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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NING 11

Free Speech | 2008. 10. 1. 00:25 | Posted by 김수민

어맛, 씨발!('신연예인지옥' 정지혁 병장 목소리로) 조선시대정치사상에 관한 수업 발제가 다음주 화요일이라는 걸 오늘 알았다. 분량이 짧긴 하지만 to be frank with you하자면 추천 참고문헌을 이제야 읽기 시작했다. 최근 들어 보고서나 소논문을 일절 쓰지 않았던 탓에 두려움과 멀미가 밀려온다. 그럼에도 나는 필요한 책을 챙겨 목요일 오전에 집에 내려갈 예정이다. 그날 수업은 휴강이고 이튿날은 개천절인 덕이다. 나는 집에서 무엇을 하는가? 발제문을 쓰고 프리젠테이션 작업을 하겠지만, 며칠 전부터 잡은 계획의 중심은 위닝11(플레이스테이션 축구오락)이다.

나는 도박을 전혀 하지 않는다. 스포츠라고는, 동호회에 가입하거나 떼거지로 몰려다니는 친구가 없어, 조깅과 혼자하는 농구 뿐이다. 나한테 당구를 가르쳐줄 사람은 없고, 탁구장은 부근에 보이지 않는다. 볼링? 배우고 싶은데 역시 함께 칠 사람이 부재. 내게 가장 익숙한 종목은 배구지만 그걸 어디서 누구와 한담. 바둑은 머리 아프다. 스타 크래프트, 위니지 등 PC게임은 보기만 해도 어지럽다. 이렇다 보니 잡기라고는 술먹고 노래방가는 것밖에 없다. 나는 내 인생에 대해 돌연 위기의식을 느꼈다.

고향 집에는 꽤 근사한 엑스 박스 기계가 있다. 이걸 처음 구입하면서 같이 사들인 게임이 DOA와 위닝11이다.(언제나 그렇지만 울 집안에서 사는 넘은 동생이고 나중에 붙잡고 앉아 있는 건 나다. 이 기기와 게임도 마찬가지.) 처음엔 DOA에 잠시 열을 올렸으나 어렵지도 쉽지도 않았다. 위닝11은, 마음먹은대로 되지 않았다. 그나마도 서울 원룸으로 돌아오면 즐길 수 없었다. 그러다 지난 5월 고향에서 교생실습을 하며 사정이 바뀌기 시작했다. 물론 한달 내내 '아마추어' 등급을 맴돌았고 짜증이 받치는 시점에 게임기를 끄는 일상이 반복됐다. 그러나 역시 노력하면 안 되는 것이 없다! 게다가 나는 7월 말부터 방학 끝까지 마음껏 위닝11에 매달릴 수 있었다. 나의 오마니께서는 어려서 게임을 못한 걸 이제야 한다고 오히려 위로와 격려를 해주셨다. ㅋㅋㅋ

나에겐 세명의 라이벌이 있었다. 처음엔 동생이 제물이 됐다.  그 다음은 내 외사촌동생(16살). 그러나 거의 언제나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끝에 얄미운 승리를 쟁취하고선, 밖에 나가 담배를 피던 나를 가리켜 외삼촌에게 "수민이 형 뿔났다"고 일러두던 그도 희생자의 반열에 합류할 수밖에 없었다. 그 아이 집에도 축구게임이 있었지만, 나도 방학동안 열심히 했거덩~ 왼손 엄지 손가락이 얼얼할 정도로.

세번째 라이벌이 내 친구 조 아무개라는 친구인데, 2학기 개시와 함께 나의 도전을 받고 "왜 괜히 기분 잡칠 일 벌이냐"며 킬킬거리더니 바로 깨졌다. 이 친구와 나는 플레이 스타일이 매우 대조적이다. 이 친구는 볼 점유 시간이 길고 패스를 많이 돌리는 편이며 몸싸움이 잦다. 나는 기습공격이 잦고 슛도 그 친구보다 많이 쏘며 횡패스보다 종패스가 압도적으로 많다. 그는 페널티 에어리어에 들어오는 빈도는 잦으나 슛의 수나 성공률은 떨어지는 편이다. 반면 나는 수비가 약하다. 방향키 조절이 아직도 엉뚱하게 이뤄지는 것도 한몫했다.  

수비 실력은 하루 아침에 되는 게 아니라고 판단한 끝에 나는 공격기술을 몇개 더 연마했다. 유저들은 알겠지만 기능을 아는 거랑 손에 익는 거랑은 전혀 다르다. 나는 몇가지만 취사 선택해 집중 연습을 했다. 특히 코너킥, 프리킥에서의 세트 플레이와 일대일 상황에서의 대처를. 그리고 조금 뚫릴라 치면 바로 슈팅을 때렸다. 세골 먹으면 네골 넣는다, 슈팅 성공률이 10프로라도 이기면 그만이다,라는 그야말로 무식한 모토 하에서의 연습이었다. 작전은 성공했다. 조 아무개는 개학 후 첫 시합에 져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버스를 탔다. 그 다음에 그는 또 졌고, 술 먹다가 다시 플스방에 가자고 조른 끝에 또 깨졌다.  그 이후로도 몇판을 더 벌였지만 그가 계속 게임비를 물어야 했다. 9월 한달동안 그의 승률은 30프로가 되지 않은 데다가 서너골차로 지기까지 했다.

그러더니 이제는 실실 뺀다. 젠장, 너 말고 서울 거주자 중에 나랑 위닝할 사람이 없단 말이다! 발제 예정에도 불구, 집에 내려가야겠다는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다. 게임기하고 한판 붙어야겠다. 역시 게임기랑 붙어야 실력이 늘고, 특히 수비가 발전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등급은 '아마추어'에서 '레귤러'로 올라갔다. 그 등급 모드에서, 코트디부르아르를 골라 이탈리아를 운영하는 게임기를 이길 만큼은 되니, 남들은 얼마 만큼 하는지 도통 알 수 없지만, 크게 쪽팔리지 않을 실력은 된 것 같다. 프로페셔널등급으로 게임기와 강팀 대 강팀으로 붙으면 아직 와장창 깨지는 수준이지만.

내가 위닝11으로 친해진 사람은 다름이 아니라 드록바다. 자취방에 TV가 없어 드록바의 경기는 한번도 보지 못했지만, 위닝11을 통해서 그리되었다. 코트디부르아르나 첼시를 선택해서 경기를 하면, 안 시켜도 잘 구사하는 드록바의 발놀림과 최전방에서도 상대방 풀백을 상대로 수비를 벌이는 그의 플레이에 감탄하게 된다. 위닝11 커버모델은 C.호나우두지만, 천하무적으로 만들어진 건 드록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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