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철의 해명 글이 올라온 곳은 신해철닷컴인데, 회원가입을 하지 않으면 볼 수 없게 되어 있군요. 이거 영 낚이는 것 같아 찜찜하긴 했지만, 원문을 모두 봐야겠다는 생각에 가입을 하고 말았습니다.
이번에 그는 사교육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혔군요. 스스로 예찬론자는 아니라고 말하고 있으나, 많은 사람들이 어림하고 멋대로 추측한 것보단 훨씬 더 과격한 사교육 옹호론이었습니다. "이명박 덕택에 득템" 발언을 정권을 조롱하는 퍼포먼스라거나 혹은 그러려는 척하면서 위기를 돌파하려는 꼼수로 읽어내신 분들의 자리는 더 좁아졌습니다. 애초에 그건 속내 읽기와 혐의 씌우기의 향연에 불과했지요. 이명박이 사교육시장을 키워 결국 자신이 돈을 벌기에 이르렀다는 것은 신해철의 인식체계 내에서는 사실입니다. 이걸 곧죽어라 해석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분이 계신데, '이명박'이란 말을 듣자마자 광속으로 치달은 귀결이 아닌가 하네요. 이명박을 싫어할 테니까, 이명박을 조롱한 것이다? 그게 아니면 뭐냐? 신해철의 말을 통해서 누군가가 이명박이 결과적으로 조롱당했다고 생각할 수는 있겠습니다만, 신해철의 의도를 따져묻기 좋아할수록 되레 그렇게 생각 안하는 경우가 다반사인 듯하네요. 사람들의 예단을 밑도는, 별 뜻 없이 뇌까린 말이라든가 다른 경우를 따져볼 수도 있고, 뭔지 모르면 그냥 접어두면 되지, 뭐하러 그런 독심술을 펼치시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번 해명 5부작에서 신해철은 이명박 정권에 관한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신해철이 착각한 거라는 반론은 가능하겠습니다. 노무현 정권에서도 이미 사교육비 지출은 극에 이르렀고, 2008년을 기점으로 그래프가 그다지 상승한 것은 없다거나 하는 근거를 제출할 수 있다면 말입니다. 니가 무슨 의도로 이명박 이야기를 꺼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튼 이명박 땜에 니가 득템한 건 아니다,라고 할 수는 있겠지요.
언행불일치나 자기모순의 관점에서 접근하시는 분들. 이 문제에 대해서 지난번에 설명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 유의할 만한 제보가 들어왔네요. 라됴방송에서 사교육 문제는 하나둘셋하고 학부모들이 모두 손을 떼야 한다, 학원에 자식을 보내지 말자는 동맹을 맺자,는 이야기를 했다는 제보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대안을 모두에게 권했는지는 여전히 의문입니다. 이걸 모든 사람에게 권하고, 그것이 해결할 수 있는 길이라고 말한 것인지? 학원 안 보내서 성적이 하위권이 되고 대학에 못 가도 좋으니 다같이 하자는 이야기도 아니고 할 수 있는 사람끼리만 하자는 이야기는 아닌지, 못박기 힘들다는 생각입니다. 아직은.
그 제보와 제보자 분의 해석이 맞다고 치지요. 그런데 이번 글에서 신해철은 공교육은 음식과 같고 사교육은 핸드폰 같은 것이며, 평소 그저 어린이들의 과도한 사교육을 비판하고 아이가 원하지 않는다면 학교에를 보내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 뿐이라는군요. 그리고 자신이 경험한 공교육과 사교육을 이야기하면서 고등학생으로 돌아가라면 학교는 안 다니고 학원에만 다니겠다고 말했습니다. 이것도 뭐 일단 접수하도록 하지요. 혹 이게 거짓말이라고 입증하실 분 계신지. 그보다 제 눈에 띄는 건, 제보자의 제보내용과 신해철의 설명이 둘 다 진실이라고 쳤을 때, 그가 이번의 비판자들 상당수가 '모순'이나 '불일치'라는 단어로써 비판받을 만한, 일관성이 있고 체계적인 사교육관을 견지하고 있는지부터가 의심스럽네요. 그간 변동이 있었던 것을 잊어먹거나 말하지 않으면서 신해철이 자신은 일관되었었다고 우긴 건지, 아니면 몇번인지 헤아리지도 못할 만큼 스스로 입장이 엎치락뒤치락했던 건지... 오히려 사태는 더 오리무중이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애초에 담론지형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해명 글 가운데 제가 공감했던 것은 "이 나라는 소신도 세트메뉴로 가야 하나"라는 항변이었습니다. 어떤 말을 했던 것을 두고 어떤 사람이 표하지 않은 의견, 그 여백들까지 꽉 채워버리고 나서, 인물에 대해 조작된 이미지에 걸맞지 않으면 불일치니 모순이니 하는 것은 처음부터 너무 소모적이었습니다. 아, 소모적이라고 해서 반드시 무의미한 건 아니에요. 그런데 신해철이 했던 발언의 텍스트를 모으고(그것도 위에서 말했던 이치대로 간다면, 모으면 모을수록 더 모아야 하는 지경으로 갑니다), 라됴방송의 경우 편집 없이 모두 따서 올리는 그런 논증 작업을 굳이나 해야 하는 걸까요? 가장 무게를 둘 수 있는 건 본인이 '최근'에 '글'로 정리를 해서 올린 내용일 겁니다. 이를 두고 가치판단을 하는 게 훨 낫지요.
