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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의 별세

Free Speech | 2008. 11. 9. 21:26 | Posted by 김수민

조선 후기 조세금납화에 관해 석사논문을 썼던 선생은, 그뒤 일제시대로 넘어와 <백남운의 정치경제사상 연구>로 박사논문을 썼다. 당시만 해도 그의 어떤 선학들은 그의 연구를 "운동"으로 받아들이기도 했단다. 학문적 깊이가 없는 나로서는 여기서 설명을 맺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교생실습을 다녀온 뒤 유월에 선생을 마지막으로 뵈었다. 그 학기 함께 수업을 들은 학생들과 종강을 기한 술자리에서였다. 그는 그날따라 정치적인 이야기를 좀 했고, 최근에 마음 먹은 바도 이야기해주었다. 선생은 내게 "민노당원이냐 진보신당원이냐"고 묻더니 "너무 싸우고 그러지는 말어"라며 웃으며 한마디했다.

뜻 모를 말씀도 하셨다. "수업시간에 사회진화론 이야기 많이 하더구만. 요즘 듣자하니 사회진화론 제4기인가 뭐라던데... 자네는, 언제까지 '준비'만 할 텐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는 내게 그는 곤조를 좀 더 부려보라고 덧붙였다. 노래방에선 내게 "너는 아무래도 길을..."이라며 흥겨워하였다.

선생은 도어즈와 딥 퍼플의 팬이고, 배호와 신중현의 곡을 애창했다. 내가 그와 가졌던 두 차례의 술자리는 모두 노래방으로 이어졌다. 새벽에 토스트로 독창적인 해장도 해 보았다. 그는 마시고 놀고 터놓고 이야기하는 걸 좋아했다. 가끔은 수업시간에 엊저녁 술자리가 남긴 힘겨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여름에 그가 쓰러졌다 퇴원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가을학기 수업도 강의보다 토론이 많은 것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어제는 선생의 젊은 시절을 연상케하는 얼굴이 조금 닮은 사람을 만나, 잠시 선생을 생각했다. 그리고 오늘, 별세 소식을 들었다. 

유월 그날, 선생은 나를 보고 연신 웃었다. 계속 말을 걸었고, 대화가 끊어질 때면 얼굴을 빤히 쳐다 보며 또 웃었다. 얼마나 뻘쭘하고 쑥스럽던지. 아직도 나는 그날 선생의 말씀과 웃음의 의미를 잘 풀지 못하고 있다. 이제 건강 걱정 없이 편히 마시고 노시길 바랄 뿐이다. 내가 가끔 선생의 성대모사를 한다는 걸, 곧 들킬 것 같다.



빈소 : 신촌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 지하1층 11호실(신관) (02-2227-7547)
발인 : 11월 12일(수) 오전 8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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