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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NING 11

Free Speech | 2008. 10. 1. 00:25 | Posted by 김수민

어맛, 씨발!('신연예인지옥' 정지혁 병장 목소리로) 조선시대정치사상에 관한 수업 발제가 다음주 화요일이라는 걸 오늘 알았다. 분량이 짧긴 하지만 to be frank with you하자면 추천 참고문헌을 이제야 읽기 시작했다. 최근 들어 보고서나 소논문을 일절 쓰지 않았던 탓에 두려움과 멀미가 밀려온다. 그럼에도 나는 필요한 책을 챙겨 목요일 오전에 집에 내려갈 예정이다. 그날 수업은 휴강이고 이튿날은 개천절인 덕이다. 나는 집에서 무엇을 하는가? 발제문을 쓰고 프리젠테이션 작업을 하겠지만, 며칠 전부터 잡은 계획의 중심은 위닝11(플레이스테이션 축구오락)이다.

나는 도박을 전혀 하지 않는다. 스포츠라고는, 동호회에 가입하거나 떼거지로 몰려다니는 친구가 없어, 조깅과 혼자하는 농구 뿐이다. 나한테 당구를 가르쳐줄 사람은 없고, 탁구장은 부근에 보이지 않는다. 볼링? 배우고 싶은데 역시 함께 칠 사람이 부재. 내게 가장 익숙한 종목은 배구지만 그걸 어디서 누구와 한담. 바둑은 머리 아프다. 스타 크래프트, 위니지 등 PC게임은 보기만 해도 어지럽다. 이렇다 보니 잡기라고는 술먹고 노래방가는 것밖에 없다. 나는 내 인생에 대해 돌연 위기의식을 느꼈다.

고향 집에는 꽤 근사한 엑스 박스 기계가 있다. 이걸 처음 구입하면서 같이 사들인 게임이 DOA와 위닝11이다.(언제나 그렇지만 울 집안에서 사는 넘은 동생이고 나중에 붙잡고 앉아 있는 건 나다. 이 기기와 게임도 마찬가지.) 처음엔 DOA에 잠시 열을 올렸으나 어렵지도 쉽지도 않았다. 위닝11은, 마음먹은대로 되지 않았다. 그나마도 서울 원룸으로 돌아오면 즐길 수 없었다. 그러다 지난 5월 고향에서 교생실습을 하며 사정이 바뀌기 시작했다. 물론 한달 내내 '아마추어' 등급을 맴돌았고 짜증이 받치는 시점에 게임기를 끄는 일상이 반복됐다. 그러나 역시 노력하면 안 되는 것이 없다! 게다가 나는 7월 말부터 방학 끝까지 마음껏 위닝11에 매달릴 수 있었다. 나의 오마니께서는 어려서 게임을 못한 걸 이제야 한다고 오히려 위로와 격려를 해주셨다. ㅋㅋㅋ

나에겐 세명의 라이벌이 있었다. 처음엔 동생이 제물이 됐다.  그 다음은 내 외사촌동생(16살). 그러나 거의 언제나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끝에 얄미운 승리를 쟁취하고선, 밖에 나가 담배를 피던 나를 가리켜 외삼촌에게 "수민이 형 뿔났다"고 일러두던 그도 희생자의 반열에 합류할 수밖에 없었다. 그 아이 집에도 축구게임이 있었지만, 나도 방학동안 열심히 했거덩~ 왼손 엄지 손가락이 얼얼할 정도로.

세번째 라이벌이 내 친구 조 아무개라는 친구인데, 2학기 개시와 함께 나의 도전을 받고 "왜 괜히 기분 잡칠 일 벌이냐"며 킬킬거리더니 바로 깨졌다. 이 친구와 나는 플레이 스타일이 매우 대조적이다. 이 친구는 볼 점유 시간이 길고 패스를 많이 돌리는 편이며 몸싸움이 잦다. 나는 기습공격이 잦고 슛도 그 친구보다 많이 쏘며 횡패스보다 종패스가 압도적으로 많다. 그는 페널티 에어리어에 들어오는 빈도는 잦으나 슛의 수나 성공률은 떨어지는 편이다. 반면 나는 수비가 약하다. 방향키 조절이 아직도 엉뚱하게 이뤄지는 것도 한몫했다.  

