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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 대 복지

Forum | 2009. 9. 12. 16:46 | Posted by 김수민
내 주변에 있던 NL 사람들은 비판적 지지와는 대척점에 있었다. 2007년 대선을 한두해 앞두고 민주대연합론이 재현될 조짐이 보일 때, 그중 한 사람은 내게 "민주 대 반민주가 아니라 복지 대 반복지로 가야 한다"고 제 견해를 밝혔다. 나도 따라서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지만 세상사는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정운찬은 서울대 총장 시절 고교평준화 폐지, 본고사 부활을 역설하는 동시에 지역균형 신입생선발을 실시했다. 한국에서 찾기 드문 포지션이지만, 이는 수구보수세력에게 커다란 힌트가 될 수 있다. 정운찬은 "기본적으로 경쟁을 중시하고 촉진한다는 점에서, 다만 경젱에서 뒤처진 사람들을 배려하는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자신과 이명박의 생각이 비슷하다고 밝혔다. 실제 이명박이 그점을 보여주는 데만이라도 애를 쓴다면, 한국 수구파는 이미지적인 업그레이드를 이루게 된다. 일단은 경쟁 대 연대의 전선이 흐려지고, 복지 대 반복지로 싸움을 끌고 갈 여지도 크게 줄어든다.

노무현 정부 임기 중반께 한국사회 대다수의 구성원은 성장률 저조보다 사회양극화 심화를 우려했다. 원래부터 미국식 모델보다 유럽식을 선호하는 시민들이 많기도 했으니 관심이 자연스레 성장에서 분배로 기울어지는 추세였던 것이다. 하지만 다시 성장지상주의가 춤을 췄고 노무현 정부의 우경화는 이명박 정부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파이의 크기와 트리클 다운에 탐닉하는 반복지담론이 또다시 기승을 부린 탓일까? 아니다. 대중은 여전히 파이의 크기에 주목하나 성장이 자동으로 가져올 분배를 기다리기에는 지난 세월 여러번 속았다. 돈은 돌아야 제 맛이라는 걸 모두가 알고 있다.

"일자리가 최고의 복지다." 이 명제는 좌우상하의 사회경제적 담론을 일거에 빨아들인 블랙홀이다. 진보 진영의 '비정규직 철폐' 구호까지도 이용당했다. 비정규직을 늘려 노동유연성을 꾀하자는 주장은 교활하거나 천진난만한 소수 엘리트들 바깥으로 나가면 힘을 잃는다. 보수적 대중에게도 전혀 먹히지 않는다. 대다수가 정규직 일자리의 증대를 희망한다. 그렇게 해서 정부발 복지담론과 비정규직 철폐 구호가 만난 결과, 기껏 옛 기업복지의 신화를 향한 향수나 번지고 말았다. 월급을 타면 부동산에 투자할 수 있고 회사에 들어가면 자녀 교육비가 나온다는 믿음 때문에, '밑빠진 독'보다는 길어올 물에, 잔디구장보다는 공의 확보에 경도된 것이다.  

일자리가 최고의 복지라는 지론을 흔히 '생산적 복지'라고 한다. 이 단어는 김대중 정부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곁에 셋째 슬로건으로 세워둔 바 있다. 길거리에 나가 아무나 잡고 물어보자. "생산적 복지의 반대말이 무엇입니까?" 생산적 복지의 정확한 반대개념은 쉽게 간추려 조세->재분배의 과정을 통해 일어나는 소비적 복지다. 하지만 아마 "비생산적 복지"라는 대답이 적이 들려올 것이다. 또한 근로의욕을 상실한 채 실업수당 받으면서 집에서 빈둥거리는 현상을 비생산적 복지의 폐해라고 지목할지도 모른다. 그럴 경우 소비적 복지는 졸지에 비생산적 복지와 등치될 것이다. 굳이 '비생산적'이라고 하지 않아도, '소비'는 '생산'에 진다. 대중들은 이미 소비자제일주의의 질척한 수렁에 빠져 있지만, 아직 개념과 언어만은 그렇지 않다. 

(생산적 복지는 하나의 독을 더 품고 있다. 재분배 말고 사회의 평등과 조화, 협동을 이루는 방법으로는 생산수단의 사회화나 기업경영참여의 확대 등이 있다. 시민을 수동적으로 이끄는 기존 복지의 단점을 만회하고도 남는 실로 생산적인 이런 작업들을 '생산적 복지'는 고용과 취업이라는 떡밥으로 가려 버린다.)

한나라당 정책지휘자들은 '얕고 넓은 세수'를 주창한다. 세율은 낮춰도 '작은 정부론'은 누그러뜨리겠다는 의미다. 하지만 Laffer Curve가 Laugher's Curve가 된 지 오래라 파급력 있는 기조는 아니다. 오히려 투쟁과 합의의 산물인 조세와 그것의 도움을 받은 사회서비스의 무상화를 더 크게 훼방하는 걸림돌은 "일자리가 복지", '기업 복지', '생산적 복지'이다. 이걸 깨지 못하면, '복지'는 '민주'와 '개혁' 형님들 곁으로 가게 될 것이다. 민주민생세력을 자임하는 이들은 마땅히 이 줄초상에 브레이크를 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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