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힘으로 벌어 먹고 살도록 해줘야지, 돈 몇푼 적선하는 건 도움이 안돼." 이런 말을 누구에게, 어느 때 처음 들었는지 가물가물하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어려서부터 들었을 말이고, 그 말 때문인지는 몰라도 대부분의 행인들은 구걸행위에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나는 언젠가부터 걸인들의 의지나 능력에 상관없이 주머니 속의 동전을 건네주리라고 결심했다. 일자리를 알선해주는 것도, 게으름을 꾸짖는 것도 내가 할 일은 아니다. 그저 내 동전 한잎이 그의 삶의 질을 당장에 좌우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막상 동전을 꺼낼 때마다 내 가슴은 철렁 내려앉았다. 쭈그리고 앉은 이에게 선 자세로 다가가 적선한다는 것이 상하관계의 한 풍경처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거드름을 피우는 것 같고, 걸인은 굴복한 것만 같았다. 며칠 전 겨우 마음을 다잡고 또 동전을 꺼냈다. 떨어트리는 느낌을 없애기 위해 500원짜리 하나를 바둑돌처럼 놓았다. 허나 위에서 아래로라는, 방향을 바꿀 수는 없었다. 나는 나쁜 짓하다 걸린 아이처럼 황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어찌 됐거나 그에게 동전만큼 쓸모 있는 것은 없다. 앞으로도 나는 걸인들을 만나면 주머니 속 동전에 대한 기득권을 포기할 것이다. 다만 나라는 사람은 그에게 아무 의미가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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