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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 고양이

Free Speech | 2009. 9. 4. 15:40 | Posted by 김수민
"쟤가 저러는 거 처음 봤네. 아무래도 데려가셔야겠는데요."

강아지가 아주 난리가 났다. 연신 내 손가락을 살짝 깨물고 몸으로 내 팔을 안는다. 물론 데려오지는 못했다. 어제 만난 분들이 주신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내 집은 좁은 데다가 개판이고 나는 강아지를 키워본 적이 없다.

그래도 키우고는 싶다. 나는 어제 본 강아지(시츄였던가?)처럼 흔히 볼 수 있는 체구의 애완견보다는 큰 개를 좋아한다. 삽살개도 참 좋아한다. 다만 비글 같은 개하고는 전혀 친하지 않다. 이런 애들한테는 꼭 깨물린다. 쬐끄만 게 깽깽 짖어대는 것도 참 싫다. 인터넷 검색창에 '3대'라고 치자마자 '3대 지랄견'이 뜨는군. 슈나우저는 그나마 귀엽고, 비글이랑 코카스페니얼은 가까이하기가 싫다. 달마시안도 장난 아니람서? 사람이랑 싸우는 것도 귀찮은데 개랑 싸워야겠냐!

언젠가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에 살게 된다면 꼭 삽살개 같은 걸 키우리라고 다짐하는데, 한가지 걸리는 게 있다. 나는 닭도 키우고 싶거든. 그래서 개 키우는 아는 형에게 물었다. 개가 닭을 공격할 확률은? 개마다 너무 달라서 알 수 없다고 그는 답했다.

따지고 보면 개가 고양이보다 개성이 더 천차만별이다. 고양이가 더 유아독존적인 것 같지만, 고양이끼리의 차이는 개끼리의 차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듯하다.

고양이를 키우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아마 내가 교회나 성당에 다니게 되는 것만큼이나 가능성이 희박할 것이다. 키우게 되면 고양이 숨인이 보듯할 것 뻔하다. 친하게 지내기 힘든 사이다.

도둑고양이는 자주 만난다. 내가 현재 사는 집은 이 부근 자취, 하숙촌에서는 좀 이례적으로 마당이 있다. 이쪽으로 숱한 도둑고양이들이 지나다닌다. 지금은 적응이 되어 서로 빤히 쳐다보면서 지나가는 게 하루 일과가 되었는데, 처음에는 깜짝깜짝 자주 놀랐다. 호랑이가 왜 고양이과인지를 새삼 실감할 정도로.

그러고 보니 그 마당에 집 잃은 강아지가 며칠 임시로 묵은 적이 있다. 그 강아지도 나를 참 좋아했었다.

도둑고양이만 있는 게 아니라 주인없는 개도 골목에서 곧잘 만났었다. 이 친구들은 꼭 같은 시각에 같은 장소를 지나갔었다. 동네개들이 마실 나온 줄 알았는데 다 주인없는 개라고 해서 놀랐고, 야산 어디서 모여서 집회를 연다는 목격담에 전율했었다. 그무렵 나는 야생화되어 불어난 고양이와 개로 개판이 된 도시를 소재로, 영화 시나리오를 써볼까 잠시 고민하기도 했다.

개띠는 개 편이라고. 정말이지 나는 고양이와 개 가운데 완벽한 개 편이다. 전경 근무하던 시절 나랑 친하게 지낸 분소 개가 있었다. 이 친구가 한번은 밤중에 분소 뒷편에서 왈왈 짖어댔다. 고양이 때문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이 친구는 분소장 사모님한테 혼이 났다. 텃밭을 갈아엎었다는 누명, 그러니까 고양이가 저지른 죄를 뒤집어 쓴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말도 못하는 그 친구의 변호를 서줬다. 하여간에 고양이는 괘씸하단 말이야.

개와 원숭이 중에는? 여기서는 중립이다. 원숭이를 키우고픈 생각도 많았었다. 하지만 명이 다해서 죽으면, 그놈이 사람이랑 원체 비슷하게 생긴 탓에 너무 슬플 것 같다. 예전에 <동물농장>이었나? TV에서 친구사이인 개랑 원숭이를 너무 즐겁게 지켜봤었다. 그 원숭이는 오락실에서 오락을 할 정도로 똑똑했던 반면, 개는 둔하고 멍했다. 원숭이가 개를 데리고 바나나를 사러 갔는데, 개가 중간에 뻗어버리자 바나나를 한개 먹이고 앞에서 춤을 추는 걸 보고 폭소했다. 원숭이나 돌고래를 보면, 혹시 이놈들이 인간들보다 머리가 좋은데 싸움을 못해서 당하고 사는 게 아닌지, 혹은 거꾸로 인간이 이용당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기도 한다. (이 의심은 토끼가 실은 육식동물이라는 내 의심과 함께 동물에 관한 양대 의심이다.)

