭터가 아무리 만만하고 평범하더라도, 아니 그러할수록 말이다. 그래서 나는 정재영을, BEST는 아니더라도 MY FAVORITE으로 꼽는다. 유오성이 잘 풀리지 않는 이유는, 자신의 '얼굴'에 어울리는 배역을 너무 찾아다녔기 때문이다. 김득구에 장길산까지. 정재영은 아직 그 함정에 빠지지 않았고, 유오성만큼 개성적인 자신의 얼굴에 다시 새로운 개성을 부여하는 데 성공혔다.  

설경구와 함께한 영화가 불꽃 튀는 제로섬 게임으로 간 반면(그나마 <공공의 적> 1-2는 잘 풀어나간 편이다), 이나영, 이영은, 정려원 같은 이들과 호흡을 맞춘 영화의 결과가 더 좋았던 것은 그의 평범한 개성 때문이 아닐까. 어울려 보이지 않는 카드 정준호와 호흡을 맞췄고 장진 패밀리의 연기자들이 두루 포진한 <거룩한 계보>는, 그야말로 정재영의 영화였다. 삭제된 장면이 조금만 영화에 들어갔더라면, 공장이 들어서면서 개펄의 조개가 다 죽는 바람에 깡패가 되었다는 법정 진술 씬이라도 들어갔으면, 더 좋은 영화가 될 수 있었을 텐데. 장진답지 않은 영화였다는 이유에서인지, 이 정재영의 영화는 <홀리데이>에 조금 못 미치는 흥행을 기록했다. 미처 회수하지 못한 것을 <바르게 살자>와 이번의 <김씨표류기>부터 정재영이 걷어나가길 바란다.

 

가서 전해야... 내 이름 근방에 조금이라도 관계된 새끼들 내가 다 만날 거라고... 가서 전해... 내 이름을 알고 내 이름을 불러본 적 있고 그 이름을 기억하는 모든 시벌놈들을 내가 다 만나러 간다고 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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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잡생각

Forum | 2009. 5. 17. 18:05 | Posted by 김수민

<그대는 왜 촛불을 끄셨나요>
필자 간 상호출자(?)의 원인을 생각해 보게 만든다.
예전 같으면 그냥 넘겼을 텐데,  
아마 거기에 촛불이 꺼지게 된 문화적 근원의 하나가 깃들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직감에. 
 
***

며칠 전 한겨레에 실린 촛불시위 관련한 논쟁 기사를 읽었다.
논쟁이 오고갔음을 그때 처음 제대로 알았다.
기자가 기사를 잘못 썼다는 느낌을, 혹은
잘못 쓴 것이기를 하는 바람을 가졌다.
그 기사가 맞다면 두 논객이 바보짓을 했단 이야기고,
결국 기사 후반부에 나오는 중앙대 교수가 다 정리해버린 거기 때문이다.
논쟁 당사자 두 분에 대해서도 잘 모르지만
예전 언뜻 보아왔던 그분들이 수준이 아무래도 그렇게 낮지는 않은 것 같았는데...
논쟁한 걸 찾아봐야 하나....

***

이것저것, 별로 궁금하지가 않다.
궁금하기 위해서는 먼저 풀어야 할 궁금증이 있는데
그 지점에서부터 벌써 포기를 했기 때문이다.

***

나는 왜 촛불을 껐을까.
사실 시작할 때부터 껐었다.
촛불을 손에 들고 있는 게 나한테는 의미가 없었기 때문에.
이건 말장난이 아니다.
일부 운동권이 그 시위를 횃불시위로 봤다면,
나한테는 그 시위가 촛불도 횃불도 아닌
들불의 첫 단계였기 때문이다.
(횃불과 촛불은 음주문화에서도 달랐다.
횃불은 초저녁에 '선포'를 끝내고 끼리끼리 모여 실내에서 마셨고
촛불은 광장에 남아서 술을 마셨다.
촛불은 그래도 상관없는데, 횃불 이 사람들은 좀 이상하지 않냐...)

질문을 바꿔보자. 왜 광장에 나가는 것을 그만두었을까.
며칠 결근한 사이 원천봉쇄가 시작됐다.
그러니 답은 쉽다. 다른 작전이 없어서.

다른 작전을 왜 못 만들었냐, 이건 나름 심오한 주제지만 답하기 쉽다.
내가 못나서. 이걸 타개할 만큼 잘난 사람도 없어서.

***

새 시대의 첫차가 아니라 구시대의 막차
였다는 것만 또 한번 곱씹을 수밖에.

***

결정적으로 나는 그때 나온 사람들이 누구인지 잘 모르겠다.
이명박측도 잘 모르니까, PD수첩에 낚인 사람, 김대중 노무현이 밀어넣은 사람이라고
추정했을 것이다.

