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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시민교육에서 나타났던 두드러진 특성이 도제~마이스터 시스템에 깔린 과정이었다.
그 중간께에 있는 '직공'은 영어로 journeyman이다. 의미심장하다.
그때와 같을 순 없고 같아서도 안 되겠지만, 현재에도 곱씹을 만한 의미가 있다.
20대 중후반 젊은이들한테 특히 그렇다.
 
지금 세상 돌아가는 꼬락서니를 보아, 한 집단 내에서 시스템을 소화하기는 어렵단 생각이다.
그렇다면 답은 '이직'에 있는 셈이다.

나는 적어도 한가지는 합의가 이뤄졌으면 한다.
20대 중후반에 초봉을 따지는 것만큼 우스운 게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 말이다.
30대 초반도 예외는 아니다.
그 나이께에 돈 많이 버는 게 가능한 것도 아니고 바람직한 것도 아니다.

신해철의 장인이 완고하고 자수성가한, 그리고 꽤 나이가 많은 양반이었는데
결혼할 무렵 전세에 살던(지금도 그렇지만)
신해철을 두고 이렇게 잘라 말했단다. "그 나이에 돈 없는 게 당연하다."
당시 신해철은 30대 중반이었다.

20대 후반, 30대 초반엔 결혼문제가 걸려 있지만,
포인트는 집값을 낮추고 사회적으로 보육, 의료비용을 줄이는 데 있을 뿐,
절대 월급에 걸려 있는 게 아니다.
20대에 박봉을 받지 그럼 언제 받나? 20대에 화려하게 끗발 날리고 빨리 은퇴할 일 있나?
작은 노동시간도, 투 잡도 다 이를수록 좋다.

친구 하나가 올해 지방의 조선 회사에 취직을 했는데
매일 밤 10시에 업무가 끝난다. 주다스 프리스트 공연 때도
마음 먹고 상경하는 처지에, 금요일 밤에는 올라올 꿈도 꾸지 못하고
토요일에도 일하다가 부랴부랴 올라와서 일요일 새벽에 거주지역에 도착했다.
지방 국립대 출신인 이 친구 초봉이 3500이란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하긴 했으나,
본인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과연 평생직장으로 다닐 수 있을지 의문이다.
벌써 대기업에 입사했다가 때려치운 사람을 대체 몇이나 봤는지...

물론 이는 숙련시스템이라기보다 근무환경, 노동조건의 문제겠지만
여하간 20대 중후반에 월급 많이 받는 건 별 의미가 없다.
"돈 좀 벌다가... 대학원 가는 거? 나도 바로 그거 하려고 했지. 말처럼 안돼."
귓전에 울리는 지인의 말이다. 그는 두 군데의 대기업에서 근무하고 대학원 입학을 준비 중이다.

결국 20대 중후반, 길게는 30대 초반까지, 일에 어떻게 안착하느냐가 최대 목표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30대 중반에 맞이할 불안정이 염려되어 대학을 졸업할 시기부터
욕심을 내고 스펙에 집착하고야 마는 것이다.

서론이 너무 길었는데, 내가 제안하고픈 건
언론계와 출판계에 각각 하나씩이 있다.

일단 중앙언론사. 유무형의 나이 제한을 둬야 한다. 아님 수습직을 대거 줄이거나.
지방 언론이나 인터넷언론에서 몇년 구르다가 가는 게 정상이라고 본다.
초장부터 심한 경쟁률에 사람 집어넣어서 추첨하듯 뽑지 말고.

이건 우라사와 나오키의 <야와라!>를 읽다가 3류신문 소릴 듣는 스포츠일간지에서
좌충우돌하는 26살짜리 마츠다 기자를 보고 힌트를 얻은 것이다.
실제로도, 경향신문 모 기자의 경우 인터넷 언론 두 군데를 거친 바 있다.  

경남도민일보나 새전북신문 같은 걸 살리는 길이기도 하다.


출판계에서는 96년 이후 음반시장에 '인디 레이블'이 출현했던 것처럼
인디 출판사들이 좀 나와야할 성 싶다.
출판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통 몰라서 구체적인 제안은 못하겠지만,
젊은 필자가 소량 인쇄를 염두에 두고 나서 저술 작업을 두어차례 하고 깨지고 이루고 하지 않으면,
기성 출판사에서 한 번 믿고 새 필자에게 과감히 베팅하는 일도 벌어지기 힘들다.


암튼 기껏 졸개나 양산해 내서
그 졸개들 가운데 스펙 높은 사람 겨우 뽑아놓는
사회현황에 대한 탄식 속에서 이런 생각을 해봤다.


젊어서 까짓 거 월급 88만원 받으면 뭐 어떤가?

진짜 문제는 쫌생이세상이 이러한 생각을 못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돈 안 주면 잔디라도 깔아달라고 하고,
구장이 없으면 풋살경기장이나 하다 못해 족구 코트라도 직접 일구는 풍토가 되어야 한다.

