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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백기를 꽂다

Free Speech | 2007. 10. 6. 16:55 | Posted by 김수민

2005년 7월부터 2007년 9월에 걸친 실험이 막을 내렸다. 그것은 어느 진보정당을 혁신하고 집권의 길에 올려놓는 것으로, 단기적으로는 내가 한때 지지했던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응징을 목적으로 삼고 있었다. 그러나 계획은 실패했고, 숱한 오류로 일그러진 노무현 정부가 남북정상회담을 통하여 도리어 마지막 활로를 찾고 있다.

2년의 세월동안 나는 많은 것을 잃었다. 모종의 창작활동(무슨 분야, 어떤 장르인지는 밝히지 않겠다)에 제동이 걸렸고, 앞으로 꺼내들 잠재력까지 바닥이 났다. 따로 술자리가 없어도 이틀에 담배 세갑을 소비하며, 가만히 돌아보면 집에서 혼자 자주 맥주를 들이킨다. 7년 전 또는 입대 직후의 체형으로 돌아가려 애쓰지만 여의치 않다. 연극과 공연을 체크할 적에는 지난번의 예매시점을 되짚으며 문득 시간이 빨리 간다고 느끼게 된다. 그나마 내키는대로 들락거리던 영화관도 요즘엔 발걸음이 좀 뜸하다. 한편, 음반을 사는 주기는 불규칙해졌다. 처절한 어학실력은 그대로이다. 공부하는 만큼 무식함을 깨닫고, 모색하면 할수록 전망은 어두워진다.

2007년 가을의 엎드림은 이미 예견되었던 것이다. 다만 이기고 홀홀 떠나는 것이 아니라 패하고 엎드리는 것이며, 이 엎드림은 '드림'(dream)을 '엎'는 것이라는 시시한 말장난으로도 풀어쓸 수 있다. 내 인생에도 승리와 성취의 순간이야 몇번 있었다. 그러나 그 순간은 이후의 불행과 화를 잉태하고는 했다. 어쩌면 나는 패하는 일이 더 익숙하고 또 다행인지도 모른다. 나도 에밀 시오랑Emile Cioran 같이 "언제라도 자살할 수 있다는 최후의 희망을 원기소로 삼"(고종석)*고 있는지도 모른다.

근 4년간 쓰던 미니홈피의 무게를 이곳 블로그로 한껏 옮겨 실을 요량으로, 이곳에 백기를 꽂는다. 깃발의 색이 흰 것은 순수나 청결 따위를 지향하기 때문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때가 잘 타는 색을 부러 고른 탓이다. (이재현의 표현을 빌려) 나는 대자본과 기업편의와 단일시장의 폭주를 반대하는 '좌빠'를 자처하며, 소란스럽고 지저분한 세상을 지향하는 '자빠'이다.** 오늘 꽂은 이 항복의 백기가 흑기로 변할 때까지 나는 버티고 싸우고 즐길 것이다. 그때란 바로 지금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백기를 흔들며 우드스탁의 신호탄을 쏜다. 피식~



* [오늘속으로<1077>(4월8일)] 시오랑http://news.hankooki.com/lpage/life/200404/h2004040716250425340.htm

** <나, 이재현은 ‘좌빠+자빠’다>
http://www.hani.co.kr/arti/BOOK/9152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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