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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전을 넘어

2010. 1. 24.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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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대상 정형돈

전파낭비 | 2009. 12. 27. 19:54 | Posted by 김수민

올해 막방에서도 말을 잇지 못하고 마는...



내게 올해 연예대상을 수여할 독점적 권한이 주어진다면 정형돈에게 상을 주겠다. 심리테스트 결과를 받아든 <무한도전> 멤버들은 정형돈더러 "시청자 적성"이라고 단언했었다. 정형돈은 사이드의 구경꾼으로서 나름대로 쉼 없이 멘트를 날리고, 막상 작정하고 들어올 때는 언제나 제지당한다. 반면 민어 손질이나 도망치기 등 각종 기능에 능해, '기능인', '웃기는 것 빼고는 다 잘하는 코미디언'으로 불리운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정형돈의 가치이며 그야말로 '무한도전'의 화룡점정을 찍어왔다. 우여곡절 끝에 내려간 마라도에서 병에 담긴 짜장면을 받으며 절규하고, 식사를 하겠다며 전화를 먼저 끊어버리는 노홍철을 향해 "찌롱씨, 어디 햄버거 가게, 어디 햄버거... 야, 임마!"라고 소리지르고, 단지 냄비 두껑을 남이 열었다는 이유로 "(요리가) 망했네!"를 외치는 그의 분노신공을 나는 최고의 장면으로 꼽는다. 웃기려고 했을 것 같지 않은 그 분노에 수많은 시청자는 물론이며 현장의 출연진까지 대소하였다.





이따금 그는 예능의 춘장을 뺀 수타면발 같은 분노신공을 선사한다. 정형돈표 예능 간짜장이다.


뒷자리의 김태호 PD를 부러워할 시청자가 많으리라.




그리고 그가 '웃기는 것을 빼고 다 잘한다'는 건 거짓말이고 위장막이다. 그는 '남녀탐구생활'로 웃기는 것도 잘하고 거기 연기력까지 뛰어난 연기자임을 단방에 증명했다. 올해 <무한도전>의 마지막 편에서 정준하 이상의 연기를 보여준 것도 정형돈이었다. 

더불어 <무한도전>과 MBC에게도 내년의 분투를 기대한다. 

 

뉴또라이들 발끈할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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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질투심 탐구생활

전파낭비 | 2009. 12. 13. 20:31 | Posted by 김수민
남녀탐구생활에는 정가은, 정형돈이 나와요. 둘은 정씨라는 것만 빼면 균형이 맞지 않아요. 샤방샤방 꽃미남을 출연시키거나, 여자를 신봉선으로 바꿔야할 것도 같아요. 하지만 시청자들, 불만은 새발의 손톱만큼도 없어요. 보기엔 균형이 안 맞아보이는데 저울추는 0점이에요. 어떤 소개팅 프로에서도 찌질한 남자가 부족할 거 없는 여자랑 만나요. 혹시 여자 눈높이를 못 맞추는 여성 차별일까요. 아님 남자 평균 수준을 발닦개로 까는 남성 희화화일까요. 그런 소릴할 바엔 걍 닥치고 남녀질투심을 탐구해 보아요.

먼저, 질투하는 남자 편이에요. 남자는 오늘도 길거리에서 안구질을 해대요. 저 여자 얼굴, 그 여자 다리, 요 여자 가슴을 여친의 눈을 피해 감상해요. 여자와 연애를 시작한 뒤에 세상에는 여자가 더 많아 보여요. 누가 그러는데, 여자는 하나로는 부족하고 둘은 너무 많대요. 둘이 너무 많은진 몰라도 하나로는 부족한 것도 같아요. 아씨, 여친한테 걸렸어요. 다음에는 선글라스를 끼고 다녀야겠어요. 안되겠다 싶었는지 어느날 여친이 질투심을 유발하려고 해요. 친한 친구라며 왠 사내놈을 데리고 왔어요. 다 알아요. 콧방귀를 껴요. 척 보니 나보다 얼굴이 못났어요. 일류대에 다닌들 소용 없어요. 또 데리고 왔어요. 얼굴은 쫌 생겼어요. 하지만 나보다 키가 작아요. 또 데려와요. 학벌도 되고 얼굴도 되고 키도 괴는데, 애가 '애'에요. 하하하! 호탕하게 웃으며 그 남자에게 "앞으로 형이라고 해!" 해요. 데려온 남자가 가고, 둘만 남을 때 남자는 "남자는 남자가 보면 아는데, 그 사람은 쫌..."하면서 자신감에 가득찬 씨부리머가 돼요. 여친은 남자가 질투해서 그러는 거라 생각하지만, 뜯어보면 뜯어볼수록 오히려 잘나뻥질을 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질투심 유발에 실패한 여친을 보며 남자는 뿌듯함으로 사우나를 해요. 하지만 이런 남자를 한방에 보낼 수 있어요. 사실 이 남자도, 자기보다 하나라도 나은 부분에 순간순간 열등감으로 비눗칠을 했거든요. 뭐 하나 꿇릴 거 없는 남자를 데려오면 남자는 바로 야코 죽어요. 만일 힘센 남자랑 팔씨름이라도 해서 지게 되면, 남자는 그날로 확인사살당해요.

