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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실습'에 해당되는 글 2

  1. 2008.05.15 내가 역사교사라면 (2004년에 군복무 중에 씀) 1
  2. 2008.05.06 교육실습 첫날 1
 
필자는 2001년 대학에 들어와서 2002년부터 교육학을 전공했다. 그렇지만 스스로를 괜찮은 교육학도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학점이 너무 좋지 않았고 교육학에 관해 아는 것이 얼마 안 되기 때문이다. 필자가 졸업한 다음에 전공을 살릴 일을 맡을 지도 불분명한데, 그러나 만일 교육학과 관련된 일을 한다면 그것은 교직일 것이다. 필자가 교사라면, 사학을 이중전공하고 대학을 졸업한 역사 선생일 터이다.

교직과정 이수를 작심한 교육학도들은 3,4학년에 교생 실습을 나간다. 필자는 모교로 나가고 싶다. 졸업하면서 그렇게 속 시원할 수가 없었건만 10대의 마지막 세해를 바친 그곳을 데면데면하게 여길 수가 없었다. '학벌'이란 말만 들어도 몸서리를 치는 학연혐오론자인 것과는 별개로, 경북 구미에 있는 내 모교를 나온 학생을 우연히 만나면 반가울 것 같다. 실제로 필자는 한 인터넷 매체에 에세이를 연재하면서 어떤 독자에게 동문이라는 이야기를 듣고서 반가운 감정이 일었었다. 모교는 남자학교다. 남학생들로만 가득찬 학급에서 여섯해씩이나 보낸 처지에서 조금 주저하는 마음이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한군데 가장 먼저 갈 곳이라면 그 학교를 택하겠다. 대신에, 틈틈이 제발 빠른 시일내에 그 학교가 이웃의 여고와 통합하기를 기도하겠다.

국사 교과서를 펼쳐 가장 먼저 읽는 단원은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E.H.카의 물음에 부응하는 내용으로 이뤄져 있다. 하지만 경험상 대개의 교사들은 이 단원을 하루도 안 되어 독파하기 일쑤였다. 역사 교육이 교과서의 주요 대목들을 암기하여 객관식이 다수인 시험문제를 맞히기 위한 것인 탓이다. 필자는 이 단원에서 최소한 1주일동안의 수업시간을 모두 할애할 것이다. 학생들의 푸념이 들려올 지도 모른다. 잘하면 학부모의 귀에 들어가 항의가 들어올지도 모른다. 물론 학생의 장래를 걱정하는 선생으로서, 서울대제일주의를 욕하는 일도 서울대 출신들의 몫임을 목격한 인생의 선배로서, 시험 결과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는 없다. 허나 학교가 그깟 시험점수를 올리는 곳인가. 그렇다면 학교는 문을 닫고 교사들은 학원으로 들어가는 게 낫다. 역사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교과서나 문제지에 제시된 판에 박힌 답만을 남기고 빠르게 암기에 들어가는 태도에 맞서, 필자는 너 임자 만난 줄 알아라, 는 식으로 덤벼들 것이다. 입시에 쫓기는 학생들을 고려해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의 내용을 요약해 프린터로 돌리고, 첫 주의 수업에서 열띤 토론을 유도할 것이다. 필자는 토론을 벌일 때 처음에는 쭈볏쭈볏하던 학생들이 초반에 나온 발언을 곱씹다 어느새 진지한 논자로 변신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필자는 수업의 처음, 중간, 종반에 잠시 끼어들어 유명 사학자, 철학자들의 사관 및 역사철학을 소개하면서 토론의 댐을 열 것이다.

필자는 사관에 못지 않게 현대사, 특히 한국현대사에 관한 부분을 교실에서 잘 듣지 못했다. 교육과정이 기말고사 이후로 밀려나 '시험에 안 나오는 나머지 부분'으로 치부되거나, 시험 직전에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수업하여 '잘해야 한문제나 나오는 단원'으로 전락했었으니까 말이다. 요사이에는 대폭 보강되고 별도로 '한국근현대사'가 수능선택과목으로 지정되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근대 이전의 역사와 이후의 역사를 이어서 생각하여 전자가 후자에 끼친 영향과 후자를 통해 전자를 읽는 지혜를 헤아리는 기회가 더 필요하다. 필자는 교단에서 김춘추의 나당연합 외교과 오늘날의 한미동맹을 견줘볼 것이다. 조선시대 훈구파와 사림파, 중상파와 중농파를 대조하면서 함께 좌우혁보의 전선을 설명할 것이다. 저널리즘을 가까이 두고 수업할 것이다. 당대의 시사문제를 직시한 사람은 나중에 역사를 바로 기억하기 용이하다.

수행평가나 방학숙제에 도입할 것은 '유적 발굴'이다. 고고학적인 탐사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규모가 적거나, 중요성이 낮게 취급되었거나, 역사유적이라고 여겨지지 않은 곳을 찾아서 발굴하는 숙제다. 자기만 알거나 아예 사연을 지어내는 걸 막기 위해서 얼마나 대중들에게 가치있는지를 채점기준으로 삼을 것이다. 발굴하지 않거나 못한 학생들에게는 독서 숙제를 내줄 것이다. 그리하여, 1학기나 여름방학에는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과 칼 포퍼의 <열린사회와 그 적들>,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언> 등을 과제로 하여 역사관 논쟁을 벌일 것이다. 토론장소는 인터넷과 교실을 아우른다. 2학기나 겨울방학에는 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와 에릭 홉스봄의 <만들어진 전통>을 통해 유구하다고 인정된 것이 실은 머지 않은 과거에 인위적으로 생겨났음을 고찰하면서, 찬반 토론을 벌일 생각이다.

