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ent Post»

« 2024/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

Recent Comment»

Recent Trackback»


표절 단상

Listen to the 무직 | 2009. 9. 24. 22:56 | Posted by 김수민

표절곡이 만들어지는 경로는 세개쯤으로 짚어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의도적으로 베끼는 경우다. 두번째, 무수히 들었던 곡 중 하나가 머리에 남아 있다가 자신의 영감처럼 튀어나온 경우다. 셋째, 듣지도 베끼지도 않았지만 우연하게 일치한 경우다. 셋째는, 수많은 인류가 살고 세상살이가 오묘한 탓에 전혀 가망이 없지는 않으나, 어쨌든 확률이 미미하다고 치자. 그런데 첫째와 둘째는 분간하기 어렵다. 표절곡 창작자로 지목된 이 스스로도 모를 수 있고, 타인의 입장에서 더더욱 판단이 어렵다. 당사자가 의도적으로 베끼지 않았다는데 어떻게 몰아붙이랴. 표절은 윤리적으로 단죄되기가 너무 힘든 행위다. 표절은 남의 작품의 일부를 몰래 따다 쓴다는 뜻인데, 표절이라는 단어를 폐기하거나 예술분야에서 의미를 수정해야 할 밖에 없다.

남은 과제는 의도적 베끼기를 규탄하는 대신, 또는 그런 행동에 앞서, 곡이 동일하거나 유사한 정도를 따져, 유사곡이 앞서 나온 곡보다 그만큼은 열등하다는 걸 공식화하는 일이다. 유사곡의 유명도가 더 높더라도 최소한 앞서 나온 곡의 작자에게 뒤에 나온 비슷한 곡의 수익의 일부 또는 상당 부분이 돌아가게끔 기준을 세워야 한다. 물론 현재 표절곡을 가르는 기준은 존재한다. 그것은 그러나 표절 여부를 판가름함을 넘어서 정도를 따질 수 있을 만큼 체계적이고 정밀하지는 않다.  

하지만 이것이 표절논란에 대한 대책은 아니다. 조금씩 음과 리듬을 비틀어서 기준을 피해가기가 충분히 가능하다. 코드진행을 그대로 베껴오고 크게 다른 멜로디와 리듬을 얹힐 수도 있다. 이것은 잡을 수도, 표절이라고 욕할 수도 없다. 어떤 곡을 참고하되 그 곡과 상당히 다른 곡을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 도무지 의도성과 비의도성, 베끼기와 참고하기를 가를 수가 없는 사안이다. 이점은 표절에 관한 사람들의 헛발질을 유도한다.

예컨대 윤도현밴드의 <바다>는 배드 컴퍼니의 <Brokenhearted>와 진행이 유사하다. 심지어 기타 리프는 너무나 비슷해 윤도현밴드측은 음반 속지에 '부분 인용'임을 밝혔다. 허나 멜로디와 리듬이 한꺼번에 겹치는 부분은 없어서 표절이라고 할 수 없다. 또 그들이 밝힌 후문에 의하면 기타 리프는 일부러 인용한 것이 아니고, 만들고 나서 비슷함을 알고 그렇게 썼다고 한다. 이는 지어낸 변명이 아닐 공산이 매우 높다. 반주는 보컬 멜로디보다 패턴이 많지 않고 기타 리프는 유사성을 따지자면 한도 끝도 없다. 이곡은 '부분 인용'을 밝힌 덕분인지 노래가 널리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인지 본격적인 표절혐의를 받은 적이 없지만, 표절에 대해 날카롭게 신경이 곤두선 사람이나 혹은 음악적 이해가 빈약한 상황에서 무작정 달려든 사람에게는 욕을 먹을 만하다.

