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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스트 6집 <666 Trilogy> part 1

Listen to the 무직 | 2008. 12. 13. 13:23 | Posted by 김수민

발매 예정일인 12월 8일을 이틀 앞두고 교보문고에 예약주문해 12월 11일 받아들 수 있었다.

리뷰 쓰기 싫다. 그냥 계속 듣고만 있다. 넥스트 2집과 신해철의 모노크롬의 특색이 섞였다고 할 수 있다. 뒤이어 나올 part 2, 3을 들어봐야 2집이나 3집과 온전히 비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5집에 비해선 확실히 자리를 잡은 듯하다. 신해철의 보컬이나 멜로디 라인에서 별다른 특색을 발견할 수는 없으나, 예의 그 신서사이즈로 확 벌리는 사운드와 몇년 간 수행한 테크노적 접근, 헤비메틀 클리셰가 잘 어우러져 멋진 편곡이 되었다.

2005년 말 김세황이 재가입했을 때, 그와 데빈 리가 칼 말론-존 스탁턴(유타 재즈 농구선수)에 비유될 만한 콤비 플레이를 해줄 것으로 기대했었다. 그러나 2006년 로열 팝하모니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당시, 데빈의 솔로 연주 비중이 생각보다 너무 작아서 불안했었는데, 아니나다를까 비트겐슈타인 음반부터 신해철과 함께 해온 그가 탈퇴하고, 이번 음반도 결국 김세황 혼자 짐을 졌다. 이점이 참 아쉽다. 팬으로서 나는 넥스트가 키보디스트에 더블 기타 시스템까지 갖춘 6인조일 때 가장 빛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여태껏 6인조 라인업으로 녹음된 넥스트 음반은 히트곡 리메이크를 담은 6.5집 뿐이었다.

넥스트 음반과 함께 아트 블래키&더 재즈 메신저스(이 음반 커버가 참 마음에 든다)와 우디 거스리의 음반을 주문했다. 재즈나 포크 쪽으로 들으려고 말이다;;; 얼마 전엔 조니 캐쉬 베스트 음반도 하나 구입했다. 록팬으로서 블루스필에 제대로 젖기 위해 노력했는데(물론 델타 블루스 계열로는 -십자로에서 악마에게 영혼 팔았다는- 로버트 존슨의 음반을 유일하게 가지고 있을 뿐이지만), 컨트리&웨스턴에는 블루스만큼 익숙하지 못하니까 감상하다 이따금 벽에 부딪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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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컬열전 (4) 김준원

Listen to the 무직 | 2008. 12. 8. 00:36 | Posted by 김수민
지난 번 '데이빗 커버데일' 편은 무플이 되었다. 나는 왕삐졌다. 이번에도 무플이면 당분간, 짧아도 연말까지 이 포스트가 계속 초기화면에 뜰 것이다! 노래감상이라도 올리시라...

 
비교적 최근의 곡인 <이별... 하늘...>을 올린다. 묻히는 걸 조금이라도 막기 위해서.
<안개도시>(1집 수록곡), <걱정하지 마>(2집), <오늘 나는>(3집)과
H2O가 피처링한 듀스의  <Go! Go! Go!>도 꼭 들어보기를.
 


'김준원'은 '록보컬열전'의 네 번째 편이자 한국 보컬리스트 최초 편이다(지금껏 거명된 네 명 모두가  남성이다. 록에, 그중에서도 거친 록에 기울어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필자의 경향이 반영된 결과다. 앞으로도 아마 대부분을 남성 록커들이 채우게 될 것 같다). 내가 한국 보컬리스트들 중 최초로 그를 다루는 이유는 내가 그를 역대 최고의 한국 -'록 보컬리스트'가 아니라- 보컬리스트라 느끼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흔히 1980년 중후반 한국 록계를 주름잡은 시나위, 부활, 백두산을 묶어 '한국 메틀의 트로이카'라고 부른다. 그런가 하면 '4인방'이라는 표현도 있다. H20를 포함해서. 미국에 살던 한국의 젊은이들이 1986년 결성한 H20는  LA메틀 본토에서 직수입된 듯한 무대매너와 패션을 과시했다,는 전설이 있다. 나는 곧잘 '파고다극장의 마지막 헤드뱅어'를 자처하지만, 파고다극장은 내가 어섯 눈뜨기도 전에 문을 닫았으니(그래서 파고다극장은 그저 꿈의 극장이다) '전설'을 전하는 걸로 만족해야겠다. H20는 김준원을 위시한 재미교포 젊은이들이 1985년에 만든 밴드 '흙'의 후신이었다. 그들은 이듬해 싱글음반 <멀리서 본 지구>를 발표하며 LA에서 들국화와 공동공연을 펼쳤고, 1987년에 1집을 내놓으며 한국 땅을 밟았다. 2003년 노바소닉에 의해 리메이크되기도 했던 불후의 명곡 <안개도시>가 H20 1집의 첫 트랙이다.

