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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

Free Speech | 2008. 8. 13. 01:25 | Posted by 김수민
어쩌다 보니 2000년 이후 출현한 일군의 논객들과 교류할 기회가 있었다. 특히 <아웃사이더>에 참여했던 지식인들과는 서로 이름을 알고 지내기도 했는데, 지금까지 연이 이어져 오는 분은 홍세화 그리고 박노자밖에 없다. '송복 퇴임식 사건'으로 조선 동아에게 연타를 얻어맞고 있을 때 그가 방어해준 것이 계기가 됐다. 그는 그 사건을 한국판 68운동쯤으로 보는 듯하다. 내가 그와 메일을 자주 주고받던 시기는 군복무 기간이었다. 그의 관심사와도 결부된 군대 이야기도 좀 나누었지만, 그무렵 내가 한국사를 전공하리고 결심하면서 이것저것 대화할 게 많았다.

한국의 진보 지식인에게는 두가지 임무가 있다. 첫째, 급진적으로 타격해 판을 흔들면서 둘째,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방책을 내놓는 것이다. 조희연의 표현처럼 비정상성을 지양하는 것과 정상성을 극복하는 것일 수도 있다. 나는 사민주의와 아나키즘의 병행을 중요시하는데, 술자리에서 만난 홍기빈 씨가 똑같은 표현을 하는 걸 보고 무릎을 탁 친 적이 있다. 진중권도 그러한 축에 들지었만 최근 들어서는 후자에 기울어진 것 같다. 우석훈의 경우는 자신의 녹색지향과 재계와 관계를 넘나든 경력을 잘 조화시켰다.

박노자도 그런 색깔이 강하다. 그가 알려진 직후에는 사민주의자라는 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의 질적 핵심이 복지국가 예찬보다는 제국주의(및 오리엔탈리즘) 비판에 있음을 알면서는 생각이 좀 달라졌다. 마침 2002년 말 또는 2003년 초에 그가 '트로츠키주의 성향'이 있다는 질문을 긍정한 인터뷰가 나왔다. 그는 만델보다 캘리니코스, 하먼을 존경하는 듯했고, IS계열인 '다함께'와 꽤 친한 관계였다. 한때는 다함께 회원인지도 긴가민가할 만큼.

(그랬던 그가 어쩌다 다함께와 그렇게 틀어졌는지도 다소 미스테리다. 천상이 비조직적 인간이라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말씀하시는 것 같고, 다함께의 일사분란한 방침과 드디어 충돌한 것이 아닌가 한다. 게다가 '영세 극좌파'라는 별명까지 붙여주었다. '다단계', '런던연합' 따위의 조롱 어린 별명보다 점잖지만, 그만큼 충격적이기도 했다. 하하, 영세 극좌파라니... 지인들과 키득거렸다. 혹시 그 '영세'가 '영세중립국'할 때 '영세'면 그나마 덜 약올랐겠지만,하면서.)

이번 그의 블로그에 올라온 짤막한 글이 그의 사상적 지표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다. 그는 자신을 '개량주의자(?)'라고 표현하면서도 진보신당이 사회주의의 원칙과 이상을 분명히 하자고 한다. 좀 억지스레 정리하자면, 진중권이나 홍세화의 입장을 '전진'과 접붙인 셈이다. 요즘 진보신당 게시판에서 '전진'이 두들겨 맞고 있는데 이게 어떤 파장을 미칠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나는 전진을 두둔하는 입장이었다(왠일이냐 싶지만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 하지만 '사회주의'를 당 강령의 문구로 넣는 데는 반대한다. 그점에서 나는 박 선생하고 다르다. 그러나 어쨌건 내가 중요시하는 'TWO TRACK'을 잘 구사한다는 점에서 나는 그에게 이념적 친화성을 느낀다. 그의 생각은 나 같은 사람보다 조금 혹은 훨씬 마르크스주의적이긴 하지만.

근래에는 뜸하지만 예전에 자주 만나서 그런지, 화면이나 지면에서 보는 그의 모습이 너무나 자신(의 기품)을 제대로 드러내서인지, 홍 선생이 어떤 분인지는 대충 알겠다. 그런데 박 선생은, 잘 모르겠다. 그가 집에서 어떤 아버지고 남편인지 좀 궁금하기도 하다. 원체, 잘 안 보여서 더 궁금한 것이다. 강연회 뒤풀이 때 그와 함께 간 곳이 술집이 아니라 커피숍이었다는 것, 어떤 학생이 그를 찾아갔더니 빵을 드시고 계셨다는 것, 고기를 안 드신다는 후문이 있더라는 것, 정도로만 그의 사생활을 어림할 뿐이다.