수비 실력은 하루 아침에 되는 게 아니라고 판단한 끝에 나는 공격기술을 몇개 더 연마했다. 유저들은 알겠지만 기능을 아는 거랑 손에 익는 거랑은 전혀 다르다. 나는 몇가지만 취사 선택해 집중 연습을 했다. 특히 코너킥, 프리킥에서의 세트 플레이와 일대일 상황에서의 대처를. 그리고 조금 뚫릴라 치면 바로 슈팅을 때렸다. 세골 먹으면 네골 넣는다, 슈팅 성공률이 10프로라도 이기면 그만이다,라는 그야말로 무식한 모토 하에서의 연습이었다. 작전은 성공했다. 조 아무개는 개학 후 첫 시합에 져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버스를 탔다. 그 다음에 그는 또 졌고, 술 먹다가 다시 플스방에 가자고 조른 끝에 또 깨졌다.  그 이후로도 몇판을 더 벌였지만 그가 계속 게임비를 물어야 했다. 9월 한달동안 그의 승률은 30프로가 되지 않은 데다가 서너골차로 지기까지 했다.

그러더니 이제는 실실 뺀다. 젠장, 너 말고 서울 거주자 중에 나랑 위닝할 사람이 없단 말이다! 발제 예정에도 불구, 집에 내려가야겠다는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다. 게임기하고 한판 붙어야겠다. 역시 게임기랑 붙어야 실력이 늘고, 특히 수비가 발전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등급은 '아마추어'에서 '레귤러'로 올라갔다. 그 등급 모드에서, 코트디부르아르를 골라 이탈리아를 운영하는 게임기를 이길 만큼은 되니, 남들은 얼마 만큼 하는지 도통 알 수 없지만, 크게 쪽팔리지 않을 실력은 된 것 같다. 프로페셔널등급으로 게임기와 강팀 대 강팀으로 붙으면 아직 와장창 깨지는 수준이지만.

내가 위닝11으로 친해진 사람은 다름이 아니라 드록바다. 자취방에 TV가 없어 드록바의 경기는 한번도 보지 못했지만, 위닝11을 통해서 그리되었다. 코트디부르아르나 첼시를 선택해서 경기를 하면, 안 시켜도 잘 구사하는 드록바의 발놀림과 최전방에서도 상대방 풀백을 상대로 수비를 벌이는 그의 플레이에 감탄하게 된다. 위닝11 커버모델은 C.호나우두지만, 천하무적으로 만들어진 건 드록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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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품

Free Speech | 2008. 9. 30. 01:44 | Posted by 김수민

기품 또는 품위 따위의 낱말들은 다분히 귀족적으로, 기껏해야 부르조아적으로 쓰이고 있다. 이들을 폐기할 작정이 아니라면 그 뜻빛깔을 새로이 칠해야 할 것이다. 나는 얼마 전 추석연휴를 앞두고 진정한 '기품'의 한 실체를 보았다.

추석 전날 시외버스정류장은 전쟁터였다. 올 총선 서대문 진보신당의 유세차량을 위해 방문한 청계천 세운상가에 버금갔다. 곧잘 버럭버럭하지만 그보다 더 많이 어리버리 허둥지둥거리는 나로서는 발을 디디자마자 힘들었던 곳이 세운상가다. 아마 함께 간 기사 아저씨가 없었다면 낭패를 당했을 것이다. 아저씨는 널럴한 양반이었지만 -그쵸, 백승덕 씨?- 그곳에서는 거기에 걸맞는 박력과 센스를 발휘했다.

추석 연휴 직전의 시외버스정류장에서도 한껏 목소리를 높이는 기사들 때문에 그에 못지 않은 전쟁이 벌어졌다. 입구 계단에서 담배를 필 때도 여러번 고성을 들었다. 떠들썩한 생기 한편으로 불쾌함이 피어오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들은 더했으리라. 지난 몇년간 학교 편으로 한가위귀향단을 통해 내려가던 나로서는 간만의 풍경이었다.

