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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헌영 간첩설과 이강국 간첩설

史의 찬미 | 2008. 8. 18. 01:43 | Posted by 김수민

새내기 시절, 어떤 신문을 만들면서 대여섯살 많고 공부가 깊은 선배들이랑 어울려 놀았다. 하루는 술자리에서 두 선배가 논쟁을 벌였다. 지극히 점잖았지만 두사람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고, 아슬아슬하게 상대방의 민감한 부분을 건드렸다. '박헌영이 미제의 간첩이었는가'라는 주제였다. 한쪽은 재야사학계에서도 그 문제는 결론이 난 상태이며, '김 주석(상대방의 통일주의적 정치 성향을 배려한 호칭이었으리라)의 권좌는 피로 물들어 있다'고 단언했다. 다른 한쪽은 학내 NL 운동진영의 이론가로 꼽히는 형이었는데, 그는 박헌영의 집에서 무전기 등의 물품이 나왔다고 반박했다.

그때 나는 이것이 여전히 논쟁거리라는 사실에 다소 놀랐다. 나는 제로 베이스에서 이따금 박헌영 사건을 검토해 보기로 했다. 내가 살펴본 공판문헌은 박헌영의 모든 행적이 미국의 의도에 따른 것이라고 강변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북조선은 박헌영과 미국의 연관을 표가 나게 무리해서 꿰어 맞추었다. 소설로 쓰기에도 버거울 만한 조작이었다. 젊어서 선교사 언더운드를 만나서부터 스파이로 기용되었다니(여기서의 언더우드는 원두우가 아닌, 그의 아들 원한경을 가리킨다). 그런 방식으로 태연하게 1950년대 피의 숙청을 시작한 김일성 정권은 인혁당사건을 조작해낸 박정희 정권에게 스승으로 대접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나는 박헌영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다. 남한 좌익의 정통성을 박헌영에게서 발견하려는 시도에도 공감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영수로 있던 조선공산당 뿐만 아니라 조선인민당과 남조선신민당에서도 종파주의를 휘둘러 댐으로써 여운형이나 백남운의 입지를 축소시키고 결과적으로 좌익정당의 협동을 반쪽짜리로 만들었다. 남조선노동당은 좌익3당 각각의 다수파만을 모은 것이었고, 소수파들은 사회노동당을 만들고 그것은 근로인민당으로 이어진 뒤 다시 남북으로 흩어졌다. 10월봉기가 일어났을 때 박헌영은 정작 남한에 없었다. 그리고 그는 남북을 다시 잇기 위해 북조선의 부수상으로서 무리하게 전쟁을 부추기고 밀어붙였다.

한데, 이러한 박헌영의 전쟁책임까지 변호하려는 사람들도 있었다. 김일성이 박헌영에게 죄를 뒤집어 씌운 결과라는 것이다. 당연히 이는 진실이 아니다.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의 진격으로 망명생활을 하던 도중, 김일성이 박헌영을 몰아세우며 잉크병을 벽에 집어던졌다는 일화가 전해져 온다. "박헌영 너 때문에 이렇게 됐다"는 이야기렸다. 물론 김일성이 원래 반전파였던 것도 아니었지만, 전쟁 개시에 가장 공 들인 사람은 박헌영이다. 강정구 교수는 파문을 일으켰던 '통일전쟁' 발언을 하면서, 북조선이 전쟁에서 이겼다면 '사회주의연합정권'이 들어섰으리라는 가정을 던진 바 있다. 아마 그런 정권이 태어났다면 박헌영이 가장 유리한 위치를 점했을 것이다. 남한에 있던 남로당 인맥을 되찾을 수 있었을 테니까 말이다.

