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이즈가든의 <말해봐>가 있고, 요호의 <말해봐>가 있다. 전자는 불만과 거부를 선동하고 후자는 위선과 가식을 비난한다.
두 노래는 같은 보컬리스트에 의해 불려졌다. 그는 박건이라고 한다. 철저히 정공법의 발성을 하는 동시에 자기 개성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보기 드문 보컬리스트이다.
노이즈가든은 1970년대 블루지한 하드록과 1990년대 얼터너티브 또는 그런지 사운드를 한몸에서 소화해낸 밴드며, 주로 미들-슬로우 템포의 곡이 많고 몽환적인 트랙도 다수 보유하고 있지만, 격렬하고 빠르고 별다른 기교나 변화가 없는 이 곡이야말로 하드-헤비록의, 노이즈가든의 정수를, 달리 말해 나의 취향을 그대로 보여주는 곡이랄 수 있다.
임종인 의원이 처음 언론에 부각되었을 때는 이해찬과 천정배가 총선 직후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경선에서 맞붙었을 적이다. 그는 이해찬을 지지하는 유시민에게 개혁파가 그러면 안 된다라고 했고, 예전 법무법인의 동료였던 천정배를 지지했다. 이때 경선이 우스웠던 것은 이해찬보다 천정배가 개혁에 적극적이었지만, 천정배를 후원하는 정동영그룹과 이해찬을 지원하는 재야그룹의 성향은 그 반대였다는 점이다.
나는 당시에는 임종인과 유시민의 대결이 당내 헤게모니를 둘러싼 권력투쟁으로만 여겼는데, 임종인은 그후 나의 예상을 연이어 엎는 행보를 했다. 그는 정동영에게도 김근태에게도 줄서지 않았고 참정연에도 가담하지 않았다. 아주 잠시 국참연에 참여했지만 언필칭 실용주의 행보에 반대하여 금세 탈퇴했다. 이라크파병에서부터 사회경제적 이슈까지 그는 거의 모두 민주노동당 의원들과 선택을 함께하며 '열린노동당 의원'이 되었다. (그가 2005년 말 이라크파병연장안 투표 당시 정족수 미달을 노리지 않고 반대표를 던졌다며 비판하는 사람도 있으나, 이미 정족수가 채워지는 걸 보고 어쩔 수 없이 출석하여 표를 던졌다는 이야기도 있다. 혹 구체적으로 사정을 아시는 분은 댓글 부탁드린다.)
나는 임종인 의원이 새로운 진보정당에 참여하기를 바란다. 나는 그가 진보 정치인이라고 생각한다. 보수정당에 몸담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도 옛날일인 것이다. 물론 다수의 당원들이 반발한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나는 2008~2012년 대표 야당 교체의 계획을 세우는 과정 속에서 그를 붙잡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임종인 의원은 진보진영보다는 자신을 일단 지지했던 '개혁층'을 대변하겠다며 신당 참여를 거절하고 있다. 잔머리 굴리기라고 보지는 않는다. 그의 곁에는 김성호 정도만 남아 있을 뿐이고, 통합민주당이나 창조한국당과는 서로 껄끄러운 관계이기 때문이다. 천정배 쪽이 작년 한때 따로 민생정치모임을 꾸렸음에도 홀로 걸어간 임종인이다. 다만 현재 임종인 그리고 김성호가 서 있는 포지션으로는 미래를 도모하기 힘들다는 것이 사실이다. 바야흐로 분화와 재편성의 시대가 다가왔다. 임종인을 밀어줄 만한 에너지는 통합민주당과 새로운 진보정당으로 흩어질 수밖에 없다. 그가 무소속으로 총선에 출마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장렬히 산화하겠다는 것에 다름이 아니다.
내가 지지하는 정당에 소속된 국회의원은 아니지만, 17대 국회에서 가장 칭찬해주고 싶었던 의원 중 한명이다. 아마 더이상은 의회에서 활동하는 그의 모습을 보기는 힘들 것 같다. 요즘 <대자보>가 그를 '작전주'로 띄우고 있지만 지식인층의 평가를 반영할 뿐 정치인으로서 그의 주가는 올라가고 있지 않으며, 신당에 참여할 사람들에게 도리어 거부감을 불러 일으키는 측면도 있다.
여기 한 국회의원이 있다. 그는 이라크전쟁을 반대했고, 국가보안법 폐지를 역설했고,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범죄자로 놔두는 현행법을 손질하고자 했고, 타투(문신)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깨는 일을 도왔다. 그의 사회경제적 문제의식은 민주노동당 의원에 견줘도 쳐지지 않으며, 현 집권개혁세력이 과거에 잘 들먹거리다 이제 내팽개친 ‘재벌개혁’을 아직도 고집한다. 민주노동당의 대변인이 “정계개편이 일어났을 경우 유일하게 당내의 거센 반대를 받지 않고 입당할 수 있는 의원”이라고 호평한 정치인, 군법무관으로 10년을 근무하고 민변 부회장으로 일했던 그는 2004년 총선에서 처음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임종인이다.