흡연실 앞 데스크에 앉아 있던 아저씨는 무수히 많은 귀성객들에게 질문을 받고 안내를 했다. "허허 거 참, 내가 안내데스크처럼 보여요?" 아저씨의 질문에 아가씨는 그렇다고 답했다. "친절해 보이시니까." 아저씨는 약간은 의도적으로 흐뭇한 제스춰를 취한다. 아가씨의 친구가 오자 "어허, 데이트 하고 있었는데"라며 껄껄 웃는 아저씨는, "연휴 잘 보내세요"라는 인사에 "나 연휴 내내 일해요, 허허"라고 답한다. 아가씨들은 조금 미안한 기색이지만, 나는 그 순간 범접할 수 없는 '여유'를 그 아저씨로부터 느꼈다. 그는 맡지도 않은 임무를 귀찮아하지 않을 만한 위인이었다.

차에 오르기 전 천원짜리 팝콘 한봉지를 사러 갔다. 손님이 많지 않은 그 지점은 흡사 태풍의 눈이었다. 조용하지만, 이리저리 바삐 오가는 사람들 틈에 낀. 아주머니는 덤덤하게 팝콘을 요리했고, 손님이 하나 뿐이지만 마치 10초 안에 버스에 타야 할 사람에게 재촉받은 듯 재빠르게 포장을 마쳤다. 지나가던 누군가 그에게 짧은 말을 걸었고, 그는 응답하며 미소를 지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어떠한 귀부인보다 고상하면서, 어떠한 가식도 배지 않은 웃음. 거기에 조금 깃든 피로까지. 기품이었다.

나는 노동계급적인 기품을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저 기품일 뿐이다. 비천하고 당당한 이들의 기품. 삶을 부둥켜 안은 그 누구라도 매혹당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러나 그 누구도 제압하지 않는, 그런 '보편적 기품'이라고 해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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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컬열전 (2) 로니 제임스 디오

Listen to the 무직 | 2008. 9. 26. 16:38 | Posted by 김수민

신해철이 SBS로 돌아온 다음에 그의 방송을 들은 건 이번주가 처음이었다. 어제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로니 제임스 디오 특집을 했다. 선곡은 'Rainbow'의 <Temple of the king>, <Kill the king>, <Rainbow eyes>, 'Black Sabath'의 <Heaven and hell>, <Paranoid>, 'Dio'의 <Holy diver>, <We rock>. 다 아는 노래들이었고, 신해철의 설명도 다 아는 바였다. 적어도 그만큼은 내가 디오에 심취해 살았다는 뜻이다.

'크래쉬'의 안흥찬은 1997년도 <Rock It>과의 인터뷰에서 요즘 애들이 너바나는 알지만 디오 같은 건 전혀 모른다고 푸념했다. 그때 디오의 이름을 처음 들었다. 당시는 P2P도 스트리밍 서비스도 없던 시점이었고, 구미 시내에서 테이프가 가장 많은 가게는 우리 집과 승용차로 20분 거리에 있었다. 나는 이듬해 구미 시내 근처의 고교로 진학해서야 디오의 테잎을 살 수 있었다. 디오는 'Elf'라는 그룹에서 무명생활을 했고, 'Rainbow'에서 스타덤에 올랐으며, 'Black Sabath'의 구원투수로 등판했다가, 제 이름을 딴 'Dio'라는 밴드를 결성했다. 내가 처음 구입했던 건 Rainbow의 베스트 앨범이었고 그 다음이 Dio의 베스트 앨범이었다.

디오는 어려서부터 클래식 음악 교육을 받았다. 그가 성악으로 길을 틀었다면 혹 파바로티나 플라시도 도밍고 같은 인물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고 나는 감히 상상한다. 그러나 파바로티가 록 보컬이 되었다면 로니 제임스 디오만큼 되기는 불가능했을 것이다,라고 또 나는 감히 장담한다. 디오는 역대 최강의 헤비메틀 보컬리스트 가운데 한명이다. 그 최강의 인간들을 하나씩 하나씩 탈락시키더라도 로니 제임스 디오는 최후에 남을 공산이 높다.

