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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빌의 헤비메탈 스토리>

Film Tent & 2nd Stage | 2009. 8. 18. 02:47 | Posted by 김수민
크리스 상그리디. 주다스 프리스트, 씬 리지, 잉베이 말름스틴 등의 음반을 프로듀싱했다. 그는 앤빌의 데모테잎을 듣고 즉시 녹음에 들어갔다. 앤빌은 1982년 혜성과 같이 나타나 스래쉬 메틀의 길잡이 노릇을 했던 밴드다. 메탈리카, 앤스랙스의 멤버들이 그것을 증언한다. 그러나 오늘날 그들은 듣보잡 밴드일 뿐이고, 멤버들은 투 잡을 통해 생활을 영위해야만 한다. 앤빌은 메탈리카에 비하면 사운드가 묵직하지 않다. 1990년대 이후 새로운 트렌드와 어울릴 만한 요소 또한 없다. 스래쉬 메틀 이외에도 록계에는 이와 같은 밴드가 다수 존재하고, 많은 밴드들이 고작해야 원 히트 원더로 사라져갔다. 그들의 일반된 공통점은 독창성의 부재나 틀에 박힌 양식 등인데, 선구자인 앤빌에게는 그와 같은 비판도 붙일 수가 없다. 앤빌은 그야말로 시대가 낳은 희생양이었던 셈이다.

멤버가 우는 장면에서조차 객석에서는 웃음소리가 들릴 만큼 경쾌하고 밝은 영화였지만, 나는 식구들마저 꿈깨야 한다는 식으로 냉소하는 가운데서도 음악을 이어가려는 그들의 모습에 눈물이 터졌다. 사실 주변인들의 비웃음은 지극히 합리적인 것이었다. 전설로 남지 못하면, 혹은 금방 데뷔했다면, 1980년대 스타일의 헤비메틀 밴드가 설 자리는 없는 게 현실이니까. 크리스 상그리디는 이들의 음반이 나와야만 한다는 당위 하나로 작업을 결행한다. 원년부터 계속 밴드를 지켜온 두 멤버는 중간중간 눈물나도록 티격태격하며 끝내 음반을 완성하고, 그것을 EMI 관계자는 팔지 못하겠다고 밝힌다. EMI의 입장도 이해가 갔기 때문에, 난 오히려 더 분통이 터졌다. 지나가다가 또 한번 정진영씨와 영화감독 이명세씨를 스쳐 지났는데, 귓전을 스치는 얘기로는 그들도 큰 감명을 받았던 것 같다. 이 영화가 폐막작으로 선정되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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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통신

Film Tent & 2nd Stage | 2009. 8. 14. 19:10 | Posted by 김수민
찌는 듯한 무더위가 제천에도 찾아왔군요. 어제 개막작 상영 중간에 잠시 비가 내렸습니다만, 대세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어제 개막작에는 제천시민들은 무료로 입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인파가 꽉 들어찼고 저는 하마터면 서 있을 뻔했습니다. 영화 시작 전에 사람들이 조금 빠지고 자리가 났습니다. 하지만 뒷자리인지라 어정쩡하게 영화보는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 차 빠지는 소리 등등으로 제 귓전은 엉망이 되고 말았습니다. 영화 중반에 비가 내리더군요. 예정에 없던 비를 사람들이 피하고 있는 동안, 저는 우산을 쓰고 유유히 앞자리 좋은 곳으로 가 신문지를 의자에 깔고 앉았습니다.

올해로 네번째 제천영화제 방문이라 이미 두 군데의 찜찔방을 겪은 바 있습니다. 이번에는 제3의 찜질방을 팠습니다. 어제 밤 황토방, 숯방, 산림욕방, 소금방, 자수정방을 골고루 떠돈 후 새벽 3시경을 눈을 감았습니다. 뒤척뒤척하면서 6시간쯤 잤을까요, 충분히 잤다고 생각했지만, 영화를 보면서 그게 아니란 걸 깨달았습니다. 록페스티벌에 가면 비와 싸워야 하고, 영화제에 가면 졸음과 싸워야 합니다.