이번엔 질투하는 여자 편이에요. 여자는 남자에 비해 길거리 안구질을 하지 않아요. 하지만 TV에 나오는 남자, 영화에 나오는 남자, 무대에 오른 남자, 사진에 나오는 남자, 유심히 쳐다봐요. 이거 직빵이에요. 남친은 바로 열폭해요. 그러자 남친의 질투심 유발이 시작됐어요. 남자는 평소에 하던 안구질을 더 열심히 해요. 이 시키가 아예 선글라스를 끼고 왔어요. 눈탱이 밤탱이를 만들어 테 없는 선글라스를 하나 선물하고 싶어요. 하지만 여자는 다른 여자를 질투하기보다는 남자의 지조 없음에 짜증나는 거예요. 그리고 솔직히 지가 나 말고 딴 여자를 엥간히나 사귀겠어요. 남친은 눈탱이 밤탱이가 돼도 나를 떠나지 못할 거라 믿어요. 남친은 또 어디서 배워왔는지 다른 여자를 자리에 불러요. 잘못 삼긴 해파리 냉채처럼 질투를 목구녕에서 쭉쭉 뽑아내려고 해요. 지가 아는 여자 중에서 제일 예쁜 여자를 델꼬 왔어요. 어쩌라고. 해파리가 "저런 여자가 너를 좋아할 것 같니?"라며 기어나올 것 같아요. 여자는 남친의 아는 여자가 메고 온 명품 가방과 구두, 옷을 스캔하기에 바빠요. 또 아는 여잘 데려왔어요. 이번에는 얼굴도 예쁘고 몸매는 쭉쭉 빵빵이에요. 하지만 역시 이런 여자가 남친을 남자로 볼 것 같진 않아요. 대신에 나도 운동해서 저 여자처럼 될 거라고 삼일천하를 작심해요. 또 데려왔어요. "뭐야 별로잖아?"라고 생각하는 순간 존심이 팍 상하고 화딱지가 앉아요. 후시딘도 소용 없어요. 저 정도 여자가 뭐가 그리 괜찮다고. 여자는 '아야여오요우유으'예요. 어이가 없어요.

이번엔 남녀탐구생활 보너스 편- 남자와 여자의 야동 감상이에요. 야동 중에는 특정한 성 하나만 나오는 게 있어요. 남자는 여자만 나오는 야동을 봐요.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해요. 근육질에 거시기 큰 남자가 나오면 열폭하니까요. 반면 여자는 남자만 나오는 야동을 보지 않아요. 짐승남도 사양이에요. 여자는 동영상 속 여자에 감정이입하니까요.

정형돈은 조금 뚱뚱하기는 하지만, 양복 입으면 직장인으로 둔갑하고 츄리닝 입으면 실업자로 빙의해요. 대한민국 표준남이라잖아요. 정형돈이 남자대표로 나오는 것을 남자나 여자나 다 받아들여요. 한편 정가은이 대한민국 평균녀라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하지만 남자는 남자대로 정가은을 침흘리며 쳐다보고, 여자는 정가은이 재현하는 생활을 침넘기며 관찰해요. 결론적으로 아무도 불만 없어요.

남자, 여자 몰라요. 여자, 남자 몰라요. 남자와 여자의 차이가 생물학적이라고는 하지만, 그것도 모를 일이예요. 사람마다 다 다를 수도 있어요. 다만 남자 다수의 경향과 여자 다수의 경향, 그리고 그 사이의 차이라는 게 있을 뿐이에요. 그 원인이 무언지는 잘 몰라요. 그냥 차이를 보며 공감하면 웃는 것이죠. 이상 남녀탐구생활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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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루저란 무엇이었는가?

전파낭비 | 2009. 12. 11. 16:11 | Posted by 김수민
나와 친구들이 루저라는 말을 영어시간 바깥 일상에서 처음 썼던 건 고교 졸업, 대학 입학무렵이었다.

한 친구가 말했다.
"나는 인디야."
"인디? 인디는 뭐 그냥 혼자 있으면 다 인디인 줄 아나?"
"음, 그럼 나는 루저야."
"야 루저는 아무나 되나?
"그럼 도대체 뭐라 그래야 되냐? 비주류? 마이너? 언더그라운드?"
"웃기고 있네. 술이나 마셔라."

당시 우리에게 '루저'란 '인디', '비주류'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단어였고,
밤길에 "나(우리)는 'Nothing To Lose'"라고 외치곤 했다.

몇달 전 박사논문을 준비하는 어느 형이
"논문제목에 'loser'라는 단어를 쓸 텐데 적확한 한국어 번역어가 뭘까?"
라며 물어왔다.
"글쎄요. 패배자, 실패자, 낙오자...?"
정답이었지만 어감이 살지 않아 몇 가지를 더 덧붙였다.
"찌질이, 찐따, 슈레기..."
그린데이의 'Basket Case'나 라디오 헤드의 'Creep'에 비견될 만했다.

