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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죽어라 민족주의, 애국주의

Forum | 2009. 8. 28. 20:42 | Posted by 김수민

민족주의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한 서양사학자가 순간 내뱉은 말에 아연했다. "우리나라는 통일이라는 과제도 있고... 그래서 민족주의를 극복하거나 탈피하자는 주장은 잘못됐다." 걸핏하면 뜬금없이 꺼내드는 통일론을 들으면 자기네들이 언제 그렇게 통일을 고민했는지 의심부터 들고, 동시에 통일이라는 게 민족주의에 의거해야만 하는 것인지, 혹은 통일은 어떤 상위가치의 통제도 따르지 않는 지상명제인지 따져묻고 싶다. 오늘날에 들어 같은 민족이니 통일을 해야 한다는 당위는 한(조선)반도 주민의 살갗에 닿지 않고, 그 사이 대거 생략된 평화론이 힘을 잃을 경우 민족통일이든 평화체제구축이든 지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한국사회에서 거개의 통일론과 그에 기반한 민족주의는 분단현실을 이용해 다른 논의와 노선을 억압하는 분단이데올로기로 작용한다. 이것은 보혁의 합작품이기도 하다. 국가보안법의 탄생 배경은 분명 분단현실이었다. 그러나 반인권악법을 폐지하는 과정이나 결과가 분단의 반대말이라는 '통일'에 달려 있지는 않다. "남북이 화해하고 있고, 통일도 해야 하니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야 한다." "아 그러쎄여? 얼마 전부터 남북관계는 경색되고, 통일은 요원하니 국보법을 놔둡시다." 이것은 2004년 국가보안법 폐지논쟁을 이끈 대화방식이었다. 국가보안법이 시대착오적이라는 공세에, 그 법은 날 때부터 착오적이었다는 진실은 묻혀지고, 시대가 어떤지를 두고 소모적으로 다투다 날밤을 샜다.

민족주의는 과거사 정리와 청산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두가지 장면이 떠오른다. 몇해 전 수업시간, 한 학생은 숭실대학교의 신사참배 거부투쟁을 평가절하했다. 종교적 신념에 따른 행동이지 민족을 위한 싸움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내가 손을 들었다. "민족이 됐든 종교가 됐든 제국주의에 맞서는 투쟁이었죠. 민족주의적 잣대로 의의를 제한한다면, 반제국주의 역사가 제대로 기려질 수 있겠습니까?" 백낙준 친일 심포지엄에 나온 어느 연세대 교수들은 백낙준의 일제부역혐의를 인정하면서도, "그분이 민족교육에 이바지한 것은 인정되어야 한다"고 강변했다. 무엇이 민족을 위한 길인지 논쟁할 이유는 없다. 민족주의는 본질적으로 매우 유동적이라, 아무나 차지할 수 있고 끝없이 논적을 욕하고 몰아붙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민족주의는 제한적이다. 태평양전쟁에 짓밟힌 여타 아시아국가의 시민들에게는, 백낙준이 한국민족교육에 이바지했든 말든 그가 일본 제국주의에 협력했다는 사실만 뚜렷할 뿐이다.  

민족주의 극복은 국가적 과제나 민족문제를 회피할 목적이 아니라, 민족주의가 견제하고 탄압한 구체적인 진실과 보편적인 규범을 되살린다는 명분을 가진다. 외세와 분단이라는 실체를 외면할 수는 없다. 민족문제는 여전히 진지하게 탐구되어야 한다. 하지만 민족문제를 고민하고 해결하고자 하는 이가 민족주의자일 필요는 없다. 민족문제 연구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리영희나 반제국주의, 반오리엔탈리즘을 철두철미하게 견지하는 박노자 등이 그걸 증명한다. 탈민족주의자가 국가나 민족을 도외시한다는 비난에 응답해야 할 책무는 없다. 오히려 민족문제가 중요하다고 떠들어대면서 왜 그리 곧죽어라 민족주의를 외쳐대고, 자신들의 과업을 굳이나 민족주의로 개념화하는지, 민족주의자가 답해야 할 일이다. 

근래에는 애국주의 타령까지 끼어드는 형국이다. 애국주의는 민족주의의 곁에서, 양면을 가진다. 첫째, 애국주의는 곧잘 '한민족'보다 '대한민국 국민'에 기반을 둠으로써 분단이나 외세, 반공주의를 생략하거나 축소한다. 그래서 자칫 보수적으로 흐를 여지가 크다. 둘째, 애국주의는 기존 민족주의의 종족적 혈통적 요인을 벗어던지고 '민주공화국'과 같은 국가정체성이 스스로를 결부시킴으로써 근현대적으로 진일보한 문제의식을 가진다. 하지만 나는 묻는다. 왜 애국'주의'인가? 시장이 유용하다 믿는다고 해서 그가 시장주의자인 것은 아니다. 사회나 국가를 중시한다고 해서 그를 사회주의자, 국가주의자라고 부르지 않는다. 자신을 사랑하고, 고향을 사랑하고, 제게 주어진 우연을 사랑하여 애국자가 될 수 있다. 헌법에 씌인 국가정체성을 자랑스러워할 수도 있고, 아직 꽃피지 못한 조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할 수도 있다. '조국'을 피하지 않은 사회주의자 장 조레스에게는 반전평화가 곧 애국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행위 맨앞에 '애국'이라는 이름표를 붙이고, 나아가서 애국주의를 긍정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에둘러 갈 것 없다. '민주적 애국주의자'든, '열린 민족주의자'든 소리높이는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보다 진보적, 좌파적인 세력을 비난하여 소위 민주개혁진영, 진보진영에서의 헤게모니를 강화하고, 다른 쪽으로는 '애국 대 매국'으로 단순화된 이 나라의 담론지형에서 보수파로부터 자신을 방어할 알리바이를 획득하기 위해서다. 현재 진보좌파진영에서 국가의 개혁과 정치권력 획득을 도외시하는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과거 혁명주의의 잔향이 짙을 적에도 일군의 지식인, 운동가들은 퓰란차스를 끌어와 연구했다. 그러나 다른 한쪽에서는 연이어 취조 심문한다. "너는 조국을 사랑하는가?" "이제는 좀 민족주의를 긍정하는가?" "왜 애국주의자가 되지 않는가?"