현장음들을 조금 녹음해두고 있습니다. 서울로 복귀한 다음, 내주 월요일이나 화요일 인터넷 라디오방송 통해서,영화제에서 겪었던 일과 나왔던 영화나 뮤지션들을 소개하겠습니다.

이따금 길거리에서 녹음기를 꺼내고 있으면, 카메라 들고 있는 것보다 사람들이 더 많이 쳐다보는군요. 굉장히 난감합니다. 게다가 잡을 수 있는 것도 한정되어 있죠. 극장 옆거리의 공연소리는 녹음했지만, 저글링하던 아이들은... 어쩔 수가 없더군요. 전원이 꺼진 상태에서 녹음을 시작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탓에 놓친 소리들도 많습니다. 심지어 어제는 고속버스에서 졸라 음악을 쳐듣다가 배터리가 나가서, 개막식 소리는 하나도 담지 못했죠.

영화표를 예매하는 도중에 잠시 혼선이 생겼습니다. 어쩐 일인지 예매번호를 쳐도 내역이 나오지 않는다는군요. 그래서 주민번호까지 쳤지만,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런... 제 주민등록번호 뒷자리 앞번호를 '2'로 친 겁니다. 자원활동가 분께서는 밤을 새서 제 정신이 아니라고 변명하셨습니다. 예매내역을 보더니 개막작인 <솔로이스트>에 대해 물어왔습니다. 자활 분들은 영화사랑으로 나섰지만 정작 보고픈 영화를 보지 못하는 아픔이 있지요.

제가 오늘 첫 관람한 영화는 <폴섬 감옥의 쟈니 캐쉬>입니다. 컨트리 사상 최고의 뮤지션인 쟈니 캐쉬가 교도소에 들러 공연하는 내용입니다. 공연실황보다는 제소자들과 맺었던 관계에 중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교도소를 주제로 만든 노래들의 가사가 압권입니다. 컨트리는 한국 사람들도 좋아할 만한 음악 양식인데, 문제는 가사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영어니까 다가오지를 않는 거죠.

첫 영화를 관람하러 오른 엘리베이터에 배우 정진영씨가 같이 올랐습니다. 안 그래도 에이미트가 김민선 씨를 압박하는 데 대해 항의하는 글을 오마이뉴스에 올렸던 차입니다. 이런 데서 흔히 마주칠 만한 연예인들과는 다르게, 왠지 더 반갑게 느껴지네요.

두번째 영화는 <전설의 베이시스트, 찰리 헤이든>입니다. 오넷 콜맨, 키스 자렛, 칼라 블레이와의 협연이 아름답게 이어졌는데, 사실 그의 음악적 모태는 컨트리였다는 게 흥미로웠습니다. 그가 인권운동에 참여하는 부분도 나옵니다. 포르투칼 공연 와중에 식민지해방운동을 옹호했다가 잠시나마 감옥신세까지 졌다는군요. 그 무대에서 내려오는 길에 마주친 마일스 데이비스와 헤이든은 이런 대화를 나눴답니다. "미친 놈아!" "마일스 잘 지내죠?"

저녁을 가볍게 해결했습니다. 배가 아니라 비용이 가볍습니다. 빨간오뎅 4개, 튀김 3개, 떡볶이 등등 순대만 빼고는 다 1000원입니다. 종이컵에 담긴 닭강정은 500원이구요. 닭강정 하나, 빨간오뎅 2개, 튀김 3개 먹고 2000원냈습니다. 숙박료는? 어제처럼 찜질방으로 갈 예정입니다.

설문지 돌리던 사람이 저더러 혹시 게스트냐고 묻더군요. 가슴에 ID카드 없는 거 안 보이시나. 혼자 있으니까 그렇게 보이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내일은 제게도 일행이 생깁니다. 세미나를 여기서 하기로 했거든요. 그 친구들도 온 김에 영화 한편 볼 겁니다. 맛집을 좀 뒤져보고 있습니다. 500원짜리 닭강정도 먹여주고 싶지만, 황기순대, 곤드레밥 등 명물이 많은 곳이 제천이거든요.

