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정치학자가 어느 동네의 문화센터에 와서 설명한다. "중대선거구제에서는 소수정당이 약진할 가능성이 높고 어쩌고 설라무네..." 그러자 이웃집 박씨 아저씨가 손을 들고 질문한다. "근데요. 85년도 2.12총선 때는 민정당이 반은 묵고 들어갔잖아요. 그때 중선거구제였는데 어찌 된 건지..." 이때 학자는 아마추어의 질문을 대충 뭉개고 넘어갈 공산이 얼마간 있다. 박씨 아저씨가 이웃이자 동료 수강생들에게 밟힐 가능성은 그보다 더 높을 것이다. "아이고, 뭘 안다고. 네가 교수해라." 하지만 무엇보다 한국사회에서 이렇게 전문가와 일반인이 만나는 광경이 벌어질 가능성부터가 이미 낮다.
내가 요 밑에 붙여놓은 <가라공화국 전복>을 읽고, "세상이 그렇게 빡빡하면 안 굴러가는데..." "이 친구 참 골치 아픈 사람이로군"이라 느낀 독자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가라공화국만큼 빡빡한 곳도 없다. 가라공화국은 실상보다 타이틀과 스펙에 의존한다. 그래서 거꾸로, 위의 예화에서처럼 이 곳에서는 타이틀과 스펙에서 열세인 쪽은 고전을 면치 못한다. 전문가가 독점한 영역을 인민대중의 손으로 넘기는 것은 봉쇄되어 있다.
한편 전문가는 자신이 입증해야 마땅한 것 바깥의 작업에 정신이 없다. 쌓아올린 실상은 허름한데, 다른 일에서 혹사당하고 엉뚱한 달인이 되는 것이다. 관련된 능력 하나 제대로 뽐내는 것으로 족한 게 아니라, 윗사람에게 잘 보이고 갈라먹을 때 옆자리 놈보다 더 많이 챙기느라 분주하다. 이 상황에서 잔머리 굴리기를 멈추기란 고속도로에서 시속 140km를 밟는 도중에 5초간 한눈 파는 꼴과 같다.
따지고 보면 세상에 가라 아닌 것은 없다. 얼렁뚱당 넘어간 부분이 조금도 없는 것은 만들어지지 않은 것, 선보여지지 않은 것이다. 질외사정에 의존하며 피임을 가라로 한 결과로 태어난 사람도, 내가 확인한 바는 없지만, 있을 수밖에 없다. 도무지 성에 안 차는 작품을 응모마감을 앞두고 에라 모르겠다며 대충 마무리 땜질을 하고 냈다가 등단하는 작가도 있을 것이다. 사람이든 작품이든 그런 결과로 태어나도 제 스스로 오롯하고 당당하게 서고, 또 타인과 사회에 행복과 이익을 가져다줄 수도 있다.
다만 문제는, 쉽고 간단하며 피상적이게 가라로 말하자면, 그게 아닌 또는 그에 매우 못 미치는 경우라는 얘기다. 누가 가라를 먼저 시작했느냐, 누가 더 큰 가라를 자행하고 있느냐도 굉장히 중요하다. 가령 어떤 학생이 가라로 숙제를 했다. 하지 않은 채 백지를 펼칠 경우 선생에게 두들겨 맞기 때문이다. 여기서 내가 전복하자고 한 가라공화국의 일등시민은 학생이 아니라 선생이다. 얼마나 설득력이 없으면 매를 들어야 학생이 숙제를 해오겠는가. 그깟 숙제 좀 안 한다고 학생을 때리는 놈이 진짜 자신이 챙겨야 할 일은 제대로 챙기겠는가.
이런 가라로 잘난체하고, 남들을 딛고 올라서고, 돈까지 벌어먹는 세상에서 여유란 존재할 수 없다. 만약에, 저서 같은 건 낼 역량도 없으며 부지런을 떨기가 너무 귀찮으니까 어쩔 수 없이 이런 블로그에나 글을 쓰는 나 같은 사람에게, 치렁치렁 타이틀 걸고 무슨무슨 전문가니 하면서 돈도 짭잘히 버는 사람이 별 논리도 없이 대뜸 "조또 아닌 놈이 닥쳐"라고 말하고 그런 짓이 먹혀 드는 세상이 된다면, 가라로 딴 명예와 권력이 바로 누구나 응당 누려야 할 게으름과 여백마저도 앗아가 버리는 것이다. 엘리트 연주자가 펑크 뮤지션을 괄시한 다음 정작 자기네들끼리는 쓰리 코드로 연주하며 관중을 후리는 데가 바로 가라공화국이다.
어떤 과잉은 동시동소에서의 어떤 결핍을 상징하는 법이다. 전문가주의는 가까이에선 허술한 전문가를 낳고, 멀리 있는 DIY 정신을 부진으로 이끈다. 이를 타격하는 것이 곧 가라공화국을 전복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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