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내 친구들 중에서 '활동'을 하다가 만난 사람의 수는 적다. 활동을 하다가 만났더라도 활동 때문에 친해진 것은 아니라고 봐야 한다. 친구가 되고 안 되고는 결국엔 사적인 요인으로 결판나는 것이다. 때문에 나를 아는 사람들의 다수는, 스쳐 지나가는 나, 또는 글 속의 나를 통해 나를 알게 되는 편이다.
1.
"잘 생긴 줄 알았는데..."라는 말을 꽤 듣는다.
안 생겼다는 말을 그렇게 돌려 말할 거 없다. 나도 샤워할 때는 거울 보니까 안다.
어쨌든 참으로 대단한 사람들이다.
그중에 일부는 나에게 "글을 잘 쓴다"라고 칭찬해주는 사람들인데,
그들에게 증명요구를 좀 해야겠다.
글쟁이 가운데 글을 잘 쓰면서 얼굴이 잘 생긴 사람이 있다면 사례를 좀 들어주시고,
외모와 글이 도대체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 원리를 간단하게라도 설명해 주셨으면 한다.
2.
글을 보니까 뭣도 없는 인간인데 하도 당당하니까
"뭘 믿고 저러나. 얼굴이라도 잘 생겼나?"라고 생각했을 경우도 있을 법하다.
그건,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런 사람은 글 못 쓰고 얼굴 못 생긴 놈은 움츠리고 다녀야 한다고 생각하는,
퍽이나 잘나신, 혹은 평생 열등의식을 벗지 못할 인간에 불과하겠지만 말이다.
그런 분들은 아예 나한테 말을 안 걸어주셨으면 좋겠다.
3.
그외에 '글을 봤을 땐 ~한 줄 알았는데, 실제로 보니까 아니다'의 레파토리는 여럿이다.
재밌는 건 그들끼리 의견이 정반대로 엇갈린다는 점.
"글을 읽었을 땐 체구가 작고 곱상할 줄 알았는데 만나 보니 그렇지 않다"
"글을 읽었을 땐 굉장히 거칠 줄 알았는데 만나 보니 그렇지 않다"
"글은 합리적인데 실제로 좀 거칠다"
"이렇게 만나니 참 점잖은데 글은 참..."
그분들에게 내가 드리고 싶은 말은
"당신들끼리 모여서 의견정리를 하시거나, 아니면 말을 좀 아끼세요."
4.
처음엔 일개인의 황당한 경험으로 치고 넘어가려고 했었지만,
최근엔 기실 사회풍토의 한 편린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이건 병이다. 판단중독증이다. 입시교육이 불어넣은 헛똑똑에다가
'의식화'니 뭐니 해서 마구 머리에 구겨 넣은 도식들이 유감 없이 발휘되는,
단적이고 극명한 사례의 하나라는 것이다.
저 자신들이 얼마나 과학적이라고 자부할지도 모르지만
글을 보고 사람의 성격은 물론이고 얼굴까지도 감히 그려내는 태도는 이미
점쟁이의 패러다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 점쟁이는, 엉터리, 돌팔이, 야매다.
5.
나에 대한 오해 중 상당수, 특히 위에서 예시한 것은 사실
친근감의 발로이기는 하다.
그러나 친해진다는 것은 친근감을 표한다는 것과 다르며,
나는 그런 식으로 남과 친해진 적이 없다.
상상력이 딸리고 추리력이 약하면 관찰의 인내쯤은 가져주었으면 한다.
그게 싫으면 말을 아끼고, 그것도 못하겠으면 아무 데서나 늘어놓지는 말았으면..
"친해지자는 취지에서 그런 건데 뭐 그리 예민하게..."
이런 건 평소에 전혀 예민하지 않은 나를 자극하려고 작정한 듯한 멘트이며
나는 그렇게 주절거리는 사람과는 절대로 친해질 생각 없다.
6.
얼마 전 여기에 '가오'와 '후카시'에 관한 짤막한 포스트를 올렸다.
사실 나는 두 가지 모두와 친하지 않다.
가오라는 건 잡는다고 해서 잡히는 게 아니다.
