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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논문

史의 찬미 | 2007. 11. 15. 21:52 | Posted by 김수민

열흘 전쯤 졸업논문의 주제를 정했다(졸업논문을 쓴다고 곧 졸업하는 것은 아니다. 내 소속 학과에서 졸업논문이란 선택가능한 3학점짜리 수업이다). 고심끝에 '19세기 자유교육사상'을 제치고 선택된 주제는 '해방 직후 교육주도세력과 사립대학의 형성'이다. 해방 전후를 다루고자 했으나 분량이 넘칠 것 같아 직후를 택했다.

관련한 자료는 생각보다 많았다. 내 소속 학과의 대학원에서는 1986년 한해동안만도 미군정기 교육정책을 다룬 논문 세편을 쏟아냈다. 교육사나 교육사회학을 다루는 교수들도 1980년대에는 이 문제를 다룬 저서들을 생산했다. 이 자료들을 어떻게 소화해서 재구성할지 고민이 들 정도이다.

실마리가 될 사건인 '천연동 모임'은 김활란, 김성수, 백낙준, 오천석 등이 미군이 진주하기도 전에 서너차례 가진 회합으로 향후 대한민국의 고등교육, 특히 소위 명문사학의 향방을 결정한 계기였다. 그들이 미국식 교육모델을 주창하며 김성수의 경우 6-3-3-4라는 희한한 학제를 도입하려고 한 것은 웃기지만, 아동중심주의, 실용주의, 진보주의 교육학자로서 제도주의 경제학에도 큰 영향을 끼친 존 듀이를 앞세운 것은 더 웃기다. 그 반대편에는 좌파인 백남운은 물론, 중간파인 안재홍이나 극우 민족주의자인 안호상(훗날 그 유명한 일민주의를 집대성한 이데올로그) 등이 포진해 있었는데 그들은 존 듀이에 대항해 페스탈로치를 내세웠다.

그러나 알다시피 한국의 고등교육계는 페스탈로치와 존 듀이가 경합하고 절충되는 공간이 절대 아니다. 안호상이 페스탈로치에 어울리는 인물이 아니었듯 천연동 모임의 멤버들은 존 듀이를 진정으로 계승할 자격도 조건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존재가 의식을 만든다,라는 것이 이 논문의 주제는 아니다. 그들의 존재에 대해서 말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분량과 역량의 한계로 해방 전 그들의 일제부역 행적과 그 이후 친미적 행보를 연관짓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정치적 선동과 역사적 단죄가 이 논문의 목적인 것 또한 아니다. 사실이 그랬다는 것이다. 팩트가 가장 강한 우군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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