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될 인물들의 명단이 발표되었다. 그 명단은 '직종'별로 분류되어 있고, '직위'를 준거로 삼고 있다. 이는 친일을 어설프게 은폐하는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온다. 친일파 인명사전에 등재된 이들 중 군수급의 관료를 지냈다는 사실 이외에 진정 제국주의에 부역했는지 알 수 없는 인물들도 꽤 많다. 친일의 핵심은 '민족을 배신'하고 '일본에 붙은' 데 있지 않다. 친일은 어떠한 경우에는 전쟁범죄였고 대부분 인권과 민주주의를 탄압한 것이었으며 (천황제) 파시즘에 대한 협력이었다. 이런 여러가지 측면과 층위들이 규명되지 않으면 친일파를 공개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친일파로 지목된 인물들의 이름의 순서대로 각각의 이력과 행적을 공개하는 것과 친일행위를 정리하면서 관련인물을 드러내는 것은 다르다.
친일인명사전 편찬작업 과정에 목격된 과거사 청산의 열의는 고무적인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사건은 인명 순으로 정리된 사전이 편찬되면서는 '반민특위의 복수', '뒤늦은 숙청' 이상을 넘지 못하는 것이다. '매국노'와 파쇼 군경과 행정공무원들이 친일파라는 기준 하에 그냥 뒤섞여 버린 사태에 입맛이 좀 씁쓸하다.
예전 김명인이 친일인명사전의 허점을 지적했던 글이다.
[정동칼럼] ‘친일인명사전’이라는 문제 |
[경향신문 2005-09-08 18:42] |
〈김명인/인하대 교수·계간 ‘황해문화’ 주간〉 한 민간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 편찬을 위한 예비작업으로 친일인사 3,000여명의 명단을 발표해 적지 않 -과연 그 방법밖에 없었나- 하지만 친일잔재를 올바로 청산하는 한 계기로서 친일인명사전의 편찬이라는 방식을 택한 데 대해서는 과 그러나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 친일잔재에 뿌리를 댄 현 사회의 이데올로기적, 물질적 기득권 세력 게다가 친일문제는 생각보다 간단치 않은 문제이다. 적절한 기준을 마련하기도 쉽지 않거니와, 설사 그런 기 뒷북을 치는 감이 없지 않지만, 친일인명사전을 만들기 전에 먼저 광범한 친일행적자료를 먼저 공개하는 방 -‘과거’ 어설픈 봉인될 수도- 그리고 기실 더 중요한 것은 친일인물이나 식민지적 유제, 혹은 그에 기반한 기득권 구조의 청산이라는 문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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