무엇보다 그는 가장 완벽한 발성을 자랑한다. 디오는 흔히 롭 핼포드와 함께 양대산맥으로 소개되는데, 핼포드와는 판이한 발성을 가지고 있다. 제일 크게 도드라지는 부분이 바로 흉성이다. 악을 썼을 때 머리가 울린다고 두성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되듯, 낮고 굵은 소리를 낼 때 가슴이 울린다고 흉성은 아니다. 흉성은 혀를 이용한다. '이'발음에서 명확히 드러나며, 흉식 바이브레이션과 어우러지기도 한다. 금세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나는 주저하지 않고 디오의 노래를 들어보라고 권한다. 흉성은 중음역에서 가장 큰 위력을 발휘하며 디오의 노래도 이 법칙을 따르고 있다. 물론 디오의 흉성에는 허스키까지 곁들여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성량과 파워를 과시한다.

고음 샤우팅에 귀가 길들여진 이들은 디오의 노래를 쉽게 보기 마련이다. 하지만 따라 부르다 보면 어느새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음을 맞추는 대신 발성을 싱겁게 하거나, 발성을 카피하면서 힘겹게 부르거나. 디오의 보컬이 지닌 최대 약점은 고음에서 중음에서만큼의 파워가 유지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점에서는 흉성을 쓰지 않는 롭 핼포드보다 디오가 뒤떨어진다. 인체의 특성상 굵직한 흉성은 높은 소리에서 유지되기 어렵기 때문에, 흉성을 구사하는 보컬리스트 대부분이 이런 난점에 시달린다. 그나마 디오는 저-중-고음역에 두루 노련한 보컬이고 덕분에 역대 최정상의 위치에 선 것이다. 보통의 사람은 흉성을 구사하면서 음을 이동하는 데조차 불편함을 느낀다. 노래방에는 디오가 부른 노래가 몇곡 있지만, 거의 모두가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고, 버텨낸 이들조차 초라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방송에서 김경호나 박완규 등이 곧잘 영미의 메틀 명곡을 부르지만, 언제 디오의 노래를 부르던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못 봤다. 아, 어디선가 누가 디오가 레인보우 시절에 부른 <Man on the silver mountain>을 부르는 걸 들은 것 같기는 하다. 흉성이 거의 없어진 채로 말이다.

디오 말고 흉성에 능한 보컬리스트로는 데이빗 커버데일과 그레험 보넷이 있다. 데이빗 커버데일은 블루스와 소울에 기반한 음색과 어프로치로 유명하다. 디오와 차별화되는 부분이다. 게다가 그는 디오와는 달리, 외모가 받쳐준다. 레인보우의 후임 보컬인 그레험 보넷은 디오보다 더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레인보우 탈퇴 이후 '임펠리테리'에서 선보인 그 막강한 성대! 그렇지만 이 둘은 결정적으로 라이브에서의 안정성이 디오에 비해 떨어진다. 더욱이 디오는 스티븐 타일러(에어로스미스)처럼 특이한 음계를 가지지 않았다. 딱딱 음이 정확히 맞아 떨어진다.

디오의 외양은 여러모로 카리스마를 내뿜기에 적절치 않다. 그의 홈페이지 디오넷은 키는 '프라이버시'라며 밝히지 않고 있으며, 덕분에 그의 신장이 150대인지 160대인지는 아직도 안개에 휩싸여 있다. 키에 비해 머리는 큰 느낌이고 머리칼에는 윤기가 없다. 허나 그는 이 모든 걸 극복해 내고 중세풍 헤비메틀의 대표 주자로 올랐다. 그 첫번째 비결은 '모션'이다. 그 어려운 노래를 무대 위에서 힘들이지 않고 소화하면서도 그는 전 세계의 레크레이션 강사들을 뺨치는 모션을 구사한다.