당론을 거스른 소신행보로 조금 알려진 그는 이제껏 크게 각광을 받아본 적이 없다. 여권핵심은 여권핵심대로 그를 냉대했고, 국민들은 국민들대로 그에게 무관심했다. 그가 여당의원이라는 것이 그의 의원직 수행에 이로울 수는 있었겠지만, 그는 차라리 민노당에서 활동하는 것이 나아보일 만큼 외로운 처지에 놓여 있었다.
특정 정파가 국민적 인기를 잃어가는 시점에는 그 내부에서 가장 소외된 개인의 인기가 높아진다는 법칙은 그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손댄 일들은 수고는 크고 보답은 적은 안건들이었다. 이라크전쟁을 비판하는 사람이 드물지 않지만, 한국 정부의 파병을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국가보안법 폐지도 소수의견이다. 양심적 병역거부는 온 국민이 증오하며, 타투는 당연히 ‘양아치들이나 하는 짓’으로 치부당한다. 임 의원은 재선은커녕 공천-중앙당의 결정이든 개방형 경선이든-도 장담할 수 없다.
그런 그는 네티즌들로부터의 공격에도 노출되어 있다. 그를 모욕하는 것이 수구성향의 네티즌들만은 아니다. 네티즌 사이에서 세력을 넓힌 ‘친노 및 친여세력’에게도 그는 찬밥 신세다. 그는 노무현 정부의 정책에 가장 많이 반발했다. 원내대표 경선에서 이해찬 현 총리를 비판하는가하면, 작년 말에는 ‘이부영 의장 -천정배 대표’를 중심으로 한 지도부의 개혁후퇴에 완강히 저항했다. 박창달 의원 체포동의안이 부결되는 바람에 친노네티즌들이 비밀투표가 보장된 원칙에 아랑곳 않고 응징의 칼을 빼들었을 때에도 그는 유시민 의원과 달리 뇌동하지 않았다.
말해 놓고 나니, 유시민과도 의견이 엇갈렸다는 점이 임종인의 발밑을 더욱 흔들어 놓은 측면도 있는 것 같다. 한때 정청래 의원과 가깝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정 의원의 원군격인 ‘국참연’과 갈라섬으로써 그가 기댈 언덕도 마땅치 않은 듯하다. 시련은 그가 의원직에 앉아 있는 한 계속될 것 같다. 임 의원은 재외동포법 개정안에 반대표를 던졌고 끝내 그 법안이 부결되었다.
지난 번 스티브 유씨, 일명 유승준의 입국이 거부되면서 우리는 병역기피자에 대한 현행법이 얼마간 효력을 발휘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물론 추가조치가 더 필요할 수는 있다. 삼성이나 조중동한테는 입도 벙긋 못하지만 병역기피만큼은 잘근잘근 씹어대고 싶은 국민들의 심정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른바 ‘홍준표법’은 사납기만 하고 별로 쓸모가 없는, 법 같지도 않은 법이었다. 그 법안을 밀어붙이는 이들은 하나같이 ‘그렇다고 해서’를 연발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병역기피를 위한 국적포기를 방조할 수 있냐는 말이다. 이는 대한민국 사회의 반(反)법률적 성향을 요약한 것이다. 중고등학교를 다녔다면, 사회수업시간에 맨날 졸지 않았더라면,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라는 금언을 들어봤을 것이다. ‘열사람의 도둑을 놓치더라도 한사람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말라’는 말도 생소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홍준표법’은 그 원리를 낯설게 만들고 있다.
기존수구세력의 상징적 인물이 ‘정형근’이라면, 홍준표는 뉴라이트를 포괄한 신수구세력의 한 이름이다. 악명 높은 공안기술자에서 극우정객을 거쳐 ‘여관 사건’과 그답지 않은 대북지원발언을 통해 정형근이 몰락하고, 공세적으로 대북포용정책을 채택하고 군부독재의 잔악함에 얽힌 원죄도 없으며 ‘모래시계 검사’로 알려진 홍준표가 뜨는 만큼 수구세력이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허나 착각하지 말라. 수구세력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았다. 홍준표는 거짓말을 유포하고도 특권 뒤에 숨는 데 성공하고, 그도 모자라 선거에서 살아 돌아온 자다. 정계에 입문할 때도 ‘3김의 우산 밑으로 들어가지 않는다’는 호언을 뒤집고 신한국당에 입당했다. 병역문제와 뒤엉킨 채 정치적 목숨을 부지했던 기존의 한나라당과 달리 홍준표씨는 순항하고 있지만, ‘홍준표법’에 담긴 사고방식은 옛 한나라당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얍삽한 국가주의와 정직한 국가주의의 차이? 국가주의는 국가주의다.
