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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Free Speech | 2008. 11. 30. 18:27 | Posted by 김수민
예전 살았던 하숙집에는 점심을 제외한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지하식당이 있었다. 나는 거기서 말수가 적었다. 아침엔 잠이 덜 깨어서 할 말이 없었다. 저녁엔 다들 고시 이야길 했다. 고시를 준비하지 않는 학생들도 취업시험을 앞두고 있었다. 나는 4층에 친구는 2층에 살았는데, 친구와 함께 살던 형도 CPA를 준비 중이었다. 사람 셋 이상이 모일 때면 벌어진 대화에서 나나 그 친구는 열외되었다.4층의 방은 다 1인실이었고 거주자들은 모두 남자였다. 때로 새벽이면 어느 방의 주인과 놀러온 친구의 두런거림이 들려왔다. 그들은 서너시까지 여자 이야길 했다. 하루는 함께 저녁밥을 먹은 이들과 문앞으로 나와 담배를 태웠다. 고시생들은 3층의 여학생 둘을 화제에 올렸다. "그 학생들 구미여고 출신인데 얘는 구미고 출신이에요. (두 학교는 동문의식이 강하니까) 1년 차이로 선후배죠." 친구의 소개에 시선이 내게 쏠린다. "구미 사람들은 원래 그렇게 예쁩니까?" 그들은 다시 고시이야기로 돌아갔고, 그것은 여자이야기와 섞였다. 나보다 한 살이 많았던 두 사람의 결론이 압권이었다. "우리가 고시에 합격한다고 해도, 3층 아가씨 같은 사람들과 결혼할 수 있을까?" 하숙집을 나온지 3년이 다 되어간다. 그리고 그무렵 우리의 나이에 이른 사람들이, 그때와 비슷한 대화를 하는 걸 여기저기서 목격한다. 나는 세해 전 이맘 때 현재 묵고 있는 원룸 자취방으로 이사왔다. 참 패기있는 청년이었는데, 나는... 쓴웃음이 나온다. 그러나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어디론가를 향해 늘어서 있는 행렬에서 멀찍이 떨어져서 걷고 있다. 내년 2월, 나는 졸업과 동시에 이 원룸 자취방을 떠난다. 그동안 주인 아주머니를 빼고는 인사하고 지내는 이웃이 단 한명도 없었다. 지하식당 같은 것도 없고, 집단흡연도 없었다. 계단을 올라 자기 방으로 쏙 기어들어가면 끝이었다. 남자들끼리 마주치면 고개를 약간 돌리고 몸을 비켰으며, 남녀가 마주치면 잠시 물끄러미 쳐다 보고 지나쳐 간다. 두어번만 들어도 지겹기 짝이 없는 고시이야기도, 구리구리한 신세타령을 실은 여자이야기도 들려온 적 없다. 내 옆방은 놀러온 남자 서너명이 들끓으며 곧잘 시끄러워지지만 소음의 소재와 내용은 알 수 없다. 나는 항의하지 않는다. 대신 나는 음악을 들을 때 볼륨을 크게 높인다. 옆방 남자도 항의하지 않는다. 저녁식탁의 고시이야기, 새벽 옆방의 여자이야기에서 해방되었던 나는 그렇게, 항의하는 법도 항의받는 법도 일상에서는 잊어버린 채 3년의 세월을 보냈다. 내 나이 또래에게 3년이란 금세 흐르면서도 인생에서 여전히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는, 한마디로 치명적인 시간이다. 내겐 3년 전 미처 이어가지 못했던 일이 있었다. 11월 28일 그걸 다시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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