호통치고 캐묻는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자. 그들은 스스로를 진보라고 말하고 신자유주의가 문제가 많기는 많다고 한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이야기를 자주 꺼내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진보개혁' 진영을 분열시키는 짓이고, 김대중과 노무현으로 상징되는 민주화진영 주류의 공고한 지도력을 훼손하기에. 자연히 그들은 민주당계열이 한나라당과 가장 다른 대목인 '평화통일'을 강조한다. 그들 중 상당수는 한나라당이나 이명박 정부를, 충분한 역사적 조명이나 개념 정리를 건너뛰고, 막무가내로 파시즘이라 규정한다. 그래야 단결할, 내부(그들의 입장에서는 내부다)를 단결시킬 빌미가 생기니까.

10여년간, 최소한 정서적으로나마, 여당 생활도 해본 그들은 책임정치의 탈을 쓰며 뒤늦게 지략가의 풍모를 갖추려 애쓴다. 민족주의 및 애국주의 성향이 강하다는 한국사회의 현실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권력을 쌓아나가겠다는 심산이다. 고생이 많다. 민족주의자, 애국주의자라는 휘장을 두른다고 해서 그게 득표에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대중의 민족주의, 애국주의 성향은 자신을 민족주의자, 애국주의자라고 부르길 즐겨함으로써 생겨난 게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 민족주의, 애국주의를 외쳐대는 이들은 1980년대의 NL이나 PD와 무척 닮았다. 알고 보면 그다지 체계적이지도 않은 제 이론에 현실을 끼워맞추고, 특정한 하나의 기둥을 세워 환원주의를 행사하고 나머지는 모두 서까래나 창살로 만들어버린다. 조야하고, 철이 없다.

초등학생 시절 내 동생은 학교 견학을 통해 박정희 생가에 들렀을 때 묵념하는 순서에서 고개숙이지 않았다. 나는 군복을 입었을 때를 빼면, 고2때부터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지 않았다. 그와 나의 행위는 충성 강요에 대한 거부였다. 그러나 그나 나나 적발되지 않았다. 고개 숙인 인간들이, 딱딱하게 앞만 바라보는 인간들이, 거부자를 발견할 수 있었겠는가. 민족주의자, 애국주의자들이여, 그렇게 맹세하는 가운데 고작 곁눈질하며 강요하는 주제에 타인의 삶과 사유가 제대로 눈에 들어오겠는가. 나는 이들과의 사상논쟁이 진보진영 내부토론으로 불려지기를 거부한다. 그들은 단지 '박정희 좌파'에 불과하다.


덧1: 6.3 학생운동세력은 박정희의 '민족적 민주주의'를 화형시켰다. 민족적 민주주의를 거부한 것이 아니고, 자신들이 진짜며 박정희를 사이비라고 주장한 것이다. 하지만 그 상당수는 박정희의 자장으로 빨려들어갔다. 필연적이었다. 민족과 민주는 한국사에서 서로 어울리며 길을 뚫어왔지만, 결국은 어디에 더 역점을 둘 것인지를, 양자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개발독재의 최일선에 선 이명박, 이헌재나 이세기 같은 기득권자들, 사카린밀수 규탄자였던 정형근, 공화당과 민정당을 거친 김원웅 등은 민족주의(적 엘리트주의)의 행로가 어디인지를 훌륭하게 입증했다. 그런 의미에서 박정희 정권 청와대에서 근무한 최장집이, 한동안 열린 민족주의자에 가까웠다가 끝내 민족주의 자체를 회의하기 시작한 것은 극적인 변화였다. 이 역시 어떤 민족주의의 진로 가운데 하나로, 민주주의의 맥락에 든 민족주의는 결국 해체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 사례다. 최장집에 반해, 백낙청과 창비 진영은 모순을 껴안고 있으며, 김원웅은 그 모순이 가장 첨예한 사례다. 물론 모순 정도는 죽을 때까지 껴안고 갈 수가 있다. 그렇지만 모순으로 가릴 수 없는 본색이라는 게 있다.

덧2: 작년 교생실습 당시, 마지막 수업에서 학생 겸 후배들에게 내가 남긴 말. "여러분들이 공부하는 교과서는 민족사관에 근거해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관에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계급, 젠더, 섹슈얼리티, 종교 등의 잣대들이 있는 거죠. 이들은 각자 다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개인의 구체적인 현실을 깨닫고 떠받치지 못한다면, 그것을 억압한다면, 그 사관은 폭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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