잠시 후 8시에 <할리우드로 가는 지름길>을 관람합니다. 아까의 두 영화와는 다른 픽션(드라마)입니다. 말도 안되는 녀석들이 떠볼라고 수작부리다가 진짜 떠버린다는, 대충 그런 내용으로 알고 있습니다. 기대 만빵입니다. TTC 극장 옆 모 PC방에서 숨인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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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한국 메탈로의 여행

Listen to the 무직 | 2009. 8. 12. 05:13 | Posted by 김수민
MP3는 아직도 찝찝하다. 거스르기 불가능한 시대의 폭풍에 음반시장이 뒤흔들린 것쯤이야 별스럽지도 않다. 알게 모르게 바뀐 것은 우리네 음악듣는 문화다. 내가 어릴 적만 해도, 불법복제되어 리어카에서 팔리던 '최신가요테이프'를 지나, 국민학교 고학년이나 중학교 입학 즈음이 되면 '독집 음반'을 소유하는 게 통과의례였다. 날을 잡아 시내의 상점에 들러서 산 테이프를 카세트에 꽂으면 뭐가 튀어나올까 싶어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러나 이젠 검색과 클릭으로 어지간한 노래는 호출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그래도 나는 CD의 음질이 우월하다는 사실, 그리고 얼마간의 소유욕과 의무감으로 레코드샵에 들른다.

나는 그러나 '소리바다'의 적극적인 유저이기도 하다. 떳떳하다. 여전히 CD사는 게 낙이고, P2P를 유료로 사용해서기도 하지만, 더이상 들을 수 없는 노래들을 접할 때 제법 괜찮은 도구가 '소리바다'이기 때문이다. 내가 열일곱살이던 해, 박준흠의 <이 땅에서 음악을 한다는 것은>이 나왔다. 언제나 궁금해 했지만 엿보지 못한 세계가 펼쳐졌다. 대표적인 것이 1980년대의 헤비메틀이다. 하지만 시나위 2집을 제외하고는 시중에서 음반을 구하기가 힘들었다. 친척 형에게 얻은 시나위 1집은 원래의 그 음반이 아니었다. 대부분 임재범 아닌 보컬리스트가 불렀다. 하지만 중간중간 들리는 임재범의 노래에, 신대철의 기타 굉음에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고, 친구에게 연락해 전화통을 스피커에 갖다 댔다. 우리는 4분동안 말 없이 트랙 하나를 들었다. 아시아나도, 백두산도, 나중에 인터넷에 오른 MP3로 들을 수 있었다.

스무살이 넘어 H2O, 카리스마, 외인부대까지 겨우겨우 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몇가지 음반이 재발매됐다. 아시아나, 스트레인저, 락 인 코리아, 프라이데이 애프터눈....... 더 찾아듣고 싶었던 한국 메틀 음반이 있었지만, 시나브로 잊혀져갔다. 그러다 지난해 <이 땅에서 음악을 한다는 것은>이 업그레이드되어 <한국 음악창작자의 역사>로 나왔다. 나는 <이 땅에서...>의 처리를 두고 고민했다. 한창 음악을 듣기 시작한 친구에게 줄까...... 하지만 빨간 밑줄까지 그어가며 고1시절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열나게 읽었던 그 책을 차마 남에게 주지 못하고, 헌책은 헌책대로 둔 채 새 책을 샀다. 나는 최근, 이 책을 따라 옛 한국 메탈로의 여행을 떠났다. 지도는 '소리바다'였다. 음반이 아닌 MP3로 들었으니 감상평을 올리기도 쑥스럽고, 저작권 문제 때문에 업로드도 막혀 있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고 판매되지도 않은 음반이라 부끄럽지는 않다.

다운타운 1
집(1993). 1998년이었나, 라디오에서 처음 들었다. 김세황과 정한종이 있었던 팀이라는 이유만으로 충분히 귀가 쏠렸다. 당시 김세황과 정한종은 국내에서 가장 잘나가던 두 록밴드에서 각각 기타와 베이스를 치고 있었다. 가사가 다소 식상하긴 하나, 음악적 완성도에서 그리 흠잡을 구석이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댄스면 댄스, 메틀이면 완전 메틀인 한국사회에서 성공하긴 힘들었던 음악인 것 같다. 저주받은 명작이다. 보컬인 정해연은 검색했더니 정선연과 동일 인물이란다. 1999년께 드라마 OST로 알려진, 임재범과 목소리가 비슷하다던 그 가수 말이다. 경쾌하게 찢어지던 그 목소리가 어떻게 그리되었을까. 믿기 어려운 일이다.



