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청소년잡지가 집계한 차트에서, 시나위는 2집에 든 노래들로 1위부터 6위까지를 휩쓸었다. 들국화나 송골매와는 달리 디스토션을 과감히 걸고 나선 메틀 밴드의 시대였다. 그러나 그들은 White Snake의 <Here, I go again>이나 Van Halen의 <Jump> 같은 대중적 히트곡을 남기지는 못했다(이 두곡을 특별히 예로 든 건 빌보드 차트 1위였기 때문이다). 1992년에야 김종서의 <대답 없는 너>와 신성우의 <내일을 향해>가 나왔다. 그리고 그 바로 직전에 서태지가 있었다.
<난 알아요>에서 회오리춤과 함께 몰아친 신서사이저 사운드는 대중가요의 판도를 바꿔 놓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주목할 만한 것은 그가 록의 파수꾼으로서 침투했음을 숨기지 않는 기타 사운드였다. 초반의 랩 파트에서 브리지("난 정말 그대그대만을 사랑했어") 사이에 펼쳐진 신대철(아니면 손무현)의 기타 리프는 서태지의 정체성 그 자체이다. 2집에서 들고 나온 <하여가>는 두말할 나위도 없다. 궁상박치우나 태평소 소리, 스크래칭 등은 하나의 악세사리였을 뿐이고, 곡 전반은 기타를 중심으로 하는 록 사운드가 지배하고 있다.
그 경향은 차트 상위권에는 진입하지 못했지만 두고두고 선동가로 남은 3집의 <교실 이데아>에서 완전히 만개하고 말았다. 서태지는 '아이들'과 함께 기타 사운드에 대한 거부감을 춤으로써 무력화시켰고, 록 매니아가 되는 또다른 경로를 개척하였다. 그러나 3집은 사회적 반향에 비해 음악적 호응을 이끄는 데는 실패했고, 서태지는 4집에서 록과 힙합의 분군행진의 전략을 취한다(<컴 백 홈>+<필승>). 그리고 그것을 끝으로 2년 뒤 그는 록커로 컴백한다.
솔로 데뷔 후 그의 음반에 썩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다. 6집에서 시도한 소위 랩코어, 뉴메틀 사운드는 그의 목소리로 따라하기는 버거웠고, 그에게 맞게 재창조되는 것도 그리 용이하지는 않았다. 더욱이 그는 음반과 음반 간의 장르적 격차를 좁힐 줄 몰랐고, 그가 선보인 사운드는 예전처럼 그때그때의 구미 팝의 시류를 따랐다. 그러나 청자들이 더이상 신선함을 느낄 수 없을 만큼 "세상은 요, 빨리 돌아가고 있다."(<환상 속의 그대> 중에서)
우연히 네이버의 어느 블로그에서 새로 나온 <모아이>라는 곡을 듣고 알아차렸다. 보다 부드러워지고 멜로디컬해진 7집에서야 그는 비로소 중심을 잡은 것처럼 보였지만, 그는 또 한번 변신을 감행했다는 것을. 트집 잡을 생각은 없다. 변신은 서태지의 핵심이기도 하지만, 곡 자체도 꽤 서태지다웠다. 그에게 덧씌워진 과도한 광휘를 벗겨낸다면 더욱 흡족하게 듣고 즐길 만한 작품이다.
1980년대 메틀의 세례를 받은 수많은 뮤지션들이 1990년대 한국 팝의 찬란한 꽃을 피웠다. 이승환이나 유희열도 록커였거나 록매니아였다는 뒷이야기는 그러한 진술을 더 단단하게 받친다. 그러나 이들 뮤지션 상당수는 2000년대 들어 10대와 구별되는 20대용, 또는 20대와 구별되는 30대용의 음악인으로 머문 감이 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대중음악은 외화내빈의 극한에 이른 듯하다. 서태지의 팬층도 확확 넓어지지는 않을 것 같다. 대신, 깊어지기는 할 터이다. 그의 팬은 아니지만, 그가 앞으로 음악을 펼쳐갈 나날이 지난 세월의 이상이 되기를 바라는 이로서, 나는 그가 어떻게 해쳐 나갈지 참 궁금하다. 그가 록 뮤지션이라서 더 궁금하다. 그것도 1980년대 메틀 키드 출신이니. 나는 문닫은지 꽤 오래된, 한번도 가본 적 없는 파고다 극장의, 마지막 헤드뱅어이다.
추신: 록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서태지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댄스 가수'였을 때가 더 좋았다는 사람들에게 나는 권한다. <난 알아요>와 <하여가>를 포함하여 1집과 2집에 든 몇가지 노래를 추억 속에서 떠올리지만 말고 다시 한번 잘 들어보라. 아는 사람은 다 알았지만 모르는 사람은 정말 몰랐던, 새로운 맛을 느끼게 될 것이다. 서태지의 한방은 록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이 록팬으로서의 내 허장성세 섞인 호언이다. 록이 배후에 있을 때와 전면에 나왔을 때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아름다웠는지는 제가끔 느끼고 판단하시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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