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ent Post»

« 2024/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

Recent Comment»

Recent Trackback»


책이라곤 읽지 않는 | 2009. 12. 11. 13:40 | Posted by 김수민
다녔던 대학교의 도서관이 졸업생의 일상적 출입을 사실상 금했다. 학기초에 신청을 해야 한단다. 뒤늦게야 안 것은 반년 넘게 거길 들어간 적이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들어갔을 때 출입체크기계가 이상한 반응을 했다. 아, 그게 그거였나 보다. 졸업생은 책을 빌리려고 해도 30만원쯤인가의 금액을 평생동문회비로 내야 했는데 이제 출입도 따로 신청해야 한다. 더러워서 안 가지만, 갈 이유도 없다. '책이라고는 읽지 않는 삶'. 이루지 못했던 꿈이 올 한해 피어오르는 중이다. 최근 3, 4년간 누가 내게 무슨 책을 읽고 있냐고 물으면 바로 답을 하지 못했었다. 내가 읽은 책은 모두 '자료'에 불과했다. 책의 외양을 하고 있어봐야 한낱 자료뭉치였다. 묶고 엮는다고 다 책이 아니다. 冊의 가로획은 독자가 긋는 것이다. 언젠가 경제위기가 닥치게 되면 주저 없이 책을 팔 수 있을 것 같다. 여기까지 오는 데 20년이 걸린 셈이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멍청해지는 인간들로 인해 갑작스럽게 진도가 빨라지기는 했다. 저렇게 멍청해지느니 이렇게 멍청한 게 낫겠다. 책이라고는 좀처럼 읽지 않는 삶이란 글 같은 것은 남기지 않는 삶과 꽤 포개어질 것이다. 이제 쓸 글도 별로 없다. 예전에 내 글을 읽던 대부분의 사람에게 계속해서 들려줄 예전과 같은 부류의 이야기가 드물다. 결국은 쓰지 않게 되었으면 좋겠지만, 그게 안 되면 책을 자료로 전락시켰듯 글을 메모로 강등하면 된다.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건 거짓말이다. 칼의 꼬붕이 된 펜이 펜을 못 구한 칼을 이겼을 뿐이다. 펜을 버리고, 아무도 참칭하지 않고, 허공에만 나의 칼을 휘두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책을 버려야 하고, 그 다음에 버릴 것들을 정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무소유의 비장미를 풍겨서는 안 된다. 자연스러운 몰락이어야 한다. 서서히 꺼지기보다 확 타오르다 사라지는 게 낫다는 어느 뮤지션의 유언은 헛소리다. 당신도 서서히 꺼진 거라고. 자살은 말야. 인간만이 가능하다지만, 아니, 그렇기 때문에 그것도 자연사거든. 제 명에 죽은 거라는 뜻이다. 하지만 책과 글, 활자에 얽힌 비루한 인생이 굳어져서, 나는 또다시 이루지 못할 꿈을 꾸는 것일 테다. 그래도, 가능하면 덜 읽고 덜 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