'루저'는 예전 나와 친구들이 쓸 적보다 훨씬 가벼운 의미로 쓰이고 있었다.
그런 만큼 장난처럼 남에게 툭툭 던지는 말이기도 하지만,
비장미나 마지막 자존심 따위는 덜어내버린 상태였다.

왜 '루저 발언'에 발끈하는가, 보다
그들은 왜 '루저'라는 어휘를 썼는가, 를 생각하다 떠오른 기억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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덤비면 걸린다

전파낭비 | 2009. 9. 2. 18:20 | Posted by 김수민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나로서는 용산참사 등에 등장한 컨테이너 진압을 연상할 수밖에 없었다. 검색하니 같은 생각을 했던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멤버들이 속는 장면에서 여러 네티즌들은 언론장악을 떠올리기도 했단다. 그러나 제작의도는 짐작할 수 없다. 그냥 공중에 떠있는 설정을 위해 컨테이너가 등장했을 수도 있다. 최초로 제안한 PD나 작가가 "이 기획, 용산참사가 떠오르지 않냐?"라는 다른 스태프의 질문에, "어? 아닌데. 그렇게 보이나?"라고 했을 수도 있고, "힌트는 얻었는데 별 상관 없어요"라고 했을 수도 있다. 어떤 대답이었든 둘러대기용일 수도 있고 진실일 수도 있다. 제작진이 한마음으로 폭력진압을 풍자하기 위했을 수도 있다. 모든 것이 길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얼마 전 뉴라이트단체가 이 프로그램에 시비를 걸면서, 화면에 '1.9MB'라는 자막이 걸린 사진을 제시했다. 이게 청와대 2메가님보다도 0.1MB가 딸리는 지능이라는 뜻인지, 저용량 수치 가운데 아무거나 쓴 것인지, 역시 모를 일이다. 누가 캐물어도 굳이나 대답할 이유도 없다.

걸리는 건 덤비는 놈이다. 컨테이너 진압을 풍자했다는 소리가 확산되려면, 지난번처럼 뉴라이트가 한번 덤벼주면 된다. 어차피 쇼오락프로에서 사회풍자 또는 그 가능성을 단숨에 읽어낼 시청자는 드물다. 설령 읽어냈더라도 그게 사회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연인원 1000만명을 돌파한 <괴물> 때문에 극미 정서가 확산되었다는 증거는 조금도 없다. 다만 덤비면 일이 된다. 덤비면 용산참사 풍자가 되고, 2MB 조롱이 된다.  

실제인지 가상인지 따져드는 게 무의미한 쇼오락프로에, 순혈주의적 이념투쟁에서 한국에서 제일 가는 뉴라이트가 덤볐다는 건 참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몇달 전 신해철의 학원광고를 둘러싼 찬반 논란에서도 볼 수 있듯, 하지 않아도 될 소리, 남의 내면을 훤히 들여다보는 듯한 자세가 이 사회에 팽배해 있다. 그러나 이제 먼저 덤비는 놈은 거꾸러질 것이다. '월간조선발 마녀사냥 사태'도 어느새 10년도 더 지난 일이 되었다. 추세는 이렇다. 독살을 시도하는 놈은 지고, 부글거리다 어설픈 선빵 날리는 놈도 진다. 여기서 조금 더 가면, 속인 놈은 없고 속은 놈만 득시글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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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돼먹은 영애씨> 시즌 5

전파낭비 | 2009. 7. 18. 17:39 | Posted by 김수민
<막돼먹은 영애씨> 시즌 5가 17일 종영됐다. 당초 16회 분량이었지만 시청자들의 요구로 20회까지 늘어났다. 시즌 5가 시작할무렵 나는 시즌 1의 1회부터 보기 시작했다. 80회 이상의 전편을 본 셈이다. 김현숙씨가 사촌누이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것만 같을 정도가 됐다. 시즌 6을 가을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이 좀 막막하다. 내가 팬이 된 까닭은, 리얼 드라마 형식의 독특한 재미가 있고, 연기력 빵꾸가 나지 않았으며, 여러 등장인물로부터 내 모습을 보았기 때문일 터이다.  

이영애(김현숙)는 그리 불행하고 불운한 인물은 아니다. 설정상 중산층으로 되어 있지만 집안을 들여보면 잘 사는 편이다. 항상 골치가 되는 건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 외모와 꼬이고 뒤틀리는 러브 라인이다. 거기에 시즌 5에서 계약직으로 내려앉은 노동조건이 추가된 정도다. 하지만 그녀가 외모적 소수자로서 마주치는 불이익은 만만하지 않다. 불의를 보면 못 참는 그녀는 따지는 과정에서 항상 "아줌마" 소릴 듣게 되고, 이것은 그녀가 핸드백을 휘두르는 도화선이 되고야 만다. 이영애는, 그러니까 김현숙은, 정말이지 제대로, 속시원하게 '팬다'. 그는 주변 인물들과도 돌아가면서 쉴 새 없이 싸우는데, 내가 발견한 이상한 점 또는 아쉬운 점이 있다. 제부 김혁규(고세원)와의 사이에는 이렇다 할 이야기도 없고, 대화도 잘 일어나지 않는다. 시즌 6에서는 둘 사이의 관계가 부각됐으면 한다.