실제로 표절공세를 받은 사례로는 신성우의 <내일을 향해>가 있다. 이 노래는 벤 헤일런의 <Jump>를 표절했다는 공세를 받았다. 당시는 인터넷은커녕 PC통신 인구도 그리 많지는 않은 시점이었는데, 공륜까지 나서서 표절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두 곡은 건반이 주도하는 앞의 인트로가 닮았을 뿐인데 그마저 리듬과 멜로디는 다르다. '부분 인용'이라고 할 만한 성질도 못된다. <내일을 향해>의 '원곡'으로 지목된 아시아의 <Don't Cry>도 마찬가지다. 공륜은 또 사카이 노리코의 곡도 <내일을 향해>의 원곡으로 지목했었다. 해당 곡명은 검색되지 않는데, 혹시 <Anatani Tenshiga Mierutoki>인가 하는 노래라면, "그 곡의 기타 리프를 듣고 '이걸 갖고 인트로와 비슷하단 말인가'라며 웃었다"는 말을 당시 심의자에게 전해주고 싶,지는 않고 그저 17년 전이라 그랬거니 하며 웃어 넘긴다. 야한 소설 썼다고 소설가들을 잡아간 사건이 그즈음 아니 그보다도 더 뒤에 일어나지 않았던가. 

이런 마당에 윤도현밴드나 신성우가 평소 배드 컴퍼니나 벤 헤일런을 즐겨 듣는다거나 그러한 뮤지션과 닮고 싶다 말한다면 바로 의혹과 공격이 날아와 곤란해질 터이다. 그렇지만 영미 팝계의 어떤 뮤지션들은 자기가 어떤 선배 뮤지션의 영향을 받았으며 그를 참고한다는 말을 공공연하게 밝히고 있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특히 뮤지션들에게 말이다. 창조자적 지위의 훼손을 댓가로 하여, 언제라도 휘말릴지 모를 유사성 내지 표절 논란을 대비하는 길이다.

표절시비는 오늘날 벌어지는 입방아보다 훨씬 거대하고 근본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거칠게 예측하자면 어떤 거대한 변동의 단초일지도 모른다. 표절 말고도 숱하다. '선한 베끼기'인 샘플링도 있다. 당장에 오토튠을 보라. 음정과 박자를 교정해주는 엔지니어에게도 저작권이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농반진반의 소리도 있다. 표절을 풍자하며 이렇게 저렇게 하면 곡 하나가 완성된다는 동영상도 있다. 얼마간의 음악적 이해와 테크놀로지를 소유하고 있으면 뚝딱 노래 한곡을 만들어낼 공산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 선율이 넘쳐 흐르는 시대에 벌어지는 베끼기나 겹치기에 의해 창작자 개개인과 악곡 하나하나의 아우라가 파괴되고 있는 것이다. 몇몇 사례는 방지할 수 있어도 거대한 흐름은 넘어설 수 없다. 아니, 각자의 주장과 서로간의 토론으로도 변동의 방향과 그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기가 힘들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면 나는 무섭다는 느낌이 들 따름이다. 20세기가 열리며 인류는 쇤베르크와 존 케이지도 경험했고, 동시에 급진적인 실험이 새로운 시대를 열기보다는 하나의 별종으로 그치고 대중은 여전히 익숙함과 편안함을 찾는 현실도 겪었다. 예상하지 못했지만 사람들이 반길 만한 길이 새로 열릴 것인가. 아니면 미어터진 이곳에서 끼이고 치이면서 살아갈 것인가.

일단은 미어터질 각오를 하자. 왜냐면 넘어설 자신감이나 실력이 없기 때문이다. 뮤지션이나 저작권 관련자들보다 대중, 특히 네티즌들에게 맡겨진 임무가 더 무겁다. 어떤 노래들이 서로 비슷하다고 여겨진다면, 그 노래의 곡목을 블로그나 홈페이지에 올려보자. 폭로가 아니라 소개 삼아 말이다. 대뜸 표절이라고 달려들지 말고 '비슷하다고 여겨지는데 님들의 의견은 어떤지?'라고 물어보고, 그렇게 해서 '분위기가 비슷한 곡'들끼리 모아 리스트와 계보를 그려보자. 저마다 답변은 다를 것이고 금세 아우성으로 시끄러워질 것이다. 허나 그 속에서 많은 곡들의 참신성이나 독보성을 점차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아무래도 조금은 의도적으로 베낀 곡을 포함한 유사곡들이 자신의 주제를 넘는 대우를 받을 여지는 줄어들지 않을까.

'Listen to the 무직' 카테고리의 다른 글

11월 1일의 비하인드 스토리  (0) 2009.12.11
표절 단상 (속)  (0) 2009.09.25
옛 한국 메탈로의 여행  (0) 2009.08.12
무한도전 가요제의 여파  (2) 2009.08.08
다운타운 <우울하게 하는 건>  (1) 2009.07.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