그가 보컬리스트일 뿐만 아니라 키보디스트이고, 완성도 높은 뮤지션이라는 점도 결코 간과할 수 없다. 여기에는 비단 음악적인 요소 뿐만이 아니라 문학적인 배경도 있다. 그가 내뿜는 중세풍의 아우라는 얄팍한 의상이나 소품을 활용한 결과가 아니다. 그는 중세문학에 정통해 있고 이는 그의 가사쓰기에 오롯이 다 반영된다. 심지어 그는 흑마술에도 일가견이 있다. 이런 그가 'king of rock'n roll'의 자리에 오르지 못했다면, 이 세상은 스스로 '기회의 평등'이 얼어 죽었음을 선언하는 꼴이었을 테다.

레인보우나 블랙 새버스에서 음악적 주도권은 기타리스트였던 리치 블랙모어, 토니 아이오미 등에게 쥐어져 있었기에 단순한 보컬리스트가 아니었던 디오는 결국 'DIO'를 결성했다. 나는 이 시절의 디오를 가장 좋아하고 높이 평가하는 편이다. 그는 기타리스트에게 발탁되는 훌륭한 보컬리스트에서, 훌륭한 기타리스트를 픽업하는 밴드 마스터로 거듭났다. 이 와중에 탄생된 디오-비비안 캠벨 조는 아더왕-렌슬롯에 비유되던 데이빗 커버데일-존 사이크스(화이트 스네이크) 조와 함께 헤비메틀 불멸의 보컬-기타 콤비로 꼽힌다. 비비안 캠벨 이후에도 'DIO'는 뛰어난 기타리스트들의 등용문이었고, 나는 개인적으로 <Wild One>에서 17세 기타리스트가 디오와 함께 튀긴 불꽃을, 디오의 베스트로 지목한다.

디오처럼 되고 싶어? 그렇다 한들 누구한테 "연락해"야 할까. 장르를 바꾸거나 자신만의 개성을 살리거나. 그래도 디오처럼 되고 싶다면, 다시 태어나라! 스래쉬메틀도 LA메틀/팝메틀도 아닌, 중앙파(?) 헤비메틀(예: 디오를 비롯, 주다스 프리스트, 아이언 메이든)은 옛날에 한물 갔으며, 디오의 전성기도 끝난지 오래. 하지만 분명 나는 디오와 동시대에 살고 있으며 이것은 우주의 흑마술이 빚어낸 창대한 우연이다. 근래 한 1년반은 헤비메틀을 한낮에만 들었다. 어제 나는 신해철의 방송을 들으며 간만에 듣는 깊은밤의 헤비메틀에 들뜨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침대에 누워 담담히 듣던 나는, 그러나 블랙 새버스의 <Heaven and hell>을 들으면서 무너졌다. 그것은 소년 시절 밤을 설치게 만들던 헤비메틀이었고, 더구나 그는 로니 제임스 디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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롭 핼포드는 21일 공연한 '주다스 프리스트'의 보컬리스트다. 메틀 보컬의 산 역사이며, 앞으로도 그를 능가할 보컬리스트는 물론, 그에 필적할 보컬리스트도 거의 나오지 않을 것이다.

한국 락역사에서 가장 성공한 솔로이스트로는 김종서과 김경호가 꼽힐 것이다. 그들을 통해 대중화된 락을 받아들인 이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들의 보컬 스타일, 즉 하늘을 찌르는 하이톤 보컬이 곧 '대세'가 되었다.

그러나 고음이 돋보이는 보컬들 간에도 커다란 차이가 있다. 다들 두성을 쓴다는 점에서는 비슷비슷하지만, 김경호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을 '스트라이퍼'의 보컬 등은 기본적으로 미성에 바탕하고 있다. 국내 청중들이 락 발라드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스틸 하트나 스콜피온스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미성이라 함은 단순히 맑은 목소리를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청성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낫겠다. 변성기 이후에도 높고 깨끗한 목소리를 유지하였으며 마치 여성처럼 자연스럽게 고음을 내는 이를 미성의 소유자라고 할 만하다. 일례로 스트라이퍼의 <I believe in you> 같은 노래는 여성과 흡사한 목소리를 들려준다.

