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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의 벽돌 투척

Forum | 2008. 6. 27. 06:17 | Posted by 김수민

바로 내 앞에 있던 사람이 쓰러졌다.

경찰이 던진 돌에 맞고 한번에 넘어가서 일어나지 못했다.

봐! 그의 머리에서 흐른 피다.

이제 너희는 경찰이 아니라, 폭도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어제 나는 성난 시위대의 일원으로
조선일보 본사 앞으로 갔다.

만감이 교차한다.


6년 전 오늘이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정체도 불명확한 학생 10여명이
노(老) 교수의 퇴임식장에 들이닥쳐
거친말로 분위기를 한바탕 헤집어 놓았다는
사건이 있었다.


그때 우리가 송복 교수에게
"닭짓한 당신 떠나라"라는 내용을
입에 담지는 않고 피켓에 썼던 건 사실이다.

교사는 노조를 만들면 안 된다,
만들 거면 자동차공장으로 가라,
조선일보의 최장집 검증사건에서는 오독의 요인을 제공한 최장집에게도 책임이 있다
...

우리는 그것을 닭짓이라고 부르지 않을 도리가 없었고
송복이 보수면 똥파리도 새냐고 외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리는 피켓을 들고 서서, 송복 교수에게는 다가가지 않은 채
몇가지 구호를 외치고 에헤라디야~ 타령을 부르고 격문을 읽고
시위를 마쳤다.
우리는 초라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송 교수에게 직접 삿대질을 할
엄두를 내지 않았다.

반말로 시비를 거는 그의 제자인 현직 교수와
우리측 학생 한명이 잠시 말다툼을 했을 뿐이다.

한때 <청맥>에서 기자로 일했다가 통혁당사건으로 곤욕을 치렀던 그는,
"고기와 입장은 한번만 뒤집는 것"이라는 속설처럼  
매우 확실하게 꼴보수의 입장을 대변해 왔고 우리는 그것을
처량하다고 생각했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또다른 꼴보수, 유석춘 교수는 마치 데스크인 양
조선일보 기자에게 "이런 것 좀 기사로 써라"고 주문했다.

조선일보는 사회면 하나를 가득 매울 만큼의 큰 기사를 내보냈다.

그리고 현장에 있지도 않았던 동아일보도
그런 기사를 내보냈다.
그해 언젠가 유시민은 동아일보더러
"똥 퍼다가 친구따라 장에 가는" 신문이라고 했다.


조선 동아는 그도 모자라
사설로 칼럼으로 우리를 조져대려고 했고
학교에는 시민들의 항의전화가 빗발쳤다고 한다.

사설과 칼럼에는 '패륜'이라는 말이 과감하게 등장했다.

그 공격이 어찌나 강렬했던지 우리가 1991년도의 대학생처럼
달걀을 던졌다고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중의 압권은 우리가 썼던 단어 "송뽁"을 두고
조선일보의 이한우가 '뽁은 사창가의 비속어이다'라고 설명한 것이다.
나는 동료들에게 "형 뽁이란 말 알아요?" 물었지만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최장집을 사상검증한 다음 "스승의 등에 칼을 꽂았다"는 표현에 발끈해
발설자들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였던 자가 바로 이한우다.


아무튼 이 일로 우리는 곤경에 처했고
내 느낌상 학내 분위기도 8대 2 또는 9대 1 정도로 수세에 몰려 있었다.

6월 11일 그날 '별 일'이 없었음을 증명하는 오마이뉴스 동영상이 공개됐고
그것이 다시 MBC의 전파를 타고
김재홍, 박노자 교수가 송복 교수를 비판하거나 시위 학생을 옹호하고
우리가 수그러 듦 없이 학내에서 계속 자보전을 펼치면서
분위기는 조금씩 반전이 되었다.

그리고 한국 축구팀이 16강에서 이탈리아를 꺾으면서
이 사건은 잊혀져 갔다.


