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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g

Free Speech | 2009. 4. 3. 16:09 | Posted by 김수민
하루에 두세판씩, 식사를 한 직후 시점에, 노트북과 컴퓨터용 패드로 PES2009을 한다. 이거 안 하면 머리가 뜨겁다. 현재 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감독(?)이다. 밀어도 안 넘어지는 루니가 시즌 득점 1위로 잘 나가는 중이고, 박지성은 얼마 전 해트 트릭을 기록했다. (박지성을 적극적으로 투입시키는 데에 내 안에 잔존한 민족주의가 작동했음을 숨길 필요는 없겠지.) 테베즈는 꿋꿋이 뛰고 있고, 원래는 한물 가서 후보 명단에 오른 사하는 나에게 은혜를 톡톡히 갚고 있다. 우리의 호색두(애칭이니 나 미워하지마~)는 좀 부진하다. 반 데 사르야 뭐 기특한 골키퍼고... (내 동생의 회고에 따르면, 1998년 월드컵 네덜란드전 당시 내가 반 데 사르에게 "저렇게 말라서 운동은 하겠냐"고 야유했다고 한다. 미안... 그래도 니네가 오대빵으로 이겼잖니.) 이브라는 내가 수비에서 아예 레프트 미드필더로 변경시켜줬다.

선수 리스트 맨 밑에 깔린 이름 가운데 독특한 것이 눈에 띄었다. 'Dong'. 어느 나란진 몰라도 뭐 그런 이름이 있을 수도 있다 싶었는데, 검색해 보니 덩팡저우다. "누구~?" "아~ 작년에 쫓겨난 중국선수~!" 그는 중국시장을 노린 마케팅 전략에 힘입어 맨유의 유니폼을 달았으나 곧 방출되고 만 비운의 선수다. 실제로 뛰는 걸 지켜본 적은 없지만, 위닝을 하며 발견한 바 키는 185를 훌쩍 넘는 반면 움직임은 둔한, 계륵감도 안 되는 선수다.



약체팀을 만나 골차가 벌어져 있는 와중에 나는 덩팡저우를 투입시켰다. 후반 42분경 우리 진영에서 얻은 프리킥을 수비수가 멀리 차 날렸다. 공은 상대방 최후방 수비수와 골키퍼 사이에 떨어졌고, 금방 들어온 그는 재빨리 달려가 그리 쉽지 않은 각도에서 발리슛을 날려 득점에 성공했다. 그후 난 곧잘 그를 투입시켰고, 현재 통산 세 골을 기록 중이다.

나는 퍼거슨이 아니다. 나는 중국시장을 겨냥해 덩팡저우를 스카웃하지 않았다. 그는 게임에 깔려 있었을 뿐이고, 업데이트하지 않으면 앞으로 계속 머물러 있을 뿐이고, 그런데 나는 그에게 끌리고 있고... 나는 앞으로도 가능한대로 'DONG'을 투입시킬 것이다. 또 이미 나는 모든 선수들을 그라운드에 세웠다. 나는 내 선수를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모든 이에게 기회 그리고, 기회를 가질 기회들을 주자'는 것은 '못사는 놈끼리 서로 깔보지 말자'와 함께 내 안에서 가장 오래된, 스무해 묵은 이데올로기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나는 언제나 이 자리에 있었군.

추신: 이거, 왠지 다마고치처럼 되어 버린 것 같다. 나도 중딩 시절 한때 선풍에 가담해서 다마고치를 한 적이 있는데, 사내놈들이 곧잘 그러듯 주머니에 넣고 잊어버리다가 병아리가 죽어 버렸다. 당시 언론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게임을 다시 시작하는 청소년들에게서 생명경시풍조를 발견했는데, 아무튼 병아리가 죽고 나면 나나 친구들이나 다들 우울해 했다. 우리 선수들은, 다칠 땐 있어도(다치면 상대방 선수에게 나는 "저개쉬키씨밸@#%"하면서 욕을 퍼붓는다 그놈들이 못 들어서 한이다), 죽는 일이 없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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