그때 난
앞에 있거나 아니면
겉돌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눈과 귀도 믿기가 힘들다.

나중에,
다른 공간에서,
다른 양상의 일이 터지기 전까지
머리를 너무 굴리지 말아야겠다.

***

내가 당시에 가장 흥미롭게 지켜본 건 치열한 내분 양상이었다.
생긴 것은 물론 옷차림까지 비슷한 어떤 아저씨 둘이서
멱살을 잡고 싸운 적이 있었다.
뜯어말리면서 고생했는데 나중에는 말리는 내가 그 두 사람의
표적이 될 뻔했다.
그리고 간신히 각자 갈 길을 가기 시작했을 때
두 분 중 하나가 경찰이 던진 벽돌에 머리를 맞고 쓰러졌다.
그분 아니었으면 벽돌은 내 명치께로 날아왔을 것이다.
나머지 한 분은 뒤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도 모른체 앞으로 달려나갔고...
 
그야말로 아와 비아의 대결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었다.
온건하면 온건하다고 프락치
과격하면 과격하다고 프락치.

물론 살벌한 풍경이었지만 참 유치했다. 애들 싸움 같았다. 보드라운 아이들과 성깔 있는 아이들.

가장 보드라운 아이들은 극좌 운동단체인 '다함께'.
오히려 가장 헤비했던 쪽이, 그리고 애들 같지만은 않았던 쪽이 '안티이명박'이었다.
삭발식은 프랑스 좌익+일본 우익 정도의 포스였달까.

암튼, 다들 어디서 스트레스와 울화를 받고 오셔서
민란 에너지를 발산하셨을까.
이명박이 이딴 식으로 계속 봉쇄를 해대면
추후에 다시 확인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그리고 그때는 양상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게 내 예상이다.

정치 성향을 떠나서 그때 모인 사람들은
97~07년의 아이들이었던 것 같다.

이명박 치하에서 두해 세해 지나면
어떻게 달라질런지.
"마구 삐뚤어질 테다!" ??  

***

아무래도 서울 사람들만으로는 한계가 너무 뚜렷하다
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제일 크게 퍼진다.

*** 

구미역 앞에서도 100명 정도 모여서 집회를 했다. 
그중에 교복들은 모조리... 중하위권 학교(비평준화니깐)의 여학생들이었다.  

공부 잘해봐야 소용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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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에게 권하는 책

책이라곤 읽지 않는 | 2009. 5. 16. 11:47 | Posted by 김수민
그래, 어쩌면 황석영의 오늘은 장준하의 1972년 7월 4일과 10월 17일 사이와 대동소이할지도 모른다.
손학규를 지지했든 이명박을 감싸든 통일 때문일 수는 있단 느낌이 든다.
그 '통일'이 튀어보려는 그의 버라이어티쇼의 중심소재더라도 말이다. 

그러나 그의 중도, 그의 통일은 
가운데에서 하나를 내세워 흩어진 다원성을 억압하는
또하나의 극단 
또하나의 분단이데올로기일 뿐이다. 
 
통일과정의 지난함보다는
통일 이후를 먼저 깨우치는 것이
눈높이에 맞을 것 같다.

이응준의 <국가의 사생활>을 추천한다. 

새벽을 꼬박 바쳐 읽고 나니 이응준이 다시 보인다.


(...) 진짜 사회주의자는 말이야. 제 애비가 정주영이라고 해도 사회주의자인 놈이어야 해. 어디 있냐? 그런 놈이. 나한테 연락 좀 부탁한다고 그래라. 통일 이후에도 그래. 좌파들이 이북 노동자들한테 하는 소행들이 어떠냐? 방금 뉴스에서도 함경도 아저씨 하나 천국 갔잖아. 또 우파들이 누구냐? 통일 전에 그렇게 북한 인권을 들먹이던 사람들 아니냐. 그걸 걸고넘어지면서 식량 원조에 반대하던 양반들이 아니냐고. 뭐냐? 통일이 되고 나니까 이북 사람들 바로 왕따시켜 버렸잖냐. 통일 전에 우파들은 북한 사람들을 걱정했던 게 아니라 그들에게 공으로 퍼 주는 게 아까웠던 거야. 좌파들은 동포애를 주둥이로만 나발거렸을 뿐 막상 옆집에 이북 사람들이 살게 되니까 너무 좆같은 거고.
그럼 뭡니까?
뭐냐고?
네.
회사원인 거지. 양쪽 다 회사원. (...) 종교인들과 예술가들까지 전부 회사원이니 나머지 놈들은 말 다 했지.(...)

황석영씨, '중도파'는 회사원은 아닌가요?
CEO라도 된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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