6년동안 안티조선운동은 노빠들이나 하는 철지난 운동이 되었고
황석영 등 기고거부를 선언한 지식인들은 하나둘씩 또다시
조선일보에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다들 안티조선은 끝났다고 했고
조중동을 다원주의적 관점에서 인정하자는 웃기는 소리도
진보정당의 구성원으로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다원주의 사회에 수구 신문은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조선 또는 조중동일 필요는 없다.
그리고 다원주의는 다원주의의 적을 적절히 제압할 때 지켜지는 것이지
그냥 넋 놓고 허용한다고 해서 구현되는 것이 아니다.

강준만은 조선일보에 제몫 찾아주자고 했다.
그 '제 몫'은 폐간이다.

단지 합법적, 합리적 방법으로 당장에 폐간시킬 수 없을 뿐이지
그 신문들은 원칙적으로 폐간되(었)어야 한다.


조선일보에 대한 보이콧과 스토킹은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

어제 조선일보 본사 앞에서 느낀 바
아직도 거기 남아 있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노무현 지지자고 민족주의자들이다.


이제 진보정당이 앞장 서야 한다.


뉴라이트 교과서는 일제 식민 지배를 미화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경제성장률 등의 지표를 통해
그 시기가 경제적으로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고 한다.

이것은 흔히 '반민족'이라고 일컬어졌던 것의 본질이
'반민중'이고 '몰계급'이라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조선일보 동아일보 마찬가지다.
삼성의 경비견인 중앙일보는 말할 것도 없다.

진보정당은 진보정당의 맥락을 가지고
조중동과의 대결에 들어가야 한다.

잊지 말자
"이 가뭄에 웬 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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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동권 학생회장 이명박

Forum | 2008. 6. 11. 14:55 | Posted by 김수민
이명박 정말 대책이 서지 않는 인간이다. 촛불시위를 지켜 보며 "나는 민주화 1세대"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다. 요즘 쇠고기 정국에서 비운동권 총학생회까지 들고 일어나는 판국인데,
이명박 그 자신이 비운동권 학생회장 출신이다.

당시 대학가는 운동권은 주로 써클에서 활동했고 학생회는 민주화운동보다는 이념을 떠나
정치적 야심을 가진 학생들이 도맡아서 하고 있었다. 대학 내 고교 동문회간 경쟁도 치열했다.

흔히 6.3세대하면 소박한 반독재 노선에 민족주의 정도를 갖고 있었다고 하지만
이때 운동권의 몇몇 인물들은 이미 마오나 카스트로를 추종하고 복장을 흉내내는 정도로
인민민주주의에 경도되어 있기도 했다.
그러니 그무렵 운동권과 비운동권 사이에는 지금의 생각보다 넘기 힘든 강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 한일굴욕회담으로 대학이 하나로 뭉쳐졌으며
비운동권 학생회장까지 전면으로 튀어나오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이명박, 김덕룡 등등 비운동권이었다고 보면 무방하다.
정형근 같은 이들도 당시의 판에 기웃거리는 상황이었다.


이명박은 또다른 이명박을 불러오게 될까?
그건 아닐 터이다. 요즘 비운동권 총학생회장 중에 뜰 만한 인물도 없을 것이고
개나 소나 길거리로 뛰어나갔던 6.3세대와 창백하고 나른한 현 20대는 성격이 많이 다르다.

제2의 정두언은 나와도 제2의 이명박은 나오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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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보드 좌파

Forum | 2008. 3. 21. 23:06 | Posted by 김수민

내 기질이나 능력에 비해서는 오프라인 활동을 꽤 한 편이다. 하지만 내 존재감이 가장 두드러졌던 건 온라인에서였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그렇듯 싫어하는 사람도 내 온라인 활동을 문제 삼는다. 나를 싫어하는 쪽에서는 나를 키보드 워리어로 생각한다. 웃기는 이야기다. 자기네 조직이 길가다 우연히 봤을 때 남에게 매력적으로 여겨질 만한가? 깊이 겪어 볼수록 더 신물이 나는 집단이라는 걸 만인이 인정한다는 사실을 직시하지 못하는가? 오히려 인터넷이 없었다면 내가 이만한 참여라도 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키보드를 통한 대화가 없었다면 불신을 깨지 못했을 것이다. 누리망은 내가 현장으로 향하는 그나마 유일한 출구였다. 진중권이 키보드 좌파가 되자고 썼다. 많은 노동자들이 이제 키보드를 사용하고 있음에 기인한 견해다. 각개격파 당하는 가련한 개인들에게 이곳저곳 구멍이 뚫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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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 두꺼운 정창영과 연세대

Forum | 2008. 2. 29. 17:32 | Posted by 김수민
제목 정창영 교수, 총장은 물러나도 강의는 한다? 추천 : 0
글쓴이 김수민[김수민](연세인)  조회수 961 날짜 2008.02.22
캠퍼스 공통

이번 학기 수강편람을 보니 정창영 교수님께서 미시경제원론 강의를 맡으셨더군요.

