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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싸대기

Free Speech | 2008. 12. 6. 23:40 | Posted by 김수민

군입대가 임박한 지인과 얘기를 나누고 집에 돌아온 날 밤, 나는 다시 군으로 입대하는 꿈을 꾸었다. 예전 한동안은 지겨운 말년 시절에 머물러 있는 꿈을 자주 꾸었는데, 언제부턴가 재입대하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설정은 대개 비슷했다. "전경 출신은 다시 입대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꿈에서 상근예비역이 되어 보기도 하고 의무소방대로 끌려 가기도 했다.

급기야 며칠 전에는 고등학교에 있는 꿈을 꾸었다. 무엇을 잘못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어느 체육 선생에게 귀싸대기를 맞았다. 그 선생은 내가 생시에서 마주친 적이 없는 가상인물이었다. 163cm에 70kg쯤 나가는 작달막하면서 다부진 체격이었다. 그는 손을 휘두른 다음 말했다. "너 진보신당 당원이라며? 이 새끼 사물함 뒤져 보면 불온문서 잔뜩 나오겠네. 너도 장하준의 <나쁜 사마리아인> 읽었냐?"

골똘히 생각해 보니 나는 분명 올해 5월에 교생실습을 다녀왔다. 그런데 내가 왜 고등학교 1학년이 되어 귀싸대기를 맞고 빨갱이 공세를 당하고 있나? 내가 한달간 가르친 애들이 내 상급생이란 말인가? 뭐냐 이거. 일단, 저 새끼부터 처리를 하자. 나는 경찰이 출동하는 사태를 방지하러 그 선생을 미행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휘갈겨 버릴 작정이었다. 선생은 체육관에 들어섰고, 나는 따라 들어가 슬슬 발걸음을 빨리 하며 그의 등을 향해 뛰어갔다. 넌 오늘 죽었다!

역시나, 그 타이밍에서 꿈에서 깼다. 일어나서 5분간은 정말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내 청소년기 항상 학교에서 체벌을 겪어 왔지만 귀싸대기를 맞은 건 몇번 안 된다. 왜 그런 꿈을 꾸었을까? 그러나 그보다는 왜 나는 심하게 맞을 때도 가만히 있었나,하는 생각에 더 열이 받았다. 10대 땐 '수 틀리면 감방간다'는 게 기본 신조였는데 왜 주먹을 그쪽으로는 뻗지 못했을까? 나이 스물 일곱 먹고도 아주 가끔은 폭력교사들이랑 일기토 뜨는 상상을 한다. 

이런 내가, 크고 작은 우여곡절이야 없지 않았지만, 그래도 결국은 평온하게 살아왔던 건 내가 '선생 운'이 좋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이 내 성난 마음을 달랬다. 그러나 씻을 기회를 놓친 분노는 평생을 간다. 모교에서의 즐겁던 교생실습은 고등학교 시절이 내게 드리운 그림자를 저만치 물러가 있게 했다. 하지만 나와 똑같이 생긴 어느 중학생과 고등학생은 아직도 세월 저편에서 짧아진 그림자 안을 고집하며 씩씩거리고 있다. 나는 그를 이쪽으로 불러내 타이를 수 없다. 오히려 저쪽의 분노가 꿈자리까지 덮쳐가며 내게 순식간에 전염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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