한국전쟁에서 '국토완정'의 꿈은 박살났고, 박헌영은 결국 김일성에게 졌다. 이로 인해 한국 좌파들 사이에서 박헌영에 대한 존경과 애틋함이 더 강해진 것 같다. 나는 어느 대학생 단체의 회의에 처음 나갔을 때, 박헌영 때문에 뒤풀이 술자리에서 약간의 곤경에 처했던 적이 있다. 박헌영에 대한 나의 비판이 일제 말기 지도적 위상에도 불구하고 똥짐지고 손수 일했던(벽돌공장에 숨어 살던 시절의 이야기인데, 그 같은 인텔리가 과연 일을 했을지, 또는 해도 제대로 했을지는 나는 좀 의문이다) 그의 헌신을 간과하고 있으며, '당신이 박헌영보다 존경한다는 여운형은 쓸모가 없어 은도끼라는 별명도 있지 않았냐'는 요지였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박헌영에 대한 호평이 근근이 전해 내려져오던 전설에도 있었지만, 남한으로 귀순한 그의 측근 박갑동에 상당히 기대고 있었다는 점이다. 박갑동이 옛날 신문에 썼던 연재는 상당히 반공주의적이었는데 이를 두고 당대의 상황 때문에 불가피한 처사였다고 이해해주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박갑동은 이철승과의 대담에서 해방정국기를 정리하면서 사정없이 밀리는가 하면, 심지어 김일성 가짜설을 뒷받침하는 태도를 취하기도 했다. 그때도 독재정권기였던 것은 아닌데도 말이다. 그것까지 이해해줄 수는 없다.  나는 박헌영의 추앙자들에게 박갑동 씨의 진술에 의존하지 말 것을 언제나 당부하고는 한다.

그런데 내가 박헌영의 추앙자들과 대화하면서, 입밖에 반쯤만 끄집어내던 이야기가 있었다. 나는 남조선노동당 사건이 완벽한 조작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박헌영간첩설은 조작이겠지만, 이승엽이나 이강국을 향한 의심까지 거두어들일 수는 없다. 재미 사학자 방선주 씨의 노력으로 공개된 비밀문서에서 이강국이 CIC(미군방첩대) 요원이라는 새로운 사실도 드러났던 차였다. 거칠게 말해 나는 남로당계열이 예의 버릇대로 천방지축 잘난체하다가 북조선에서 호되게 당했다고, 또한 그중에서 실제 미국간첩도 있었고 덕분에 더 꼴사나워졌다고 생각한다.

박헌영의 추앙자들은 이재유, 이현상, 이강국의 추앙자들이기도 하다. 그러나 일제 말기 노동현장의 활동가들과 권력을 잡으며 승승장구하던 남로당계 인텔리그룹은, 설령 그 둘의 노선이 같다고 치더라도 생활이나 사고의 방식에서 나오는 차이를 준거로 다소 분리해서 바라봐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이강국과 박헌영도 분리되어야 할 것 같다. AP통신은 여간첩으로 마녀사냥 당한 김수임의 아들, 김원일이 꾸준히 어머니의 누명을 벗기는 작업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러면서 이강국이 CIA의 스파이였음도, 그러니까 이강국이 김수임을 북조선의 간첩이 아닌 미국과의 연결고리로서 이용했음도 더욱 또렷해지는 것 같다.

김일성이 정당하게 스파이를 처단했을 뿐이라고 믿는 이들은 자신들이 옳다고 믿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강국이 간첩이라는 것이 박헌영이 간첩이라는 것을 곧바로 입증하지는 않는다. 박헌영 간첩설을 거두든지 제대로 된 실증을 하든지 할 일이다. 일설에는 김일성이 죽기 얼마 전 박헌영의 복권을 주문한 적도 있었다고 하는데, 여기에 관해서도 입장표명이 필요할 것이다. 남로당계열에 지나치게 편향된 쪽도 조금 더 사려깊은 역사인식을 가져야 한다. 북조선에서 불운하게 스러진 사회주의자들을 기리고 싶다면, 남로당계열 말고도 김원봉이나 옌안파도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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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국제음악영화제 메모 3

Film Tent & 2nd Stage | 2008. 8. 17. 21:48 | Posted by 김수민
<청춘의 십자로>

최소한 5~10분은 졸면서 영화를 하나하나 보던 동생이 조금도 졸지 않고 관람하는 데 성공한 영화. 청풍호반에서 야외상영되었고, 관객들은 30초에 한번씩 웃었고, 2분에 한번씩 뒤집어 졌다.

1934년작으로 아직도 전해지는 유일한 한국 무성영화이자 마지막 무성영화로 기록된 작품. 배우 조희봉이 변사를 맡아 재해석된 결과를 드러냈고, 역시 새로운 OST를 현장에서 연주한 악단의 솜씨도 돋보였다.

