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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시대 개막

Free Speech | 2007. 12. 19. 23:01 | Posted by 김수민
방금 대통령당선자가 발표되었다. 동생이 문자로 "평정심을 찾았냐"고 물어본다. 오래됐다. 난 자주파가 노회찬을 죽이는 것이 민주노동당내에서 먹히는 것을 보고 모든 마음을 비웠다.

당선을 축하하는 배경음악이 어째 이명박을 위한 것 같지가 않다. 나는 마음이 약간 들떠있다. 지난 2년처럼 정당활동을 하지는 않겠지만, 이명박 정권기 5년동안 나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개인으로서 사회인으로서 미친 바람과 싸울 것이다. 반사이득은 노무현잔당들이 가져갈 테니 진보정치세력은 스스로 일어나야 한다.

이제부터 싸움은 시작되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국민학교에 입학했고, 고등학교에 들어가던 해에는 김대중이 대통령에 취임했다. 군대에 가면서 노무현 정권의 태동을 지켜보았다. 연령대에 따른 정권 체감을 고려하면, 다음 이명박 정권이 가장 지독한 정권인 셈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명확하다. 정동영이 당선되었다면 더 화가 났을 것이다. 날로 먹는 짓은 "돋보잡(돋보이는 잡쓰레기"의 승리보다 더 추악하다. 나는 싸운다. 또 싸운다. 이명박의 지속불가능한 발전에 맞서 지속가능한 싸움에 나선다, 반드시.

노태우=0.9 x 0.36 > 이명박=0.63 x 0.487
이명박 전체유권자 대비 지지율 30.6퍼센트쯤이다. 내 예측이 맞았다. 이 정도라면 5년동안 싸우기 아주 힘들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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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논문 작업이 막바지로 가고 있다. "해방 후 교육주도세력과 사립 종합대의 형성"(1945~1948, 서울). 나의 작업가설과 결론은 일치한다. 그만큼 싱거운 집필 과정이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나는 눈이 번뜩 뜨이는 깨달음에 앞으로 작업할 또 하나의 과제를 설정하게 되었다.

 
이화여대도 마찬가지겠지만 해방 이후 사립 종합대학교의 건설을 주도하고 미군정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미국 유학파 겸 개신교도들이다. 덕분에 연세대와 백낙준은 숭실대 또는 함석헌과 대조되는 역사를 겪었다. 일제시대 숭실대는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폐교당했고, 해방 후에는 서울로 옮겨오는 바람에 비슷한 역사를 자랑하는 연대, 이대보다 위상이 뒤떨어지게 되었다. 함석헌은 퀘이커교 목회자로 신의주 반공의거를 주동한 자유주의자였는데, 월남하고 나서도 독재 정권과 투쟁하게 된다.

  물론 연세대학교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연희전문학교 시절 강제로 학교의 명칭과 교육과정이 변경되는 시련을 겪고, 일제는 광혜원의 원두우 동상을 전쟁물자로 징발하고 그 자리에 흥아유신기념사업회비를 세웠다(동양사학입문 수업 때 백영서 교수가 그 비석의 탄생배경을 추적하라는 숙제를 내린 적이 있었지). 원두우의 아들 원한경은 미국으로 외유했고, 백낙준은 조선임전보국단과 미영타도좌담회에 참여한다.


  백낙준은 해방 후에도 교육주도세력의 대표자격으로 활동하며 연희전문을 종합대학교로 승격시키고 초대 총장 자리에 앉는다. 1946년 9월부터 한해동안은 재정 확충을 위해 미국으로 건너가는 등 원조 세일즈 총장의 면모를 뽐내고, 한국전쟁 당시에는 총장직을 유지하면서 문교부 장관을 맡는 최고의 관운을 과시한다.


그런데 장준하의 <사상계>는 이 시기에 바로 백낙준과 미대사관의 후원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장준하 그 자신도 CIA의 전신인 OSS에서 훈련을 받았고 개신교 목사이며 김구의 비서였다가 이범석의 족청에 잠시 가담했던 친미반공주의자였다. 그가 잠깐이나마 5.16을 옹호했던 것에도 이러한 배경이 깔려 있다. 하지만 장준하는 점차 자신의 한계를 벗으며 통일을 부르짖는 선지자로 변신한다.