홍준표법의 정직한 국가주의는 어느새 홍준표의 손을 떠나 얍삽한 정치를 낳고 있다. 홍준표법에 반대한 의원들은 “취지는 공감하나 허점이 많다”고 주장한다. 반대로, 찬성한 의원들 중 일부도 그렇게 생각하는 기미가 있다. “허점이 있지만 취지가 옳다”는 표현이 그들에게 걸맞을 정도다. 결국 의원들은 가부와 무관하게 ‘동전 던지기’를 한 셈이다. 며칠 전 TV 프로에서 ‘오백원짜리 동전을 굴리면, 주화의 모양 때문에, 앞면이 나올 확률이 더 높다’는 내용이 나왔다. 마찬가지로, 찬성이 반대보다 더 많이 나온 이유도 변수, 즉 여론의 향방이 ‘주화의 모양’ 같은 구실을 한 덕분이었을 것이다.
반대표를 던질 법한 유시민이 찬성 버튼을 눌렀던 까닭도 짐작할 만하다. 또한, 노회찬과 홍준표가 한편이 되고 임종인과 정형근이 한편이 되는, 이념적 지형과 관계없이 전선이 형성되는 희한한 사태가 벌어진 것도 그러한 사정과 무관치 않다. 결론적으로, ‘홍준표법’은 선악구도를 형성해 마녀사냥을 벌일 차원의 사건이 절대 아니다.
공공이익에 관해서, ‘가능한 소수가 최대한 작은 손실을 입어야 한다’는 명제가 논리적으로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압도하나, ‘홍준표법’은 결코 현실이 그렇지 않음을 설명한다. 첫째, 피해자가 생길 가망이 무시되었다, 둘째, 법안을 둘러싼 논란을 해소하는 태도가 글렀다. 아무리 선의에 가득차 있고 실질적인 해결책까지 산출할 수 있더라도, 내용이 부실하면 일단 반대부터 하는 것이 옳다.
나는 홍준표법에 반대한 의원들이 다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임종인 의원이 사리사욕으로 반대했다는 억지에는 조금도 동의하지 못하겠다. 이 문제는 요컨대 현실적으로는 병역문제다. 임종인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인권을 돌보면서도, 예비역 장교의 자부심과 정체성을 가지고 ‘가고 싶은 군대’를 지향해 왔다. 그가 국적포기자들과 관련되었을 리도 없고, 국군 중령으로서 국가에 봉사한 그에게 “너네 아들 군대 빼려고 그러지?”라는 원색적 음해도 뜬금없다.
임종인이 평화와 개혁을 아무리 외쳐도 꿈쩍하지 않던 인간들이 꼬투리를 제대로 잡아 그를 사냥하고 있다. 누구 말마따나 그는 역시 ‘탄핵의 역풍’이라는 반사이익을 입어 국회의원이 되었나 보다. 그가 출마한 지역구에 유별나게 선진적인 의식을 가진 유권자가 많지 않은 이상, 그는 ‘대한민국 국회의원’으로서 결격사유를 가지고 있다. 나는 그의 결격사유가 좋다. 여론의 질타에도 숨지 않고 ‘애국자 홍준표’에게 TV 토론을 제안하는 ‘매국노 임종인’을 존경한다. 그런 이들이 있었기에 드레퓌스가 무죄로 판명날 수 있었다. 그런 이들이 일본사회에 많았다면 한일관계가 이렇게 경색되지도 않고 동북아 정세도 좀 더 나았을 것이다.
지난 날, 우리는 민주주의를, ‘다수지배’를 갈망했다. 그리고 그것이 온전히 이뤄지지도 않은 오늘에, 나는 ‘다수지배’의 야만과 무지를 실감한다. 그것에 봉사하는 포퓰리스트는 필요 없다. 낙선을 각오하는 당당한 정치인, 여론재판을 두려워하지 않는 지식인 하나가 절실하다.
2007년 10월 4일 블로그를 열었다. 플로그인 적용을 비롯해서 다음, 네이버 블로그보다 까다로운 듯하여 PC방에서 낑낑댄 기억이 난다. 정치적으로는 민노당이 사실상 선거 쫑난 상황이었고, 노무현이 금 밟고 북으로 넘어가던 날이었다. 그때 내방에는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았었다. 헤어진 사람이 돌아오기 일보 직전인 시점이기도 했다. 뭐 결국 다시 헤어졌지만 말이다.