저는 이번 해명 5부작을 통해 확인한 신해철의 교육관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지지하지 않는 이유를 이야기하면 그만이지요. 그걸 여기서 길게 늘어놓지는 않겠지만(여기서 니가 신해철에 비판적임을 증명하라고 다그치는 얼빵한 사람 없길 바랍니다. 종전의 댓글 내용을 감안하면 없으리라고 사료됩니다만), 추천을 하자면 <레디앙>에 올라온 하재근 씨의 글이 가장 적절하다고 보여지네요. 하재근은 모순이니 언행불일치는 물론이고 학원광고를 찍지 않는 게 대안이라는 데도 동의하지 않지만, 신해철의 사교육관에 대해서 분명히 비판을 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 글은 "신해철 의견에 동의 못한다. 그건 이러이러해서 그르다"는 데 그치지 않고 안타깝다는 투의 감정이입을 계속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안타까울 게 뭐가 있나요. 신해철이란 사람의 의식이 그 정도인 것을.
신해철 두둔론 중에도 희한한 것들이 눈에 띕니다. "그는 좌파가 아니라 자유주의자이다." 자유주의자라도 신해철이랑 생각이 얼마든 다를 수 있어요. 좌파? 모르죠. 좌파니 자유주의자니 하는 개념과 용어를 쓸 필요가 없는 일이라는 겁니다. 그것이 설명을 더 편하게 해주느냐? 설명 더 편하게 하려고 경계를 죽죽 긋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별로 편하지 않아요. 진보진영의 논객들 일부가 내고 있는 관점인데, 가만 보면 박근혜처럼 "수첩 백단어"가 되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듭니다.
또 어떤 분은 이 사건을 계기로 신해철이 카리스마 어린 자리를 버리고 내려왔다는 식의 의미부여를 하고 계십니다. 그게 신해철 두둔론이라는 건 아닙니다. 언제는 올라가 있었냐고 묻고 싶을 따름입니다. 예술인이고 연예인이고 공연인이니까 때에 따라 높게 올라가 있는 것처럼 보일 수는 있지요. 그러나 그도, 언행불일치니 옳고그름이니 떠나서 n개의 정견이 존재하는 이 세상에서 한 개인으로 존재하고 있을 뿐입니다. 연예인이니까 좀 봐주라는 진중권씨의 옹호도 촌스럽습니다.
요약을 하지요. "이러려구 그러는 거 아니겠어? 그게 아니면?"이라고 어리석게 되물어야 하는 머릿속 해부법부터, 학원광고 이전에 견지해왔던 교육관을 단정짓거나 또는 그때만큼은 일관되었다고 전제하고 배신, 실망 등을 운위하는 것보다는, 신해철이 해명 5부작으로 피력한 교육관 자체에 대해 논평하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논의는 계속 신해철의 행위와 해명에 초점을 맞추면서도 한국사회의 교육 자체에 대한 성찰과 토론으로 이어지겠지요. 물론 '인물'이라는 뜨거운 감자가 빠져버려 각기 입을 닫고 숨어버릴 가능성도 있지만, 그러면 안 되는 거 알죠? 그건 자신들의 주제가 한 인물을 두둔할 거냐, '처리'해 버릴 거냐,에 불과했다는 고백에 지나지 않습니다.
뭐, 학원광고를 두고 수군거릴 때는 한가했다가, 조금 더 그의 교육관에 대해서 언행불일치니 하는 공세 말고 직접적이고 자신의 본격적인 가치판단이 들어 있는 비판을 할 때가 되어서 갑자기 바빠져서 토론을 이어가지 못하는 분들도 계시겠지요. 개학도 했으니깐여. 다만, 생각이라도 좀 해봅시다. 화제에서 신해철을 빼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신해철의 앞뒤와 전후, 속내와 혐의에 골몰하지 말고, 그와 내가 다른 점은 무엇이며 어느 것이 옳고 그른가를 따져보자는 겁니다.
연세대에서 교육사회학을 가르치는 한준상이라는 교수가 있습니다. 그의 저서로 <국가과외>라는 게 있는데, ebs의 수능강좌를 비판하는 것이 주요 골자입니다. 좀 거칠게 그의 지론을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국가가 교육에 개입하는 것은 창조성이나 다양성을 파괴하는 길이다. 글의 일부만 읽어보면 언뜻 탈-국가주의, 반-국가주의, 즉 아나키즘(이 무정부주의와 동일어가 아님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로 읽힙니다. 그러나 그는 '시장'에 대해서는 별 비판을 하고 있지 않죠. 국가의 권위주의에 저항하지만 시장의 권위주의에는 저항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런 의견들이 교묘하게 '국가 이외의 영역' 또는 '시민사회' 등의 이름 뒤에 시장원리의 독재와 독주를 숨기고, 자신들의 수구보수적 논리를 급진적으로 치장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해철과 한준상의 견해는 서로 유사하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겠지만, 이번을 계기로 국가, 시장, 공(公), 공(共), 사(私)가 얽힌 문제들을 다뤄보면 좋겠습니다. '민영화'를 덮어두고 시대적 진전으로 포장하는 이명박 정권 치하에서, 우리가 '득템' 내지 '득햏'할 수 있는 호기가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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