아마 그가 가진 '의외의 목소리'도 베일의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얼굴은 에단 호크삘인데 말은 제2의 이다 도시? 그의 성대모사를 곧잘 하는 나도 그의 정신세계는 조금도 짐작할 수가 없다. 이상, 사실 박노자의 사상보다는 인간 박노자가 더 궁금하다,는 잡설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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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미스코리아 대회가 처음 열릴 때 언론보도로나마 접하며 느낀 청량감이 떠오른다. 나는 안티-미스코리아 대회의 지지자인 셈이고, 또 미스코리아 대회에 반감을 가지고 있다. 나는 그러나 미스코리아 대회를 폐지하자는 사람은 아니다. 어떤 것에 반감을 가지는 것과 그것을 없애자고 주장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미스코리아 대회의 비판자들은 미스코리아 대회가 외모지상주의를 부추긴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지만 외모지상주의를 북돋우는 주요 동력은 미스코리아 대회의 수상자나 주최측보다는 그 대회에 쏠리고 몰리는 시선과 환대에서 훨씬 더 많이 나올 것이다. 그러니 이 대회를 TV에서 몰아내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목적을 달성했다고 볼 수 있으며, 굳이 없애려고 노력하지는 않아도 될 것 같다.

물론 우리 사회의 외모지상주의는 심각한 수준에 도달해 있다. 미모 피라미드의 맨 꼭대기에 있는 연예인들이 날개짓을 하면 온 사회가 S라인과 V라인의 태풍에 뒤덮인다. '원더걸스'의 소희나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가인이 받는 각광은 미의 다원화와 개성의 분출을 증명하는 한편으로, 외모지상주의가 더 넓은 폭을 가지며 공고해지게끔 교묘히 작동되기도 한다(통통한 볼이나 쌍꺼풀 없는 눈을 가진 이들도 얼굴이 작고 날씬하기는 매한가지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외모지상주의를 우려한다고 해도, 빼어난 외모를 향한 추앙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 미스코리아 대회의 반대자들도 미모를 향한 추앙 자체가 아니라, 그를 기준으로 세워지는 서열을 비판한다. 하지만 서열의 생성을 봉쇄하는 것 역시 불가능하며 외모도 그 예외는 아니다. 미모를 근거로 진, 선, 미를 가리는 일이 그르다면, 성적을 토대로 등급을 매기는 일도 그르다. 지식인이 미인보다 더 윤리적이라거나 지식이 미보다 사회에 더 효용이 있다고 단정 지을 수도 없다. ‘지식이 노력의 결과인 반면 미는 그저 얻어진 상속물’이라는 설명도 발 디딜 곳이 없다. 그러므로 유권자가 더 나은 정치인에 투표하여 그를 당선시키고 소비자가 더 좋은 품질의 물건을 고르듯, 미인을 선발할 수도 있고 나아가 직종에 따라서 또는 심사자의 필요에 의해 미모가 합격이나 돈벌이의 견인차가 될 수도 있다. 미모를 향한 추앙이 존재하는 한, 그에 발맞추는 쪽도 늘 생기기 마련이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갖가지 서열과 순위라기보다는 그것으로써 우성 인간과 열성 인간을 가리는 차별이다. 이것이 만연한 사회에서는 어떤 분야의 승자도 다른 영역의 패자가 되면서 멸시받을 수 있다. 예컨대  공부를 잘하지만 얼굴이 못생겼다고 여겨지는 사람은, 특히 그가 여성이라면 ‘연애 시장’은 물론이고 ‘취업 시장’에서도 불이익의 여지가 있다. 그런데 그 반대의 경우에도 차별받을 가능성이 있다. 예컨대 예쁘기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몇몇 연예인들도 곧잘 “멍청하다”, “머리가 비었다”는 공세에 시달린다. 어쩌면 외모지상주의가 판을 친다는 묘사는 한국사회에 그리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겠다. 외모는 시쳇말로 ‘스펙’이라고 부르는 ‘출세와 생존의 조건’에 철저히 예속된 하나의 부속품에 다름 아니다.

스코리아 대회의 모토도 실상 “예쁜 게 최고야!”와는 꽤 거리가 있다. 마치 기여입학제를 도입한다는 사립대학이 기부금 말고도 고교 내신성적이나 학생집안의 사회기여도까지 잰다면서 둘러대는 것처럼, 미스코리아 대회도 지성과 교양까지를 아울러 수상자를 뽑는다는 걸 뽐낸다. 주최측인 한국일보사는 미스코리아를 “세계평화에 이바지하고 환경을 지키며 어린이를 보살피는 한국의 대표사절”이라고 정의한다. 그렇지만 이 대회가 참가자의 평화운동, 환경운동, 보육활동 경력을 따져, 입상과 순위에 반영하다는 소리는 들은 적이 없다. 참가자들에게 주어지는 질문은 매끄러운 언변을 테스트하고 그의 아름다움이 최소한 백치미는 아님을 확인하는 선에서 그친다. 