  장준하 사후 통일운동가로 선 문익환은 '민주연세'로 불리우던 학교에 '통일연세'라는 별명을 붙인다(1987년 연대 중도앞 이한열 장례식에서 터져나온 그의 절규는 근현대사 최고의 연설로 꼽힌다). 특수성을 강조하는 '민족고대'에 비해 좋은 의미든 아니든 보편성을 표방하는 연세가 '통일'이라는 특수한 옷을 입게 된 것이다. 북조선의 입장에서 연세대는 특이한 학교일 것이다. 연대는 (그들이 미제의 스파이라고 여기는) 박헌영의 배후인물인 원한경이 있었던 곳인 동시에 문목사의 흔적이 남은 학교이기도 하다. 5년 전이었던가, 운동권 애들을 따라다니고 구슬리는 게 일이었을 어느 교직원이 금강산에 방문했을 때, 직장의 이름을 대고 안내원에게 예상에 없던 환심을 산 적도 있었단다.


  지금 연세대학교는 하바드대학이 100여년전에 자율화했던 채플을 의무화하고 있을 만큼 근본주의적으로 개신교를 섬기고 있으며, '글로벌 연세'라는 이름으로 세계화를 지지하고 있다. 이 학교가 얼마나 친미적인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하기야 한국에서 권력을 가진 단체들이 다 그러하다). 게다가 연세대학교의 재단이사장은 조선일보 전 회장이었던 방우영이다.


  한편으로 연세대는 재미있게도 김대중도서관을 비롯해 김대중기념사업을 주관하고 있다. 정치외교학과에는 문정인, 김기정이라는 햇볕정책의 전도사들이 포진해 있다. 엔엘 학생운동의 메이저 캠퍼스이기도 하지만, 개신교도로서 사회참여를 하는 학생들(정치적으로는 중도, 종교적으로는 보수에 가깝다. 평택사건은 안타깝지만 동성애는 궁휼히 여길 뿐 인정의 대상이 아니라고 한다) 역시 통일문화제를 개최하는 등 통일에 관심을 보인다.


  이렇듯 연대에서는 미국과 통일의 의미가 교차하며 만난다. 혹 이것이 노무현이 말하는 '친미 자주'의 정체일까? 연대의 역사로부터 나는 '종전선언 서명자 이명박'의 실현가능성을 헤아려 본다. 우습지만 웃기지는 않는 상상과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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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걸스

Listen to the 무직 | 2007. 12. 13. 03:33 | Posted by 김수민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가장 엉성하고 평범하게 나온 원더걸스의 사진. 처음엔 누가 장기자랑대회에 나와서 흉내내는 줄 알았다. 아래 각도로 찍은 탓일 게다. 무대 뒤편 화면에 비친 모습을 보면 조금 더 근사하다.



처음 <텔 미>를 들은 건 추석 귀성길 버스 안에서였다. 나는 그때 <아이러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상황이었다. 만날 듣는 거라고는 록이고 재즈인 데다가 라디오도 KBS1을 주로 틀다보니, TV나 인터넷이 없는 방에서 살았던 나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텔 미>의 뿅뿅거리는 사운드를 들으며 처음 든 생각은 "구리다"는 느낌이었다. 나중에야 어떤 누리꾼이 예전에 나온 <골목길>(양동건이 리메이크했었던)을 연상시키는 복고 또는 촌빨 사운드라고 해석하는 것을 읽고 좀 더 맛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후렴구를 들으면서 내가 아는 한 친구가 불쌍해졌다. 나와 대학 동기인 그 녀석은 최근에 뜬 어떤 팀에서 후렴구에 'tell me'라는 가사가 들어가는 노래를 부르고 있다. 내가 들락거리는 싸이클럽에도 여름에 한동안 BGM으로 흐를 만큼 히트했던 노래였지만, 라디오에서 우연하게 몇번 <텔 미>를 들으면서 그 친구가 더욱 불쌍해졌다. 아무리 떠도 못당하는 상대가 있구나... 난 그때도 원더걸스를 몰랐다.

원더걸스를 동영상으로 본 건 10월쯤이었는데 그제서야 왜 노래가 히트했는지를 깨달았다. 초반부의 살랑거림에 탄식이 나왔다. 소녀시대에 꺾일 원더걸스가 아니었다. 다만 원더걸스를 두고 왜 '소녀'라고 하는지는 처음에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들이 10대일지라도 소희를 제외하면 귀여운 컨셉트는 아니지 않는가? 그리고 스무살 전후의 가수는 흔하지 않나? 그러나 알고 보니, 원더걸스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어릴 뿐더러 키도 더 작았다.