월급명세서는 별 거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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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드스탁'에서 만난 찌질한 사람들

Free Speech | 2008. 10. 19. 14:31 | Posted by 김수민

어제도 신촌 우드스탁에 갔다. 근래 들어 1, 2주에 한번씩은 꼭 들르고 있다. 없어진 줄 알았던 '수석 종업원'(?) 형님도 요즘 계속 나오고... 이 양반을 예비군 훈련 때도 한 번 만난 적이 있지... 어제는 수년간 친하게 지냈던, 하지만 한 차례도 우드스탁엘 함께 가지 못했던 친구와 동행했다.

'우드스탁'을 모르시는 분들께 잠시 설명하자면, 그곳은 음악을 크게 튼다. 이를 두고 어제 동행한 친구는 "침묵의 공간"이라고 말했다. 음악의 볼륨이 많은 것을 제압해 버리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사람들이 입을 닥치고 앉아 있는 건 절대 아니다. 수학 문제를 풀거나 시를 쓰는 게 역설적으로 가능할 뿐. 우드스탁에는 한 그룹이 한 탁자를 차지하는 법이 없다. 섞이고 끼어서 그냥 앉는다. 음악이 크기 때문에 노래를 따라 부르거나 일어나 춤추는 데 안성맞춤이고, 처음 만난 이들끼리 스스럼 없이 이야기한다. 우드스탁의 테이블은 사실상 하나다.

어제도 자리를 거의 꽉 차 있었고 우리는 출입문과 가까운 어느 자리를 배정 받았다. 옆자리에 앉은 남자 둘은 마흔즈음에 이른 아저씨들이었는데, 그 옆에 앉은 여성 둘과 이야기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사실 이야기라기보다는.... 걍 추근덕거림이었다. 여자 두 분은 30대 초반으로 보였는데 멋진 사람들이었고, 솔직히 특히 그중 한 분은.... 암튼 간에... ;;;

그래 뭐 그 술집에서 옆에 앉게 되면 자연스레 이야기도 하고 그런 거신데... 이 아저씨들의 추근덕거림은 도가 지나쳤다. 하나는 뚱뚱하고 안경 쓴 걍 전형적 아저씨고, 다른 하나는 아저씨 티가 좀 덜 나나 어쩔 수 없는 아저씨.... 적당히 하면 될 텐데 도를 넘기 시작했다. 계속 같이 일어나서 춤을 추자고 하질 않나, 밖에 나가서 가볍게 한 잔하자고 하질 않나...

그 추근덕거림이라는 게 도무지 스스로 쪽팔린 줄을 모르는 지경이었다. 그 여자 분들이 마음이 좋고 열려 있어서 그 정도로 해뒀지, ㅉㅉ. 연이은 찝적거림 끝에 춤도 잠깐 대충이나마 같이 췄고, 좀 더 우드스탁에 있다가 집에 가겠다는 여자들도 아저씨들이랑 같이 우드스탁엘 나갔다.

그들이 비운 자리로 엉덩이를 끌어 당겨 옮겼는데 냅킨 몇장에 문장이 적혀 있었다. 나와 친구는 폭소를 터트렸다.

"You are very pretty."
"This meeting is never ending story."

푸하하, 이건 또 무슨 영어나. 걍 핸드폰에 "예뻐요"라고 찍어서 보여주지. 그 나이 먹고 무슨 추태여...
같이 있던 친구는 "그 사람들 어디까지 가려나"라고 했다. 하지만, 이런저런 추리 끝에 나는 "그 아저씨들, 있다가 여자 분들한테 따귀 안 맞으면 다행"이라고 호언장담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역시, 그 아자씨들은 얼마 뒤에 다시 우드스탁에 나타났다. 누가 봐도 작전실패였다. 또 어떤 여자 일행 곁으로 가서 앉더니, 뭔가 여의치 않거나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다시 밖으로 튀어 나갔다.

나이 먹고 하는 짓도 추하고, 기껏 거는 수작도 레벨이 낮긴 하지만, 진짜 짜증났던 건 '우드스탁'이라는 술집을, 무슨 만남의 광장이나 흥신소로 전락시켰다는 점이다.

꼬시고 싶으면 좀 진득하게 앉아 있어라!

사실 나도, 비슷한 일을 어떤 여자에게 당한 적이 있었다. 3년 전쯤이었나... 난 끝까지 버텼고, 그 사람이 취해서 엎드려 잘 때가 되어야 해방될 수 있었다.

난 우드스탁에서 "나가서 한 잔 하자"는 사람이 젤 싫다.

하여간 우리는 나이 먹고 저렇게 되지 말자고 굳은 결의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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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립금 펀드, 몇번이나 꼬여버린...

