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레일리아>는 영화 속 영화 <오즈의 마법사>와 같은 옛 영화들에 비견될 장면전환을 고리로 하여, 무려 2시간 40여분동안 제2차세계대전기 호주 북부를 비추며 제국주의의 과거를 반성한다. 감독과 남자 주연배우는 호주인이다. 영국 귀족을 연기한 여자 주연배우도 호주인이다. 영국 여성들 가운데 현대 세계인의 취향에 맞는 빼어난 미녀를 찾기는 힘들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올리비아 뉴튼존, 카일리 미노그, 나탈리 임브룰리아 등 유수의 호주인들이 영미 대중문화계로 수혈되고는 했는데, 니콜 키드먼도 그 일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새라 애쉴리(니콜 키드먼 분)가 혼혈아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플레처를 후려치는 것이 페미니즘의 표상은 아닐 것이다. 그녀는 귀족이고 그는 평민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녀는 그 순간 이후로 양심적 귀족의 반열에 선다. 그녀는 '패러웨이 다운스'를 '통치'하지만, '군림'하지는 않는다. 반면, 평민 출신으로 주인을 배반하고, 살인적인 방해공작을 펼치고, 끝내 새 주인을 몰래 살해하고, 그 딸과 결혼한 플레처는 '새로운 자본주의' 또는 '진정한 자본주의'의 퍼블릭 에너미다. 애쉴리와 손잡은 몰이꾼(휴 잭맨 분)은 원주민과 더불어 생활하며 사랑하는 이 곁에도 묶이지 않으려는 자유인, 하얀 얼굴을 하고 들판을 유랑하는 경계인이다. 그러나 그는 피부색을 이유로 바에 들어가지 못하는 자신의 옛 처남과는 달리, 수염만 깎으면 백인 상류층의 무도회에 입장할 수 있다.
애쉴리와 몰이꾼은 축산업계의 큰손 카니를 보좌하는 플레처를 꺾고 육우 떼를 선박으로 몰아넣는다. 플레처가 소 한 마리가 지나갈 수 있는 통로에 의존하다 때를 놓치는 장면은 독점자본이 맞이한 황혼을, 새라와 몰이꾼이 무도회에서 추는 춤은 신흥자본가와 히피세대의 동맹을 상징한다. 그래서 인종차별을 사과한다는 이 영화는 올해 흑인 후보를 내세워 대선에서 승리한 미국 민주당의 자축 무도회처럼 비쳐진다.
한편 이 영화에서 가장 큰 역경에 처하는 어보리진(호주 원주민) 캐릭터들은 어떠한가. 애쉴리가 물질과 모성을, 몰이꾼이 주요한 노동을 제공하는 동안 이들은 마법을 부린다. 그러나 시대는 바야흐로 마법으로 멈출 수 없는 포탄세례로 점철되고 있고, 원주민 할아버지도 막판에는 무기를 쓰고 손자와 함께 숲속으로 떠난다. 원주민들이 숲에 머무르든 거기서 나오든 백인은 그들을 해칠 권리가 없다, 그러나 원주민도 결국 숲과 마법 없이는 제대로 살 수 없다? 어보리진은 여기서 그저 신비화되고 있고 그만큼 타자화되었다. 이 영화는 '어떤 백인들'이 저지른 제국주의를 자성하지만, 오리엔탈리즘을 반성하지는 않는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의미심장한 역사 묘사는 내가 꼽기로는 딱 한 차례 등장한다. 폭격 맞은 바(bar)의 주인은 조금 버티다 마침내 '깜시 출입금지'를 해제한다. 다 무너진 마당에 구별짓기가 무슨 미념이 있으랴. 섬뜩한 진실이지만 인권신장과 복지향상 등 20세기 중반에 맞이한 행복의 배후에는 전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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