H2O 1집 시절의 김준원 (출처 http://www.h2o4ever.net/)



'한국 메틀의 3대 보컬리스트'라는 표현도 있었다. '세계 3대 기타리스트'라는 수사처럼 공허하고 편향적이다. 에릭 클랩튼, 제프 벡, 지미 페이지가 모두 나이가 엇비슷한 영국인이며 '야드버즈'의 기타리스트 출신이었던 것처럼 임재범, 김종서, 김성헌 역시 다들 시나위의 노래꾼들이었다. 대중성, 매니아들 사이에서의 카리스마, 영향력, 생명력 등등을 고려하고 특정밴드에 대한 편중 위험까지 덜어내자면, 그나마 임재범, 김종서, 이승철로 1980년대 '3대 메틀 보컬리스트' 를 구성하는 것이 조금 더 온당할 듯하다. 아니, 아니다. 다 무르자. 김준원이 빠졌으니까.

임재범, 김종서, 이승철이 1990년대 들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다들 발라드 솔로이스트로 전향하던 무렵, 김준원은 H2O 2기의 멤버들과 메틀의 시대를 접고 있었다. 하기야 이것도 전향이리라. 그러나 그후에 그와 그들이 연 것은 가요의 발전이 아닌 또 다른 록의 시대였다. 1992년 발매된 2집에서 롤링 스톤즈로 회귀한 듯한 복고성과 같은 시기 영국과 미국의 록에서 만개하던 모던함은 그럴싸한 수준을 넘어 온전히 내면화된 채 구현되었다. 노래방에도 있는 <걱정하지 마>가 그 2집의 수록곡이다. 펄 잼이나 앨리스 인 체인스 같은 그런지 스타일의 그룹이 거의 없었던, 그래서 신대철 같은 메틀 밴드 출신들이 결국 1995년 시나위의 재결성에 맞춰 그런지 록을 시도했던 한국에서, H2O는 유앤미블루(방준석, 이승열)와 함께  '얼터너티브 밴드'의 구실을 톡톡히 해냈다.

김준원은 펄 잼의 보컬, 에디 베더와 곧잘 비교되었다. 메틀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었다는 점에서 H2O와 펄 잼이 유사했던 탓일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진솔하고 굵직한 목소리가 닮았던 것이 결정적인 이유였을 테다. 김준원은 고음에 약하지 않지만 '고음 교조주의'에 편승하지 않았고 그리하여 중음, 저음, 고음에 모두 능한 가수가 되었다. 또 부활 시절 이승철이 여리고 소년적인 감성을 갖고 있는 데 반해 그는 청년의 무르익은 남성성을 구현하였으며, 그러면서도 극단적인 남성성을 추구했던 임재범과 달리 중성성을 겸비하고 있었다. 그에게도 흉성과 두성은 있었으나  이따금씩은 거의 '맨소리'를 낼 만큼 목소리에 포장이 작았고 꾸미기에 신경쓰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김준원은 연기자로 치면 나문희나 최진실에 비할 수 있을 정도의 일상성을 획득해 냈다.

