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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Free Speech | 2009. 2. 23. 15:54 | Posted by 김수민
스무살 때 '정보기관'이 무슨 일을 어느 정도로 하는지 남들이 모르는 부분까지 알게 되었다. 음모론이나 카더라 통신이 아니었다. 일러준 사람이 누군지 밝힐 순 없지만, 시를 쓰던 후배가 자신이 기관원임을 털어놓는 그런 스토리는 아니다. 나는 얼마간의 내상을 입었고 일주일동안 고뇌했다.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런 세계에서.

그는 자신의 시시콜콜한 개인사들도 털어놓았다. 그 이듬해부터 그를 자주 만나지는 못했으나 나를 볼 때마다 그는 참 깊고 넓은 것들을 꺼냈다. 그는 이상하게도 내 얼굴을 보면 그렇게 술술 자기 속에 있는 것들이 나온다고 했다.

나의 상담은 상담자에게나 내담자에게나 괴롭게 진행되는 편이다. 갈수록 대인관계가 협소해지고 있으므로 상담이 빈번하게 이뤄지지는 않으나, 내담자들은 내게 고해성사를 뺨치고 남을 고백들을 한다. 그리고 나 역시, 한번 상담에 들어가면 멈추지 않고 독하게 상대방의 아픈 부분들을 계속 건드리고 쥐어짜낸다. 그러고 나서도 핀셋으로 끄집어낸다.  

결국 남은 건 내 마음 속에 쌓인 남의 비밀들이다. 적지 않은 것들이 여러 곳에서 입밖으로 나갔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이 더 많다. 나와 상담자의 관계가 틀어지고, 심지어 원수지간이 될 때, 그것은 순식간에 예비 엑스파일로 변모한다. 그런 경우 비밀을, 그 가운데 이뤄진 비윤리적인 부분을 폭로해 매장시키고 싶은 충동까지도 든다. 언젠가 전말을 밝히기 위해 어떤이의 비밀스러운 언행 일부를 공개한 적이 있었다. 그에 화들짝 놀란 자는 내게 온갖 이상한 혐의와 허위사실을 뒤집어 씌웠지만, 내가 드러낸 건 빙산의 일각이었다. 그때 나는 대폭로의 유혹에 시달렸다.

이제, 기존에 해왔던 상담들 그만하고 싶다. 어떠한 것이든 남의 비밀을 그렇게 알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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