그러니 가오 잡다가 후카시 잡게 되고, 추해지는 거다.
나는 '절제'를 중시하긴 하지만 '여과'하고는 너무 거리가 멀다.
그게 살아가면서 약점이 될 때도 많겠지만 버릇을 고칠 순 없을 것이다.
나는 숨기지도 않고 드러내지도 않는다. 결과적으로는 몰라도 그런 시도들만큼은 경멸한다.
내가 쌈마이인 건 맞다. 그렇지만 아무 데서나, 언제나, 쌈마이 티를 내지는 않는다.
그러면서도 자연스레 나오는 걸 감추지는 않는다. 아니, 못 가린다는 게 더 정확하다.
그런데 나의 어떤 면모는 보고, 어떤 면모는 보지 못한 사람들은 나중에 가서 딴소리를 한다.
상상력이라는 건 글을 보고 감히 사람 얼굴을 짐작하는 따위로 발휘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내가 못 본 것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하는 것이다.
시위현장 젤 앞에서 내가 무슨 짓하는지 본 사람? 애기들, 꼬마들이랑 내가 노는 거 본 사람? 딸랑 두 가지지만 두가지 다 본 사람은 극히 드물다.
내가 욕하는 거 본 사람? 내가 우는 거 본 사람? 내가 대가리 흔드는 거 본 사람? 내가 동네할머니랑 이야기하는 거 본 사람? 병 깨서 난동 부리는 취객한테 내가 어떻게 하는지 본 사람? 사소한 일에 허둥지둥 어리버리 진땀흘리는 날 본 사람? 중학교 때 누가 누구한테 삥뜯은 돈 다시 삥뜯는 나를 본 사람? 군대에서 내가 완전 바보되어 고참들한테 얻어 맞는 걸 본 사람?
내가 쓴 '안내서' 성격의 글 읽은 사람? 노트북에 숨겨놓은 희한한 글 읽은 사람?
봐달라, 읽어달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노출증 환자, PR 바이러스 감염자가 아니라
그런 것들 일일이 보여줄 생각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다만
좀
제발 좀 가만히 있으라는 거다.
7.
다음 오해에는 좀 누그러진 어조로 답변을 해야겠다.
내가 굉장히 똑똑하고, 책을 엄청나게 읽으며, 학자를 하면 참 잘하겠다고 칭찬하는 사람들이 있다.
여기에 대해 내가 저어하면, 그게 겸양으로 읽히면서 칭찬이 더 커지는, 그런 골때리는 상황으로 가기도 한다.
한마디로 답하자면,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하"다.
일단 나는 영어 독해와 한자 해독에 심각한 장애를 겪고 있다.
그리고 현대사회에서 구축된 지식 및 학문체계와의 불일치에 시달리는 중이다.
기껏 착오와 고심 끝에 역사공부를 하게 됐지만, 정치학을 할 걸, 국문학을 할 걸,이라는
후회가 때때로 엄습한다. 그러나 내가 정치학이나 국문학을 전공으로 삼았더라도
역사학을 할 걸,이라고 생각했겠지.
그리고 나는 사람들이 예상하는 것보다 독서량이 적다.
오랫동안 자리에 앉아 있는 걸 싫어한다.
판단중독증을 향한 유별난 반감 덕분인지 '정리'를 하는 것도 싫어한다.
대학원을 가야겠다는 고민은 가끔 한다. 왜냐면 재주가 없어서.
허나 재주가 없다고 공부할 재주가 생기진 않는다.
내 학습력이라는 건 중3부터 고3에 이르는 기간동안 밑뿌리까지 소진되었다.
어떤 프로젝트가 생겼을 때나 학문적 접근을 하고 공부를 해대는 내 습관으로서는
공부를 절대 업으로 삼지 못한다.
나는 수능점수나 내신성적이 좋아서 대학 간 사람이 아니다.
방탕하게 막 살아도 중고교 성적이 좋은 사람들은 하던 가닥이 나오는 법인데,
나한텐 그게 없다는 것이다.
8.
