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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박라디오, 뉴규 아이디어냐규

전파낭비 | 2009. 7. 15. 02:04 | Posted by 김수민

김대중의 말은 논평과 거의 비슷하다. 노무현이 대변인이던 시절 막히는 게 있으면 동교동으로 가서 김대중 총재의 말을 들었는데, 그냥 받아적어도 논평감이었다고 한다. 사상시비를 비롯해 여러 음해를 받았던 정치인으로서 제 말이 활자화되었을 때를 충분히 대비하는 자세 덕일 것이다. 반대로 노무현은 활자매체에서는 두드려맞기 딱 알맞은 스타일이나, 영상매체에는 대단히 부합한다. TV앞 정치인은 진실하고 생생하면서도, 카메라 앵글에 잡기 좋은 연기력이 있어야 한다. 정동영과 김근태는 잘해야 둘 중 하나만 갖춘 경우다.

이명박의 부상에는 활자(신문)나 영상(방송)보다는 입소문이 크게 좌우했다. "청계천을 과감하게 만들었다 카더라." "대통령 후보로 유력하다 카더라." 어차피 그를, 그가 출세한 기업인임을 모르는 대중은 드물었다. 이명박캠프의 유능(!)한 기획가들은 플래카드에서 원래 그의 얼굴을 뺐다. 고지가 눈앞인데 괜히 비호감 키울 일 없지 않은가.

그래도 이명박은 그나마 영상으로 보는 게 낫다. 얼굴은 별로면서도 목소리가 의외로 유려한 이들이 많지만, 이명박은 그것도 아니며 음성이 더 나쁘기 때문이다. 한 국가의 대통령에게 공영방송 라디오에 나와서 국정을 홍보할 권리는 있다. 노무현은 이상하게도 그 방법은 쓰지 않았다. 하지만 이명박으로서는 라디오 출연이 패착이었다. 본인이 먼저 아이디어를 냈을 수도 있지만, 혹 그게 아니라면 도대체 건의한 자는 누구일까? 무능하도다. 

 

루스벨트가 가진 재능을 설명하려면 그가 좋아했던 의사소통 수단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라디오였다. 친밀성과 직접성은 매체의 본질적인 부분이다. 라디오는 지도자에게 가자 친밀한 사회 단위인 가족에 대한 접근을 가능케 했으며, 자신의 메시지를 그 가족 구성원들 각각에게 친히 전달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그리하여 청취자들은 더 이상 연설가가 아닌 화자와 직접 대면하고 있는 것처럼 느꼈다.

(중략) 라디오 청취자들은 루스벨트가 "황금의 목소리", 즉 "신선하고", "유쾌하고", "풍부하고", "재치 있고", 그리고 "선율이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졌다고 믿었으며, 그러한 속성들을 루스벨트라는 한 인격체에 이입시켰다. (...) 1940년대의 한 수사학 연구자는 "만약 허버트 후버가 마이크에다 (루스벨트의 취임 연설과) 똑같은 단어들을 말했다면...... 주식 시장은 바닥으로 떨어졌을 것이며 그와 함께 국민의 신뢰도 붕괴했을 것이다"라고 결론 내렸다.

(중략) 마치 시대착오적인 커다란 제스처를 사용하는 동료들을 뒤로 한 채 자연스러운 연기를 하는 배우들이 영화의 등장으로 인해 이익을 었었던 것과 같았다. 장엄한 수사학적 양식이 없는 루스벨트의 연설 방식은 라디오 시대에는 오히려 유리하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그렇기는 하지만, 루스벨트의 성공은 단지 선천적인 재능의 산물만은 아니었다. 그의 라디오 연설들은 주의 깊게 구성되었으며 체계적으로 연습되었다. 히틀러가 거울 앞에서 제스처를 충분히 연습한 것과 꼭 마찬가지로, 루스벨트는 발음, 억양, 속도, 숨 돌림 길이, 그리고 단어 선택에서 다양한 변화를 실험하면서 자신의 노변정담들을 연습했다. 그의 기본적인 규칙들 중 하나는 미국식 영어에서 어디에서나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단어들로 제한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또한 자신의 목소리에서 실제 연설에서는 거의 포착하기 어려운 경미한 쇳소리를 제거하기 위해 라디오 연설을 하기에 앞서 항상 의치를 했다.

(중략) 루스벨트의 노동부 장관이었던 프랜시스 퍼킨스는 백악관에서 있었던 노변정당의 녹음을 회고하면서 "마치 그가 실제로 청중들과 함께 현관의 베란다, 혹은 응접실에 앉아 있는 것처럼 그의 얼굴은 웃음을 머금고 있었고 밝았다"고 말했다. 청중들의 반응도 거의 똑같았다. 루스벨트의 보좌진들 중 한 사람이 백악관에 돌아와서, "이 아래 있는 모든 국민들은 자신들이 대통령을 개인적으로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 그들은 대통령이 자신에게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끼고 있다"고 보고했다.

- 볼프강 쉬벨부시 (차문석 옮김), <뉴딜, 세 편의 드라마>, 지식의 풍경, 2009, 86~91쪽.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더니 루스벨트가 아니라 이명박 '후버'가 된 것 같지 않은가? 청와대 학동들이여, 날로 먹을 꿈도 꾸지 말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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