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학교에서 '부자학교 펀드감시단'이 나타났다. 그동안 문제가 되었던 재단적립금이 불투명하게 펀드에 이용되고 있다는 문제의식의 발로인데, 실상 주요 구호는 '공개하라'다. 의도와 무관하게 이 운동은 '투명화 운동'의 성격을 가장 크게 띠고 있고, 그 이상은 바랄 수 없거나 혹은 자칫 더 악화될 여지가 크다. 사립대 펀드는 처음부터 끝까지 베베 꼬인 문제다.
'투명'과 '공개'를 요구하는 운동으로는 적립금 내역과 손익현황을 공개하는 수준 그 이상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펀드는 시류를 타고, 그래서 민주주의가 개입할 여지가 적다. 아직 가동도 되지 않았긴 하지만, 학교평의회가 출범하고 운영된다고 해서 해결할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펀드에서 이득을 보면 '감시단'이 벌인 서명운동에 동참한 5000여명의 다수조차 환영할 것이다. 학교의 재정이 확충되고 등록금이 덜 오르리라는 기대심리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대학사회의 수준을 감안해 보자. 펀드에서 손해를 보아도 그 액수가 크지 않으면, '펀드를 잘해야 한다'는 교훈이 '펀드를 그만두거나 더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제압하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학교는 펀드에 손대면 안 된다'는 의견도 힘이 없을 뿐더러 그리 적절하지가 않다. 나는 일전에 '학교는 기업과 다르다'를 강변하는 지인과 논쟁을 하면서, '사립학교는 자율적인 결정에 따라 일정하게 기업의 성격을 띨 수 있다. 그걸 누가 학교에 관한 일반론을 들이대며 말리랴'고 반박했다. 이는 교육공공성을 양보할 수 있다는 취지가 아니다. 교육공공성은 공(公)의 영역에 있거나 공(共)의 원리를 따르는 학교만이 담보한다. 교육에 기업운영의 원리를 대폭 도입하겠다는 학교에 감히 기대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 학교는 국가의 지원을 받아서는 안 된다. 까불다 시장의 차가운 비수를 맞아도 싸다.
가뜩이나 해방 이후 지속된 사립대학의 난립과 전횡으로 국공립대의 입지가 축소되고, 자발적으로 공공성을 지키는 민영대학이 솟아날 자리는 거의 없었던 판이다. 이제 더이상 통하지도 않는, 책상물림스러운 무력한 비판으로는 왜곡된 대학구조를 바로잡기 힘들다. 나는 사립대에게 준-국립 등급의 공공성과 책무를 부여하는 게, 한국 사립대의 태생적인 기만성과 시장주의적 오만함을 은폐하고, 공공성 있는 학교를 살리고 키울 기회를 앗아간다고 감히 확신한다. "대학이 대학다워야지", "상아탑은 여전히 우골탑, 등골탑이서야..."하는 '따뜻한 시선'은 현재 잘난체하는 사립대들에게 결코 어울리지 않으니, 그것을 법인화의 위기에 직면한 국립대나 투명성과 민주성을 지키는 학교에 돌려야 한다.
오해가 없길 바란다. 사립대라도 이해당사자 다수가 반대한다면 펀드는 하지 말아야 한다. 사립학교의 자율성에는 해당 학교 학생들의 의사도 반영되어 있어야 하니까. 그렇다면 '펀드 감시'가 아니라 '펀드 반대'를 해야 할 일이다. 그게 아니라면, 펀드로 폭싹 망해야 '아 쒸, 이젠 좀 하지 말자'는 소리가 겨우 나오기까지 기다려야 한다.
방법에는 크게 두 갈래가 있는 것 같다. 공공성, 민주성과는 거리가 먼 데다가 기껏 펀드질이나 해대는 사립대엔 지원을 하지 말자고 전사회적 운동을 벌이거나, 캠퍼스운동으로는 우리 등록금 가지고 펀드하지 말라고 좀 더 강력하게 주문하거나. 이외에는 허무한 결말 또는 예상치 못한 여론형성을 초래하는 길이 있을 뿐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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