본인이 직접하신 일은 아니더라도 물의를 빚고 총장에서 사퇴하였는데
강의만은 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어떤 다른 교수님은 한번 저지른 잘못으로 인해 거듭해서 궁지에 몰리던데
정말 대조적인 풍경입니다.

학교 본부측은 욕먹을 짓의 속편을 찍지 않기를 바랍니다.


[단독] 연세대 정창영 전 총장 수업복귀…학생들 “학교 망신”

쿠키뉴스|기사입력 2008-02-28 18:06 |최종수정2008-02-28 18:10 기사원문보기
[쿠키 사회] 부인의 편입학 청탁 금품수수 의혹으로 사퇴했던 정창영 전 연세대 총장이 강단에 복귀해 올 1학기 경제학과 수업을 맡기로 한 사실이 28일 확인됐다. 큰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지난해 10월말 불명예 퇴진한 정 전 총장이 단 한 학기의 자숙 기간도 없이 곧바로 강단에 선다는 데 대해 상당수 학생들이 “무책임하다”며 반발하고 있다.

연세대에 따르면 정 전 총장은 2008년도 1, 2학기 모두 수업을 진행하겠다는 의사를 학교측에 전했으며 학교측도 이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이에따라 정 전 총장은 개강일인 다음달 3일 1, 2교시에 2, 3학년 학부생을 대상으로 경제학과 수업인 ‘미시경제원론’을 가르치게 됐다. 지난해 논문표절 사건으로 총장직에서 물러났던 고려대 이필상 교수가 학교에 부담을 준 점 등에 도의적 책임을 지고 한 학기동안 강의를 개설하지 않은 사실과 대조적이다.

이 학교 경제학과 이모(25)씨는 “지난해 학교 이미지에 가장 큰 타격을 입힌 정 전 총장이 바로 강단에 선다는 얘기를 듣고 놀랐다”며 “도덕적 책임문제를 넘어 뻔뻔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조기 복귀에 반대했다. 다른 학과 이모(23·여)씨 역시 “너무 이른감이 있다”면서 “곧바로 교수직으로 복귀한다는 건 책임을 지는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학교측 관계자는 “검찰에서 편입학 청탁과 관련해 무혐의 처리를 할 것으로 알려져있다”며 “총장직 사퇴만으로도 이미 책임을 다 진 것이 아니냐”고 별 문제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아진 기자 ahjin82@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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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조직' 노동자?

Forum | 2008. 2. 19. 05:15 | Posted by 김수민

옛날 한동안은 '미전향 장기수'라는 말이 쓰였다. 그러던 것이 '비전향'으로 바뀐 것은 '미-'라는 접두사가 '되어야 할 것이 되지 않은'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서, 전향을 당당히 거부하는 장기수들을 모욕하고 핍박하는 논리를 대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사례만큼은 아니지만 '비혼'이 '미혼'을 밀어내는 모습도 이따금 보인다.

'미조직 노동자'라는 표현이 있다. 이 표현을 쓰는 사람들은 진보적이어서 아무래도 모두가  '비전향 장기수'라는 표현을 쓰고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이때의 접두사 '미-'는 사회적 정치적 차원에서 각별히 선택되어 대안적인 문제의식에 의해 쓰여진 것이다. 노동자들을 구체적 차원에서는 노동조합 조합원으로, 하다못해 교섭의 적용을 받는 노동자로, 궁극적으로는 노동계급으로 조직해야 한다는 일념에 기초한 선택이다. 나 역시 당연히 방안과 사고를 좀 달리하더라도 '노동계급의 조직과 형성'이라는 명분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그러나 '미조직 노동자'라는 표현에 대해서는 그것이 눈에 띄는대로, 틈나는대로 재고를 요청할 생각이다.

