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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개의 손가락

史의 찬미 | 2008. 2. 12. 19:40 | Posted by 김수민

악극단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내 방랑생활을 보다 못한 외삼촌이 나를 경찰학교에 들여보낸 것이다. 경찰은 의외로 적성에 맞아 그럭저럭 견뎌낼 수 있었다. 31기로 졸업한 뒤 초대 농림부장관을 지낸 조봉암씨의 호위경관을 맡았다. 그분이 외숙모의 친오빠였기 때문이다. 2년 정도 그분을 호위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하는 정신, 옥고와 갖은 고문을 치른 뒤 5개밖에 남지 않은 손가락으로 글씨를 기막히게 써 내려가는 모습은 하나의 충격이었다. 인간의 한계가 어디까지인가. 그림자처럼 그분을 따라다니며 나는 늘 그 생각에 골몰했다. 훗날 쌀 한톨에 반야심경 200여 자를 새겨 넣는 '미친 짓'도 나 자신의 한계를 시험해보고 싶은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 흑우 김대환, <<연습은 장엄한 구도의 길이었다>>, 현암사, 2005, 31-32쪽.


조봉암은 일제 말기 투쟁을 접으며 얼마간의 안온함과 양식을 누린 탓에 해방정국에서 소외되었다. 그때 그는 서울로 올라오지 않고 고향인 인천에서부터 '제3전선'의 형성을 위해 활동했다. 그가 이승만 정부의 초대 농림부장관으로 참여한 사실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견해와 논평이 있다. 하지만 그는 평화통일론과 피해대중을 위한 경제를 포기하지 않았고, 이승만이나 신익희 등 보수 정객들을 능가하는 인기를 누렸다. 그리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집념을 가진 사람은 많다. 그러나 활활 타오르는 불꽃 같은 집념이 아닌 묵묵히 흐르고 또 흐르는 집념을 가진 이는 흔치 않다. 불꽃들이 차고 넘치는 진보진영에는 그러한 사람들도 필요하다. 활화산처럼 북을 치는 김대환의 이면에 세서미각의 김대환이 있었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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