대화가 많지 않은 영애와 혁규. 가끔 이렇게 위협감을 느끼는 정도?



여러가지 애로사항에도 불구 내가 이영애를 행운녀라고 여기는 이유는 친구의 존재다. 학교 동창이자 직장 동료인 변지원 역은 도지원(동명이인데 나이가 덜 든 쪽)이 맡았다. 이 배우는 이목구비가 참 예쁘다. 하지만 <용의 눈물>에서 세종대왕비 심씨로 나왔던 12년전과는 판이하게, <막돼먹은>에서는 망가질대로 망가진다. 예쁘긴 하지만 키가 작고 돌아이(돌아온 이혼녀)라는 핸디캡을 안고 있다. 또, 집안이 엽기적으로 지저분하다. 아, 동질감!

반면, 내가 전혀 동질감을 느끼지 못한 인물이 정지순, 일명 개지순이다. 얻어쳐먹는 건 좋아하지만 식사를 사는 법이 없으며, 아부에서 비아냥까지 미움받을 만한 짓은 두루 하고 다니고, 처음에 여자한테 치근덕댔다가도 여의치 않으면 바로 깡끄리 무시한다. 얼마 전에는 사면발이에 걸려 "사발면이 생각난다"고 놀림받는 등 진상의 극치에 이르렀다. 이러다 보니 참다못해 그를 때린 직장동료도 부지기수다. 아마 나라도 한방 먹였을 법하다. 하지만 그가 가난한 집안의 장남으로 무거운 짐에 힘겨워할 때, 과거 사랑한 여자의 결혼 소식을 듣고 눈물흘릴 때야말로 드라마의 가장 슬픈 장면이 연출된다. 물론, 연민도 잠시, 그는 또 개지순으로 돌아가지만. 이 배우의 등장은 연기적 측면에서 <막돼먹은>이 거둔 최대 수확이다.

영애와 어머니가 한 화면에 잡힐 때, 가끔 유체이탈인 줄 알고 허걱하는 경우가 있다. 시즌이 뒤로 올수록 그렇다.



시즌 5에서는 청년실업자, 계약직, 인턴 사원 캐릭터가 등장하면서 고용과 노동 문제를 비추기도 했다. 워낙에 유행어가 되어 별스러운 일도 아니지만 '88만원세대'라는 문구도 자막으로 볼 수 있었다. 마지막 장면은 누군가가 해고된다는 예고를 담고 있는데, 이외에도 여러가지 돌발변수들이 갑자기 나타나 시즌 6이 어떻게 흘러갈지 엄청난 궁금증과 조바심, 그리고 '자칫 막장드라마로 변하지 않을까' 약간의 걱정 안겨다주며 시즌 5가 끝났다. 시즌 6을 만든 건 8할이 시청자의 공로인 만큼 그것이 마지막 시즌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고로 시즌 6은 당연히 러브 라인을 정리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 같다.

영애와 설킨 남자는 예전 직장후배였고 이미 두차례 사귀며 친숙해진 '도련님' 최원준과 상냥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불편했던 디자인 과장인 장동건(이해영). 영애 곁에 최후에 남는 남자는, 제작진이 구체적인 결말을 다 정해놨을 공산이 높으나, 내 생각엔 시청자가 좌우할 수 있을 것도 같다. 가을에 시청 소감 게시판에서 한판 벌어지면 흥미진진하겠다. 구경만 할 계획이지만 나는 장동건 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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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박라디오, 뉴규 아이디어냐규

전파낭비 | 2009. 7. 15. 02:04 | Posted by 김수민

김대중의 말은 논평과 거의 비슷하다. 노무현이 대변인이던 시절 막히는 게 있으면 동교동으로 가서 김대중 총재의 말을 들었는데, 그냥 받아적어도 논평감이었다고 한다. 사상시비를 비롯해 여러 음해를 받았던 정치인으로서 제 말이 활자화되었을 때를 충분히 대비하는 자세 덕일 것이다. 반대로 노무현은 활자매체에서는 두드려맞기 딱 알맞은 스타일이나, 영상매체에는 대단히 부합한다. TV앞 정치인은 진실하고 생생하면서도, 카메라 앵글에 잡기 좋은 연기력이 있어야 한다. 정동영과 김근태는 잘해야 둘 중 하나만 갖춘 경우다.

이명박의 부상에는 활자(신문)나 영상(방송)보다는 입소문이 크게 좌우했다. "청계천을 과감하게 만들었다 카더라." "대통령 후보로 유력하다 카더라." 어차피 그를, 그가 출세한 기업인임을 모르는 대중은 드물었다. 이명박캠프의 유능(!)한 기획가들은 플래카드에서 원래 그의 얼굴을 뺐다. 고지가 눈앞인데 괜히 비호감 키울 일 없지 않은가.