그렇다면 무엇이 준거가 될지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이 대회의 수상자들, 특히 최고 수상자들 중에는 서울 지역의 유명 대학교를 다니는 여학생들이 흔하고, 서울예선의 수상자가 전국본선의 수상자로 굳어지는 경향도 강하다. 세상의 흐름상 그들의 가정환경 또한 부유할 확률이 높다. 대회가 은밀히 귀띔하는, 그러나 아주 실질적인 모토는 대충 이런 게 아닐까: ‘재색 겸비한 최고의 스펙녀를 가장 좋은 혼처로’? 또는 ‘얼굴도 예쁘고 지능도 빼어난 연예인 탄생’?(물론 ‘연기력’이나 ‘가창력’은 보장할 수 없다.)

이번 미스코리아 대회에서 벌어진 사건은 위선의 극치를 보여준다. 주최측은 과거 누드모델이었다는 이유로 한 수상자의 자격을 박탈하였다. 그의 누드화보가 세계평화를 깨트리거나 환경을 파괴한 것도 아니고, 화보를 보지도 못할 어린이에게 해로울 리도 없을 텐데 말이다. 더욱이 주최측은 ‘성의 상품화’를 들먹이며 자격박탈을 합리화할 처지도 못 된다. 그들은 참가자들에게 똑같은 색깔의, 그것도 예전보다 더 얇아졌다는 의혹을 받는 수영복을 입혀 무대에 세우지 않았는가. 차라리 “아마추어리즘에 입각한 대회에 프로의 참여는 반칙이다”라고 변명한다면 몰라도.

주최측인 한국일보사는 제 인터넷판부터 돌아보길 바란다. 초기 화면에 뜨는 연예계 가쉽이나 남자들의 눈을 잡아끄는 사진은, 나쁜 것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미스코리아 대회에서 과시한 교양(!)주의와 대조적이다. 이 선정성은 특정한 섹션에 그치지 않고, 어느 객원논설위원의 에세이까지 집적거리기도 했다. 이를테면, <꽃값-사랑, 사랑의 꽃이로구나!>라는 글이 <길거리 그녀들이 몸 팔고 받는 ‘화대’의 진짜 의미>라는 타이틀과 연결되어 있고, <구강성교에 쓰이는 건 혀뿐이 아니었다>는 링크를 클릭하면 <잇바디-눈 속의 매화>라는, 기대 이하(?)의 글이 나온다.

그 에세이들은 진중한 인문적 성찰을 담고 있는 동시에 교묘하고 수줍게 에로틱한 측면이 있었고, 그래서 그 ‘야한 포장’은 그럭저럭 애교로 넘겨줄 만한 ‘낚시’였다고 백보 양보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때의 대담함에 비해 누드모델을 거르는 태도는 군색하고 초라하다. 게다가 주최측이 이미 누드화보 촬영 사실을 인지했다는 박탈자의 증언이 진실이라면, 그들이야말로 심사의 자격을 박탈당해야 한다.

철학적 심미성은커녕 야트막한 통속적인 아름다움에도 미치지 못하는 새삼스럽고 촌스러운 결정. 이 대회로부터 ‘미의 대제전’이라는 수식도 박탈해야 할 것 같다. 미스코리아 대회의 최대 안티는, 다름 아닌 그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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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말

Free Speech | 2008. 8. 10. 22:24 | Posted by 김수민
영 마뜩찮은 기색이 느껴지지만 자기가 내 글의 팬이라고 소개하는 사람들을 몇몇 만난다.
또 어떤 이들은 그간 썼던 글을 묶어서 책을 낼 생각은 없느냐, 그런 제의를 받은 적이 없느냐, 묻기도 한다.
그 사람들 가운데는 내게 가진 이견을 잔뜩 숨긴 이들도 있다.
 
이런 사람들의 블로그나 홈피를 어쩌다 방문하게 되면
거기에 내 글이 퍼올려져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빈말 좀 하지 말라. "김수민 씨 글을..." 어쩌구 호들갑 떠는 사람을 만나면
당장 그날 밤이나 새벽에 그 사람의 홈피나 블로그를 수색할 것이다.