제천영화제 최고의 화제작이 될 듯하지만 상영은 단 한번이다. 그러나 이 기회를 놓쳤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부산국제영화제 등에서도 선보일 계획이니까.

http://jimff.or.kr/2008/contents/section_detail.asp?sn=52&no=180


<청춘의 십자로>가 끝난 직후 그 자리에서 펼쳐진 힙합 공연은 DJ.DOC, 마브스, 45 RPM 등 부다 사운드 뮤지션들이 출연했다. 다행히 비는 오지 않았고 직전에 상영된 영화처럼 재미난 공연이 됐다. 이들의 한국어 랩이 어째 영화의 변사와 어울리는 듯.

<심아상영>
1. 너바나: 러시아 여성 둘의 우애를 주제로 하였다. 가면급의 메이크업과 맹렬한 테크노 사운드가 어우러졌다.
http://jimff.or.kr/2008/contents/section_detail.asp?sn=44&no=153

2. 도쿄랩소디: 전후 일본인들이 즐긴 노래 11곡(주로 엔카풍이다)을 토대로 만든 드라마들이 엮였다. 심야영화를 세편 보면 한편을 조는 법인데, 대부분의 관객들은 이 영화에서 졸지 않았다. 엽기적이지만 부담스럽지 않은 일본식 유머 작렬.
http://jimff.or.kr/2008/contents/section_detail.asp?sn=44&no=159

3. 쳇 베이커의 초상: 조느라 못 봤다. 앞의 두 영화를 눈뜨고 다 본 대가다. 쳇이 한때 치아가 다 나간 적이 있는데, 그 진상을 밝히는 대목부터 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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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국제음악영화제 메모 2

Film Tent & 2nd Stage | 2008. 8. 17. 21:28 | Posted by 김수민
8월 15일
<레드 엘비스 - 동독의 딘 리드>

엘비스와 유사한 스타일을 가진 가수 딘 리드는 동독 시민이 되어 활동한다. 미국에서 인기를 끌 수 없어서 동독으로 간 기회주의자라는 비난, 평화와 사회주의를 사랑한 뮤지션이었다는 찬사가 엇갈린다.

관람 내내 복잡한 심경을 지울 수가 없었다. 전처의 증언처럼 순간의 열정을 사랑으로 착각하여 결혼와 이혼을 되풀이하고, 아이를 갖는 것을 극구 반대하다 가정의 분열을 불러 일으키는 이 남자는, 공적으로도 너무 허영심이 컸다. 아옌데와 친구관계를 맺고, 팔레스타인의 해방군에도 가담하는 등 국제적인 행보를 보이는 그는 결국 동독의 갑갑한 현실 속에서 쇠락하게 된다. 그는 전체주의로 전락한 현실사회주의에 반항한 것일까, 아니면 어쩔 수 없는 미국적 인간으로서 동독이 답답하고 고향이 그리웠던 것일까?


http://jimff.or.kr/2008/contents/section_detail.asp?sn=46&no=178



8월 15일 밤에는 청풍호반 수상아트홀에서 일렉트로니카 공연을 즐겼다. 비가 어찌나 쏟아지던지...


8월 16일

<블루스를 부르는 시타>

고전 신화 <라마야나>를 재현한 에니메이션. 그러나 네가지의 이야기가 겹쳐지면서 다채로운 구성을 보인다. 하나는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 두번째는 시타-라마 부부의 역경을 담은 <라마아냐>의 줄거리. 세번째는 시타가 블루스를 부르는 뮤지컬. 네번째는 <라마야나>를 둘러싸고 세 남녀가 벌이는 대화. 의외로 네번째 것이 가장 위트 넘치고 흥미진진하다. 옛 뮤지컬에 대한 오마쥬 삼아 깔린 3분간의 '인터 미션'도 재미있었다.(관객 가운데 한명은 진짜로 화장실을 갔다 왔다)

긴장감 없는 스토리 라인과 등장인물들의 전형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흥미진진하다.
내 생각으로는, 이번 영화제에 관객상이란 게 있다면 이 영화에게 돌아갈 확률이 높을 것이다.