당장에 '비조직'으로 써도 조직화의 의지는 꺾이지 않는다는 시시껄렁한 설명이 가능하거니와, '비-'는 '미-'보다 규정성이 약하다. 규정성이 약한 것은 적어도 폭력이나 중심성, 타자화 등등의 위험은 훨씬 덜하다. 극복되어야 할 현실지언정 현실은 있는 그대로 인정되어야 한다. 앞으로 기필코 조직하고야 말겠다는 각오를 담기보다 '조직되지는 않은'이라는 정도로 규정하는 것이 흔히 말하는 '인간에 대한 예의'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태도는 짧은 시간동안 성과주의의 눈총을 받을지도 모르나, 목적 이전에 지향한 가치를 지키며, 전략적으로도 폭넓은 조직화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좋은 인식에서 좋은 실천이 나오고, 강박감을 버리는 것은 좋은 인식의 첫걸음이다. 목과 어깨에 힘이 들어가면 노래를 잘 부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관등성명을 부르기 힘든 '그냥 사람'을 두려워 해야 한다. 아무리 악의 없는 생각일지라도 두려움을 잃은 접근은 몽상 아니면 억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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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걸

Forum | 2008. 2. 15. 04:13 | Posted by 김수민

작년 봄 조한혜정 교수의 1학점짜리 수업을 들으면서 댄 킨들러의 <알파걸>을 읽어보게 되었다. 알파걸은 페미니스트 어버이를 둔 딸들로 포스트 페미니즘의 징후로 평가받았지만, 구자유주의도 모른 채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인 한국사회에서 그것이 어떤 의미로 통용될지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당시 수업에서 내가 제출한 쪽글이다.


글쓴이 : 김수민 글쓴날 : 2007/03/28 16:39 조회수 : 20

베타보이와 오메가걸이 알파걸을 말하다

평점 3.8 이상의 성적에, 모종의 클럽에서 리더 역할을 하고 일주일에 10시간 이상을 학교 내외의 과외활동에
 참여하며, 사회적 인정과 부의 축적을 향한 욕구가 강하고 신뢰성이 높은 여학생. 댄 킨들런은 이들을 알파걸
이라고 부른다. 일주일에 10시간 이상을 학교 내외의 과외활동에 참여하지만 리더 역할을 맡지 못하거나 기껏
해야 독박을 쓰고, 평점이 3.8을 넘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으며, 부모님보다 못살 각오를 하고 살며 인정욕구
도 희박한 ‘베타 보이’가 책을 읽고 난 뒤, ‘오메가 걸’을 만났다.


  베타 보이: 당신은 ‘알파걸’인가?

  오메가걸: 평점은 4.0이 넘는다. 그러나 리더 역할? 그 둘이 양립가능하다고 보나? ‘과외활동’을 하기는 한다.
 중학생, 고등학생 과외 말이다. 사회적 인정은 차치하자. 물론 부를 쌓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다. 난 가난
하다. 지은이는 서문에 예시한 설문조사 문항에 몰라서인지 일부 그랬는지 ‘알파걸’의 기준에 집안의 경제
사정에 대한 질문을 빠트렸다.


  베타보이: “여권주의자가 아니다. 그냥 평등주의자”라는 알파걸 몰리의 말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페미니즘은 평등이념의 한 단면일 뿐이며, 따라서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입장이 아닌지. 여성운동을 했지만 사회평등에 기여하기는커녕 제 몫 챙기는 방향으로 흘러버리는 경우도 많았지 않았나?

  오메가걸: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사실 나는 평등주의자도 여권주의자도 아니다. 나는 부지불식간에 남성중심의 질서에 익숙해진 채 살았을 것이다. 새롭고 반항적인 사고나 행동양식을 지녀야겠다는 계획도 없다. 우리 아버지가 돈을 많이 번 것도 아니고, 어머니가 페미니스티인 것도 아니다. 알파걸은 잘나가면서 ‘정치적으로 올바른’ 어버이 밑에서 성장해서 ‘더 잘 나가려고 하고’ ‘문화적으로 세련된’ 인간에 다가서는 사람들이다.


