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옛날 넌 언제 뜰 거냐고 묻는 임권택 감독에게 신현준 배우는 스물 여덟살 때까지는 뜨겠다고 했단다. 김수미 배우가 할머니 역할을 맡기 시작한 것은 스물 여덟살 때부터였단다. 나는 올해 스물 여덟이 됐다.
내게 2009년은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사고나 병으로 인한 죽음에 대한 예감이 이렇게 강렬했던 적은 없었다. 2008년 12월 31일 23시 50분경 나는 신촌 사거리를 건너고 있었다. 좁은 도로지만 나름대로 마지막 고비였다.
대학에 입학할 무렵 스물 너댓살 먹은 선배들을 만나면 약간의 짜증은 기본으로 감수해야 했다. 그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들은 경험이 풍부한 듯했고 사물을 보는 시야가 넓으며 편향성 따위는 없이 사려심이 엄청 깊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내가 그 나이가 되면서 진실을 알게 됐다. 막말로 조또 아니라는 걸.
스물 여덟 먹은 나는 열 여덟인 사람한테도 함부로 "인생이란 말이야..."라고 말하지 못하겠다. 도대체 그런 이야기를 하려면 어느 경지까지 가야 하는 걸까. 나는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고, 그러고 싶은 욕심도 없다.
애늙은이라는 주위의 시선에서 슬슬 해방되고 있다. 이제 나는 거꾸로 나이값 못하는 주책바가지가 되어가는 중이다.
주책 바가지라, 이거 좋다.
상당수의 사람들이 경험을 하면 할수록 되레 편벽된 꼴불견으로 거듭나는 비결은
지난 경험으로부터 "이게 최고더라"는 법칙과 고정관념을 세우기 때문이다.
나는 그러지 않도록 애쓰겠다.
독자 분들도 그러지 않기를 빈다.
그러면 새해 복 많이 받으실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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