자유(1991). 옛날 시나위와 같은 메틀 음악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블루스 헤비록 그룹이라고는 한다.  활동중지 후 신대철이 김영진, 오경환과 함께 만든 밴드다. 3인조 구성에서 알 수 있듯 크림이나 지미 헨드릭스를 이상향으로 삼았던 듯하다. 원래는 그런지 스타일로 가려 했는데, 원안대로였다면 또다른 측면에서 굉장한 프로젝트가 되었을 것이다. 곡들은 난해하지 않다. 박상민이 불러 인기를 끈 <멀어져간 사람아>의 원곡이 수록되어 있다. 여기서 들리는 신대철의 보컬은 의외로 상당히 매력적이다. 나는 여기서 훗날 그와 함께할 보컬리스트의 어렴풋한 흔적도 발견했다.



신대철 1집(1990). 처음이자 마지막인 신대철의 솔로 음반이다. 평론가 성기완은 신대철의 음악세계에 깔린 정신을 장자의, 그러니까 맏아들의 의식이라고 표현했다. 신대철은 시종 시나위를 지키며 블루지와 헤비라는 기반만 남겨둔 채 끊임없는 작은 변신을 시도했는데, 그가 하고 싶은 음악들이 어떤 것인지는 아직도 알기는 어렵다. 보여준 것 중에서 찾기 어렵다는 게 아니라, 보여주지 않은 것 중에 어떤 게 있을까 궁금하다는 뜻이다. 앞장서 변화하다가도 보수적인 자세를 고수해야 하는 그의 위치가 그야말로 맏아들답다. 다만 신대철 1집은 의외성과 일탈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음반은 신대철 혼자 작업했으며, 기타를 뺀 나머지 파트를 모두 미디로 채웠다. 시나위의 여느 음반보다 스케일이 컸다. 이번에 모은 음원들 가운데 가장 큰 수확이다.



1988년에 나온 시나위 '베스트 컬렉션' 가운데 신중현이 작곡한 음원들. 시나위의 디스코그래피 가운데 가장 덜 기억되는 음반이다. 하지만 내 기억으로 팔리다 남은 레코드가 꽤 오랫동안 매장에 남아 있었다. 예전 크래쉬의 안흥찬은 한국록에는 계보가 없고 구멍만 뚫려 있다고 주장했다. 이를 감안하면, 신중현과 신대철, 김종서의 조우가 담긴 본작은 역사적으로는 꽤 가치가 있다고 해야겠지. 하지만 그 결합이 화학적이라기보다는, 신중현식 올드패션 하드록이 신대철과 김종서의 손을 빌려 헤비메틀 버전으로 나온 정도에 가깝다. 어쨌거나 신대철은, 신중현의 흔적을 고이 간직하면서도 도도한 개성을 나타내고 있다. 가족관계를 통해서나 겨우 이어질 수 있었던 한국록의 계보!




작은하늘 2집. 1집에서 각각 보컬과 기타를 맡은 김성헌, 이근형은 시나위 3집과 카리스마 1집으로 흩어지고, 빈자리를 김재기와 이근형의 동생인 이근상이 물려받는다. 내게는 역사적으로만 의미있었던 음반이다. 김재기는 부활의 그 서정적인 김재기임이 의심스러운 수준이었다. 곡들이 부활보다 세기도 하지만, 한껏 높으나 불안하고 갈라지는 목소리가 부담스럽다. 김재기는 부활의 후신인 게임의 당시 보컬리스트와 맞트레이드되었다고 하는데, 그 이야기를 라디오에서 들려줬던 이가 바로 게임에서 작은하늘로 갔던 신동윤이다. 그는 이근상과 '내일뉴스'를 결성해, 신성우라는 이름으로 화려하게 데뷔한다.



