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로 티베트 학살을 목도하며 절대 베이징 올림픽을 관람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근래 결심이 좀 흔들리고 있다. 당장에 카메룬 대 한국전이 눈앞에 와 있는데 이를 어찌 하오리까. 요즘 집에서 매일 WINNIG 11을 하는지라 축구 경기는 그냥 지나치기가 힘들다.
내게 올림픽이란 대부분이 '92년 바르셀로나와 '96년 아틀란타를 뜻한다. 1988년 올림픽에 대해서는 레슬링 김영남과 탁구 유남규의 결승전 장면밖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 '00 시드니 올림픽 때는 고3이었고, '04년 아테네 올림픽은 군복무 중에 있었다. 2000년, 우리 학급은 몰래 TV를 틀어 올림픽을 보곤 했는데, 아이들이 여자 배구 시합에서 갑자기 상대팀인 이탈리아에 환호했던 기억이 있다. 아리따운 선수 두명 때문이었다. 2004년 올림픽에 대해서는 작지만 정말 더러운 쇼비니즘의 기억이 남아 있다. 한국선수단의 금메달 부진에 열오른 어떤 경찰 왈, "한국이 이것밖에 안돼?" 아, 이 또라이 생각하니 나도 열이 오른다.
금메달 유력후보였다가 은메달에 그친 한국 선수는 눈물을 흘리는 데 반해, 동메달 건진 다른 나라 선수는 방긋 웃는-심지어 취미 삼아 출전하는 선수들도 많았다-시상식 장면이, 한국인으로 자라온 내게 가장 깊이 각인된 올림픽의 풍경이다. 노골드 한국 선수의 잘못이라고는 빡센 나라에 태어난 죄밖에 없다. 그러나 비운 역시 하나의 금자탑을 이루는 법이다.
1. 윤현
한국을 대표하는 비운의 올림픽 선수. 아마 체급은 엑스트라 라이트급이었던 걸로 기억난다. 1988년 유도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우승했으나 선배인 김재엽에게 양보했다. 김재엽은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4년이 지나 윤현의 코치가 되었다. 윤현이 결승전에서 졌을 때, 고개를 파묻고 흐느끼던 김재엽의 얼굴이 생생하다.
2. 여홍철
그의 이름을 꺼내자 사촌동생은 "노홍철도 운동선수였냐?"고 묻는다. 여홍철은 1992년 유옥렬이 뜀틀 동메달에 그친 아쉬움을 달래고도 남을 확고한 세계 최정상 선수였다. 그의 이름을 딴 기술명이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의 공중제비는 황홀하다. 하지만 착지가 문제였다. 다다다닥... 그때도 그는 뒷걸음질을 친 댓가로 은메달을 땄다. 한걸음만 덜 물러났어도 금메달이었다.
나는 친구들과 학급에서 한탄을 했으나 장난끼 많은 우리는 남의 비극을 즉시 희극으로 승화시켜 버렸다. 당연히 그의 공중제비를 따라할 수 없던 우리는 노홍철, 아니 여홍철의 착지 자세를 흉내내기에 여념 없었던 것이다. 다다다닥... 나는 당시 여홍철을 노홍철로 들은 내 외사촌동생과 같은, 중학교 2학년생이었다.
3. 이봉주
그가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마라토너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호놀룰루 대회 이후로 상도 곧잘 탔다. 다만 황영조와 견주어 볼 때면 그가 참 안타깝다. 황영조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신세대 특유의 퍼스낼러티를 가진 스타였다면, 그는 바보처럼 달리고 또 달리는 포레스트 검프처럼 비쳐졌다.
1992년, 투그와니(아프리카 어느 나라 사람인데... 케냐였나?)와 각축을 벌인 끝에 1등을 놓치는 것이 확실시되는 순간, 그의 얼굴은 비로소 환해졌다 . 금메달을 딴 투그와니는 자녀가 여러명이었다는데... 나는 친구들과 "그래도 그집 살림 피게 된 건 그나마 잘됐다"고 한마디했다.
4. 김택수
1992년 탁구 남자단식 동메달리스트. 아... 가슴 한켠이 짠해진다. 나에게 '축구는 황선홍, 야구는 선동렬'이고, 탁구는 유남규도 유승민도 아니고 김택수다. 유남규-현정화가 꾀돌이 또는 여우로 불려졌다면 김택수는 홍차옥과 함께 순둥이란 소리를 들었다.
유남규가 1인자였고 그는 영원한 2인자였다는 회상을 하는 사람이 있을까? 있다면 거짓말쟁이이다. 김택수는 발트너, 페르손 같은 세계 랭킹 1, 2위급의 스웨덴 선수들을 꺾고 선수권을 쥐기도 했던 선수다. 그를 가린 건 발트너도 유남규도 아니고, 선수권보다 올림픽 골드메달에 더 치중하는 한국스포츠문화이다.
4년 전 유승민이 남자단식에서 금메달을 땄을 때, 그는 선수보다 더 기뻐하며 '길길이 날뛰(?)'었다. 감동적이었다.
5. 2004년 여자 핸드볼 국가대표팀
<우생순>도 나왔겠다 생략.
6. 이승배
1992년 복싱 미들급 동메달. 1996년 은메달. 소위 '얼짱'이었기 때문에 금메달리스트였다면 올림픽 스타로 뜰 수 있었던 선수.
7. 남승룡
간단히 말해, 우리는 (손기정 선수에 비해) 그에 관하여 아는 바가 너무 없다.
'Free Speech'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노자 (0) | 2008.08.13 |
---|---|
빈말 (0) | 2008.08.10 |
'불온서적' 읽었다고 TV에서 밝힌 병사 (0) | 2008.08.03 |
'88만원세대'의 평균적 경제관: 아마 이런 게 아닐까? (1) | 2008.07.30 |
'그 재능'과 '그 일' (0) | 2008.07.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