Forum | 2008. 10. 15. 14:05 | Posted by 김수민

연세대학교에서 '부자학교 펀드감시단'이 나타났다. 그동안 문제가 되었던 재단적립금이 불투명하게 펀드에 이용되고 있다는 문제의식의 발로인데, 실상 주요 구호는 '공개하라'다. 의도와 무관하게 이 운동은 '투명화 운동'의 성격을 가장 크게 띠고 있고, 그 이상은 바랄 수 없거나 혹은 자칫 더 악화될 여지가 크다. 사립대 펀드는 처음부터 끝까지 베베 꼬인 문제다.

'투명'과 '공개'를 요구하는 운동으로는 적립금 내역과 손익현황을 공개하는 수준 그 이상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펀드는 시류를 타고, 그래서 민주주의가 개입할 여지가 적다. 아직 가동도 되지 않았긴 하지만, 학교평의회가 출범하고 운영된다고 해서 해결할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펀드에서 이득을 보면 '감시단'이 벌인 서명운동에 동참한 5000여명의 다수조차 환영할 것이다. 학교의 재정이 확충되고 등록금이 덜 오르리라는 기대심리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대학사회의 수준을 감안해 보자. 펀드에서 손해를 보아도 그 액수가 크지 않으면, '펀드를 잘해야 한다'는 교훈이 '펀드를 그만두거나 더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제압하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학교는 펀드에 손대면 안 된다'는 의견도 힘이 없을 뿐더러 그리 적절하지가 않다. 나는 일전에 '학교는 기업과 다르다'를 강변하는 지인과 논쟁을 하면서, '사립학교는 자율적인 결정에 따라 일정하게 기업의 성격을 띨 수 있다. 그걸 누가 학교에 관한 일반론을 들이대며 말리랴'고 반박했다. 이는 교육공공성을 양보할 수 있다는 취지가 아니다. 교육공공성은 공(公)의 영역에 있거나 공(共)의 원리를 따르는 학교만이 담보한다. 교육에 기업운영의 원리를 대폭 도입하겠다는 학교에 감히 기대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 학교는 국가의 지원을 받아서는 안 된다. 까불다 시장의 차가운 비수를 맞아도 싸다.

가뜩이나 해방 이후 지속된 사립대학의 난립과 전횡으로 국공립대의 입지가 축소되고, 자발적으로 공공성을 지키는 민영대학이 솟아날 자리는 거의 없었던 판이다. 이제 더이상 통하지도 않는, 책상물림스러운 무력한 비판으로는 왜곡된 대학구조를 바로잡기 힘들다. 나는 사립대에게 준-국립 등급의 공공성과 책무를 부여하는 게, 한국 사립대의 태생적인 기만성과 시장주의적 오만함을 은폐하고, 공공성 있는 학교를 살리고 키울 기회를 앗아간다고 감히 확신한다.  "대학이 대학다워야지", "상아탑은 여전히 우골탑, 등골탑이서야..."하는 '따뜻한 시선'은 현재 잘난체하는 사립대들에게 결코 어울리지 않으니, 그것을 법인화의 위기에 직면한 국립대나 투명성과 민주성을 지키는 학교에 돌려야 한다. 

오해가 없길 바란다. 사립대라도 이해당사자 다수가 반대한다면 펀드는 하지 말아야 한다. 사립학교의 자율성에는 해당 학교 학생들의 의사도 반영되어 있어야 하니까. 그렇다면 '펀드 감시'가 아니라 '펀드 반대'를 해야 할 일이다. 그게 아니라면, 펀드로 폭싹 망해야 '아 쒸, 이젠 좀 하지 말자'는 소리가 겨우 나오기까지 기다려야 한다.

방법에는 크게 두 갈래가 있는 것 같다. 공공성, 민주성과는 거리가 먼 데다가 기껏 펀드질이나 해대는 사립대엔 지원을 하지 말자고 전사회적 운동을 벌이거나, 캠퍼스운동으로는 우리 등록금 가지고 펀드하지 말라고 좀 더 강력하게 주문하거나. 이외에는 허무한 결말 또는 예상치 못한 여론형성을 초래하는 길이 있을 뿐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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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생폼사 카스트

Free Speech | 2008. 10. 12. 18:49 | Posted by 김수민

같은 과 97학번 유 아무개 선배에게 내가 승계받은 이론틀이 있다.

카리스마
가오
후까시
뻥카


그 형과 나의 사상에 따르면 카리스마는 차원이 높은 데다가
굳이 쟁취할 필요가 없는 단계이다.
인도 카스트에서 브라만(주로 성직자)이 아니라도 크사트리샤면 힘이 있듯이
현대 민주사회에서 카리스마를 부릴 필요가 있나?

그래서 그 형과 나에게 궁극의 목표는 '가오'가 된다.

'가오'가 못 되면?

차라리 뻥카가 될지언정 후까시는 잡지 않겠다는 것이 나의 다짐이다.


(촛불집회 이야기를 하다가 내린 결론이다. 촛불집회는 가오층보다 후까시층이 더 두터워
그만큼의 한계를 노정할 수밖에 없었다. 뜬금 없이 뭔소리냐구요? 그런 게 있슴돠...ㅌㄷㅌ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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