너 같으면, 나 같은 놈이 내는 책 사겠냐? 그런 책을 찍어 내 주겠냐?
'저런 새끼도 책 낸다고 설친다'며 흉이나 안 보면 다행이지...
꼭 이렇게 남 엿 먹이는 걸 취미로 아는 인간들이 있다니까..

(내 글을 퍼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내가 모르는 사람이거나, 나를 모르며 글만 퍼간 분들이다.) 
:

서태지 논란

Listen to the 무직 | 2008. 8. 10. 22:12 | Posted by 김수민

XTM에서 "서태지, 문화대통령인가, 비지니스맨인가"를 두고 토론이 벌어졌다. 그의 음반이 나올 때마다 되풀이되는 식상하고도 밑과 끝이 빤히 보이는 논란이다. 어느 측이건 쓸데없는 다변 욕구를 자제할 필요가 있다. 그가 비지니스맨에 불과하다는 쪽은 서태지가 과연 자신의 입방아에 오를 값어치가 있는지부터 따져봐야 할 것이다.

서태지가 문화대통령이라는 쪽은 우석훈의 근저 '촌놈들의 제국주의'를 연상시킨다. 물론 '아시아 제패'라거나 '미국 진출'이라는 꿈은 물건너간지 오래고, '제국주의'보다는 '촌놈'임이 더 부각된다. 이현도 등이 지적받듯 서태지에게도 가령 'C-G-Am-Dm' 같은 전형적인, 그래서 친숙하면서도 진부한 패턴이 있다. 팬들의 열정적 환영은 진부함 대신 친숙함에 더 표를 던진 결과일 뿐이다.

물론 그들은 서태지가 출연한 광고의 메시저처럼, 서태지가 진부하지 않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것은 바로 서태지가 록팬을 비롯한 음악매니아들에게 깎아 내려지는 원인이기도 하다. 표절 여부를 운운할 것도 없이, 서태지의 음반은 언제나 구미의 흐름을 추종하고 훌륭히 베껴 왔으며 이번 음반 역시 마찬가지다. 국내 최초? 얼터너티브는 그 이전에 '제이워커'나 '뮤턴트'가 시도했으며, 하드코어 혹은 뉴메틀에서도 '닥터코어 911'이나 '언루트'가, 이모코어에서는 바슬린이나 피아가 더 앞섰다.

창조성의 가늠이나 원조논쟁은 차치하고, 서태지를 '문화대통령'이라 부르는 것이 가당찮은 건 그가 지닌 '뮤지션쉽'의 현황이다. 세상에 잊을 만하면 돌아와 음반을 발표하고 그러다 다시 사라지는 대통령이 어디 있나. 서태지컴퍼니를 통해 후진을 양성하는 노력은 인정되어야 하지만, 그가 현재의 음악계에 이수만이나 박진영만큼의 영향력을 끼치는 것도 아니다. 그는 이제 그냥 음악활동을 근근이 이어가는 것으로도 충분히 만족하고 행복해 하는 소박한 뮤지션 겸 프로듀서일 뿐이다.

아마 그를 '대통령'으로 띄운 힘은 그가 표출한 정치사회적 메세지에 대한 먹물 비평가들의 호들갑에서도 상당 부분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도무지 무엇을 추앙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교실이데아>가 여러모로 좋은 작품이었다는 걸 뺀다면 말이다. 통일을 노래해서? 고구려 유민이 지배층으로서 말갈족을 지배한 나라를 꿈꾼다는 노래를 통해, 그리고 국기게양과 국기에 대한 경례로 막을 내리는 장대한 쇼에서, 통일지상주의와 애국주의의 메아리가 참 크게 울려 퍼지긴 하더라만. 서태지가 거둔 '저항의 성공'이 '비판적 지식인'들을 눈멀게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뱀 같은 지혜'를 가지자는 교훈을 남겼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서태지가 보여준 비판의 수준을 보면, 욕이든 뭐든 잘난 놈이 하면 효과가 있다는, 새기나마나한 교훈만이 남을 뿐이다. 그 노선은 네가 지지하는 노선일 뿐 내가 쌍수들 노선은 아니다.

서태지 이래 그에 관해 바보 같은 글들이 너무 쏟아져 나왔다. 쓸 만한 건 6집 <울트라맨이야>가 나오던 시절에 성기완이 썼던 글 정도다.


서태지에 대한 논란은 좀 다른 단계로 넘어가야 할 것 같고, 나도 이런 포스팅을 더 원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만에 하나 댓글로 반박이나 질문이 들어오면 이 블로그에선 계속 이어가겠지만.)

일단 "서태지는 '불세출의 음악 오퍼상'"이라는 평가로, 이만 맺겠다.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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