그래도 이명박은 그나마 영상으로 보는 게 낫다. 얼굴은 별로면서도 목소리가 의외로 유려한 이들이 많지만, 이명박은 그것도 아니며 음성이 더 나쁘기 때문이다. 한 국가의 대통령에게 공영방송 라디오에 나와서 국정을 홍보할 권리는 있다. 노무현은 이상하게도 그 방법은 쓰지 않았다. 하지만 이명박으로서는 라디오 출연이 패착이었다. 본인이 먼저 아이디어를 냈을 수도 있지만, 혹 그게 아니라면 도대체 건의한 자는 누구일까? 무능하도다. 

 

루스벨트가 가진 재능을 설명하려면 그가 좋아했던 의사소통 수단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라디오였다. 친밀성과 직접성은 매체의 본질적인 부분이다. 라디오는 지도자에게 가자 친밀한 사회 단위인 가족에 대한 접근을 가능케 했으며, 자신의 메시지를 그 가족 구성원들 각각에게 친히 전달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그리하여 청취자들은 더 이상 연설가가 아닌 화자와 직접 대면하고 있는 것처럼 느꼈다.

(중략) 라디오 청취자들은 루스벨트가 "황금의 목소리", 즉 "신선하고", "유쾌하고", "풍부하고", "재치 있고", 그리고 "선율이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졌다고 믿었으며, 그러한 속성들을 루스벨트라는 한 인격체에 이입시켰다. (...) 1940년대의 한 수사학 연구자는 "만약 허버트 후버가 마이크에다 (루스벨트의 취임 연설과) 똑같은 단어들을 말했다면...... 주식 시장은 바닥으로 떨어졌을 것이며 그와 함께 국민의 신뢰도 붕괴했을 것이다"라고 결론 내렸다.

(중략) 마치 시대착오적인 커다란 제스처를 사용하는 동료들을 뒤로 한 채 자연스러운 연기를 하는 배우들이 영화의 등장으로 인해 이익을 었었던 것과 같았다. 장엄한 수사학적 양식이 없는 루스벨트의 연설 방식은 라디오 시대에는 오히려 유리하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그렇기는 하지만, 루스벨트의 성공은 단지 선천적인 재능의 산물만은 아니었다. 그의 라디오 연설들은 주의 깊게 구성되었으며 체계적으로 연습되었다. 히틀러가 거울 앞에서 제스처를 충분히 연습한 것과 꼭 마찬가지로, 루스벨트는 발음, 억양, 속도, 숨 돌림 길이, 그리고 단어 선택에서 다양한 변화를 실험하면서 자신의 노변정담들을 연습했다. 그의 기본적인 규칙들 중 하나는 미국식 영어에서 어디에서나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단어들로 제한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또한 자신의 목소리에서 실제 연설에서는 거의 포착하기 어려운 경미한 쇳소리를 제거하기 위해 라디오 연설을 하기에 앞서 항상 의치를 했다.

(중략) 루스벨트의 노동부 장관이었던 프랜시스 퍼킨스는 백악관에서 있었던 노변정당의 녹음을 회고하면서 "마치 그가 실제로 청중들과 함께 현관의 베란다, 혹은 응접실에 앉아 있는 것처럼 그의 얼굴은 웃음을 머금고 있었고 밝았다"고 말했다. 청중들의 반응도 거의 똑같았다. 루스벨트의 보좌진들 중 한 사람이 백악관에 돌아와서, "이 아래 있는 모든 국민들은 자신들이 대통령을 개인적으로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 그들은 대통령이 자신에게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끼고 있다"고 보고했다.

- 볼프강 쉬벨부시 (차문석 옮김), <뉴딜, 세 편의 드라마>, 지식의 풍경, 2009, 86~91쪽.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더니 루스벨트가 아니라 이명박 '후버'가 된 것 같지 않은가? 청와대 학동들이여, 날로 먹을 꿈도 꾸지 말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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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원은 PD와 작가의 분리

전파낭비 | 2009. 6. 11. 16:12 | Posted by 김수민

"라디오 진행 몇년쯤 하셨어요."
"6,7년쯤 했습니다..."
"아 그래요? 그 프로는 작가 없어도 되겠네."

요즘 도는 대화내용이다. 라디오도 풍전등화인 것 같고, 간판투수인 쇼프로는 어쩔 수 없으니 일단 시사교양부터 정리하는 모양이다. <6시 내 고향>도 작가 없이 진행중이란다. KBS 'PD집필제'가 빚어낸 풍경이다. 한국방송작가협회가 성명을 낸 이래 MBC, SBS, EBS의 프로그램에서 일하는 작가들도 연대에 동참했다. 이동이 잦은 작가들의 보이콧은 예사롭지 않다. 비정규직 및 프리랜서 노동자로서의 저항권을 실현한 셈이다. 물론 반대로, 남들이 마다한 자리 얼른 채어가야 하는 작가들도 생겨나겠지만. 그러나 이 사태를 초래한 불안정노동 말고도, 근원에 자리잡은 기성 분업체계의 한계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PD와 작가들이 함께 PD집필제를 놓고 대담한 <미디어오늘> 기사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원고 쓰는 PD가 반드시 유능한 것은 아니다. 훌륭한 PD라도 글 못쓰는 PD 많다. 경쟁력 있는 PD는 프로그램 보는 눈이 있고, 스텝의 역량을 최대한 이끌어낼 수 있는 PD다."
- 김주영 한국방송작가협회 KBS사태 비상대책위원