멤버들의 이름은 대충 알지만 얼굴과 매치를 시키지는 못한다. 멤버가 몇명인지도 가끔 헷갈리고 그들 중 두명은 유독 -특히 따로 사진을 봐을 때- 분별이 어렵다. 게으르고 무관심한 탓이기도 하겠지만 시나브로 내가 꼰대에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 판국에 눈에 잘 띄는 건 소희다. 제일 어리고(맞겠지?) 쌍꺼풀 없고, 안그래도 불어 터지기 일보직전인 통통한 얼굴(그러나 그것도 얼굴 골격이 작기 때문에 젖살이 돋보이는 것이기도 하고, 또 대중들에게 용서를 받는 것일 터이다)에 바람을 불어넣는 습관. '만두소희'가 왜 그리 인기인지 알기도 전에 모를 일이었지만, 이제는 차츰 나도 정을 붙이는 중이다. (여담이지만 '호빵맨' 노회찬의 대학생 팬클럽 1대 회장이었던 나는 최근에 심상정 의원에게 '만두상정'이라는 별명을 붙여 퍼뜨리려고 했다.ㅋㅋ 물론 소희의 만두와 심 의원의 만두는 크기와 모양면에서 매우 다르다.)



 
두번째로 눈에 띄는 건 랩을 하는 멤버이다. 나의 무식을 자랑하기 위해 이름은 아직 검색하지 않았다. '그녀'는 짧은 치마를 입고 낮고 굵은 목소리를 선보이는 전형적인 '섹시 이미지 전담' 멤버이다. 가요계에 이런 캐릭터가 오죽 흔한가. 그럼에도 눈에 띄는 건 자세히 보면 의외로 어딘가 코요테의 신지와 비슷하다는 인상을 받기 때문이다. "버릇없이 말 툭툭 내뱉고 야하게 입고 다니지만, 알고 보면 너, 털털하고 어리지?" 이런 반응을 유도하는 것은 아닐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얘가 걔다

어떤 캐릭터든 실재하고는 상관없이 어차피 화면에서만 연출되면 그만인지라 섹스 걸 이미지는 다분히 '만들어지는 것'이다(옛날 룰라의 김지현은 다리에 알이 굵다느니 토끼 문신이 있다느니 하는 설까지 퍼뜨리면서까지 1집활동기간동안 짧은 치마를 기피했지만, <날개 잃은 천사>를 내놓으면서 '섹시하다'를 칭찬의 반열에 끌어올리고 나중에는 <섬머 타임>에서 정말 막 나갔다).  

팬도 아니고 앞으로도 아니겠지만 원더걸스가 TV에 나오면 약간의 기대심리를 가지게 된다, 그리고 원더걸스가 아닌 이들이 춤추고 노래한 <텔 미>는 아무리 누리망에 올려봤자 나는 안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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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이건

Film Tent & 2nd Stage | 2007. 12. 11. 01:37 | Posted by 김수민

(스포일러 있음)

며칠 전 <색/계>를 봤다. 섹스 씬은 생각보다 아크로바틱하지 않았고, 그 노출수위에도 불구하고 강렬한 충격으로 남지 않았다. 야릇한 비애를 느낄 만한 장면이었지만 (관람을 둘러싼 내 개인적 맥락 때문에) 그냥 흥미롭게만 봤다.

영화관을 나서는 기분이 찝찝했던 건 채석장에서 인물들이 처형되는 장면 때문이었다. 미처 원망마저 표현하지 못한 눈길을 동료들이 보내는 동안, 고문받은 흔적도 없는 여주인공은 담담하고도 여전히 환상에서 깨어나지 못한 표정을 감추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의 어깨 너머로 아찔한 낭떠러지가 보인다. 달리 말해 이 장면이 내게 가장 인상적이었다는 것이다.

하여간에 철없고 모험주의적 리더를 만나면 여러 사람 고생하게 된다. 여주인공의 책임은 그보다 적다. 작전을 중지시키지 못한 배후조종자의 어리석음도 한몫했다. 요즘 한산해진 대학 운동판에서 기침깨나 하는 애들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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