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ent Post»

« 2025/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Archive»

Recent Comment»

Recent Trackback»


그의 군입대를 앞두고

Free Speech | 2008. 10. 7. 22:28 | Posted by 김수민

친우 하나가 다다음주에 군에 입대한다. 나보다 한살 위이니 참 늦된 입대다. 이번주 금요일 만나고, 가능하면 한번 더 만나기로 했다.

그는 '활동'을 하다 만난 사람이다. 1, 2학년 때는 지나가다 얼굴만 봤다. 아마 그가 내 이름을 먼저 알았을 것이다. (그에 대해 상세히 소개할 수 없지만) 그는 나와는 다른 '계열'의 활동가이다.  90년대 중반 학번이 득시글거리는 모임에서 01학번인 내가 편집장을 맡았던 시절이었지만,  그의 활동무대는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다. 나는 그의 선배만 알았지, 그와는 대화할 기회가 없었다.  이듬해 나는 군대에 갔고, 그동안 그는 학년이 올라가며 활동가로서 조금 더 부각될 수 있었다.

제대한 다음 나는 그가 있던 어느 집단에 들어갔다. 그와의 만남은 피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전역과 복학의 사이에 있던 어느 봄날, 나는 학교에서 주최된 토론회에서 패널로 나온 그를 보았다. 지금에야 하는 말이지만, 그날 나는 그의 토론에 몹시 실망했다. 레퍼토리가 다소 달랐던 탓도 있겠으나, 무엇보다 그는 너무 얌전해서 마음이 답답했다. 어쩌면 그곳에 있던 사람들 중 나만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토론회에 '구경'하러 온 듯한 양복쟁이 교수들이 허허거리며 악수하는 꼴을 목도하고 배알이 잔뜩 뒤틀렸던 참이었다. 그래서 그에게 시원스러운 공격을 기대했는데, 이내 포기했다.

그를 '조직'에서 본격적으로 만나기 시작하면서 나는 그가 힘겨운 위치에 있음을 절감했다. 내가 군대를 다녀온 사이에 대학은 많이 변해 있었다, 계층적으로나 이념적으로나. 학생사회운동의 위기 속에서 새로운 역사를 쓰던 90년대 중반 학번들은 거의 학교를 떠났다. 때는 '반운동권'이 총학생회를 맡고 있었고, 그들은 작지만 교활했다.

그런 와중에 2006년 봄부터 그와 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그를 별로 도울 수 없었다. 그 외에도 여러가지 기획과 실무에 시달리고 있었고, 학업에서도 한창 안간힘을 쓰던 시절이었다. 그는 오전의 '잦은 회의'를 제안했다. 별 말 없이 따랐던 나는 제대로 쫓아가지 못했다. 그무렵 나를 우라지게 괴롭히던 불면증 때문이었다. 이따금 그는 집까지 찾아와 문을 두드렸고 나를 잡아갔다. 참 미안했지만 몸도 마음도 여의치 않았던 나날이었다. 그는 또 가끔 저녁께에 집에 와서 한두시간 머물고 가기도 했다. 내 집(방)은 졸지에 '남학생 휴게실'로 전락하는 듯했다.

2006년 가을 계획들이 엉클어지면서 나는 그와 함께하는 조직의 사업에 열중하는 쪽을 택함으로써, 그와 마음을 더 터놓고 친해질 수 있었다. 그리고 그도 나도 무척이나 외로웠던 계절이었다. 나는 회의에 꼬박꼬박 나갔고 뒤풀이에서 그와 술잔을 기울였으며, 회의가 없던 날에도 곧잘 신촌 술집으로 함께 갔다. 그의 노선은 나와 크게 달랐지만 그와 나 둘 다 고민하는 주제와 해법들도 여럿 있었다. 물론, 솔직히 말해 내 속을 그에게 다 털어놓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아닌게 아니라 나는 그 조직 전체 차원에서 발생된 오류를 놓고 골치를 앓았다. 조직 탈퇴를 염두에 두고(그에게 그것까지 일러두지는 않았지만), 그에게 집행부 일을 하지 않겠다고 통고했다.

그러나 이미 우리는, 조직의 동료로서가 아니라 인간 대 인간으로 친해진 터였다. 나와 노선이 비슷한 사람들 상당수보다 사적으로 그는 내게 더 가까이 있었다. 최소한 그때만큼은 그랬다. 그 가을부터 이듬해 초입의 겨울까지 그와 함께 슬퍼했고 그와 함께 즐거워했다. 내가 울고 그가 따라 운 적도 있다. 그는 2007년 2월 졸업식을 하루 앞두고 나와 한잔한 뒤 내 집에서 잤다. 이튿날, 졸업식에 지각한 그의 일성: "나와 학교의 관계는 언제나 이러하였도다."

학교를 졸업한 후로는 그와 만나기가 열배로 힘들어졌다. 그가 졸업한지 1년쯤 지난 시점에 나는, 그가 남은 조직에서 탈퇴했다. 우리는 서로 너무 다르지만 운명처럼 같은 조직에서 만나, 서로 너무 통하지만 운명처럼 다른 조직으로 헤어졌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다른 데서 하고 다니지만 그에게 할 수 없었던 이야기가 적지 않다. 그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남에게 못하지만 그에게 하는 이야기도 내게는 있다. 그도 이를테면, 내가 한때 있었고 그가 지금도 있는 조직에서 주류를 차지한 사람들을 내 앞에서 비판한 적이 있다. 그와 나 사이의 벽은 다른 이와의 사이에도 있는 셈이다. 그래서 나는 그 벽에 신경쓰지 않는다.  

기억에 의하면 내가 가을을 타기 시작한 건 늦어도 여덟 살 무렵이었다. 무려 19년이 지나서야 나는 가을을 좀 덜 타게 되었는데, 그의 입대소식에 또다시, 2년 전처럼, 마음이 싱숭해진다. 이번엔 그가 '민간인 사회'를 탈퇴하게 된다. 겨울에 가서 조뺑이 치지 하필 가을에 가냐. 입대 직전 며칠 간의 회한과 허탈을, 그는 이겨내지 못할 것 같다. 다만 혼이 나가면서 군에 적응하면 그런 감정들을 곧 털어버릴 수 있을 게다. 이왕 다가온 것이라면 축복해줘야지. 마치 제대를 앞둔 '개말년'에게 말하듯 그에게 말해주고 싶다. "며칠 안 남았어. 조금만 버텨!" 

'Free Speech'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드스탁'에서 만난 찌질한 사람들  (0) 2008.10.19
폼생폼사 카스트  (0) 2008.10.12
블로그 수립 1주년  (0) 2008.10.04
강의석  (0) 2008.10.04
WINNING 11  (3) 2008.10.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