김주영씨의 지적은 현재 한국방송의 현실에는 부합한다. 그러나, 아니 그래서 기능주의적 관점을 안고 있다. 방송원고는 시나 소설이 아니라 '말'을 적는 것이다. 특별한 미문을 요구받지도 않는데도 자신의 방송에 나갈 글을 쓰지 못하는 PD를 원론적으로 훌륭하다고 볼 수는 없다. 자신이 직접 쓰지는 않더라도 작가의 원고를 검토할 역량이 있다면 자신이 쓸 수 있는 역량 또한 있을 것이다. 작가들과 함께 PD집필제 반대에 나선 PD들도 PD의 집필참여 자체에는 긍정적이다.

"PD가 글 쓸 수 있다. <걸어서 세계 속으로>나 <풍경이 있는 여행>처럼 1인 제작 시스템도 있다. 하지만 이는 PD집필제와는 다른 차원의 얘기다. 글 쓰는 문제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가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추진하는 이른바 PD집필제를 반대하는 것이다."
- 김덕재 KBS PD협회장

"PD집필제 시행의 가장 큰 이유는 제작비 절감이다. PD들 놀면 뭐하나 이런 시각도 있다고 본다. 물론 일부 PD가 써도 무방한 프로그램이 있다. <아시아 투데이>의 연출을 맞을 때 집필을 한 적이 있는데 이 프로그램은 PD가 현장에서 부딪혀야하기 때문에 현장에 다녀온 PD가 일을 할 수밖에 없다. 이번 PD집필제로 PD들의 일이 많이 늘었다. 섭외부터 구성, 가원고, 자료조사까지. PD가 다 알아서 해야 한다. 못할 정도는 아니지만 누적되면 힘들 수 있다. 맡고 있는 <역사추적>도 이번 주부터 집필을 하게됐다.
장점도 있다고 본다. 사실 PD들이 게을렀던 부분도 있다. 작가한테 맡기는 경우도 많았다. 개인적으로는 PD가 모든 것을 다해야 하기 때문에 더 꼼꼼하게 보게 된 것이 사실이다."
- 나원식 <역사추적> PD 



사람들이 흔히 예상가능한 원고작성은 물론, 아이디어를 내놓고 계속해서 촬영화면을 체크하는 등 작가들은 방송에 누구보다 깊이 개입해 왔다. 시사교양프로의 경우 촬영현장에 동행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가 PD보다 확실히 낮은 위상을 가질 수는 없다. 굳이 따지면 작가는 내근 PD고, PD는 현장작가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지상파 방송에서, 명문대 나온 사람은 취업공부해서 PD로 입사하고, 작가는 '스펙'에 관계없이 도제 시스템을 밟아 프리랜서 및 비정규직으로 활동했다. 방송 전반을 궤뚫는 두 직종은 서로 배우고 수렴함에도 양자의 과정과 결과가 판이하다. 그리고 어김없이 비정규직은 쫓아내고 정규직은 혹사시킨다는 전형적 구도는 PD집필제를 통해 관철되고야 말았다.

꼭, PD보다 훨씬 많은 작가 인력을 되도록 정규직화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하려는 건 아니다. PD를 프리랜서화, 비정규직화하자는 이야기도 아직은 꺼낼 계제가 아니다. PD와 작가의 업무와 노동형태에 관한 기존의 관념을 잊고, 현재 프로그램에서 맡고 있는 작업과 앞으로 요청받을 임무를 따져보자는 것이다. PD와 작가는 다른 직종인가? 다른 직종이어야 하는가? PD집필제를 하려거든 PD에 작가가 포함되는 '작가의 PD화'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 (물론 여기엔 방송분야의 정규노동과 비정규노동 전체의 재편이 뒤따라야겠고.) 이런 노력이 단순무식한 인력 정리보다는 훨씬 프로그램의 질 향상에 바람직하게 작용할 터이다.  

듣자하니 남은 작가들은 자신들의 원고보다 몇시에 무슨 일정을 소화할지 계획표를 써내는 쓸데없는 데 더 골머리를 앓는다고 한다. 현 대통령은 후보 시절 선거유세에서, 참여정부를 두고 "일을 참 못해요"라고 했다. 누워서 침뱉기격임을 스스로 아는지, 그 말은 방송사 사장한테는 못하는 것 같다. PD도 원고를 쓸 수 있으면 좋다. 이점에서 나름 경영진은 정곡을 찌른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머리 맞대기의 창조성을 깨닫지 못한다. 재벌과 신문, 방송, 검찰과 경찰이 머리를 맞대지 않았다면 MB 버라이어티쇼도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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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방 겸영, 그것도 융합이라고...