일본이나 한국 등지에서 특히 높은 인기를 구가하는 '멜로디컬 메틀'의 보컬리스트들 다수는 '반가성'이 돋보인다. 하이틴 아마추어 메틀밴드들이 즐겨 커버하는 헬로윈이 가장 좋은 사례일 것이다. 그 밴드의 보컬리스트는 실력이 되고 연습을 많이 해서 헬로윈의 노래를 커버하는 것인가.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반가성은 미성이나 두성에 비해 선천성이나 각고의 노력과는 거리가 있다. 밴드 보컬은 아니더라도 노래방에서 고음부를 좀 소화하는 이들은 대부분 반가성을 사용할 줄 안다. 단 반가성에 의존하는 보컬들은 중저음과의 연결고리가 자연스럽지 않다. 그러다 보니 고음 일색이거나 <A tale that wasn't right>처럼 초반부는 저음이고 후렴구에서는 막바로 고음을 내게 된다. 반가성은 또 컨디션에 크게 좌우받는다. 헬로윈이나 예레미의 보컬이 이따금 반가성이라기보다는 '거의 가성'에 가까운 발성을 하는 요인도 거기에 있지 않나 싶다.

물론 반가성이나 미성이나 두성을 한가지만 쓰는 경우는 별로 없다. 어차피 인간의 한계가 있거니와 각자의 발성이 가지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미성은 파워가 약하고, 두성도 일정 음역에 다다르면 반가성으로 변환되게 된다. 이 세가지에 허스키(그냥 거친 소리가 아니라 목에 힘을 줘 긁어서 내는 소리를 뜻한다)를 꽤 많이 섞는 보컬이 바로, 핸섬 그 자체의 얼굴, 큰 키, 긴 머리칼 등 완소외모를 자랑하는 세바스찬 바크('스키드 로우' 출신)다.

그렇다면, 롭 핼포드는 어떤 케이스인가. 그는 미성에 기대는 스타일이 아니다. 어쩌면 그점에서 그를 '하이톤 보컬'로 분류하는 건 멋쩍은 짓일지 모른다. 롭 핼포드는 기본적으로 '기냥 육성'에 기초하고 있다. 물론 고음으로 올라가면서 두성이 나오고 허스키가 섞이고 더 올라가면 반가성으로 가지만, 여하튼 그는 육성을 많이 쓴다. 대신 흉성은 거의 쓰지 않는다. 한국에서 흉성을 쓰지 않고 육성만으로 파워를 내는 보컬리스트로는 윤도현이 있는데, 물론 그와 핼포드는 닮은 구석이 없다. 핼포드는 음색 자체가 금속성이다. 짚어보니, 롭 핼포드는 교과서적 메틀 보컬리스트이면서도 꽤 개성적이다. 그의 아류들이야 있겠지만 그들 가운데 성공적으로 원류를 쫓아온 사례는 거의 없다. 한국의 수많은 메틀 키드들이 그의 노래를 카피했지만 그와 비슷하게 부르지는 못했던 듯하다. 따라잡기의 용이성으로 치면, 헬로윈>스트라이퍼>세바스찬 바크>주다스 프리스트가 아니었을까.