아무래도 필자는 제도권 학교에서는 배겨나기가 힘들 것 같다. 학교장, 동료 교사들, 학부모, 그리고 불만을 가진 학생들의 항의가 지속되면, 살아남을 수 있어도 사표를 던져 버리는 게 필자의 성격이다. 그러나 필자는 굳이 그런 사태를 그려보지 않는다. 애초에 교육철학과 수방식이 맞아 떨어지는 대안학교 쪽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대안학교 선생님들이 박봉에 고생하는 것은 듣지 알아도 충분히 알 만하다. 돈이 문제라면 다른 일을 벗삼아 하여 생계를 꾸릴 것이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지식인 하워드 진도 미국의 교사였다. 교사는 그저 그런 직업이라느니 그래도 요즘 불경기에 인기직종이라느니 사람들은 입방아를 찧는다. 나는 그들이 말하는 교사가 되고 싶지 않다. 비판적 지성인이 월급받아먹는 곳이 대학 뿐만이 아님을 증명하고 싶다. 교실에 학생과 같이 갇힌 선생이 아니라, 학생들과 함께 교실을 우주로, 우주를 교실로 만드는 선생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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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실습 첫날

Free Speech | 2008. 5. 6. 23:28 | Posted by 김수민
오리엔테이션 한번 안 해보고 출근하는 첫날, 미지의 긴장감이 몰려왔다. 그러나 교사 휴게실에는 이미 두분의 동료 교생 선생님들이 대기하고 있었고, 혼자서 뻘쭘하게 한달동안 지낼 우려는 단번에 사라졌다. 기술교육을 전공한 강효진 선생님은 나보다 한살 어린 구미고 20회 졸업생이다. 나와는 달리 고교 시절에 기억나는 사건이나 교사가 많지는 않은 듯했다. 성격이 싹싹한 분이다. 한문을 담당하는 이지혜 선생님은 옆동네의 구미여고 출신인데, 5월 실습은 신청이 되지 않아 구미고로 왔다고 했다. 첫날부터 숙제를 받고 '파자(破字)'에 관한 책을 읽고 있었다.

짧게나마 가진 인사 자리에 모든 선생님들이 우루루 몰려왔다. 역시나 나를 가르친 선생님들이 몇분 눈에 띄었다. 내가 교육학과에 합격할 때는 "거기 선생되는 과 아니제?"라고 물으셨던 분들이 많았지만, 7년만에 다시 나타난 제자를 진심으로 기쁘게 맞아주셨다. 재학 시절 과학 교사였던 교감 선생님은 자신을 잘 기억 못하는 강효진 선생님에게 섭섭한 기색을 내비쳤다. 오랜만에 만난 선생님들 가운데에는 얼굴이 꽤 수척해진 분들이 계셨는데, 그중 한분은 몇해 전에 쓰러지셨다고 들었었다. 앉았다 일어섰다로 하체가 매우 단련되신 분이셨다. 안타깝다.

별도의 사전 면담 없이 출근하는 바람에 행정적, 기술적으로 염려가 되는 부분이 있었지만 연구주임, 지도교사, 학급담임 교사 분들께서 재빠르게 조처를 취해 주셔서 해결되었다. 나의 지도교사와 학급담임은 같은 분으로 2학년 5반 담임이시다. 내가 경찰 복무 이후로는 사람들 연령을 잘 짐작하지 못하지만- 30대 중반 가량의 여 선생님이다(가만히 생각해 보니 방송인 전제향을 닮으신 것 같다).

공교롭게도 시험날 첫 출근을 했고, 졸지에 시험감독으로 입실하게 되었다. 인사를 하자 교실이 떠나갈 듯했다. 그럼 이지혜 쌤이 들어간 교실은 어떻게 되었을까, 대체?(아그들 하교할 때도 여 교생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어 뵈던데. 니넨 운 좋은 줄 알아라. 지방인 데다가 광역시도 아닌 지역의 남학교에 웬 여자 교생 선생님이...ㄲㄲ) 시험은 목요일까지 이어지고, 금요일은 학교장 재량 휴무일이다. 그 다음날과 24일은 '놀토'다. 12일은 석가탄신일이고, 22일은 학교 축제, 23일은 체육대회다. 15일 스승의날 일정은 잘 모르겠지만, 여하간 한달 실습하는 주제에 노는날, 쉬는날은 다 챙겨가게 생겼다.

90년대산 학생들은 거의 신인류급이었다. 앳된 학생과 들어 보이는 학생의 격차도 꽤 크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래도 어쨌든 전체적으로는 가볍다. 내 담당교사 분은 다소 샤프한 분이신데도 아이들은 정말 엄청나게 까불었다. 복도에서 날 보고 대뜸 '어서옵쇼~'하는 동작으로 "교생 쌤님~ 안녕하십니까~"하는 애들도 있었다. 2학년 5반에 들어갔더니 어떤 녀석이 어떤 급우를 가리키며 외쳤다. "쟤 수학 45점 맞았어요". 더 놀란 건 종례 시간에 담임 교사가 꺼내든 가방이었다. 가방에는 시험치기 전 내놓은 휴대전화가 들어 있었다. 가방 자체가 휴대전화를 꽂기 좋도록 고안되어 있었다. ㅡ_ㅡ  

달라진 건 교실 뿐이 아니었다. 여자 교사가 늘었고 평균 연령도 크게 낮아진 듯했다. 물론 교육실습생을 대하는 태도가 학창 시절 보았던 교사들과는 다를 수밖에 없겠지만, 교사들이 학생들을 대하는 풍경도 적이 달라졌다. 무엇이 어떻게 되어 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여하튼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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