전파낭비 | 2009. 5. 14. 08:47 | Posted by 김수민

본디 분야, 방면이라는 건 인간의 억지가 만들어낸 것이므로, 언제나 융합과 재편에 직면한다. 

네 가지 언어행위에 꼽히는 말하기, 듣기, 쓰기, 읽기는 교과과정 등에서 곧잘
'말하기+듣기'와 '읽기+쓰기'로 분류되곤 한다. 
그러나 어찌 보면 말하기+쓰기와 읽기+듣기가 더 자연스럽기도 하다. 
듣기+쓰기, 말하기+읽기, 말하기+쓰기도 있고 읽기+말하기도 결코 부자연스럽지 않다.  

산업+금융(은행), 신문+방송
이게 이명박시대의 융합 주제라고 한다.
산업과 금융, 딴 데다 묶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신문방송은 대학에서 신문방송학과 그러니까 그냥 묶어보자는 심산,일 리는 없다.
쉽게 생각해서
신문과 출판, 방송과 통신이 더 융합하기에 편하지 않을까?

신방겸영은, 실은 정언융합이다.  
활자매체를 통해 여론을 움직이기로 한 이들이 '장인정신'을 버리고
같은 언론분야라는 이유로 방송에 도전하겠다는 것.
한국의 신문권력이 본질적으로 언론권력이라기보다 정치권력에
더 가까워 발생하는 현상이다.

당장에 방송장악이 시원찮으니 케이블 종합편성권이 목표인가 보다.
종합편성된 케이블. 영화, 뉴스, 드라마, 예능 아마 다른 채널들에게 각개격파당할 확률이 높다.
YTN스타라는 채널 아는가? 명색이 뉴스채널의 동생이지만, 남자 출연자가 야한 여자 보고
육체 반응을 일으키면 뿅망치로 때리는 프로그램도 방영했다.
조선일보, 니네도 함 그래볼래?

조중동 케이블 진출, '망한다'에 꿀밤 석대와 알밤 다섯대 건다.
고로 이자들은 죽어라 지상파를 노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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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미스코리아 대회가 처음 열릴 때 언론보도로나마 접하며 느낀 청량감이 떠오른다. 나는 안티-미스코리아 대회의 지지자인 셈이고, 또 미스코리아 대회에 반감을 가지고 있다. 나는 그러나 미스코리아 대회를 폐지하자는 사람은 아니다. 어떤 것에 반감을 가지는 것과 그것을 없애자고 주장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미스코리아 대회의 비판자들은 미스코리아 대회가 외모지상주의를 부추긴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지만 외모지상주의를 북돋우는 주요 동력은 미스코리아 대회의 수상자나 주최측보다는 그 대회에 쏠리고 몰리는 시선과 환대에서 훨씬 더 많이 나올 것이다. 그러니 이 대회를 TV에서 몰아내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목적을 달성했다고 볼 수 있으며, 굳이 없애려고 노력하지는 않아도 될 것 같다.

물론 우리 사회의 외모지상주의는 심각한 수준에 도달해 있다. 미모 피라미드의 맨 꼭대기에 있는 연예인들이 날개짓을 하면 온 사회가 S라인과 V라인의 태풍에 뒤덮인다. '원더걸스'의 소희나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가인이 받는 각광은 미의 다원화와 개성의 분출을 증명하는 한편으로, 외모지상주의가 더 넓은 폭을 가지며 공고해지게끔 교묘히 작동되기도 한다(통통한 볼이나 쌍꺼풀 없는 눈을 가진 이들도 얼굴이 작고 날씬하기는 매한가지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외모지상주의를 우려한다고 해도, 빼어난 외모를 향한 추앙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 미스코리아 대회의 반대자들도 미모를 향한 추앙 자체가 아니라, 그를 기준으로 세워지는 서열을 비판한다. 하지만 서열의 생성을 봉쇄하는 것 역시 불가능하며 외모도 그 예외는 아니다. 미모를 근거로 진, 선, 미를 가리는 일이 그르다면, 성적을 토대로 등급을 매기는 일도 그르다. 지식인이 미인보다 더 윤리적이라거나 지식이 미보다 사회에 더 효용이 있다고 단정 지을 수도 없다. ‘지식이 노력의 결과인 반면 미는 그저 얻어진 상속물’이라는 설명도 발 디딜 곳이 없다. 그러므로 유권자가 더 나은 정치인에 투표하여 그를 당선시키고 소비자가 더 좋은 품질의 물건을 고르듯, 미인을 선발할 수도 있고 나아가 직종에 따라서 또는 심사자의 필요에 의해 미모가 합격이나 돈벌이의 견인차가 될 수도 있다. 미모를 향한 추앙이 존재하는 한, 그에 발맞추는 쪽도 늘 생기기 마련이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갖가지 서열과 순위라기보다는 그것으로써 우성 인간과 열성 인간을 가리는 차별이다. 이것이 만연한 사회에서는 어떤 분야의 승자도 다른 영역의 패자가 되면서 멸시받을 수 있다. 예컨대  공부를 잘하지만 얼굴이 못생겼다고 여겨지는 사람은, 특히 그가 여성이라면 ‘연애 시장’은 물론이고 ‘취업 시장’에서도 불이익의 여지가 있다. 그런데 그 반대의 경우에도 차별받을 가능성이 있다. 예컨대 예쁘기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몇몇 연예인들도 곧잘 “멍청하다”, “머리가 비었다”는 공세에 시달린다. 어쩌면 외모지상주의가 판을 친다는 묘사는 한국사회에 그리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겠다. 외모는 시쳇말로 ‘스펙’이라고 부르는 ‘출세와 생존의 조건’에 철저히 예속된 하나의 부속품에 다름 아니다.