나란 인간의 타입을 밝히기 위해, 불가피하게 집안내력을 들먹여야겠다.
참 비극적이고 희극적인 일이다.
내겐 친가와 외가 합쳐서, 다섯 분의 삼촌이 있다.
한 분은 공무원, 한 분은 자영업자, 세 분은 회사원이며,
그중 셋은 고졸이고 둘은 지방 사립대 출신이다.
이제서야 깨달은 거지만 이 분들은 대단한 언변을 가지고 있다.
재담가 스타일도 있고 논리적으로 따지는 걸 잘하는 경우도 있지만
공통적으로는 엄청난 통찰과 절묘한 수사가 있다.
그런데 이들은 다들 학문적 무장이나 이론의 칠갑하고는 무관하다.
어머니가 어릴 적 돌아가신 내 외할아버지의 경우도
사랑방을 들끓게 만드는 공력을 가지신 분이지만
평생 '문맹'이셨다고 한다.
내가 그 분들을 당해낼 재간은 없겠지만, 나에 대한 오해에 실려오는 평가보다는
그 분들의 계보를 잇고 있다는 편이 훨씬 정확할 것이다.
달리 말해, 나는 이론가도 아니고 학자 타입도 아니고
명석한 두뇌와 방대한 지식을 과시하는 글쟁이도 아니며(그렇게 될 수가 없으며)
잘 생기고 잘 나서 설치고 다니는 사람도 아니다.
아무리 앎이라는 게 중요하더라도 과학주의 따위는 언제라도 패배할 만큼
세상은 끝없이 열려 있고, 사람들은 각각의 방식으로 세상과 대화하고 검술대결을 펼칠 수 있다.
나는 주로 반지성주의와 싸우려 노력했지만
실은 그 이상으로 엘리트주의와 싸워 왔다. (반지성주의와 엘리트주의는 물론 함께 반대해야 할 대상이다)
신념이나 이론 때문이 아니라 체질과 성격상 그래 왔다.
학문과 논리와 과학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것을 표현하거나,
혹은 그 여백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는 것이 내 평생의 삶이어야 한다고
늘 다짐하고 있다.
'외할아버지의 사랑방'을 아무나에게,
공부 잘하고 학벌 좋다고 잘생겼다고,
내줄 수는 없는 것이다.
그게 어떻게 만들어진 건데 말이다.
9.
나는 내 사랑방을 만드는 것 뿐이다.
그러니 나더러
얼마나 잘났길래 저러고 다니냐고 말하지 말라.
억울하면, 억울해 하지 마라.
나에게 처음에는
"네가 알면 얼마나 안다고..."했다가
"네가 안다고, 이렇게 사람을 무시해도 되냐"고
찌짐 뒤집듯 행동하는 사람이 있었다.
나는 '못난 사람'은 좋아하지만
(못난 놈들은 얼굴만 봐도 서로 웃는다더라)
열등감 많은 사람을 혐오한다.
열등감은 대체로 우월감과 비례한다.
그자들이 서울대 가려고 문제지 파고 있을 때
나는 내 하고 싶은 대로(제대로 자유롭게 살지는 못했지만) 했을 뿐이다.
그자들이 비판적 지식인이 되겠다며 어디서 어줍잖은 책 읽고
먼저 산 사람들이나 선배들 한 말을 취사선택해서 권위를 확보할 때,
나는 좋지도 않은 머리와 맑지도 않는 눈으로
마음 비우고 어깨 힘 빼고 내가 못난 거 인정하고
자랑거리 없음을 자랑스러워하면서
이야기하고 관찰하고 '잘 모리겠네..'하고 돌아다녔을 뿐이다.
오죽 열등감이 많으면 내 가시범위 안에서 열폭을 할까.
그런 인간들, 이젠 스쳐 지나가고 싶지도 않다.
10.
좀 그만들 하시지.
'감'이 안 좋은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구.
글만 보고 사람 얼굴 짐작하며 조잘대는
그 뚫린 입.
맛난 음식이나 키스 같은 것들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하길
강추, 원츄함.
추신: 아직 사생활에 대한 억측은 안 나오는 것 같아서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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