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모처럼 일찍 일어나 쪽글 과제 하나를 해결하고, 신촌에서 조조할인으로 <바르게 살자>를 봤다. 영화관을 나와 홈플러스 영등포점의 영풍문고 문래점엘 들어갔다. 규모가 작았고, 도서검색대도 없었다. 지나던 직원이 서점 안에서는 백의 지퍼를 닫으란다. 오늘 옆으로 맨 가방은 새로 산 것인데 손에 익지 않는다. 책을 뒤로 하고 푸드 코너에서 식사나 때운 뒤 지하철 타고 고속터미널역으로 갔다. 지갑 안에는 10만원짜리 상품권 한장이 잠들어 있었다. 모 문고 종로점으로 갈까 하다 오늘은 원을 그리며 신촌으로 복귀하리라고 계획했다. 센트럴시티에 들어서며 죽 도열된 간판들을 보며 왜 내 상품권이 신세계백화점에서도 아웃백에서도 모 문고에서도 통용되는지 알았다.
서점에서 책을 한권 고를 때마다 나는 머릿속에서 덧셈을 계속했다. 값을 잊으면 다시 계산하고, 한권 더 뽑으면 또 처음부터 계산했다. 한참을 돌아다니며 책을 골랐고 아마 9만 2천원쯤까지 올랐던 듯하다. 나는 자신만만하게 카운터에 섰다.
지갑이 없다... 가방을 아무리 뒤져봐도 없다. 지갑이라고 여겼던 것을 꺼내어 보니 어머니가 미리 넣어둔 포스트잇이었다. 직원은 이미 계산을 마쳤고 나는 지갑을 찾겠다며 부랴부랴 매장 안을 뒤졌다. 내 동선을 되짚는 일은 너무 힘들었다. 인문학, 사회과학, 만화, 음악, 소설, 베스트셀러, DVD, 잡지 코너들을 네번이나 훑었다. 어떡하다 빠트리게 된 걸까. 책들과 함께 손에 쥐고 다니다 흘린 걸까. 주머니나 가방에 넣을 때 떨어졌나. 아니면 소매치기 당했나.
지갑에는 현찰이 하나도 없었고, 신용카드 하나와 현금카드 겸용 학생증 하나 그리고 다량의 명함들이 있었을 뿐이다. 카드는 모두 신고했고, 분실도 매장의 대표전화를 통해 알렸다. 그러나 쓴 허탈함을 개워낼 길이 없다. 10만원의 호사를 공짜로 누리려다가 막판에 지갑이 통째로 날아간 내 손에서, 고종석과 장하준의 신간을 비롯한 책들이 모조리 빠져 나갔다. 지금쯤 가판대에서 날 기다리고 있을까. 아니면 다시 있던 자리로 돌아갔을까.
김경준이 돌아온다던데 내 지갑도 돌아왔으면 좋겠다. 김경준이 뭘 갖고 돌아올지는 알 바 아니고, 이명박이 오늘의 내 신세가 되는 것도 자기 업인데, 상품권은 좀 돌아왔으면 좋겠다.
오늘 새벽에 의자에 걸린 옷이 사람으로 보여서
"너 누구야?" 소리친 다음 발로 탁 걷어찼는데
귀신이 지갑을 가져갔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