  베타보이: 그렇다면 당신이 알파걸이 아닌 것은 전적으로 가정환경 탓인가?

  오메가걸: 글쎄. 전적인 것은 아니면서 결정적인 요인일까? 다만 알파걸과 내가 비슷한 점은 각박하게 살고 있다는 거다. 아무리 담론을 포장해봐도 알파걸은 시간을 빡빡하게 쓰는 사람들일 것이다. 풍요로운 체 할 수는 있어도 여유로울 수는 없다.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는 시간에 그들은 과외활동을 한다. 과외활동이 즐겁기는 하나 그것이 휴식과 사색, 느린 동작을 위한 시간을 앗아가면 임금노동과 마찬가지로 사람을 억압할 수 있다. 무작정 ‘느리게 살자’느니 떠드는 것도 마음에 안 들지만, 알파걸이 신인류로 포장되는 것도 마음에 안 든다.


  베타보이: 신인류까지는 아니더라도 알파걸을 한편으로는 페미니즘 운동의 성과, 나아가 ‘포스트 페미니즘’의 징후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오메가걸: 무심해진 것도 진보일 수는 있다. 예컨대, 동성애자에 대한 무관심 같은 거. 그런데 이건 좀 무식해진 측면도 있지 않나 싶다. 


  베타보이: 해방을 운위했지만 자유롭지 못한 세대가 있었다. 한국의 386운동권 같은 예가 그렇다. 알파걸은 그 거꾸로인, 자유만 건네받고 해방의 에너지를 가지지 못한 신세대로 볼 수 있을까? 지은이는 ‘혁명의 딸’이라고 그랬는데.

  오메가걸: 혁명의 딸? 그 혁명은 뭔가.

  베타보이: 1960년대 구미의 인권, 반전, 평화, (반)문화, 여성운동이겠지.

  오메가걸: 토니 블레어나 클린턴 부부를 보면 느껴지는 것이 없나? 그 혁명은 신자유주의 보수혁명인 것 같다. 신자유주의 보수혁명에 활력을 불어넣은 쪽은 신보수주의자가 아니라 ‘전직 좌파’, ‘소싯적의 아나키스트’ 등이 아닌가. 하이에크도 그랬고. 알파걸은 현대의 시류를 만족시키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과연 저항하는 방법을 알까? 나처럼 어딘가 모자란 사람들도 마찬가지지만.


  베타보이: 마지막 질문이다. 알파걸에 비판적이지만 당신에게 정말 선망의 마음조차도 없을까?

  오메가걸: 당연히 부러운 마음이 든다. 그러나 될 수 없기에 더 이상의 선망을 가질 수 없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그들이 새로운 여자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들이 성공하든 말든 관심이 없다. 이렇게 말하니 ‘무식한 여자 대학생의 전형’처럼 보이긴 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그들은 출세할 여학생일 뿐이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봐야 그들과 직장에서 경쟁하는 정도?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도 지지할 만한 대상은 아니다. 나는 오히려 알파걸이라는 이름에서 선정주의를 느꼈고, 남자들에 의해 대상화되었다고 생각했다. 피해의식인가?

  베타보이: '피해의식'이라. 그것도 알파걸과 오메가걸을 가르는 차이일까? 아무튼 코멘트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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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을 읽지 말고 역사서를 읽어야 한다는 지론에 동의하는 편이다. 그러나 미시사나 일상사는 상상이 개입되는 소설과는 걸맞다는 생각이 든다. 굳이
역사소설을 장편으로 다룰 필요는 없다. 단편으로 된 역사소설이 많이 나왔으면 하고, 정사에 오르지 못한 김개똥, 이삼월들을 미시사로 복원하는 시도들이 나왔으면 좋겠다. 언젠가는 나도 습작에 도전해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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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영이라는 지식인

Forum | 2007. 10. 10. 13:45 | Posted by 김수민
몇주 전 어느 심상정 후보 지지자와 술을 마셨는데 그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심상정 주변으로 오피니언 리더들이 몰려 들고 있다." 나는 대꾸했다. "노회찬 주변에도 브레인들이 있다. 이재영이나 김정진..." 그는 말을 끊고 코웃음을 치더니 심상정을 지지하는 지식인들의 이름을 열거했다. 유명도로 맞붙어보자는 의도인 것 같았다. 그 친구의 태도에 내가 연민이나 분노를 굳이 표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나의 마음은 안타까움으로 가득찼다. 이재영에 대한 안타까움 말이다.