1집과 2집 사이에 H2O에 가입해 김준원의 옆에 서고 뒤에 앉은 연주자들의 면면도 화려했다. 카리스마에서 베이스를 담당했던 박현준이 H20의 기타를 잡아 절제되고 감각적인 리듬 배킹으로 밴드의 새 출발을 이끌었다. 베이시스트 강기영은 시나위에서 베이스 줄로 줄넘기를 하다시피하던 용맹한 연주자였다. H2O의 해체 후 강기영은 박현준과 삐삐밴드, 삐삐롱스타킹을 거친 다음, 록의 무대에서 춤판의 한구석으로 내려가 DJ 달파란으로 더 유명해졌다. 드러머는 고등학생일 적 시나위 2집을 통해 데뷔한 김민기였다. 그는 그 앨범 이후로 한국 최고의 드러머로 군림해 오고 있었으며, 1990년대 중반 김종서와 다시 의기투합하기도 했다.

김준원은 멤버들을 아울러 밴드의 길을 잡는 일에서 발군이었다. 메틀 뮤지션이었지만, 그것도 메틀제일주의가 한창이던 무렵의 록 키드였었지만, 그의 취향은 잡식성이었다. 김준원과 H20의 이런 열린 태도는 듀스와의 합작품 <Go! Go! Go!>로 나타나기도 했다.

강기영: (...) 그는 INXS를 좋아했다.
- 박준흠, <이 땅에서 음악을 한다는 것을> 中


그러고 보니 김준원은 이니시스의 마이클 헛친스와 비슷한 내음을 풍긴다. 강기영의 증언을 계속 들어보자.

박준흠: 김준원은 어떤 사람인가?
강기영: 그는 인간적이다. 리더십도 있고 동생들을 잘 챙겨준다. 무대에서 사람들을 끄는 힘이 있었고 말도 잘했다. 그리고 편협하지 않고 여러 가지를 수용할 줄 알았다. 그래서 H20 음악이 가능했다.


1993년, H2O는 한국 록 역사상 최상급의 걸작인 3집 <<오늘 나는>>을 분만하였다. 박현준의 그루브가 초절정에 이르른 가운데 강기영-김민기는 힘있고도 깔밋한 리듬 라인을 펼쳐고 김준원은 그 위에서 분방하게 놀았다. 한국 록계의 고질적 문제였던 저음질은 마크 코브린이라는 외국인 엔지니어가 해결하였고, 이정식을 비롯한 브래스 세션의 가세로 곡들은 잘 부풀어오른 프랑스빵처럼 풍성해졌다.

2집에서 창작을 주도했던 강기영이 <고백을 하고>, <짜증스러워>, <나를 돌아보게 해>를, 박현준이 <방황의 모습은>, <착각 속에서>, <그녀의 모습을>을 썼다. 작곡도 세련되었지만 가사도 색달랐고, 가사의 일상성은 김준원의 가식 없는 노래와 완벽히 어우러졌다. 이로써 H2O는 안치환, 블랙홀과 함께 록의 한국적 어법을 위해 고투한 얼마 되지 않는 뮤지션으로 지목될 수준에 도달했다. 물론 불행히도 이런 평가는 당시에 제출된 것이 아니다. 3집은 대중적 인기를 끌지 못했고 H2O는 해산을 맞이했다.

H20 3집 시절. 왼쪽부터 김민기, 김준원, 강기영, 박현준. (촬영은 김중만. 출처http://www.h2o4ever.net/)



김준원은 오랫동안 밴드 활동을 접었지만 신성우와 더블 캐스팅되었던 <ROCK 햄릿> 등 여러 뮤지컬을 통해 제2의 음악인생을 시작한다(이미 1992년 드라마 <고개숙인 남자>에 얼굴을 내비치며 미미하게나마 연기경력을 쌓은 차였다). 뮤지컬은 그에게 명확한 발음과 다채로운 음색이라는 날개를 달아주었고, 이는 2004년 발매된 4집 <<Boiling Point>>에서 유감 없이 발휘되었다. 예컨대 <pray>는 딱히 높은 음역에까지 닿는 곡은 아니나 어지간한 발음과 발성으로는 온전히 불러낼 수 없다.