나는 기억이 나지 않는 일인데 어릴 적 집에서 잠깐 고양이를 키웠다. 철없고 어린 엄마는 숙고도 하지 않고 아무거나 키워보자고 덜컥 고양이를 사왔지만, 전혀 감당을 하지 못했다. 고양이는 여기저기, 사람까지 할퀴고 다녔고, 급기야 엄마는 고양이를... 버렸다.;;;; 하지만 그날 밤, 집으로 다시 찾아와 '야옹~"하는 고양이. 부모님은 소름이 돋았고 일단은 다시 거두어들여 바깥에 놓고 대충 키웠다. 그러다 증조할머니 장례를 치르고 돌아왔을 때 그는 얼어죽어 있었던 것이다. 그 이후로 부모님은 다시는 고양이 키울 생각을 안하셨다. 대신 새나 금붕어를 키웠다. 얘들을 키우면서도 엄마의 철없는 행동이 이어져서, 이따금 온 가족의 타박을 받기도 했다(엄마는 식물은 잘 키우고 베란다 밭도 예쁘게 가꾸신다).

고양이 하면 또 기억이 나는 게 외할머니 장례식 때다. 외가댁에서 밤새 고양이가 울어대 집안 여자들이 밤잠을 설치고 난 후, 뒷켠에서 몰래 담배를 피던 내가 목재들 틈새에서 자는 듯 죽어 있는 고양이를 발견한 것이다.

고양이 그리고 개에 관한 짠한 경험도 있다. 역시 치안현장 시절 일이다. 얼마 전 이와 관련한 다큐멘터리 영화도 나왔던 것 같다. 나는 차도에 나왔다 죽은 동물을 수도 없이 봤고 때로는 치웠다. 가장 끔찍했던 건 아예 몸이 해체되어 버린 어떤 개였다. 함께 있던 경관은 끔찍한 사람 시체도 많이 봤지만 아무리 봐도 적응이 안된다며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그분은 알아주는 강심장에 한터프하시는 분이었다.) 수적으로는 개보다 고양이의 피해가 훨씬 컸다. 청솔모들도 떼거지로 죽곤 했고.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는 다큐에도 재밌는 대화가 나온다. 한담 중 이상수 장관이 동물들이 지하로 다닐 수 있는 길을 뚫어야 하지 않겠냐고 하자, 노무현 대통령이 "교육도 안 받은 놈들한테 땅밑으로 가라"면 어쩌냐며 도로를 고가화해야 한다고 웃으며 답했다.

나는 길거리에서 죽은 동물들을 보며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반동물적임을 절실히 깨달았다. 사람들은 개나 고양이 등등을 애완동물이라며 키우고 근래 들어서는 '반려동물'이라고까지 부르지만, 이 행위는 근본이 반자연적이고 반동물적이라는 데에 생각이 미친다. 어쩌면 이것이 내가 동물을 키우지 않은 가장 큰 이유일지도 모른다. 아파트에서 개를 키울 때, 성대수술을 하는 건 개한테 못할 짓이고, 개가 마구 짖어대는 것도 이웃에게 못할 짓이다. 수술을 하지 않았으면서 원래 잘 짖지 않도록 훈련된 개라고 해도 마음이 편하지 않다. 마음껏 짖고 뛰어놀게 해주고 싶다. 앞에서 말했듯 마당 있는 집에서 키우면 좋기는 할 것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애완'행위의 반동물성, 반자연성이 제거되거나 누그러질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게 사람이고 반려동물인 걸까.

그래도 어떻든 생물과 더불어 살고 싶다. 내 방에 생물은 나하나밖에 없다. 아, 모기도 있구나. 식물 쪽을 알아봐야겠다. 몇년전부터 계속 생각나는 게 있었다. 콩나물! 볕들지 않는 구석에서 바가지로 물을 끼얹으며 명상하는 내 모습을 상상한다. 만약에 키우게 되면, 주변에 싸게 팝니다. 그러나 왠지 해장용으로 내가 다 먹을 것 같다는 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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