이재영이라는 지식인이 있다. 그는 현재 좌파 매체 <레디앙>에서 기획위원으로 일한다. 예전에는 민주노동당 정책라인의 중추를 맡았다.

2002년 개혁당과 민주노동당의 공개논쟁에서 유시민과 맞붙은 것도 그다. 누더기라고 비판받기도 하고 작업 당사자들도 각자 찜찜함이 남았겠지만, 여하튼 그는 당의 강령 등을 정비하는 일을 주도하였다.

그의 진보정당 건설은 아주 오랜 작업이었다. 그는 관념적 논쟁에 물들어가는 대학학생운동이 싫어 공장으로 갔고, 현장노동운동이 정치세력화를 꾀하던 시점부터 한국사회주의노동당, 한국노동당, 민중당 등을 거치며 진보정당 작업을 했다. 노회찬, 주대환, 황광우, 윤영상 등과 같은 길을 걸어온 것이다.

90년대 안에 이뤄질 것 같지 않아 보이던 그 구상은 마침내 1997년 국민승리21로 첫단계의 성공을 거둔다. 그러나 진보정당에 여러 파벌이 꺼어들고 애초의 '컨센서스'까지 유지되지 못할 만큼 정파 갈등이 극심해지면서 그가 딛고 선 여지는 줄어 들었다.


제기랄. 그는 그 좋은 머리로 공부를 오래 해서 상징자본을 쌓던가 처음부터 저널리스트나 서적 집필자가 되던가 하는 길을 가지 않고 그토록 고생을 했을까.

물론 이재영 씨의 얼굴을 보면 고생한 사람의 티가
나지는 않는다. 그와 만나 이야기해보면 더욱 그런 느낌을 받는다. 거꾸로 엄청난 낙관으로 고난을 이겨냈으리라는 추측이 강해질 수도 있지만. 그는 쾌활한 사람이다. 중력에 시달리지 않는다. 그점에서 진중권과 닮은 구석이 많다.

우석훈은 자기 블로그에서 이재영을 진중권과 함께 '희망'으로 꼽았다. 둘이 다른 점이라면 앞사람은 빨간색, 뒷사람은 분홍색이라나? 또 우석훈은 다른 글에서는 이재영을 문무를 겸비한 인재로 평하기도 했다. 우석훈은 이재영이 국회의원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건지, 아니면 글쓰는 동안 뭔가 중대한 착오를 일으켰는지 '이재영 의원'이라고 쓰기도 했다. 그러나 당내의 어떤 선거에선가 출마해 손을 주머니에 넣고 연설했다는 이재영 씨가 국회의원이 되는 모습은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이재영은 자신의 재능에 비해 턱없이 낮은 대접을 받고 있다. 당 바깥에서는 물론이고 당내에서도 '취급도' 되지 않는다. 나는 민경우를 알지만 엔엘 애들은 이재영에 관심없다. 졸지에 정태인은 오피니언 리더고 이재영은 끼워주지도 않는 경우도 있으니 할 말 다했지 뭐.

비극은 그가 당의 창당에 공헌했고 앞으로 혁신의 방법을 쥐고 있는, '당 이론가'라는 것이다. 당 이론가가 당내에서 발을 못 붙이면 어디서 붙이나? 자의반 타의반으로 그가 당직을 그만두게 만든 민주노동당은, 일즉다 다즉일이라고, 탈당자의 속출을 겪어도 싼 수준을 도처에서 노출시키고 있다.  


이재영은 내가 좋아하는 또다른 지식인 이재현처럼, 팬에게 책을 모으는 기쁨을 좀처럼 주지 않는다. 그의 저서들이 많이는 아니어도 몇권은 나왔으면 한다. 그를 잘 모르고 앞으로 조금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반자본주의> 한국판 맨 뒤에 실린 이재영의 보론을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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