바퀴자국 1집(1987). 뮤즈에로스 1집(1988). 천둥번개(1991). 바퀴자국은 당시 메틀 밴드와는 다르게 3인조로 구성되었다. 그래서인지 비교적 깔끔하고, 메틀보다는 송골매나 전영록에 가까워 보이며, 결국은 거칠지도 않지만 정리되지도 않은 듯한 어정쩡한 느낌을 준다. 뮤즈 에로스는, 파고다 일대 메틀 필드에서 잔뼈가 굵은 심상욱이 결성한 것치고는, 실망스러웠다. 천둥번개는 스래쉬메틀과 소위 바로크메틀이 어지럽게 섞여 있고, 사운드가 몹시 조악하다(한국 록의 계보에 구멍이 나 있다는 안흥찬의 견해는 본인과 그 선배들과의 사이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 크래쉬는 '송설' 등에서 선배들의 영향을 받았겠지만, 음반의 질에서 선배인 멍키 헤드나 한가람 그리고 천둥번개와는 비교되면 안될 만큼 도약했다. 크래쉬는 크래쉬에서 출발했다고 할 수밖에).



작은하늘 2집을 포함해 위의 음반 네 개로, 그 당시 버텨내면서 발매에까지 성공했으니 굉장한 밴드들이라는 소싯적 내 상상은 남아 있는 부분마저 허물어졌다. 1980년대 한국대중음악계는 헤비메탈을 제대로 소화하지도 못했지만, 젊은 기운으로 덤비는 메탈 키드를 무작정 막아서지도 않았던 시대였던 걸까. 이 음반들이 내 기대를 훨씬 밑돌 수밖에 없었던 건 단지 녹음기술 탓이 아니었다. 한국 메틀의 태동 직전에 나왔던 마그마의 음반도 음질은 좋지 않았지만 나름대로의 개성이 강했고 흠잡을 곳이 별로 없었다. 일전에 박준흠이 강조했듯 가사 측면의 문제가 컸다(가사 문제는 당대에 날렸던 인기 밴드에서도 나타난다). 뮤즈 에로스의 경우 '한민족'을 주제로 차별화를 꾀했지만 구미에서 온 메틀과 민족주의적 가사의 접목은 이미 무리수에다가 준비되지 않은 채 성급히 이뤄진 일이었다. 악곡적 문제도 못지 않다. 무엇보다 자신들이 하려고 했던 음악이, 그들의 야심이 도무지 드러나지 않는다. 몇몇 메틀 음반의 조야함은 그래서 단지 녹음기술 탓으로 돌릴 수 없다. 연주가 뛰어나지 않다고 해서 좋은 음악을 만들 수 없는 건 아니고, 또한 연주가 뛰어나다고 해서 바로 독창적인 세계를 음악에 담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맨투맨 1집(1993). 웬 듀엣? 블랙신드롬의 박영철과 김병삼이 보컬을 맡고 있으며 그들이 멤버의 전부다. 나머지는 세션을 썼는데, 첫곡에서부터 풍기는 청춘드라마 OST 스타일이 좀 당혹스러웠다. 1990년대 초중반 세련된 록음악을 추구한 의지만큼은 생생하게 다가온다. 결정적으로 다듬어지지 않은 부분이 남고, 박영철이 음색이 이런 음악에 맞을까 싶기는 한데, 흥미롭게 듣긴 했다. 건반이나 랩은 한해 전에 나온 넥스트의 1집에 가깝다. <거울속에나>의 한 부분이 신해철을 연상케 할 만큼.





게임 1집(1990). 부활의 휴지기에 김태원이 주도해 결성한 밴드. 여기에 참여한 걸 가지고 신성우가 부활 출신이라고 와전되기도 했다. 사실 나는 신성우(신동윤)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언젠가 <핫뮤직>에서 메틀 밴드 시절의 신성우의 사진과 함께(그 특집기사에는 박명수 닮은 이승철의 옛 모습도 나온다), 그무렵 나온 잡지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다. 추측하건대 그 시절의 신성우는 솔로데뷔후보다 고음역이나 두성이 더 두드러졌던 것 같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김종서, 김성헌, 김재기 등과는 너무도 크게 다르고, 메틀 보컬리스트 가운데는 임재범, 김준원과 같은 카테고리에 들어갈 만했다. 하지만 작은하늘에서나 게임에서나 그는 음반에 노래를 남기지 않았다. 게임 1집에 참여한 보컬리스트는 홍성석. 이 음반은 내가, 동시대 메틀밴드와 차별화되는 부활의 서정성을 알기에 큰 기대를 걸고 들었다. 역시나 부활의 음반과 크게 다르지 않은 분위기다. 그렇지만 <비와 당신의 이야  기>, <인형의 부활>처럼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곡은 없었다.