흉성보다 두성이 돋보이는 보컬리스트들 대다수가 롭 핼포드를 따르지 못하는 결정적 측면은 단연 라이브에서 과시하는 안정성이다(이에는 고음실력 못지 않게 중음의 탄탄함도 깔려 있다). 세바스찬 바크나 제임스 라브리에(드림 시어터)가 날고 기어도 그들이 심한 기복을 극복하지 못하는 이상, 이 진리에는 변함이 없다. K.K. 다우닝과 글렌 딥튼의 기타, 스캇 트래비스의 드럼에도 귀가 집중될 수밖에 없지만(베이스는 빠트려서 죄송. 그에게는 근음과 8비트로 상징되는, 튀지 않는, 그러나 굳이 집중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단순하고도 궁극적인 멋이 있지 않은가), 보컬은 튜닝이 되는 악기가 아니다. 게다가 핼포드는 이미 50대 중반에 접어들었다. 공연을 준비할 때나 끝나고 후기를 쓸 때나 팬들이 핼포드에게 마음이 끌렸던 건 당연하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그는 늙었고 이번 내한공연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것이 성대가, 창법이 늙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설정상 그랬겠지만 의자에 앉아서 부른 노래가 몇곡 있었고, 앞으로 고개를 숙이거나 어딘가에 기대는 장면이 많이 나왔다. 딜레이나 리버브가 걸린 대목도 적지 않았고. 하지만 그는 자신의 노래에 져서 쓰러지는 보컬리스트가 아니었다. 우선 그는 고음부가 너무 많아 악을 질러대거나 중음에서 흉성+허스키로 목을 상하게 하는 스타일이 아니었으므로, 성대의 보존이 그만큼 쉬웠으리라 판단된다. 그런데 발성이 단순하고 약았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보컬계에서는 "제대로 된 중음 하나, 열 고음 안 부럽다"는 속담이 있다. 핼포드가 누구누구보다 음을 못 올려서 중음의 비중이 더 많을까? 또 한편으로, 중음에서 흉성을 쓰지 않는다는 건 심심한 느낌을 상쇄할 본인만의 무기가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리고 발성외적인 이야기지만, 롭 핼포드의 카리스마는 가만히 서 있어도, 이따금 팔만 좌우로 움직여도 관객들을 빡돌아 버리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것은 이미 공연 초반부 <Metal God>을 통해 확인되었고, 그는 역시 메탈의 신이었다. 혹자는 냉철하게 따지면서, 그렇게 오래 인기를 누렸으니 별 모션이 없어도 대단해 보이는 거 아니냐고 되물을지도 모르겠다. 그래, 그거다. 1980년대를 관통한 그 에너지는 말할 것도 없고, 35년간 버텨온 그 에너지가 어디에 갔겠는가 말이다. '나도 롭 핼포드만큼 부를 수 있는데'라는 분은 그만큼 개겨 버리면 된다.

자세힌 몰라도 가시밭길의 세월이었을 것이다. 주다스 프리스트는 공장지대 노동계급 청년들이었다. 메틀 기타의 본보기라는 두 기타리스트도 걸출한 초식을 자랑하는 테크니션은 아니었다. 또 이 밴드는 고질적으로 드러머 기근을 앓았고, 초창기에는 느릿느릿한 곡들도 꽤 있었다. 그들은 하드록에서 헤비메틀로 넘어가는 시대를 살았다. 롭 핼포드에게는 누구를 따라하고 흉내낼 만한 시절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로니 제임스 디오, 데이빗 커버데일, 그레험 보넷 등이 하드록에서 메틀로 자가발전했다면, 롭 핼포드는 그 과도기의 카오스를 1980년대를 장악할 막강권력으로 승화시킨 장본인이다.
(하나 더 기억하자. '정통 메틀' 어쩌구 하는 어휘가 있고, 그것이 주다스 프리스트나 아이언 메이든을 수식하기도 하지만, '메틀'은 태생적으로 록음악 내에서도 이단의 음악이었다. '헤비 메틀'이란 말부터가 경멸어였다.)

"다 늙어서 돈이 궁하니까 왔냐"고 깝죽거리는 네티즌을 한명 보았다. 안 가봤으면 말을 하지 말어. 메틀 보컬이 다른 장르의 싱어들보다 노화에 큰 지장을 받기는 한다. 그러나 나이먹기라는 게 본디 기브 앤 테이크 아니었던가? 아티스트는 중년, 노년에 슬은 '녹'마저 광휘의 원천으로 쓴다. 그러면서 나이에 걸맞지 않을 수 있는 화장은 벗겨진다. 전성기 노장밴드의 대표선수인 롤링 스톤즈나 에어로스미스는 메틀밴드는 아니었다. 노장 메틀 뮤지션의 새로운 전성을 주다스 프리스트와 롭 핼포드로부터 보지 못하면 어디서 본다는 말인가. 이번 공연은, 안 가본 놈들만 손해봤다. 당신이 어디서 롭 핼포드 수준의 보컬을 직접 들을 수 있다고. (아차차, 주다스 프리스트에 관심 없었거나, 가고 싶었는데 사정상 못 간 사람은 예외.)

추신: 한국 록역사에서 핼포드와 가장 유사했던 보컬리스트는 '백두산' 시절의 유현상이었다. 그리고 유현상 이전에 유현상 없었고, 유현상 이후에 유현상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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