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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공화국 전복

Forum | 2009. 1. 12. 00:22 | Posted by 김수민

1월 10일 오후 나는 <지금은 라디오시대>를 듣고 있었다. 사연을 읽다 별안간 조영남이 미네르바를 비하하기 시작했다. 그에 환호하던 사람들이 이제 망신을 당해 등을 돌리고 있다면서, 누가 뭐라고 하면 몰려가고 따르는 현상이 몹시 한심하다고 말했다. 공동진행자 최유라와 게스트 김영철은 전혀 이를 받아주지 않았다. 이견이 있어서가 아니라 진행과 상관이 없기 때문일 터이다. 하지만 조영남은 연달아 미네르바를 입에 올리며 오호통재라는 투로 한탄을 거듭했다.


조영남은 히트곡도 별로 없이, 심심하면 남의 노래를 가져다 부르고, 기껏 가사나 바꿔 불러대는 뮤지션으로 악명 높다. 그러나 대중은 늘 그에게 관대했다. 그는 예술가이고 연예인이니까.  한편으로는 성악과 출신다운 기본기가 있기도 하거니와, 중퇴했지만 서울대를 다녔다는 이력이 그를 보호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재롱이든 작품이든 예술가가 인상을 쓰고 비분강개조로 세상에 침을 뱉었을 때, 의미는 물론이고 재미마저 없으면 더는 참기 힘든 노릇이다. 그동안 '가라'로 해왔던 짓거리에 대해서 더는 관용을 베풀 수 없다. 그래서 무언가 심오하다는 듯 화투장을 그린 그림이나 서울대 성악과 학력 같은 데 아랑곳하지 않고, 얼기설기 쌓아올린 예술 세계를 가차 없이 난타하기에 이를 수도 있다.


역시나 미네르바와 조영남은 대조되는 사람들이다. 조영남은 재주와 실력에 비해 게으르게 살면서도 '가라월드' 속에서 누릴 것은 다 누렸다. 반면 미네르바에게는 단적으로 봐도 일단 학벌이 없고, 검찰조사에 따르면 그의 출중한 명문도 짜깁기의 결과라고 한다. 그러나, 미네르바는 작곡가나 소설가가 아니다. 아고라 경제칼럼으로 돈다발을 챙긴 적도 없다. 아니, 조영남식으로 애써 미화하자면, 미네르바는 페스티쉬(혼성모방)에서 일가를 세우기까지 했다. 남대문 불탄 이래 장관이 된 우리 만수는 그것도 못한다. 시침질도 못하는 놈들이 무슨 수로 짜깁기를 비난한다는 말인가.


이 나라의 전 영역이 가라, 가라, 가라로 세워지고 채워져 있다. 아마 이 가라공화국에서 가장 가라와 먼 것은 촛불집회의 든든한 빽이었던 '대한민국 헌법' 정도가 아닐까. 게을러빠진 나는 3층 건물을 1층으로 짓고 끝내는 일을 함부로 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찜질방 베개를 벽돌삼아 쌓아올리는 꼴은 도저히 넘겨줄 수가 없다. 학계에서 정계까지, 기업에서 운동단체까지, 우빨에서 좌파까지 가라 아닌 곳이 별로 없다. 학계를 대표로 잡아 한놈만 패자면, 나는 교수들이 식사모임이나 술자리에서 (학교나 학과의 행정 따위 말고) 학문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으리라는 추측까지도 한다. 각자의 무식이 탄로나는 걸 막기 위해서 말이다.


나는 정신적으로는 반지성주의와, 실생활에서는 엘리트주의와 작은 싸움을 벌여왔는데, 이제 전문가주의와 맞짱을 뜨기로 연초에 다짐을 한다. 강력한 전문가주의에도 불구하고 진짜 전문가가 나라에 드문 것인지, 아니면 본질적으로 전문가들의 가라에 의존하는 게 전문가주의인지, 이에 대해서는 일단 결론을 생략한다. 그저 전문가 타이틀로 감싸진 실상의 거의 모두가 가라인 이 공화국과 열라게 싸워야겠다. 공적 담론 뿐만이 아니라 윤리적이면서도 효과적인 한도 내에서의 사적 위협까지 동원해서!


제 정신인 사람들끼라도 서로 "세상에 그런 놈이 한둘이냐"라고 뱉고 덮는 짓은 하지 말자. 각자의 인생에서 한둘씩의 가라쟁이들을 엿먹여도 된다. 이 분업이야말로 상부상조의 정신인 것이다. 개인적으로 발견한 "그런 놈"이 너무 많으면, 추첨, 가장 기분 나쁜 놈을 추리기, 가장 만만한 놈부터 줘패기 등 여러가지 방법 가운데 하나를 골라 잡으면 된다.


며칠 전 친하게 지내는 형과 대화하던 도중에 그에게 어떤 영어단어의 뜻을 물었다. 그랬더니 그냥 그 단어를 되풀이하여 발음하기만 했고, 나는 윽박질렀다. "모르면 모른다고 하쇼!" 그는 대답한다. "어, 그래그래. 몰라. 그래. 몰라. 어." 이 형은 사실 결코 가라로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러니 나의 윽박을 절실히 기다리는 곳이 굉장히 많을 것이다. 소속 단체의 강령도 모르는 정당 실무자부터 허 찔리고 학생한테 보복하는 대학 교수 그리고 대통령 각하까지, 시간 질질 끌지 말고 모르면 모른다고 대답하는 새해가 되었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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