위 음반들 사이를 걸으며 나의 평가와 호응도 들쭉날쭉했다. 그러나 나는 그런 곡선에는 관심이 없다. 위의 음반은 하나같이, 특히 그 음반의 뮤지션들은 모두, '저주'받았기 때문이다. 볕들지 않는 고된 생활, 인정받기를 기다리던 실력을 되새긴다. 음반 아닌 음원으로 접하고 이렇게 소개해야 하는 내 처지가 안타깝고, 또 해당 뮤지션들에게 미안하기 짝이 없다. 만일 위의 음반 중 현재 유통 또는 판매되고 있는 음반이 있다면 더 죄송스러울 뿐이다. 아울러, 절판된 책을 도서관에서 열람할 수 있듯, 인터넷 DB로 현매되고 있지 않은 음원들을 감상할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이제 나는 시대를 더 거슬러, 시나위 직전에 헤비 메틀에 근접해 있던 '무당', 오늘날엔 아이돌기획사 대표지만 왕년에는 록을 한 이수만, 그리고 '사랑과 평화'에 닿았다.
한여름 밤 내리는 빗줄기와 건배하며, 마치 <헤드윅>의 종반부처럼 소리친다. 나의, 우리의, 록커들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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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 가요제의 여파

Listen to the 무직 | 2009. 8. 8. 13:07 | Posted by 김수민
당구장 옆자리에서 누군가 <난 멋있어>를 부른다. 길거리에 나갔더니 <냉면>이 들리고, 골목 귀퉁이를 돌아 나오니 <Let's Dance>가 흘러나오고, 술집에서는 <바베큐>가 나온다. 일부 대목만 소개됐고 가요제에는 등장하지 않은 <전자깡패>의 음원은 불티나게 나가고 있다. 이 정도 반응이 나올 줄은 몰랐다.

그러나 무한도전 올림픽대로 듀엣가요제는 이미 선풍을 예고하고 있었다. 무도 출연진은 대한민국 인기최강의 연예인들이다. 그런 그들에 실력파 뮤지션들이 붙어서 곡을 쓰고 공연을 했다. 시간적 한계와 무도 출연진의 역량 때문에 그 곡들의 완성도가 매우 높지는 않았지만, 뮤지션들은 출연진의 개성에 맞춤한 곡을 써냈다. 시청자들은 곡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생생히 보며 곡을 곱씹었다.

정치에서 문화까지 대한민국 곳곳에 소비자 우월주의가 스며들어 있다. 대중음악이 이에 대항하는 방법은 당연히 감상자들에게 창작자적 관점을 안겨다주는 것이다. 무한도전은 높은 시청률을 이용해 그 활로를 뚫어낸 셈이다. 타이거 JK가 무도의 1인자 유재석에게 직접 건반과 드럼패드를 내주는 장면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한 평론가는 무한도전이 기획 하나는 잘했다고 비꼬았지만, 본인이 그걸 배울 생각은 전혀 없는 듯하다. 평단이 좁은 관계로 한국대중음악 평론가는 기획가의 지위를 겸할 기회를 얻는데도 말이다. 

쓸데없는 입방아를 찧고 손가락질 해대는 평자들의 면면을 잘 살펴보자. 그들은 대체 무얼 위해 그렇게 행동하는지. 애초에 위협받을 시장 따위는 없었다. 이미 망한 상황에서 개탄만 남았을 뿐이고, 빌미를 잡아 예능프로에 책임을 씌웠을 뿐이다. 이 같은 일은 이번이 처음이겠지만, 거기에 깔린 사고방식은 오래된 것일 터이다. 무도가요제의 선풍이 폭로한 것은 바로 그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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