백기를 꽂는다는 투의 첫 글에서 암시하듯 이 블로그는 망명 정부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나는 무명의 시민이고, 이 블로그는 메모 쪽지의 모음집에 불과하다. 높은 조회수는 예상하지도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내 생각보다는 사람들이 많이 들어왔다. 고정적 독자는 얼마 안 될 테지만, 아까 확인한 바로는 말 없이 계속 들어오던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그건 다름이 아닌 자신이라고... 그는 미홈 때부터 나를 관찰해왔다고... 아는 사람이라 오싹한 일은 아니다.
역시나 이전에 활용하던 미니홈피보다는 조회수가 높다. 벌써 20000껀을 넘었다. 미홈이야 내가 누군지 알고 싶어서 들어오는 경우가 다반사고, 블로그는 유입 검색어의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이다. 유입 검색어 몇개가 눈에 띄어 소개해 본다.
박진영부인사진 => 이게 1위야. 역시 이 블로그는 썬데이서울 기질이 있단 말야... 사진은 없고 차린 건 없지만...
민주노동당 => 상위에 랭크된 키워드. 잘 찾아오신 편이우.
김수민 => 나?
이재영 => 이재영 검색하니까 내 글이 제일 위에 뜨더라는 전언은 들었다.
한석규 성대모사 강일구 => 나도 그 동영상은 확보하려고 했는데 못 찾았다.
다함께 탈당 => 그럴 리가.
블록 투표 => 영국노동당사 공부하시나? 열공! 투쟁!
노무현, 이명박 => 두 브라더스를 비교 연구하는 책을 써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요즘 강하다. 어느 덜떨어진 출판사가 나한테 집필을 맡기겠느냐만...
철장미 기타리스트 => 보컬은 김성면(K2)인데 기타리스트는 기억이 안 나오.
원더걸스얼굴크기 => 고마해라. 유빈 허벅지가 굵니 어쩌니... 맨날 쌈박질이고. 요샌 초딩도 2월 내내 방학인 거시냐~? 여기선 관련 글이 없지만 굳이 응답하자면, 얼굴 나보단 적고 허벅지 나보단 얇다. 학실하다.
추격자 백윤식 => 김윤석이라니까. 백윤식은 평경장이고 김윤석은 아귀.
젝스키스 수익배분 => 그게 몇년 전이여. 팀의 수익배분, 기억나는 거라고는 U2밖에 없다. 20퍼센트씩 나눠가졌다. 4인조인데 25%가 아니냐고? 브라이언 이노(프로듀서, 키보드 세션, 일명 제5의 멤버) 챙겨줬응께.
허경영 통일교 => 기독+무속 삘 나는데 통일교는 아니다. 나 허경영 눈 보고 병 고쳤으니 궁금한 거 있음 물어보3.
조회수가 튀어오른 계기는 두번쯤 있었다. 첫번째가 한윤형 블로그에 링크되었을 적이다. 우석훈 블로그에 댓글 남긴 걸 클릭해 찾아오는 경우도 꽤 있었다. 내 블로그부터 들른 내 지인들도 우석훈, 한윤형 블로그를 곧잘 찾는 것으로 사료된다. 처음에 조회수가 튀었을 때는 블로그 개설 취지(적정 조회수는 하루 100이라고 판단했다)와는 좀 안 맞는다 싶었다. 이왕 베린 몸, 내 글 읽고 악플 달 테면 달라는 심정으로 운명에 순응했다.
두번째는 나의 낚시질. 오마이뉴스에 올랐던 나의 허경영 인터뷰를 블로그에 재게재했을 때이다. 디씨 허경영갤 등을 순방해본 결과, 내 기사는 크게 알려지진 않았지만 허경영빠들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텍스트로 쓰이는 것 같았다. "영혼복제 가능" "아이큐 사실은 무한대" 등보다는 "노숙자 한명의 무게는 나머지 전인류와 같다"는 격언에 하악거리며 "대인배"를 연발하는 빠들이 많더라.
그 다음부터는 민주노동당 사태가 급박해지면서, 검색으로 들어오는 누리꾼들이 점차 늘었다. 나는 영양가를 다량 함유한 당원은 아니나, 내 메모들은 섬유질은 만빵으로 초보 당원 입장에서는 읽을 만하다. '해설'로서가 아니라 '질적 연구 자료', '문화기술지'로서 말이다. 참 여기서의 '당원'은 민주노동당 당원이 아닌 진보정당 당원이다.
롹음악 검색하다가 들어온 분들이 역사에 관한 글도 우연히 읽고, 정치에 관심 있는 분들이 잡담나부랭이도 읽는 그런 블로그가 되었으면 한다. 이 블로그에 마음 속 깊은 이야기는 잘 쓰지 않지만, 고정독자들은 이 블로그 주인장을 통해서 인간탐구의 새 지평을 열어 나가라~ 천기보전 무르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