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참 대단한 민족이다. 테크노도 아닌 음악에 맞춰 테크노댄스를 추고, 디스코가 아닌데 디스코춤을 춘다. 모던 토킹이든 666이든 한국인들이 디스코춤이나 테크노댄스의 배경으로 깔았던 음악들 대부분은 유로댄스 쪽이다. 2002년 월드컵 당시의 그루브한 박수가 어떻게 나왔는지 신기할 정도로 한국인들은 정박 위에서 춤추는 일에 익숙해져 있다. 롤라장과 디스코텍의 시대는 갔지만 나이트클럽에서 '만들어진 전통'은 지속되고 있다. 반면 펑키한 리듬에는 어찌할 바를 모른다. 베이시스트 정한종은 '다운타운', '레처', '알 에프 췰드런'을 거치면서 헤드뱅보다 허리 아래가 들썩거리기에 좋은 록음악을 만들었지만 대중의 반응은 다들 신통치 않았다.
내가 미취학 아동기에 가장 좋아했던 노래는 마이클 잭슨의 <빌리 진>이었다. 하지만 그후 학원 파티나 보이스카웃 여행길 버스에서 '디스코 타임'동안 틀어준 노래들은 어딘지 모르게 이질적이었다. 나는 그 노래들이 지겨웠지만, 가족 나들이에서도 차안에서 그런 노래들을 모아놓은 테이프에 시달려야 했다. 거기서 나를 꺼낸 것이 록이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데뷔는 박남정, 소방차, 김완선의 한계를 깨는 도전이기도 했으나, 나를 설레게 한 것은 전기 기타 리프였다.
하지만 ROCK은 흔든다는 뜻이고 결국 세상의 모든 음악은 댄스 뮤직이다. 에어로스미스와 런 디엠시의 합작 이래 록과 힙합이 접목해서 만들어진 곡들은 차고 넘친다. 롭 좀비나 람슈타인의 노래는 나이트 클럽에서 틀어도 손색이 없다. 나는, 나이트 클럽에 가본 적은 없지만, 여러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그들의 노래가 들려오면 서슴없이 말한다. "이들 음악의 본질은 헤비메틀이 아니라 댄스다!" 예컨대 독일밴드 람슈타인의 <두 하스트>의 마지막 동기에 띵띵거리는 건반음은 크라프트베르크 이후 축적된 테크노 사운드의 노하우를 전달한다.
그래도 나는 유년기에 질린 유로댄스가 여전히 달갑지 않다. 아마도 키보드보다는 베이스와 드럼에 더 마음이 쏠리고, 이왕 춤출 거라면 정박보다 엇박이 좋다는 취향 탓일 것이다(내가 소녀시대보다 원더걸스를 좋아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다만 예외는 몇가지 있다. 투명한 유리창 같은 A-HA의 <Take on me> 같은, 어제 나온 신곡이라고 뻥을 쳐도 처음 듣는 사람이라면 곧이 들을 만한 노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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