4집은 타미 킴(기타), 김영진(베이스)라는 최고의 세션맨을 제3기의 멤버로 불러 들었음에도  '11년만의 재결성'을 언론매체들이 잠시 알렸을 뿐 폭넓은 관심을 불러 일으키지 못했다. 비슷한 시기 컴백 음반을 발표한 임재범이 '다시 깨어나 달리는 전설'이라면, 김준원은 '안개에 싸인 무관의 제왕'이다. 그렇지만 결혼 이전까지 잠행과 은둔을 거듭했던 임재범과 대조적으로 김준원은 사람들 가까이에 있는 도회인이었다. 그는 극장 무대 위에 있었고, 강남에서 블랙신드롬의 박영철과 함께 운영한 카페에도 있었다.
보수적인 부친 때문에 라디오 듣는 것도 쉽지 않았다던 교포 소년은 화려한 메틀 키드로, 젠틀한 모던 록커로, 뮤지컬 배우로 -어느 인터뷰에서의 표현을 빌리자면- 물 흐르듯 살아 왔다. 그 물은 주류 음악계의 시스템을 끝내 돌아 흘러, 저주 받은 걸작들을 양산해야만 했다. 그러나 많은 매니아들과 평론가들은 결코 H2O 재평가를 향한 옹골찬 고집을 꺾지 않을 것이다.  

고등학생 시절에 들락거린 구미역 앞의 레코드점에는 운좋게 H20의 1집 테이프가 하나 남아 있었고 나는 곧 그 주인이 되었다. 내 행운은 그러나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H2O의 3집이 나온지 5년만에 기회가 찾아왔다. 나는 윤도현, 최정원 주연의 <하드록 카페>가 구미예술회관에 올랐을 때 작품의 음악감독이자 '타잔 아저씨'역으로 열연한 김준원의 노래를 맨 앞자리에서 들었다. 이후로 나는 아무리 좋아해 마지 않는 보컬리스트일지라도 그 목소리가 지겨워질 때면 H2O를 찾았다. 테크닉은 완벽하나 한쪽 귀로 들어와 다른 쪽 귀로 나가는 신인급 가수의 노래를 듣고난 후에도 곧잘 김준원을 켰다. 매운 음식을 먹었을 때, 탄산음료로 갈증을 달랠 수 없을 때, 물을 찾듯 말이다. 이 물은 로커빌리, 블루스, 팝 발라드, 하드 록, 재즈, 펑크, 훵크, 글램, 뉴웨이브, 그런지를 모두 녹여내는 것이 가능해 보인다. 김준원과 같은 전천후 보컬리스트는 내 생애 단 하나 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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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빈

책이라곤 읽지 않는 | 2008. 12. 7. 00:19 | Posted by 김수민

홍기빈의 <소유는 춤춘다>를 읽는 중이다. 얇은 분량에 여기저기 삽화가 들어간 이 책이 독자층을 어떻게 설정했는지 좀 알쏭달쏭하기는 하나, 내가 읽기에 참 좋다.ㅎㅎ 책날개에 적힌 저자 소개가 인상적이다.

(...) 대학에 들어가서 똑똑한 학생들을 만나다 보니 남들보다 뛰어난 쪽으로 경쟁을 하는 것보다는 내게 의미가 있고 남들에게도 쓸모가 있어 보이는 일이나 공부를 하자는 쪽으로 마음을 먹었다. 그 결과 경제학이나 국제 정치학을 시작으로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공부하게 되어, 지금도 계속 이것저것 공부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공부나 다른 뜻 있는 일을 하는 데 꼭 특출한 머리와 능력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학교에서 과목과 학과를 나누어 가르치는 지식의 틀을 맹목적으로 따라가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


그는 학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고 외교학으로 석사를 땄다. 현재 정치학 박사논문 제출을 앞두고 있는데, 그의 연구 주제는 엉뚱하게도 '지구정치경제학'이다. 그가 경제학, 외교학, 정치학을 연이어 공부했다는 점에서 자연스러운 일이기는 하지만, 그가 한국에서 정치학 박사과정을 밟았다면 그리하기는 매우 힘들었을 것이다.

그와는 두 번 만난 일이 있다. 물론 나는 그에게 '빨간테 안경'을 쓴 어떤 대학생으로 기억되었을 뿐, 그는 내가 <프레시안>에서 자신의 글을 반박했던 이라는 것까지 알아채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사민주의와 아나키즘을 함께 지향하고 있다고 밝혔었다. 어떤 이야기보다 그것을 뚜렷이 기억하는 건, 그 말이 나를 개안케 했기 때문은 아니고, 나의 생각과 표현에 거의 일치하기 때문이었다. 또 그는 내가 수업시간에 교수로부터 '여운형주의자'라는 말을 들었다는 이야기에(발설자는 고 방기중 선생이다), 갑자기 반색을 하기도 했다. 그는 박헌영이 싫다고 했고, 그때 가장 옳았던 것은 여운형 노선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제주도에 땅 몇평을 사서 움막을 짓고 사는 게 꿈이라고 했다. 책날개에는 이런 구절이 적혀 있다.