스코리아 대회의 모토도 실상 “예쁜 게 최고야!”와는 꽤 거리가 있다. 마치 기여입학제를 도입한다는 사립대학이 기부금 말고도 고교 내신성적이나 학생집안의 사회기여도까지 잰다면서 둘러대는 것처럼, 미스코리아 대회도 지성과 교양까지를 아울러 수상자를 뽑는다는 걸 뽐낸다. 주최측인 한국일보사는 미스코리아를 “세계평화에 이바지하고 환경을 지키며 어린이를 보살피는 한국의 대표사절”이라고 정의한다. 그렇지만 이 대회가 참가자의 평화운동, 환경운동, 보육활동 경력을 따져, 입상과 순위에 반영하다는 소리는 들은 적이 없다. 참가자들에게 주어지는 질문은 매끄러운 언변을 테스트하고 그의 아름다움이 최소한 백치미는 아님을 확인하는 선에서 그친다. 

그렇다면 무엇이 준거가 될지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이 대회의 수상자들, 특히 최고 수상자들 중에는 서울 지역의 유명 대학교를 다니는 여학생들이 흔하고, 서울예선의 수상자가 전국본선의 수상자로 굳어지는 경향도 강하다. 세상의 흐름상 그들의 가정환경 또한 부유할 확률이 높다. 대회가 은밀히 귀띔하는, 그러나 아주 실질적인 모토는 대충 이런 게 아닐까: ‘재색 겸비한 최고의 스펙녀를 가장 좋은 혼처로’? 또는 ‘얼굴도 예쁘고 지능도 빼어난 연예인 탄생’?(물론 ‘연기력’이나 ‘가창력’은 보장할 수 없다.)

이번 미스코리아 대회에서 벌어진 사건은 위선의 극치를 보여준다. 주최측은 과거 누드모델이었다는 이유로 한 수상자의 자격을 박탈하였다. 그의 누드화보가 세계평화를 깨트리거나 환경을 파괴한 것도 아니고, 화보를 보지도 못할 어린이에게 해로울 리도 없을 텐데 말이다. 더욱이 주최측은 ‘성의 상품화’를 들먹이며 자격박탈을 합리화할 처지도 못 된다. 그들은 참가자들에게 똑같은 색깔의, 그것도 예전보다 더 얇아졌다는 의혹을 받는 수영복을 입혀 무대에 세우지 않았는가. 차라리 “아마추어리즘에 입각한 대회에 프로의 참여는 반칙이다”라고 변명한다면 몰라도.

주최측인 한국일보사는 제 인터넷판부터 돌아보길 바란다. 초기 화면에 뜨는 연예계 가쉽이나 남자들의 눈을 잡아끄는 사진은, 나쁜 것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미스코리아 대회에서 과시한 교양(!)주의와 대조적이다. 이 선정성은 특정한 섹션에 그치지 않고, 어느 객원논설위원의 에세이까지 집적거리기도 했다. 이를테면, <꽃값-사랑, 사랑의 꽃이로구나!>라는 글이 <길거리 그녀들이 몸 팔고 받는 ‘화대’의 진짜 의미>라는 타이틀과 연결되어 있고, <구강성교에 쓰이는 건 혀뿐이 아니었다>는 링크를 클릭하면 <잇바디-눈 속의 매화>라는, 기대 이하(?)의 글이 나온다.

그 에세이들은 진중한 인문적 성찰을 담고 있는 동시에 교묘하고 수줍게 에로틱한 측면이 있었고, 그래서 그 ‘야한 포장’은 그럭저럭 애교로 넘겨줄 만한 ‘낚시’였다고 백보 양보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때의 대담함에 비해 누드모델을 거르는 태도는 군색하고 초라하다. 게다가 주최측이 이미 누드화보 촬영 사실을 인지했다는 박탈자의 증언이 진실이라면, 그들이야말로 심사의 자격을 박탈당해야 한다.

철학적 심미성은커녕 야트막한 통속적인 아름다움에도 미치지 못하는 새삼스럽고 촌스러운 결정. 이 대회로부터 ‘미의 대제전’이라는 수식도 박탈해야 할 것 같다. 미스코리아 대회의 최대 안티는, 다름 아닌 그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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