뮤지컬에 삽입된 노래는 새로 만들어져 녹음된 것이 아니라, 감독이 친구 집에 얹혀 살던 시절 우연히 들었던 옛날 레코드에서 따온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저작권 문제가 제대로 풀리지 않아서 난관에 부닥쳐 있다고 한다. 감독은 음악계 역시 음반불황의 현실을 저작권료에 기대어 해결하려는 탓에 저예산영화도 과도하게 카피라이트를 행사한다며 아쉬워 했다.

http://jimff.or.kr/2008/contents/section_detail.asp?sn=43&no=138


<재즈 싱어>

1927년 영화사 사상 최초로 제작된 유성영화. 거의 모든 대사가 소리 없이 자막으로 처리되는 등 기존의 무성영화와 거의 비슷했지만, 노래와 몇가지 대사는 후시녹음으로 이뤄졌다. 어릴 적 가출해 재즈 가수로 성공한 주인공이 브로드웨이 뮤지컬과 유대교 성가대에서 선창했던 아버지의 일을 잇는 것 사이에서 갈등한다는 내용.

http://jimff.or.kr/2008/contents/section_detail.asp?sn=47&no=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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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국제음악영화제 메모 1

Film Tent & 2nd Stage | 2008. 8. 15. 17:01 | Posted by 김수민

8월 14일

<로큰롤 인생>

원제는 영앳하트(young @ heart). 제천 시민들은 무료로 관람하는 개막작을 다큐멘터리로 고른 영화제측의 모험에 한표 던진다. 제천 주민들에게 이것이 절묘한 승부수였는지 무모한 도전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http://jimff.or.kr/2008/contents/section_detail.asp?sn=42&no=171

8월 15일

<이상한 나라의 에드워드>

에두아르가 에드워드인 것은 그가 다니는 다국적 회사 때문이다. 이 뮤지컬에서 신입사원 에드워드는 시종일관 자유주의의 승리를 외친다. 주주들이 지켜 보는 가운데 노조위원장이 참여한 룰렛과 로또게임으로 해고의 여부와 규모를 가리고, 마지막에 에드워드가 세계화에 성공했으니 이제는 은하계화를 할 차례라며 우주로 떠나는 장면 등 주주자본주의와 세계화에 대한 직선적이고 통렬한 풍자가 압권.

오늘 아침 이명박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읊은 '자유주의' 타령은 이 영화와 제대로 포개진다. 케인즈주의적 마인드를 가진 재무팀장은 에드워드에게 극빈층의 증가로 회사의 물건이 팔리지 않는다고 따지고, 에드워드는 거지를 위한 판자집을 짓자면서 회사의 스타가 된다. 해고로 인해 생산이 힘들다는 재무팀장의 지적에 에드워드 왈, "한국에 맡기면 된다." (자막만 그런 게 아니라 분명히 대사로 그렇게 나왔다.)

http://jimff.or.kr/2008/contents/section_detail.asp?sn=51&no=126


<세 친구>, <DIY>

동남아 음악영화에 작지만 알찬 기대를 갖게끔 이끄는 단편들.

http://jimff.or.kr/2008/contents/section_detail.asp?sn=51&no=112
http://jimff.or.kr/2008/contents/section_detail.asp?sn=51&no=128


<솔로몬의 노래>

작달막한 키에 하이톤의 목소리. 마이클 코헨이라는 배우의 깊이를 짧은 시간 안에 보여준다. 그가 랍비로서 예배 도중 부르는 노래와 그를 매혹시킨 여가수의 팝송은 상이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코드적 친연성을 가진다. 이런 설정은 세속과 종교, 절제와 쾌락의 스펙트럼에서 균형과 조화를 선택한 솔로몬의 발밑을 든든하게 해준다.

http://jimff.or.kr/2008/contents/section_detail.asp?sn=51&no=116


<영웅은 날개를 필요치 않는다>

팔 없는 DJ를 따라다니는 다큐멘터리. 진지하면서도 소박하기 그지없다.

청력 잃은 DJ의 재기를 다룬 리얼판타스틱영화제 관객상 수상작 <좆됐다 피트 통>을 본 사람이라면 감흥이 또 색다를 것이다. 물론, <...피트 통>은 웃기고 무지막지한 픽션이므로, 두 영화의 공통점은 거의 없지만 말이다.

http://jimff.or.kr/2008/contents/section_detail.asp?sn=51&no=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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