어린 시절 창경원에서 코끼리와 처음 만나 길고 커다란 코와 악수하며 비스킷과 물벼락을 주고받은 뒤, 코끼리를 평생의 토템으로 삼고 있다.



코끼리는 죽기 직전 남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을 찾아 조용히 눈을 감는다고 한다. 그래서 코끼리의 주검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 옛날 발간된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에 나왔던 내용이다. 코끼리라...

나는, 토템까지는 아니고, 후생에 고래로 태어나는 것이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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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싸대기

Free Speech | 2008. 12. 6. 23:40 | Posted by 김수민

군입대가 임박한 지인과 얘기를 나누고 집에 돌아온 날 밤, 나는 다시 군으로 입대하는 꿈을 꾸었다. 예전 한동안은 지겨운 말년 시절에 머물러 있는 꿈을 자주 꾸었는데, 언제부턴가 재입대하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설정은 대개 비슷했다. "전경 출신은 다시 입대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꿈에서 상근예비역이 되어 보기도 하고 의무소방대로 끌려 가기도 했다.

급기야 며칠 전에는 고등학교에 있는 꿈을 꾸었다. 무엇을 잘못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어느 체육 선생에게 귀싸대기를 맞았다. 그 선생은 내가 생시에서 마주친 적이 없는 가상인물이었다. 163cm에 70kg쯤 나가는 작달막하면서 다부진 체격이었다. 그는 손을 휘두른 다음 말했다. "너 진보신당 당원이라며? 이 새끼 사물함 뒤져 보면 불온문서 잔뜩 나오겠네. 너도 장하준의 <나쁜 사마리아인> 읽었냐?"

골똘히 생각해 보니 나는 분명 올해 5월에 교생실습을 다녀왔다. 그런데 내가 왜 고등학교 1학년이 되어 귀싸대기를 맞고 빨갱이 공세를 당하고 있나? 내가 한달간 가르친 애들이 내 상급생이란 말인가? 뭐냐 이거. 일단, 저 새끼부터 처리를 하자. 나는 경찰이 출동하는 사태를 방지하러 그 선생을 미행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휘갈겨 버릴 작정이었다. 선생은 체육관에 들어섰고, 나는 따라 들어가 슬슬 발걸음을 빨리 하며 그의 등을 향해 뛰어갔다. 넌 오늘 죽었다!

역시나, 그 타이밍에서 꿈에서 깼다. 일어나서 5분간은 정말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내 청소년기 항상 학교에서 체벌을 겪어 왔지만 귀싸대기를 맞은 건 몇번 안 된다. 왜 그런 꿈을 꾸었을까? 그러나 그보다는 왜 나는 심하게 맞을 때도 가만히 있었나,하는 생각에 더 열이 받았다. 10대 땐 '수 틀리면 감방간다'는 게 기본 신조였는데 왜 주먹을 그쪽으로는 뻗지 못했을까? 나이 스물 일곱 먹고도 아주 가끔은 폭력교사들이랑 일기토 뜨는 상상을 한다. 

이런 내가, 크고 작은 우여곡절이야 없지 않았지만, 그래도 결국은 평온하게 살아왔던 건 내가 '선생 운'이 좋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이 내 성난 마음을 달랬다. 그러나 씻을 기회를 놓친 분노는 평생을 간다. 모교에서의 즐겁던 교생실습은 고등학교 시절이 내게 드리운 그림자를 저만치 물러가 있게 했다. 하지만 나와 똑같이 생긴 어느 중학생과 고등학생은 아직도 세월 저편에서 짧아진 그림자 안을 고집하며 씩씩거리고 있다. 나는 그를 이쪽으로 불러내 타이를 수 없다. 오히려 저쪽의 분노가 꿈자리까지 덮쳐가며 내게 순식간에 전염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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